노란 개나리 37

망국의 전야

by 강순흠

카이로 선언과 불타는 제국의 끝자락
1943년 11월, 이집트 카이로. 미국의 루즈벨트, 영국의 처칠, 그리고 중국의 장제스가 한자리에 모였다. 그 회담에서 마침내 한 줄이 선포되었다.
“조선의 인민을 노예 상태에서 해방하여 적당한 시기에 독립시킬 것.”
카이로 선언. 오랜 식민의 밤을 견디던 조선 민중에게 처음으로 ‘독립’이 국제 사회의 언어로 천명된 순간이었다. 조국은 아직도 일제의 그늘 아래 있었지만, 두석은 그 소식을 듣고 맨발로 마당을 뛰쳐나왔다.
“들었는가? 이제 바람은 바뀌었어. 그들이 말하잖아, 독립이라고!”
하지만 기쁨도 잠시, 태평양 건너의 격전은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불과 1년 전, 일본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국 해군에게 참패를 당했다. 항공모함 네 척을 잃고, 하늘과 바다에서 제해권을 상실한 일본 제국은 그때부터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그러나 무너지는 제국은 더 미쳐 날뛰었다. 죽음을 피하기 위해 죽음을 부추겼고, 패망을 막기 위해 더욱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
무너지는 전선, 무너지는 인간


중국 화북 전선. 눈덮인 언덕 위에 파묻힌 참호. 일본군 병사들이 얼어붙은 손으로 군용비닐을 움켜쥐며 떨고 있다.
“도쿄 본부는 아직도 결사 항전을 명령하나 봐.”

“중국군은 계속 밀고 내려오고, 미국놈들은 태평양 너머에서 오고, 북쪽엔 소련까지... 대체 우린 왜 여기 있는 거지?”
지휘관은 라디오를 바라보다가 침묵했다. 보급은 끊겼고, 병력은 줄었으며, 총알보다 굶주림이 더 무서운 전장이었다.
중일전선, 태평양 전선, 동남아 전선, 그리고 만주의 소련 국경. 일본군은 네 방향에서 싸우는 전쟁에 매달려 있었고, 그 속에서 조선인 징병자들도 하나둘 소모품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두석은 밀서를 통해 전해지는 전장의 참상을 들으며 이를 악물었다. “이 모든 전선에 끌려간 조선의 아들들은 누구를 위해 죽는가?

천황을 위해?

제국을 위해?

그들이 죽는 그 순간, 우리는 더욱 깊은 굴레로 묶이는 것이다.”


마지막 발악
1944년, 일본은 가라앉는 배에서 물을 퍼내듯, 조선을 더 깊숙이 짓눌렀다. 학도병 징집, 정신대 동원, 미곡 수탈, 금속 공출,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 ‘천황의 군사’로 길러졌다. “너희는 황국의 신민이다. 이름을 바꿔라. 말도 바꿔라. 피마저 일왕께 바쳐라.”
그들은 모든 것을 앗아갔다. 그 속에서 두석은 또 하나의 밀서를 읽었다. 조국은 아직도 어둠 속에 있지만, 세계는 우리의 이름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두석은 손에 힘을 줬다. “빛은 아직 멀지만, 그 불씨는 생겼다. 우리는 그 불씨를 숨결로 살려야 해.”
그 해, 조선의 산과 들에서는 잊혀졌던 이름들이 다시 속삭여졌다. “대한독립만세...”

#작가의 말
‘카이로 선언’을 중심으로, 세계사의 흐름 속에 조선의 독립 가능성이 이렇게 언급되었습니다. 그러나 외부의 선언만으로 독립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동시에 일본 제국주의는 전선의 확대와 미드웨이 해전 패배 이후 광기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조선인 징병과 징용, 보급과 학살, 동원과 세뇌의 구조는 일본 내부의 붕괴가 외부로 퍼지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