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을 향한 총진군
광복군, 조국으로 돌아갈 길을 묻다
1944년 봄, 충칭.
장마로 눅눅해진 회의실 안, 낡은 목제 탁자 위에는 지도와 작전명세서가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다.
밤 11시, 김구는 조용히 회의실로 들어섰다. 그 뒤를 조소앙, 지청천, 김원봉, 차리석이 차례로 따라 들어왔다. 모두 눈빛에 피로가 어려 있었지만, 긴장감은 가득했다.
“오늘 회의는 조선의 미래를 건 논의가 될 것이오.”
지청천이 조심스레 광복군 국내진공작전안을 펼쳤다.
작전명은 ‘독수리 계획(Eagle Project)’, OSS(미국의 첩보기관)와 공동 추진 중이었다.
“미군과 함께 한반도 북부로 잠입, 적정(敵情)을 파악하고 무장 독립군을 이끌고 진격하는 것입니다.”
“시기는 언제로?” 김구가 물었다.
“가을 이전입니다. 미군이 필리핀과 버마에서 일본을 견제하고, 소련이 움직이기 전에 우리가 발을 디뎌야 합니다.”
침묵이 흘렀다. 조소앙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하지만 국내엔 연락선이 없습니다. 독립운동가들도 조직이 붕괴됐고, 일본의 감시망은 더 조여들고 있어요.”
“그렇기에 더 서둘러야 하오!” 김구의 음성이 높아졌다.
“우리가 먼저 조선 땅을 밟지 못하면, 그 자리를 미국이나 소련, 혹은 전혀 준비되지 않은 다른 세력이 채울 것이오!”
차리석이 조심스레 말했다.
“김원봉 선생 쪽의 조선의용대 일부와 중국 공산당계 독립세력도 국내 투입을 준비 중입니다. 경쟁이 아니라 연대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김구는 고개를 저었다.
“해방 후 조선을 좌우로 나누는 일은 없어야 하오. 조국은 하나, 정신도 하나여야 하오.”
그 말에 모두 잠시 말을 잃었다.
지청천은 광복군의 준비 상황을 보고했다. 훈련은 끝났고, 무기와 장비도 확보 중이었다. 남은 건 OSS와의 실전 작전 결의와, 무엇보다도 '조선 내 협력 세력의 확보'였다.
김구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지도 위 한 점을 짚었다.
“이곳, 황해도 해안에서 상륙하오. 그 근처엔 내가 아는 이가 있다. 그와 함께 하는 민족투사들도, 지금쯤 조선을 위해 무엇인가 하고 있을 거요.
이름은... 강두석.”
“강두석?” 조소앙이 고개를 들었다.
김구는 빙긋이 웃었다.
“그 자는 가르침보다 싸움을 택한 사내요. 나라를 되찾기 위한 싸움 말이오.”
(지청천이 작전도를 설명하는 동안, 김구는 지도 위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없이 침잠해 있었다. 그리고 내면의 깊은 소리를 되새기듯, 천천히 눈을 감는다.)
‘조선이란 이름 아래 수많은 피가 흘렀다. 그 피 위에 세워질 나라는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나는 분열된 독립운동을 너무 오래 보았다.
진정한 민족주의는 이념보다 앞서야 한다.
민족을 말하면서도 이념을 앞세우는 것은 위선이며, 그 결과는 분열이다.
그러나 해방은 어느 한 진영의 것이 아니라, 오직 이 백성 모두의 것이다.’
‘나는 조선이 다시는 외세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란다. 미국이든 소련이든, 어떤 강대국의 이름으로도 우리 땅에 들어서선 안 된다. 그러려면 우리가 먼저 가야 한다. 먼저 목숨을 걸어야 한다.’
‘광복군은 숫자가 적고, 총탄도 모자라다. 그러나 이 가슴엔, 이 심장 속엔… 수천 년을 이어온 조선의 넋이 살아 있다. 그 넋 하나만으로도 나는 나아갈 것이다.’
(김구는 눈을 떴다. 여전히 고요한 회의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전과 달랐다. 다시 말문을 열었다.)
“우리가 조선을 향해 걸음을 떼는 그날, 백성들은 반드시 기억할 것이오. 그대들이 진짜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웠다는 것을.”
#작가의 말
1944년 임시정부는 단순히 망명정부가 아니었다. 해방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누가 진정한 조선을 대표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려 고군분투했던 진짜 주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