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개나리 36

국경을 넘은 균등의 꿈

by 강순흠


1942년 늦봄,
바람 끝이 예사롭지 않다. 두석은 창밖을 오래 바라보다, 천천히 책상 위의 종이를 접는다. 작은 조각, 조선어학회의 비밀회지였다.
“결국... 들켰군.”
격섭이 들고 온 밀서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적혀 있었다.
조선어학회 간부들이 일제히 체포되었다는 것.
이윤재, 최현배, 권덕규, 한글학자 30여 명이 구속되었고, 조선어사전 편찬 원고 전부가 압수되었다는 것.
“이름을 잃는다는 건, 존재를 없앤다는 거요.”
두석의 목소리가 떨렸다. “말이 없어진다는 건, 그 삶 전체를 지운다는 거요.”
격섭이 주춤하다가 조심스레 또 한 장의 밀서를 꺼냈다.
종잇조각 안에 적힌 글자들은 또 다른 세계의 숨결을 품고 있었다.

충칭, 1942년 5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한국광복군을 통해 연합군과 작전 협의를 진행 중.
김구, 지청천, 조소앙 등 지도자들 활발히 활동.
도쿄에 대한 타격을 준비하며, 대일 선전포고 후 국제 연대 요청 확대.
미주 지역에서도 독립자금 모금과 군사훈련 참여자 증가.
조선의용대 일부는 조선의용군으로 개편, 무장 항일 전선도 강화.


임시정부의 김구, 조소앙, 김규식 등은 잃어버린 조국을 생각하며 분투하고 있었다.
조소앙은 ‘삼균주의’를 내세워 식민의 억압을 뛰어넘는 새 질서를 구상했다.
상해 임시정부에서는 ‘삼균주의’를 기초로 한 건국 강령을 발표했다.
그 소식은 독립운동자들 사이에 은밀히 퍼졌다.

“모든 사람에게 정치적 균등, 경제적 균등, 교육적 균등을 보장해야 한다.”
— 조소앙, 1941년 건국강령 중

밤례는 야학 수업을 준비하며 두석에게 물었다.
“균등이란 게, 그런 거예요? 다 같이 밥 먹고, 다 같이 배우는 거?”
두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누구도 더럽게 가난하지 않고, 누구도 이름 없이 사라지지 않는 것. 그게 조선의 새길이라오.”


김구는 《백범일지》 속에 절규처럼 써 내려갔다.
“나는 우리나라가 독립을 이루는 데 있어 남의 힘을 믿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


충칭에서의 외교적 투쟁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열강은 조선을 쉽게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1942년 11월, 미·영·중 세 나라가 발표한 카이로 선언 초안에는
“조선을 적당한 시기에 독립시킬 것”이라는 문장이 삽입되었다.
그 한 문장이 조선인들의 마음에 불씨를 남겼다.
‘적당한 시기’란 말이 모호하긴 했지만,
“세계가 우리의 운명을 외면하지 않고 있다는 것”
그 하나로도 밤의 기도처럼 다가왔다.

임시정부는 연합국의 주목을 받기 위해
미국에 “우리는 여전히 싸우고 있다”고 알렸다.
김구와 조소앙, 이범석은 조선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태평양전쟁의 국제질서 속에서
조선의 자리를 만들고자 애썼다.
하지만 조선 땅의 현실은 달랐다.
‘내선일체’라는 미명 아래,
조선은 ‘황국의 백성’으로 이름을 바꾸고
제사상도, 교과서도, 심지어 언어도 일본화되어 갔다.

금당도의 야학터였던 옛 서당 마루에 앉아 두석은 먼 하늘을 향해 글을 써 내려갔다.
“말과 글을 지키는 일은 단지 우리만의 일이 아니오.
그것은 먼 타국에서 피 흘리는 동포들과 맺는 연대이며,
조선 땅의 아이들이 되찾을 미래를 위한 약속이오.”
그는 그 문장을 비밀 일지 가장 끝장에 남겼다.
그 옆에는 ‘大道 永年’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강두석’이라는 이름이 흐릿한 붓글씨로 남아 있었다.


“밖에서는 총을 들고 싸우고 있고, 안에서는 말 한 마디조차 죄가 되었소. 광복군이 연합군과 손잡고 전장을 뛰는 지금, 우리는 왜 입을 틀어막혀야 합니까.”
“그들이 총을 들고 싸우는 건 말할 권리를 지키기 위함이고, 우리가 입을 열어야 하는 건 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겠지요.”
격섭이는 창밖을 보았다. 저 멀리 노을이 바다에 떨어지고 있었다.
“선생님, 광복군이 말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말은 남아야 한다.’”
두석은 조용히 서랍을 열었다. 거기에는 한 뭉치의 문서,

고쳐 쓴 조선어 교재 초안이 있었다.
구겨진 원고 위에 그는 다시 펜을 들었다.
검열을 피해, 국경을 넘을 언어를 만들기 위해.

밤례는 붉은 실로 꿰맨 수건을 펼쳤다.
그 속에는 두 글자가 아로새겨져 있었다.
‘균 등’
“모두 같이 사는 세상이 온다면,
이 글씨도 부끄럽지 않겠죠?”
밤례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모든 이에게 고르게 나뉜 권리와 이름, 그것이 진정한 해방이었다.”
— 봉강정 일기 중에서

#작가의 말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은 한 나라의 언어가 죄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일본은 조선어 학자들을 체포하며 ‘민족말살’의 정점을 찍었다.
그해, 조소앙은 ‘삼균주의’로 조선이 꿈꾸는 국가의 틀을 제시했다.
한쪽에서는 이름을 뺏기고, 말도 뺏기던 땅에서
또 한쪽에서는 미래를 되찾기 위한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삼균주의’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그것은 배움의 권리, 사는 권리, 말할 권리에 대한 약속이다.
두석은 그것을 손으로 짓고 있었고, 밤례는 그것을 바느질하며 짜고 있었다.
그들은 잊히지 않기 위해,
밤례의 실은 조용히 역사의 금을 잇고 두석의 펜은 끊긴 언어의 맥을 이어 적고 있었다.
아무도 몰래, 가장 조용하게 혁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