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은 누구의 것인가
1945년 8월의 끝자락.
서울에서 날아온 전보 한 장이 완도 바닷바람을 갈랐다.
“여운형, 암살 위협… 좌우 대립 격화… 미군정 도착 임박.”
두석은 손끝으로 전보지를 문지르듯 오래 바라보았다.
얼마 전까지 ‘건국준비위원회’의 깃발 아래 모였던 이들이 이제는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고 있었다.
그는 다시 회중시계를 열어 시간을 확인했다. 기홍과 약속한 암호 문장은 아직 오지 않았다. 서울의 숨가쁜 정치와, 외세의 그림자 속에서 그가 무사할지 불안이 밀려왔다.
완도 읍내의 건준 지부.
그곳은 마치 해방의 전초기지라도 된 듯 활기를 띠었다.
하지만 그 활기 속엔 날선 기류가 감돌았다.
“두석 선생, 이거 완전히 빨갱이 판 아니오?”
지역 유지 중 하나가 담뱃재를 툭툭 털며 말했다.
“건준이 뭘 한단 말이오. 미군 온다는데 왜 우리가 나설 일이오?”
두석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가 치안을 잡지 않으면, 누군가는 칼을 들고 나타날 겁니다. 해방의 공백은… 금세 누군가가 채워버릴 겁니다.”
“그 ‘누군가’가 미국이잖소. 믿을 만한 손이 따로 있지, 뭘 우리가…”
그 말에 두석은 대꾸하지 않았다.
한때 동학에 참여했던 인물이었지만, 해방 앞에서 그의 눈빛은 이미 늙어 있었다. 두석은 식량 배급표를 다시 정리하며 읍사무소로 향했다. 백성들은 여전히 배고팠고, 땅은 이름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주인이 없었다.
며칠 뒤, 그는 기홍의 비밀 서찰을 받았다.
‘총독부, 미군정과 사전 협의. 건준은 배제. 여운형, 경계 강화 중. 조심하라.’
9월 8일, 인천.
별 무늬를 단 미군 병사들이 한국 땅을 밟았다.
미소도 감격도 없이, 그들은 총을 든 채 거리를 점거했다.
그 순간 건준의 이름은 급속히 사라져갔다.
일부 조직원은 체포됐고, 일부는 ‘불온한 자’라는 딱지를 붙인 채 쫓겨났다.
“두석, 준비하라.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야.”
그날, 김상진이 남긴 말이 다시 귓가에 울렸다.
밤이었다.
똥뫼산 진진 자락 신당굴 옆, 마른 풀 위에 불빛이 퍼졌다.
두석과 기홍이 마주 앉았다.
“기존의 조직으론 어렵습니다. 좌우 모두 극단으로 기울었어요.”
기홍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제3의 길을 준비해야 합니다. 말과 펜, 그리고 사람을 모아야죠.”
두석은 대답 대신, 가만히 허리를 폈다.
그의 눈은 더 이상 과거를 응시하지 않았다.
그는 앞을 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칼날 위를 걸어야 하겠군요.”
기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제 시간 없습니다. 미군정은 빠르게 질서 복원을 시도할 겁니다. 친일 관료들이 돌아올 거예요.”
“우리가 막지 않으면, 해방은 강탈당할 겁니다.”
두석은 바닷가 언덕 위의 집으로 돌아왔다.
밤례가 마당에 앉아 있었다. 배는 만삭이었다.
“기홍씨… 무사하대요?”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했다.
“응. 서울도… 곧 뒤집히겠지.”
두석이 말했다.
밤례는 손을 그의 무릎에 얹었다.
“당신은… 이제 집을 떠나지 마세요.”
두석은 그녀의 손을 덮었다.
“그래. 나는 이제… 여기 있어야 해. 우리가 할 일을 해야지.”
그리고 그날 밤, 그는 편지를 써내려갔다.
전국에 흩어진 동지들에게.
“이제 시작입니다. 광복은 왔지만, 독립은 아직입니다.”
바닷바람이 다시 불었다.
그 안에는 희망도, 불안도, 다시 싸우겠다는 결의도 함께 실려 있었다.
#작가의 말
1945년 9월, 해방된 조선은 어느 누구도 주인이 아니었습니다.
건국준비위원회의 등장은 민중의 자발적 움직임이었지만, 외세의 질서 앞에서 무력화되었습니다.
여운형이 그린 ‘조선인의 손에 의한 조선의 자치’는 너무도 짧은 봄날 같았고, 미국은 친일 세력을 다시 행정의 주인으로 불러들였습니다.
두석은 바로 그 틈에 있었습니다.
‘우리의 해방’은 왜 ‘우리의 것’이 아니었는가?
이 물음은 단지 역사 속 사건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해방이 진정한 ‘시작’이었다면, 우리는 그 시작에서 무엇을 놓쳤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