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돌아왔다
1945년 가을.
완도의 하늘은 눈부시게 파랬지만, 땅 위의 사람들은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읍내에는 이미 미군정의 통보문이 붙기 시작했고, 경찰서에는 낯익은 얼굴들이 다시 출근을 시작했다.
“저놈 보소, 순형이 아녀? 독립군 잡던 놈이 경찰서로 돌아왔단 말이오?”
누군가 분통을 터뜨렸지만, 누구도 그를 끌어내릴 수는 없었다.
미군정은 ‘행정 능력이 있는 자’라는 이유로 그를 임명했고, 백성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들리지 않았다.
두석은 읍사무소 앞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다, 천천히 등을 돌렸다.
기홍이 말했던 일이 현실이 되고 있었다.
해방은, 친일 관료들의 귀환과 함께 ‘되감기’되고 있었다.
건준 조직은 와해됐다.
지방조직원 일부는 도피했고, 일부는 체포되었다.
두석은 다시 ‘야학’이라는 탈을 쓴 조직 재편을 시작했다.
어린이들을 위한 글공부, 여성들을 위한 재봉반, 밤에는 남성들을 위한 ‘역사 강습’이 조용히 이어졌다.
그날 밤, 좁은 교실에는 십여 명의 동지들이 모였다.
“우리는 ‘봉강회(鳳江會)’라 이름 짓겠습니다.”
두석이 말했다.
“봉강…?”
“내 호에서 따왔소.
이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듯, 우리는 막히지 않고 흘러갈 겁니다.
부끄러운 시대가 돌아와도, 우리는 다시 물을 모을 수 있어야 하니까.”
모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이후, ‘봉강회’는 문맹퇴치와 계몽운동을 가장한 비밀 모임으로 재편됐다.
그들은 친일 관료들의 복귀 실태를 기록했고, 각 마을의 민심을 정리해 서울로 보고했다.
언젠가 다시 오게 될 날을 기다리며.
밤.
산모의 신음소리가 어둠을 뚫고 흘렀다.
두석은 마당에 뜬 등불 아래를 서성였다.
아이 울음소리가 터진 것은, 해가 막 넘어가는 무렵이었다.
“딸입니다.”
조산부가 말했다.
밤례는 땀에 젖은 채 누워 있었다.
지쳐 있었지만 눈빛은 맑았다.
아기를 받아든 순간, 그녀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온몸이 아팠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고요했다.
‘살아 있다는 것, 이 아이를 품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눈을 감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불안한 시대 속에서 또 하나의 생명을 품는다는 것.
그것이 축복인지, 짐인지 모를 순간들.
그러나 밤례는 믿고 싶었다. 이 아이만은 지켜낼 수 있으리라는 것을.
두석이 조용히 아기를 안았다.
작은 손, 부드러운 숨결.
그는 무언가를 건네받은 듯한 기분에 젖었다.
“이름…?” 밤례가 조용히 물었다.
두석은 한참 침묵하다가 말했다.
“…영단.”
밤례는 미소 지었다.
“이 아이는, 잃지 말아야 할 걸 지키는 사람이 되겠네요.”
그녀는 두석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아기의 작은 손가락을 쥐었다.
손끝이 떨렸지만, 그 떨림마저 사랑스러웠다.
어느새 두석과 밤례 사이에 다섯 명의 자녀가 태어났다.
군수. 순심. 현수. 재수. 그리고 영단.
그녀는 여전히 두려웠다.
거리엔 총성이 들리고, 사람들의 눈빛은 자꾸 낮아졌다.
하지만 밤례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어머니이기에,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도시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우익은 테러를 시작했고, 좌익은 지하로 숨어들었다.
온 세상에는 이제 ‘말’ 대신 ‘총’이 오갔다.
그리고 어쩌면, 진짜 싸움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은지도 몰랐다.
두석은 아이를 안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멀리, 파도가 밀려왔다.
언제나처럼.
#작가의 말
“그들이 돌아왔다.”
해방은 다시금 낡은 질서를 불러왔다.
미군정의 ‘효율’이라는 명분 아래, 친일 관료들은 다시 자리를 찾았고, 민중의 분노는 무력하게 눌렸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저항은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두석이 세운 ‘봉강회’는 해방 직후 전국 각지에서 문맹퇴치, 야학, 계몽운동을 가장한 민족운동 조직으로 활동했습니다.
그것이 해방의 또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그리고, 두석의 막내딸 ‘영단’의 탄생.
밤례는 불안 속에서도 아이를 품고, 지키고자 했습니다.
그것이 또 하나의 빛이자, 다음 세대를 위한 약속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