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만이라도
1946년 6월 3일, 전북 정읍.
군중 앞에 선 한 사내는 단호했다.
“남쪽만이라도 임시정부를 세워야 합니다.”
이승만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은
마치 잘린 산맥 위에 다시 철책을 긋겠다는 선언처럼,
이 땅을 가르고 있었다.
강두석은 그날, 사람들의 술렁임을 듣고 있었다.
“남쪽만이라도?”
그건 곧 북쪽을 포기하겠다는 말이었다.
해방을 기다리던 수많은 혼들이 아직도 만주의 계곡에, 간도의 눈밭에 묻혀 있는데.
그들은 조국이 하나로 서는 날을 꿈꾸며 숨을 거두었다.
그런데 이제, 해방은 또 다른 ‘분단’을 준비하고 있었다.
미 군정청.
순형은 새로 맞춘 제복의 단추를 한 번 더 꾹 눌러 채웠다.
그는 다시 살고 있었다.
아니, 이제부터 진짜 살아야 했다.
해방의 날, 그는 두려웠다.
지나는 사람의 눈빛 하나에도 가슴이 철렁였다.
동경 유학 시절, 계몽과 독립을 말하던 그가,
독립투사들을 팔아 전남 경찰부 간부 자리에 오른 그가,
이제 스스로 묻고 싶었다.
나는 누구인가.
그러나 질문은 사치였다.
살아남아야 했다.
미군정은 그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는 그 손을 붙잡았다.
살기 위해,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이름을 지키기 위해
이제는 민족주의자들을 또다시 단속해야 했다.
“듣자 하니, 순형이란 자가 미군정청 쪽 간부로 갔다 하더군요.”
어떤 이가 말했다.
두석은 묵묵히 손에 든 종이 위로 붓을 움직였다.
“...알고 있소.”
“예전 동무였다고 들었소이다.”
“예.
함께 글을 읽었고, 함께 도쿄 거리를 걸었지요.
함께 조국을 논했고, 함께 내일을 그렸소.”
“그런 사람이... 저리 변하다니.”
두석은 멈칫했다.
“변한 걸까요?
아니면, 원래 그런 길을 준비하고 있었던 걸까요?”
이승만의 발언 이후,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이 벌어지고, 미소공동위원회는 결렬되었다.
좌우의 충돌은 심해지고, 테러와 암살이 잇따랐다
서울 종로의 인쇄소 ‘정판사’에서 위조지폐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미군정청은 이를 대대적으로 발표하며 말했다.
“공산주의자들이 대한민국 경제를 파괴하려는 음모입니다.”
단숨에 남로당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됐다.
서울 시민들은 충격에 휩싸였고, 미군정은 ‘적색 분자 소탕’을 명분으로 대대적인 체포 작전에 돌입했다.
두석은 오래된 동지 성기호가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헛헛한 숨을 토했다. 그는 농민조합을 조직해 문맹 퇴치와 분배운동을 하던 인물이었다. 폭력이 아닌 교육으로 세상을 바꾸려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경제 파괴자’가 되었다.
그런데 그 체포 작전의 선봉에는 낯익은 이름이 있었다.
순형.
정판사 사건은 후에 법정에서도 증거 부족이 드러났다.
주모자로 몰린 인물은 고문 끝에 자백했으나, 진술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러나 미군정과 우익 언론은 사건을 대대적으로 확대 보도하며 “공산당의 테러”로 각인시켰다. 그 파장이 정국 전체를 휩쓸었다.
반탁은 애국이 되었고,
좌익은 반역이 되었으며,
진짜 독립운동가들은 침묵을 강요당했다.
반탁은 애국이라는 프레임속에 친일 경찰과 군부, 행정가,수 많은 일제 부역자들이 반탁을 외치며 모여 들었고 오물같은 그들의 행적을 세탁하는 도구가 되었다.
#작가의 말
이승만의 정읍 발언은 분단의 공식적 기원을 여는 서곡이자,
현실적 권력의 윤곽이 드러난 순간이었습니다.
‘남쪽만이라도’라는 말이 낳은 수많은 비극 속에서
우리는 다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와 이상을 되묻습니다.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은 단지 지폐 몇 장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해방공간이 얼마나 쉽게 의심과 조작의 무대가 되었는지를 상징합니다.
그 틈을 타 순형 같은 인물은 살아남았고, 두석 같은 인물은 흔들리며도 끝내 펜을 꺾지 않으려 했습니다.
해방의 무게는 오히려 해방되지 않은 자들을 향해 더욱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질문합니다.
누가 이 시대의 진짜 위조자인가?
“진실은 종종 가장 먼저 체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