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민심, 타오른 10월
쌀 창고는 불탔고, 민심은 더 뜨거웠다. 전남, 전북, 경남의 장터마다 ‘쌀을 내놓으라’는 외침이 넘쳐났다. 그러나 미군정은 유통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폭도’를 체포하고, 시위자를 검거했다.
“쌀이 죄냐, 굶주림이 죄냐.”
광주 형무소 앞에 선 두석은 떨리는 손으로 피 묻은 고무신을 들었다.
창고 약탈 혐의로 붙잡힌 이는 열다섯 소년이었다. 그는 밀가루 반 되를 품고 있었을 뿐이었다.
1946년 10월, 대구.
역전에서 시작된 노동자 시위는 곧 철도, 우편, 전화, 교사 등으로 번졌다.
10월 1일, 철도노조의 파업이 시작되었고, 시위는 ‘미군정 철폐’ ‘쌀을 내놓으라’로 번져갔다.
경찰의 발포는 여지없이 시작되었다.
민중의 몸을 향한 총성.
그리고 분노의 불꽃은 전국으로 퍼졌다.
“경주, 안동, 마산, 순천, 함평, 그리고 광주... 들판이, 골목이 들끓고 있어요.”
밤례는 눈물로 말했고,
두석은 조용히 응시했다.
“민심이 먼저였어야 했다. 미군정은 사람을 몰랐다.
정의가 아니라, 배를 채워줄 정부를 원한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또 하나의 얼굴, '진압자'들
“빨갱이들입니다! 조직적 선동이에요! 모조리 때려잡아야 합니다!”
순형은 경비대 회의석상에서 선명하게 외쳤다.
그의 어깨엔 새 계급장이 붙었고, 입에는 새로운 주술이 붙었다.
“그들도 백성이다.” 두석이 말하자, 순형은 비웃었다.
“백성이 나라를 뒤엎을 수 없지.
그럼 난 누구를 위해 총을 쥐고 있나? 두석, 넌 아직도 세상을 모른다.”
역사라는 심판대 앞에서
영재는 몰래 창고를 옮겼고, 순형은 진압 명령을 내렸다.
밤례는 피란민을 숨기다 협박을 받았고,
두석은 결국 광주형무소를 다시 찾았다.
이번엔 자발적으로.
“무엇이 옳은지 묻는 자를 위해, 나는 여기 있겠다.”
그는 일기에 썼다.
#작가의 말
1946년 10월 항쟁은 단순한 ‘폭동’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밑바닥에서, 가장 본능적으로 터져나온 생존의 외침이었고
이념이라는 이름 아래 무시당한 민중의 정의였습니다.
‘검은 쌀’이 만들어낸 하얀 분노,
그 속에서 우리는 누구의 얼굴을 보아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