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쌀, 흰 민심
1946년 여름, 미군정은 양곡 유통의 자유화를 선언했다. 통제된 물가를 깨부수고, 자유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쌀의 매매를 허용했다. 표면적으로는 ‘시장 경제의 회복’이었지만, 현장에서는 피와 눈물의 권력 장이 열렸다.
장터 창고 앞, 해가 떠오르기 전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누군가는 주먹밥을 싸들고 와 줄을 섰고, 누군가는 빈 자루를 양 어깨에 둘렀다. 아이는 울었고, 노인은 주저앉았다.
그 줄 끝엔, 쌀이 없었다.
“장에 쌀이 하나도 없다고요? 어제까지 있던 게 다 어디로 간 거요?”
“어디긴요, 창고에 숨겨놓고 장날 가격 올리는 거지요. 다 알아요, 우린 바보가 아니라고요.”
백성들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가격은 며칠 사이 수십 배로 뛰었다. 어느새 ‘시장 자율화’라는 말은 ‘쌀 가진 자의 천국’이 되었다.
강두석은 붉게 일어난 먼지 사이를 뚫고 창고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묵은 먼지 냄새와 쌀겨 냄새가 뒤섞인 곳. 가마니가 산처럼 쌓인 창고 안에, 익숙한 그림자가 있었다.
“이거, 너희들 거냐?”
그는 고요히 물었다.
쌀 위에 앉은 사내가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강두석, 아직도 그런 소리 하고 있나. 이건 내 게 아니다. 시장의 거지. 세상이 바뀌었잖아.”
영재.
두석과 순형, 그리고 영재. 세 명은 어린 시절, 같은 집 밥을 나눠 먹던 ‘의형제’였다. 그때는 조국을 걱정했고, 백성을 논했다. 그러나 지금, 영재는 ‘장터의 왕’이 되어 있었다.
“시장? 굶는 사람들을 보며 그게 시장이란 말이냐.”
“두석아 너도 배워야 해. 현실 말이야. 굶지 않으려면, 이상보다 쌀이지.”
영재는 손을 뻗어 가마니 위를 두드렸다. 쿵, 쿵. 무언가를 확인하듯.
“미군정도 원해. 시장의 자유.
좌익? 좌익은 굶주린 자들이 짓는 헛소리지.”
두석은 말이 없었다. 그의 주먹이 떨렸다.
바로 그 순간, 창고 밖에서 들려온 외침.
“쌀을 내놔라! 우리 애가 굶어 죽는다!”
“이게 나라냐! 독립이 이런 거였냐!”
돌멩이 하나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창고 유리창이 박살 났다.
누군가 문을 열고 밀고 들어왔다. 농부의 손, 아이를 업은 어미의 울음, 눈을 부릅뜬 젊은이.
창고가 소용돌이쳤다.
두석은 뒷걸음질 치며 외쳤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사람을 다치게 해선 안 돼요!”
그러나 민심은 이미 눌린 화산이었다. 누가 불을 붙였는지, 불씨는 기름을 뒤집어쓴 듯 번졌다.
그날, 장터 창고 하나가 불탔고, 군정 경찰은 몇 명을 연행했다. 그리고 소문이 돌았다.
“이젠 우리가 나서야 해. 뺏긴 밥그릇, 우리가 찾아야 해.”
밤마다 금당도의 언덕에서는 노란 개나리 대신, 짙은 보릿물 냄새가 피어올랐다.
흰 쌀은 울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이 울었다.
#작가의 말
역사의 죄는 언제나 한 줌의 탐욕으로 시작됩니다.
쌀은 단지 곡물이 아니라 삶이었습니다.
배고픔은 이념을 가르지 않았고, 이익을 좇는 자는 언제나 먼저 짓밟았습니다.
영재라는 인물, 그는 현실이었습니다.
오늘의 우리 안에도 여전히 숨죽여 존재하는 그 얼굴, 우리는 과연 외면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요?
이 땅의 수많은 ‘순형’과 '영재' ‘두석’은 그런 갈림길 위에 서 있었다. 이 이야기의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당신이라면,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