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개나리 61

검은 바람, 붉은 달

by 강순흠


군정에서 국방부로 권력이 이양되자
본격적인 ‘토벌전’이 시작됐다.
작전명: 초토화 작전.
명령은 단 하나였다.
“무장대와 그 협조자,
그리고 의심스러운 자까지,
모두 제거하라.”
마을이 통째로 불탔다.
오름 아래 숨어 있던 노인들이
총검에 찔렸고,
아이들은 어미 품에서 숨이 끊겼다.

한림에서, 표선에서,
너무도 많은 이들이 죽었다.
산 사람들은
죽은 자의 이름을 외치지 않았다.
외쳤다간,
같이 죽었기 때문이다.
“김덕순… 어르신은…
말없이 산속으로 올라가셨지요.”
“거기서… 못 내려오셨어요.”
두석은 어느 날,
남도에서 피난 온 여인의 말을 들었다.
그녀는 열 살 아들을 가슴에 안고
해안가 민가의 장독대 밑에서
사흘을 숨었다 했다.
“숨만 쉬어도, 잡혀갔어요…”

북촌 학살이 자행되었다.
마을주민 390여 명이
하루 만에 ‘청소’되었다.
군인은 울지 않았다.
명령이었기 때문이다.
“총 쏘는 놈보다,
구덩이 파는 놈이 더 오래 살아남더라.”
밤이 오면,
어디선가 불길이 치솟고
개가 짖지 않았다.
하늘이 붉게 물들면
누군가 사라졌다는 뜻이었다.

서북청년단과 토벌대는
제주를 ‘이념의 섬’이 아닌
반역의 섬으로 규정했다.
마을마다 협조자 명단이 돌았고,
상대가 빨갱이라는 말 한마디면
숨통은 바로 끊어졌다.
“이건 학살이야. 토벌이 아니라…”
두석은 떨리는 손으로 기사를 쓰려했지만
신문사조차 그걸 거부했다.
“국가를 욕하지 마시오.”
“우린 지금 전쟁 중입니다.”

그해 봄,
오름 너머로 보름달이 뜬 밤.
한 노파는
마지막 남은 식량을
묘지에 가져다 놓으며 중얼거렸다.
“이걸 먹고, 다시 태어나렴.
다음 생엔…
조용한 섬으로 오너라.”
붉은 달이, 그 밤 제주를 비추고 있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 알고 있었다.
제주는, 학살당하고 있었다.


#작가의 말
제주는 국가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 공간이었다.
이념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계급이 아니라, 얼굴이었다.
빨갱이가 아니라, 제주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씌워진 이름은
“폭도”였고,
“협조자”였으며,
“청산 대상”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묻는다.
누가 그들을 죽였는가.
왜, 기억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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