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개나리 62

불타는 섬, 이어진 들판

by 강순흠


또 다른 봉기
1948년 가을.
제주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불은 바람을 타고 육지로 번졌다.
10월 19일. 여수.
국군 제14연대 병사들이
명령을 거부하고 봉기했다.
“왜 우리더러 제주로 가라 합니까?
그곳에서 민간인을 죽이라니요?”
그날 밤,
총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천으로, 보성으로, 구례로
혼란은 들불처럼 번져갔다.

두석은 오랜 지인에게 편지를 받았다.
여수에 주둔 중인, 옛 학생이었다.
“선생님, 저들은 우리에게
민간인을 학살하라 했습니다.
제 동기들은 거부했고, 총을 들었습니다.”
편지는 검은 먹으로 적혀 있었고,
잉크 자국마다 피 냄새가 섞여 있었다.
“이 나라의 군복이
왜 우리에게 총을 들게 합니까?”

이승만 정권은
이 사태를 ‘공산폭동’으로 규정했다.
‘토벌’이라는 말이 공식화되자,
군은 항쟁 지역을 포위하고 들어갔다.
총탄은 들판을 가르고,
불은 산동네를 휘감았다.
사람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외쳤다.
“나는 공산당이 아닙니다.
나는 그저 사람입니다.”
하지만 증명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이미 ‘피의 지형’에 있었다.

여순사건은
제주 4·3과 닮았으나,
더 육중한 침묵 속에 묻혔다.
제주는 섬이라서,
피비린내가 바다에 갔고,
여수·순천은 육지라서,
죽은 이들의 핏자국 위에
도로와 건물이 들어섰다.
“여순은 말하면 안 되는 일이었어.”
“제주도도 그렇지 않습니까?”
“다르지… 똑같았지… 그게 더 서글퍼.”

한 젊은 병사가
자수 후 남긴 한 마디.
“우린 국민을 지키는 군인이 아니었어요.
국민을 죽이는 총이었죠…”
그는 총살당했다.
군법회의는 묻지 않았다.
왜 총을 들었는지,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
그저 ‘명령 불복종’
그것 하나로 모든 것이 끝났다.

#작가의 말
제주와 여순.
두 사건은 결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의 절규로 연결돼 있었다.
그 절규는 국가에 짓눌리고,
이념에 찢기고,
말할 수 없는 이름으로 남았다.
이것은 반란인가, 항쟁인가?
국가는 반란이라 했지만,
그들의 피는 묻고 있었다.
“우리는 누구였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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