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진 이름들
반란은 진압되었다.
정부는 여수·순천 전역에 계엄령을 유지했고,
사건은 '종결'이라 발표되었다.
신문은 쓰지 않았다.
방송은 침묵했다.
산 사람들조차 입을 다물었다.
누군가 말했다.
“살고 싶으면 모른 척 해.”
“그냥 넘어가. 괜히 정의 찾다 죽는다.”
진실은 바다 밑에 가라앉았다.
사람들은 그 위에
일상을 덮어 가며 살아갔다.
여수 봉기 주동자 일부는 재판도 없이 사살되었다.
나머지는 군사재판에 넘겨졌지만
변호인도, 가족도 만날 수 없었다.
재판장은 판결만 읽었다.
“국가에 반역하였기에 총살형을 명함.”
20살 남짓한 청년들이
'살고 싶다'고 울부짖었지만,
대답은 총성이었다.
어떤 이는 말했다.
“우린 북에 가려 한 게 아닙니다.
제주도에 가길 거부했을 뿐입니다...
민간인을 죽이기 싫었습니다... 그게 죄입니까...?”
그는 묻혔다.
죄로, 아니면 침묵으로.
두석은 순천 근처 야산 마을에서
외팔이 남자를 만났다.
그는 여순 사건 때 반란군에 가담했다.
그러나 그는 누구도 쏘지 않았고
도망쳐 숨어들었다.
남자는 땔감을 패다 문득 말했다.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살아남았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두석이 물었다.
“당신은 왜 명령을 거부했습니까?”
남자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했다.
“사람을 쏘는 건, 나라를 위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옳았는지,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남자는 한 장의 종이를 보여주었다.
죽은 전우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건 우리가 만든 명단입니다.
진압당하기 전에, 서로 써두었습니다.
우리를 기억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거든요.”
그 종이 위에는
글씨가 번져 있었다.
빗물 때문이 아니었다.
손에서 묻은 눈물 때문이었다.
며칠 뒤, 두석은 우연히 어린 소년에게 들었다.
“어른들은 왜 싸웠어요?
왜 총을 들었어요? 왜 서로 죽였어요?”
두석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알았던 답은
세상 누구도 듣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날 밤, 두석은 일기를 썼다.
“진실은 말해지지 않을 때,
역사란 이름으로 포장된다.”
“나는 지금 침묵을 걷고 싶다.
언젠가 누군가가 이 이름들을 다시 부를 수 있도록…”
#작가의 말
여순 사건은
누가 옳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인간이었는가,
누가 침묵을 명령했는가의 문제다.
진실은 기록되지 않았다.
반란군은 ‘빨갱이’로 지워졌고,
양심의 선택은 ‘불순한 행위’로 몰렸다.
그러나 지워진 이름들 속에는
지워지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묻힌 것이 아니라,
잊힌 것이다.
그리고,
강두석은 그 잊힌 이름들을 다시 불러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