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개나리 65

사라진 마을, 두 개의 노래

by 강순흠



두석은 순천 인근 산골로 향했다.
그곳은 ‘장평’이라 불리던 마을.
여순사건 이후,
정부군에 의해 전소된 곳이었다.
들판엔 불탄 기왓장만이 남아 있었고,
마을 어귀엔 이름 모를 비석 하나가
넘어진 채 풀에 묻혀 있었다.
비석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곳에 사람이 살았다.”

폐허 속 유일하게 지붕이 있는 집.
그곳에 노파 하나가 살고 있었다.
등은 굽었고, 말도 적었다.
두석이 물었다.
“왜 이곳을 떠나지 않으셨습니까?”
노파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대답했다.
“내 자식이 이 흙에 묻혀 있다.
사람이 무너진 곳은 다시 사람으로 지켜야 한다.”
그녀는 아들을 잃었고, 남편도 잃었다.
그러나 도망치지 않았다.
말없이 버텼다. 기억하려고.

밤이 되자, 노파는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느린 음조의 민요였다.
“바람이 분다, 산 너머 고개에도,
어머니 품에서 불러주던 그 노래…”
두석은 그 곡조가 익숙했다.
제주 4.3 사건 때도,
살아남은 자들이 불렀던 곡이었다.
“제주는 잊혔고, 여수도 묻히는 겁니까?”
노파는 대답했다.
“노래는 같고, 상처도 같은데…
사람들은 자꾸 다르다고만 하더라.”

강두석은 마을 곳곳을 돌며
무너진 담벼락에 작은 글귀를 새기기 시작했다.
“여기 누가 살았다.”
“이 집엔 이름 없는 소년이 살았다.”
“이 우물가에서 사람들은 웃었다.”
누가 읽을진 모르지만,
적었다.
기억이 지워지지 않도록.

그날 밤,
두석은 꿈을 꾸었다.
불에 탄 마을이 활활 타오르고,
그 속에서 수많은 얼굴들이 손을 흔들었다.
“우리를 기억해 다오…”
“우린 죄인이 아니었소…”
“우린… 그냥, 살고 싶었소…”
깨어난 두석은
묵묵히 등을 돌렸다.
그는 이제
이 나라의 ‘지워진 이름들’을
한 명 한 명 써 내려가리라 결심했다.

#작가의 말
여순과 제주,
둘은 다른 섬이지만,
하나는 육지의 남쪽 끝이고,
다른 하나는 바다 너머의 슬픔이다.
국가는 두 사건 모두를
‘폭도’의 난동으로 기록했지만,
거기엔 살고자 했던 사람들과,
죽이고 싶지 않았던 병사들이 있었다.
두 개의 노래가 있다.
하나는 살려달라는 노래.
하나는 잊지 말라는 노래.
이제,
그 노래들을 누가 들어줄 차례다.

작가의 이전글노란 개나리 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