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개나리 66

진실과 반역 사이

by 강순흠



1948년 10월 20일.
계엄령이 선포된 여수·순천 일대는
군부대와 경찰이 점령한 도시가 되었다.
가가호호 검거가 시작됐다.
누구든 ‘빨갱이’로 지목당하면
옥에 갇혔고,
변명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장교 말에 토 달았답니다.”
“무기고 근처를 지나갔답니다.”
“간첩과 같은 성을 가졌습니다.”
이유는 필요 없었다.
의심만 있으면 충분했다.

강두석은 순천의 한 경찰서 유치장에서
곪은 상처투성이 청년을 만났다.
그는 두석의 옛 제자였다.
“선생님, 전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그냥 군복 벗고 도망치려다 잡혔습니다.
그런데... 옆자리 친구가 절 불었습니다.”
그 청년은 고문 중
자기도 모르게 거짓을 진술했고,
그 진술로 다른 친구들이 죽어갔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전 누굴 죽였습니다.
말 한 마디로…”

재판은 없었다.
있더라도 요식행위였다.
조작된 조서,
받지도 않은 진술서에 도장이 찍혔고
판사는 형식을 따라
“사형”을 선언했다.
군 법정은 정의가 아니었다.
그곳은 권력이 반역자를 만들어내는 공장이었다.
두석은 그 장면을 지켜보며
속으로 읊조렸다.
“이 나라에 법이 있다면,
지금 이 법정은 그 법에 의해 심판받아야 한다.”

사람들은 침묵했다.
혹은 기회가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 한 명,
과거 동무였던 영재는
이젠 군인들 앞에서 앞장서며 말했다.
“이번에야말로 좌익의 씨를 말려야지요.
미군정도 그렇게 말하더이다.”
두석은 차마 대꾸하지 못했다.
말은 총보다 더 깊이 사람을 찔렀다.

밤이 되자,
사형 선고를 받은 이들이 트럭에 실려
산으로 끌려갔다.
그 중 몇은 두석이 알고 있는 얼굴들이었다.
두석은 그들이 탄 트럭이
검은 먼지를 일으키며 떠나는 것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 밤,
달은 밝았고,
울음은 작았다.

#작가의 말
진실과 반역의 경계는
그 시대에선 인간이 결정할 수 없었다.
그건 총을 든 자들의 눈빛에 달려 있었고,
말 한마디에 달려 있었다.
여순사건은 반란이었을까?
아니면 항변이었을까?
그 질문은 지금까지
제대로 답해지지 않았다.
기억하지 않는 나라에선
진실이 늘 패배자가 된다.

작가의 이전글노란 개나리 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