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반역 사이
1948년 10월 20일.
계엄령이 선포된 여수·순천 일대는
군부대와 경찰이 점령한 도시가 되었다.
가가호호 검거가 시작됐다.
누구든 ‘빨갱이’로 지목당하면
옥에 갇혔고,
변명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장교 말에 토 달았답니다.”
“무기고 근처를 지나갔답니다.”
“간첩과 같은 성을 가졌습니다.”
이유는 필요 없었다.
의심만 있으면 충분했다.
강두석은 순천의 한 경찰서 유치장에서
곪은 상처투성이 청년을 만났다.
그는 두석의 옛 제자였다.
“선생님, 전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그냥 군복 벗고 도망치려다 잡혔습니다.
그런데... 옆자리 친구가 절 불었습니다.”
그 청년은 고문 중
자기도 모르게 거짓을 진술했고,
그 진술로 다른 친구들이 죽어갔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전 누굴 죽였습니다.
말 한 마디로…”
재판은 없었다.
있더라도 요식행위였다.
조작된 조서,
받지도 않은 진술서에 도장이 찍혔고
판사는 형식을 따라
“사형”을 선언했다.
군 법정은 정의가 아니었다.
그곳은 권력이 반역자를 만들어내는 공장이었다.
두석은 그 장면을 지켜보며
속으로 읊조렸다.
“이 나라에 법이 있다면,
지금 이 법정은 그 법에 의해 심판받아야 한다.”
사람들은 침묵했다.
혹은 기회가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 한 명,
과거 동무였던 영재는
이젠 군인들 앞에서 앞장서며 말했다.
“이번에야말로 좌익의 씨를 말려야지요.
미군정도 그렇게 말하더이다.”
두석은 차마 대꾸하지 못했다.
말은 총보다 더 깊이 사람을 찔렀다.
밤이 되자,
사형 선고를 받은 이들이 트럭에 실려
산으로 끌려갔다.
그 중 몇은 두석이 알고 있는 얼굴들이었다.
두석은 그들이 탄 트럭이
검은 먼지를 일으키며 떠나는 것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 밤,
달은 밝았고,
울음은 작았다.
#작가의 말
진실과 반역의 경계는
그 시대에선 인간이 결정할 수 없었다.
그건 총을 든 자들의 눈빛에 달려 있었고,
말 한마디에 달려 있었다.
여순사건은 반란이었을까?
아니면 항변이었을까?
그 질문은 지금까지
제대로 답해지지 않았다.
기억하지 않는 나라에선
진실이 늘 패배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