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개나리 67

산 자의 증언

by 강순흠




강두석은 목포의 허름한 사무실에 있었다.
그때, 한 신사가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섰다.
마른 얼굴, 굳은 입매.
하지만 눈동자는 살아 있었다.
“선생 강두석 맞으신지요?
나는... 여수사건 생존자요.”
그의 이름은 정창규.
여수 제14연대 소속 하사관이었다.

“그날, 우리는 명령을 받았소.
‘제주 토벌 파병 명령’이었소.
그런데 대대장이 말했지.
‘양민을 쏘러 가는 전쟁은 명령이 아니다.’”
그렇게 반란은 시작됐다.
하지만 모두가 뜻을 같이한 건 아니었다.
“몇은 자발적으로 총을 들었고,
몇은... 억지로 끌려갔소.
나도 마찬가지였지.”
그는 민간인으로 위장해 달아났다가
계엄군에게 붙잡혔고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다.

“처음엔 혁명이라 믿었소.
‘남로당이 주도해 민중정권을 세운다’며
큰소리치는 동료도 있었지.”
하지만 곧 그는 깨달았다.
그 안엔 이상도, 정의도 없었다.
“자기들끼리 숙청하고,
민간인을 의심하고...
산으로 끌고 가 총질하더군.”
정창규는 한 번은 저항했다.
그리고 처형명단에 올랐다.
하지만 구사일생으로 빠져나왔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하나요.
그들도 가해자였고,
피해자였소.”
“당신이 기록해야 하오.
그날, 그 밤, 산에 묻힌 이름 없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누구의 편도 아니었소.”
강두석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록은 언제나 승자의 것이었고,
진실은 패배자의 뒤에 숨는다.

그날 밤,
두석은 오래된 공책을 꺼내
정창규의 증언을 한 줄 한 줄 적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는 침묵한다.
그러나 역사는,
언젠가 그것을 묻는다.”
그의 필기 위에
한 줄기 달빛이 내려앉았다.
마치, 기록하라는 듯이.

#작가의 말
여순사건은 단순한 군 반란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강요된 침묵, 자발적인 참여,
그리고 거부한 자들까지.
한 사건에는 하나의 진실만 존재하지 않는다.
산 자의 증언은
그 복잡한 진실을 향한 첫걸음이다.
기록이 남지 않으면
역사는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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