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처음엔 받아들이기 너무 힘들었다.
내 아들이 게임에 빠져사는, 내가 제일 경멸하던 부류의 젊은이라는 사실이.
몇 년간 대학에서 가르쳤다. 난 순전히 재수가 좋아서 교수가 된 케이스다.
주먹이 커서 우연히 네덜란드의 한 마을을 침수로부터 구한 그 소년처럼. 그 소년이 심부름 갈 때 댐에 구멍이 뚫리지 않았다면 그 소년은 그냥 평범하게 히딩크 옆집에서 살다가 늙어 죽었을 거다.
우연히 구멍을 봤기 때문에 국가적 영웅이 된 거다. 나도 우연히 비행기에서 대학교 총장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옆자리에 앉아서 수다를 떨지 않았더라면 교수는 언감생심이다.
삶은 정말 우연이 90% 같다. 참, 그 소년의 동상에 뭐라고 쓰여있는지 아는가? “니 팔뚝 굵다.”
10시에 시작하는 수업에 들어가 보면 병든 KFC처럼 꾸벅꾸벅 조는 놈들이 있다. 분명히 새벽까지 게임질 하다가 출석만 하면 패스하는 내 수업을 들으러, 아니 듣지 않고 자리 채우러 나온 놈, 년들이 분명하다. 요즘은 여학생도 게임중독자가 있더라.
한 번은 바로 앞에서, 그러니까 등잔불 좌석에서 퍼질러 자는 놈이 있어 강단으로 불러 세웠다. 내 강의는 400명이 수강을 하는 옴니버스식 강의라서 학교에서 제일 좋은 음악당을 내줬다. 정말 폼나는 강의장이다.
“너 수업료를 낸 거니? 숙박비를 낸 거니? 왜 아까부터 조는 거야?”
“죄송합니다.”
“죄송할 짓을 하지 말아야지. 여긴 대실이 아니라 대학이야.”
“죄송합니다.”
“넌 죄송하단 말 밖에 못하냐?”
“죄송... 아니, 미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넌 오늘 확실하게 털어놔야 할 거다. 왜 아침부터 조는 거냐? 도대체 어젯밤에 뭐 했어? 솔직히 말하기 전에는 절대 이 수업 통과 못해!!”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난 그 학생으로부터 이런 대사를 예상했다.
“어제 새로 시작한 RPG 게임을 하느라 한 잠도 못 잤어요.”
그런데 얼굴이 통통하고 바가지 머리를 하고 있던 그 학생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학교 앞 편의점에서 야간 알바를 합니다. 그런데 7시에 끝나서 자야 하는데 교수님 수업을 꼭 들으려고 잠 안 자고 와서.... 참았어야 하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
말줄임표는 이럴 때 쓰는 게 맞는 거 같다.
정말 말이 안 나왔다.
“얘들아, 미안하다.... 아니 죄송합니다.”
난 조용해진 400명의 학생들을 바라볼 용기가 없어 머리를 숙이고 그 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난 너희 학교 졸업생이야. 선배라고 말하기도 부끄럽구나. 난 연극영화과야. 우리 학교 중에는 가장 성적이 안 좋은 학생들이 왔던 학과란다. 그런데도 졸업 때는 과사무실에 추천서가 수북이 쌓여있었지. 골라서 갔단다. 그런데 요즘은 취업하기 정말 힘들지? 수업료가 올라서 학교 다니는 것도 쉽지 않을 거야. 학교를 다니려고 알바를 하는 건지 알바를 하려고 학교를 다니는 건지... 우리 선배란 놈들이 너희들이 먹어야 할 과일까지 싹 따먹은 느낌이야. 우리 힘들다고 나무도 다 잘라서 땔감으로 쓰고, 과수원 땅도 다 팔아 쳐 먹었지.... 그러니 너처럼 공부를 하고 싶어도 알바를 하느라... 정말 선배로써 부끄럽다. 이런 나라를 물려줘서.”
난 그 학생들 끌어안았다.
“너 내 아들 하자. 앞으로 정말 힘든 일 있으면 친아버지를 찾아가고. 아주 큰 문제가 생기면 날 찾아와라. 제발 큰 문제가 안 생기기를 바라지만...”
실없는 농담으로 끝을 내야 어색한 분위기를 모면할 거 같았다.
이 남학생을 제외하고는 수업 중 조는 놈들은 모두가 게임중독자일 것이다. 그런 꼴 보기 싫은 학생처럼 내 진짜 아들, 신새벽도 게임중독자라는 걸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아들을 데리고 부천에 있는 상담소를 찾아갔다. 지인으로부터 추천받은 곳은 강남의 유명한 정신과 병원이었다. 요즘 정말 잘 나간다고 한다. 이런저런 중독자들을 자식으로 둔 부모들이 데려와선 전부 캐시로 상담료를 지불한단다. 의료보험을 이용하면 기록에 남으니까.
현찰로 받은 상담료도 역시 세무서 기록에는 남지 않겠지.
정신과는 크게 상담으로 치유하는 의사와 약물을 이용하는 의사로 나눠진다. 추천받은 곳이 약물치료를 우선하는 곳이라 상담하는 곳으로 알아봤다.
초등학교 때 ‘뻐꾸기 둥지로 날아간 새’ 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를 봤을 때의 충격이 너무 커서 약물치료는 처음부터 생각지도 않았다. 아마데우스를 만든 밀로스포만 감독의 뻐꾸기를 난 초등학교 때 봤다. 미성년자불가영화인데 어떻게 가능했냐고? 토토에게는 <시네마 파라디소> Cinema Paradiso가 있었다면 나에게는 <중곡극장>이 있었다.
토토를 언제나 받아줬던 알프레도처럼 <중곡극장>의 검표원은 미성년자 불가 영화라도 표만 있으면 받아줬다. 왜냐하면 이 극장은 지금은 사라진 동시개봉관이기 때문에 전체관람가 영화와 미성년자 불가 영화를 붙여서 개봉할 때도 있었다. 만화 홍길동을 보고 나갈 줄 알았던 내가 극장 화장실에 숨었다가 다음 영화인 성인용을 보는 건 너무 쉬운 일이었다. 물론 화장실의 나프탈렌 냄새를 참아야 하는 게 좀 힘들긴 했지만.... 그때 화장실 안쪽의 낙서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난 어제 친구 집에 놀러 갔다. 근데 친구는 없고 친구누나가 잠을 자고 있었다. 오른쪽에서 계속’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근데 친구 누나의 치마가 바람에 펄럭였다. 그런데 노팬티였다. 반대쪽에서 계속’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난 꼴렸다. 그래서 누나를 덮쳤다. 그런데... 위를 보시오’ 위로 고개를 올렸다.
‘뭘 봐 ** 놈아’
지금 생각해 봐도 웃긴다. 그 낙서를 쓰기 위해 천정을 향해 낑낑거리던 놈을 생각하면...
이렇게 <중곡극장>에서 본 성인 영화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였다. 마지막
장면에서 9척 거구의 인디언이 추장이 물 마시는 분수대를 들어 올려 벽을 부수고 달아다는 장면을 보며 눈물을 흘리던 기억이 생생하다. 4학년 초딩 놈이 뭘 안다고 눈물까지 흘렸는지...
그리고 두 번째로 기억나는 작품은 ‘영자의 전성시대’ 미어터지는 만원 버스의 차장이 된 영자가 버스에서 굴러 떨어져 팔을 잃고 창녀촌에 들어가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리고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 이 영화는
영상보다 음악이 더 기억에 남는다. 이장희의 목소리로 들었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터질 것 같은 이내 사랑을...’
그 콧수염 달린 가수가 나의 삶에 이리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란 건 그때는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이런... 또 옆길로 샜네.
정신병원에서조차 당당하고 활발하고 유쾌하던 잭 니콜슨이 그 마귀 같은 간호사가 준 약을 먹고 진짜 정신이상자가 되는 모습이 강렬해서 아들에게는 약물치료 대신 상담부터 받기로 했다.
부천에서 만난 상담사는 이렇게 말했다.
“아드님은 게임 중독이 아닙니다. 중독이란 그걸 좋아해서 빠지는 게 아니에요. 무엇인가로부터 도피하려고 찾는 피난처예요. 술이 좋아서 알코올중독이 되는 게 아니라 뭔가로부터 피하려고 찾은 피난처가 술인 거죠. 알코올중독자들도 항상 그렇게 말해요. 난 술이 싫다. 술을 끊고 싶다. 그런데 근본적인 원인을 치료하지 않으면 다시 술에 빠져 중독이 되는 거죠.”
“그럼 도대체 우리 아들은 뭐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거죠?”
“성장”
그 상담사는 40쯤 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단어가 나는 생경했다.
“성장을 피하려고 한다니 그게 뭔 말이에요? 누구나 성장은 해야 하잖아요. 우리 아들이 뭐 피터팬이라 이겁니까?”
“혹시 아버님.... 이혼하셨나요?”
난 이래서 상담이 싫다.
치료한다는 이유로 상대방의 상처를 자꾸 건드리는 게 너무나 싫다. 부러졌던 뼈가 다시 붙으면 더 단단해진다는데 그거야 뼈일 때 얘기고 정신적인 상처는 자꾸 건드리기보다는 내버려두는 게 낫다는 게 내 주장이다. 그냥 웃어넘기는 게 최고라고 난 생각하며 살았다. 그래서 내가 자주 웃었는지도 모른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그런 나를 ‘유머이 달인’ ‘웃음 전도사’ ‘개그맨 뺨치는 개그작가’라고 불렀다. 지나가는 개그맨이라도 있으면 정말 뺨이라도 치고 싶었다.
“아들이... 이혼했다고 말하던가요?”
“아뇨. 상담을 해보니까 결손가정 아이들에게서 나오는 반응을 그대로 보이더라고요.”
쳇, 결손가정이 뭔데.
결손가정은 아버지가 없거나 어머니가 없는 가정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근데 아니다. 오히려 결손가정은 아버지가 더 있거나 어머니가 더 있는 가정이다. 난 아니다. 이혼을 했지만
다시 재혼을 했거든. 이혼했던 그 여자와 다시 재혼을 했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는가?
“이혼을 했었죠. 근데 2년 만에 다시 아들 친엄마랑 재결합을 했습니다. 그것도 전부 자기를 위해서 그런 건데.... 물론 아들 때문에 다시 합쳤지만 지금은 사이가 좋습니다.”
그 상담사 책상 너머의 책장에 꽂혀있는 가족사진을 봤다.
부부와 두 자녀가 청바지에 흰 티셔츠를 똑같이 입고서 찍은 가족사진이다. 왜 한국의 가족사진은 전부 똑같은 청바지 의상에 똑같은 포즈를 취하는 것일까? ‘가족’ 사진이 아니라 ‘족가’ 사진이다. 보여주기 위한 쇼쇼쇼.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 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가족사진을 좀 찍지 그랬냐. 마지막으로 언제 가족사진을 찍었지? 새벽이 돌 사진인 거 같다. 너무 바빴잖아. 아버지가 반대한 유학이라 학교보다 직장부터 찾아야 했고 처음 하는 결혼이라 생각지도 않은 애가 덜컥 생겨서 돈을 두배로 벌어야 했고. 네가 가족사진을 찍을 틈이 어딨었냐? 넌 정말 너를 희생하며 가족들 건사하느라 정신이 없었잖아. <선셋 스튜디오>라는 사진촬영관을 LA에 차려서 흑인폭동으로 정신없던 1992년에도 수백 명의 한인 가족들의 가족사진을 찍어주면서 정작 우리 가족은 사진 찍을 틈도 없었잖아. 난 최선을 다 했어. 난 정말 누구랑 비교해도 훌륭한 가장이야. 그런 아빠의 노고도 모르고 하나뿐인 자식 놈이 게임중독이라고? 조기 유학을 시키느라 너 때문에 엄마랑 난 생이별을 해야 했고 난 한국에 남아서 코미디 작가로 돈을 벌어야 했는데 너는 하버드나 MIT는 고사하고 결국 대학교도 졸업 못하고 게임중독자가 돼서 한국으로 돌아와? 그런데 그 원인이 나 때문이라고? 내가 이혼한 거 때문이라고??’
“저기요.... 새벽이 아버님?”
“아.... 네.... 방금 뭐라고 하셨죠?”
생각에 빠져서 잠시 정신 줄을 놨던 나에게 상담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울증이 심각합니다. 이 정도면 입원을 시키는 게 좋아요.”
“우.... 우울증이요...?”
내가 급성 우울증에 걸리는 기분이었다. 엘리베이터의 줄이 끊어지면 이런 느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