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파운드의 무게
- 50파운드의 무게
그렇게 우울증 진단을 받은 게 작년이었다.
아들은 그 후 10여 차례 상담을 받으러 다녔다. 아들을 상담실로 보내고 난 길거리에 주차하고 그대로 기다렸다. 주차비라도 절약하려고. 아들은 점점 달라졌다. 첨에는 강연을 다니며 쇼핑몰 운영으로 바쁜 아빠가 자기를 위해 부천까지 운전해서 데려다주는 걸 미안 해 하는 눈치였는데 점점 뻔뻔스럽게 달라졌단 말이다.
기다리다가 설렁탕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하는 날도 있었다. 난 그렇게 맛없는 설렁탕의 추억을 잊을 수가 없다. 썰렁탕이다. 젠장, 이럴 때는 조크도 잘 안된다. 웃겨야 하는 유머강사가 이러니 정말 상담은 내가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업들의 강의도 점차 줄었다.
그 시작은 세월호 때부터였던 거 같다. 첨에는 국가적 비극이라 강의가 취소되고 연기돼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럼요. 이 시국에 유머 강의라는 게 말이 안 되죠. 저도 자식 가진 부모로서 노란 리본만 보면 눈물이 나요. 네, 나중에 연락 주세요.”
그렇게 취소된 강의는 그렇게 그만이었다. 기업들 강의도 줄줄이 줄었다. 경기가 안 좋아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경기가 좋았던 적은 을미사변 이후로 없었던 거 같다. 근본적인 원인은 한 사장님의 넋두리에서 알게 됐다.
“기업이 교육을 해야죠. 안 하면 미래가 없어요. 근데 미래 걱정보다 당장 오늘 걱정이 앞서거든요. 무리해서 교육을 시키면 뭐 합니까? 머리가 깨지면 더 좋은 직장을 찾거나 창업을 하는데. 그러니까 당장 필요한 직무교육 외에는 전부 취소시킨 거죠. 그나마 신교수님 교육은 긍정을 강조하니까 좋아요. 근데 강의료 좀 깎아 주세요. 긍정적으로다가...”
그래서 나도 새로운 사업을 찾았다. <쇼핑몰>
지금 당장 포털 사이트를 봐라. 위쪽의 주제어들 가운데 항상 ‘쇼핑’이 있다. 그만큼 중요한 게 사는 거다. 살기 위해 뭐든 사야 하니까.
그래서 쇼핑몰 회사를 차렸다. 남들과 똑같이 하면 똑같이 망하니까 ‘남다른 차별화’ 전략을 취했다. 이름하야 <하하 웃자 쇼핑몰>
기왕이면 쇼핑을 재미있게 하자는 모토를 잡았다. 남들과 비슷비슷한 상품만 있는 데가 아니라 유머, 코미디, 개그, 조크와 관련된 상품들만 모아서 쇼핑몰을 차린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상품들이다. 앉으면 방귀소리가 나는 방석, 참치 통조림인데 따면 멸치가 들어있는 통조림, 들이마시면 내시 목소리가 되는 헬륨가스 풍선, 고양이 인형인데 누르면 야옹 소리 대신 깔깔대는 웃음소리를 내는 인형, 왼손잡이들을 위해 손잡이가 반대로 달린 머그컵 (사실 그냥 머그컵도 돌려놓으면 왼손잡이용이 된다. 왼손잡이용 야구방망이도 수입할걸),
치약처럼 생겼는데 짜 먹는 젤리가 들어있는 튜브,
볼펜인데 위를 누르면 볼펜심 대신에 볼펜 똥이 나오는 볼펜, 진짜 똥냄새도 난다.
미국 유학시절에 백화점이 모여있는 Mall에 가면 이런 상품만 파는 가게들이 있었다. 거기서 힌트를 얻어 재미있고 웃기는 상품만 모아서 우리나라 최초로 만든 <하하 웃자 쇼핑몰>
난 이 사업으로 강의가 줄어도 대박이 터져서 깔깔 웃고 살 줄 알았다. 그런데 주변의 친구들만 웃었다.
“하하하... 그거 봐라. 내가 뭐라고 했냐. 안된다고 했잖아. 남들과 차별화? 남들이 안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야. 하하하...”
쇼핑몰 상품 중에 리볼버 권총모양의 장난감이 있다. 누르면 빨간색 잉크가 나간다.
잉크 대신 진짜 매그넘 총탄이 나가서 그 녀석들을 쏘는 상상을 여러 번 했다.
우리나라에 없는 상품들이라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수입을 하거나 직접 만들어왔다.
근데 미국서 수입을 해도 결국엔 Made in china여서 나중엔 중국에 샘플을 들고 가서 제작해 왔다. 중국 갈 때마다 비행기는 저가항공을 이용했다.
여기서 잠깐 퀴즈, 대단한 항공과 아쉬하나 항공 중에 어디가 더 좋을까? 이것도 순전히 나의 주관적 주장이지만 대단한 항공이 낫다. 아쉬하나 항공은 밥을 안 주는데 대단한 항공은 물이라도 준다. 던져줘서 그렇지만... 그래서 난 소시민의 소심한 응징 차원에서 저가항공만 탔다. 왜 저가항공인지 아는가? 타봐라, 완전히 젓같다.
이름은 <하하 웃자 쇼핑몰>인데 점점 지출은 늘고 수입은 줄었다. 그래서 결국 폐업을 할 위기에 다다랐다. 우리는 최저시급보다 항상 1000원이라도 더 준다고 장담을 했는데 실업급여를 받게 했다. 사장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할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끌어다 쓴 자금도, 물론 제도권이 아닌 친척권 자금도 갚을 길이 막막해졌다.
사업한다면서 뛰어다니고 불규칙한 출장을 다니다 보니 간간이 들어와서 숨통을 트여주던 강의도 요청하는 곳이 사라졌다.
집에 생활비를 가져다준 게 벌써 1년 전이다.
‘이대로는 안돼.... 방법을 찾아야 해. 항상 네가 강의에서 말했잖아. 선택을 잘하라고.
그리고 가급적 긍정적 선택을 하라고. 그러면 꼭 좋은 결과가 온다고. 그래 결심했어!!‘
결심을 하고 집에 돌아온 날밤.
아들은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야 인마! 넌 사람이 들어왔는데 아는 척도 안 하냐?”
난 아내와 아들을 식탁에 앉으라고 했다.
밥상머리 교육은 정말 중요하다. 만약 내가 다시 태어나서 다시 이 여자를 만나고 이 자식을 낳는다면 절대 조기유학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 식탁에 앉아 밥을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그게 식구 食口 아닌가. 늦었지만 마지막 밥상머리 교육을 시작했다.
“가방을 싸라. 가방의 무게는 50파운드를 넘지 않게.”
“여행 가요?”
“응 여행을 가자.”
“어디로요?”
“미국, 미국행 비행기는 가방 하나의 무게가 50파운드야. 킬로로 하면...
아들아 얼마냐?”
식탁에 앉아서도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는 아들에게 물었다.
“....”
화를 안 내고 말하려고 했는데 참을 수가 없다. 그래도 화를 꾹 참으며 밥상머리 교육을 이어갔다.
“넌 이 순간에도 폰만 보냐?? 난 내가 니 폰이었으면 좋겠다. 나만 볼 거 아니냐.”
아들이 웬일인지 대답을 했다.
“나도 아빠가 내 폰이었으면 좋겠어. 2년 만에 한번씩 바꾸게.”
“허허허....”
웃음이 나왔다. 기운 빠진 너털웃음이.
내가 코미디 작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10년 전에 쓴 ‘유머가 이긴다’는 책이 30만 부나 넘게 팔리면서 베스트셀러 작가소리를 들으며 화려한 유머강사로 알려졌고, 우리나라 최초의 웃음을 파는 쇼핑몰 사장이기 때문에 매우 내가 성격이 좋은 줄로 사람들은 착각한다.
난 화를 잘 낸다. 웃으면서 내서 사람들이 잘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특히 대학 강의 때 폰을 보는 학생들을 보면 정말 참을 수가 없다.
“어이 학생. 좋은 말로 할 때 집어넣으세요. 집중을 해야지 집중을.”
그래도 학생들은 여전히 폰을 본다.
대꾸를 하는 학생도 있었다.
“교수님, 저는 멀티플레이어 Multiplayer입니다. 보면서 들을 수 있어요.”
“이봐요 학생, 멀티플레이어? 그거 개뻥이야. 동시에 두 가지를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아, 딱 한 가지 있다. 샤워하면서 오줌 싸는 거.”
내가 수업 중에 폰 보는 학생들에게 극도의 화를 참을 수 없는 이유는 역시 아들 때문인 거 같다. 저 녀석도 누군가의 아들일 텐데 수업 중에 뭐 하고 있는 거냐. 내 자식이나 저 녀석이나... 어이구,... 저러다가 뭐가 되려고...
"여보, 50파운드가 몇 킬로예요?”
“당신은 애 데리고 미국서 10년을 살았으면서 파운드 계산도 못해? 영어는 또 왜 그렇게 안 늘어? 당신 몸무게 늘린 만큼 영어실력이 늘렸으면 미드를 자막 없이 보겠다. “
“난 한인타운에 살았잖아요. 로스앤젤레스에서 영어 잘하는 사람은 노숙자밖에 없다고!!”
“노숙자가 영어로 뭔지 알아?”
“홈레스 Homeless 지!!”
“그건 잘 아네.”
“그거라도 외워둬야지.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가 전부 홈레스가 될 텐데!!”
“당신 정말...!!”
아내와 나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자 아들이 소리쳤다.
“22.6796185”
“그게 뭔 소리야?”
“50파운드가 몇 킬로냐고 물었잖아. 22.6796185 킬로그램이라고”
아내가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역시 우리 새벽이 가 머리는 좋아요. 노력을 안 해서 그렇지.”
“머리가 진짜로 좋으면 노력도 잘하지.”
“당신은 왜 하나뿐인 아들에게 항상 부정적으로 말해요? 강의에서 하는 말은 다 뻥이에요?
내가 입만 뻥긋하면 당신 강의 듣고 팬이 된 사람들이 다 기절할 거예요.”
“응, 다 기절할 거야. 당신이 뻥끗하면 입냄새가 진동할 테니까.”
“속이 썩어 문드러져서 나는 냄새라고!! 내가 어떻게 견디는지 몰라서 그래 당신?”
“그래서 뜨자는 거야. 미국으로. 여기선 더 이상 버틸 방법이 없어.”
이 말을 하는 내 손에 들려있는 왼손잡이용 머그컵이 살며시 떨렸다.
아내의 눈을 쳐다보지 않아도 이미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손에 물 묻히지 않겠다는 약속은 못해서 눈에 눈물 고이지 않겠다는 약속은 지킬게.’
첫날밤의 그 약속도 지키지 못한 남편이 되어 있었다.
목을 가다듬으며 아들에게 물었다.
“사랑하는 아들 새벽아, 50파운드가 몇 킬로인 줄 어떻게 알았어? 정말 우리 아들 대단하네.”
아들은 어깨를 들썩 거리더니 스마트폰의 화면을 보여줬다.
50 lb = 22.6796185 kg
한국에서의 55년간의 삶이 약 23킬로 무게의 가방으로 정리되는 밤이었다.
나의 삶의 무게는 딱 그만큼이었다. 아직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