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도시에서 악마를 만나다
엘에이의 날씨는 항상 기분 좋았다.
공항 터미널의 문이 열리며 길거리로 나가면 제일 먼저 훅~ 하고 다가오는 그 공기가 좋았다.
로스앤젤레스도 항상 스모그 때문에 도시 전체가 시커먼 매연 덩어리에 감싸여 있지만 서울에서 날아온 사람들에게는 청량한 공기로 다가온다. 더구나 4계절 그리 춥거나 덥지 않고 봄가을의 날씨가 계속되기에 공항에 도착하면 항상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매번 혼자서 출장을 오다가 온 가족이 함께 왔는데, 온 가족이라고 해봤자 세 명이지만, 여행으로 온 것이 아니기에 캘리포니아의 청명한 날씨를 즐길 틈이 없었다. 평소 같으면 예약된 렌터카를 잡으러 렌터카 회사로 가야 했지만 갑자기 떠난 여행이라서 예약을 못했다. 우버를 타기로 했다.
LA공항에서 우버를 타려면 우버차가 설 수 있는 우버존으로 가야 했다.
“새벽아, 가방 좀 들어줘”전화를 하기 위해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아들에게 주렸는데 아들은 본 척도 안고 자기 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가방 좀 들어 달라니까 뭐 해?”
“잠깐만 아빠.... 여기는 와이파이가 안 터져??”
“터미널 밖에서는 안 터져”
“미국이 한국보다 인터넷은 후지다더니 진짜네,,,”
급히 차를 잡아야 하는데 아들이 딴짓을 하니까 욕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
“아빠 급하단 말이야.... 이 가방 좀 들고 있으라니까”
목소리 톤이 점점 올라가니까 옆에 있던 아내가 끼어든다
“나한테 줘. 그럼 되잖아. 왜 애한테 뭐 라그래”
내 얼굴이 징그러워지는 걸 본 눈치 빠른 아내가 아들에게도 한마디 한다
“넌 미국까지 와서 왜 폰만 들여다보니?? 저기 저 미국 사람 좀 봐. 배가 네 아빠 두 배는 된다”
“엄마, 미국에서는 사람 빤히 쳐다보고 몸매 평가하고 그러는 거 실례야. 그리고 뭐가 두 배야? 세배는 되겠구먼”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낄낄거리는 아내와 아들의 모습이 예전 같으면 사랑스러웠겠지만 떼인 돈 받으러 온 심정으로 이곳에 날아온 나에게는 그냥 철없어 보였다,
“관광 오셨어요?”
우버 기사는 60이 넘어 보이는 한국 사람이었다,
“어머 한국 분이세요? 안 그래도 미국 와서 영어 못하면 어떻게 하나 했는데 정말 잘됐네요”
어디서나 붙임살이 좋은 아내가 말을 이어갔다.
“미국엔 언제 오셨어요?”
“한 30년 됐을 겁니다. 처음 10년간은 햇수를 셌는데 지금은 뭐 언제 왔는지 기억도 잘 안 나요”
“그럼 영어 잘하시겠네요?”
“그냥 먹고사는 영어나 하는 정도죠.”
아들이 끼어들었다
“엄마, 나도 먹고사는 영어는 잘해. Give me 초콜릿”
“하하하, 아드님이 똑똑하시네요. 기브미 초콜릿도 아시고”
“사실 미국 덕분에 우리나라가 이 만큼 사는 거잖아요. 육이오 때 구해주지 않았으면 어찌 됐겠어요”
“엄마, 육이오 때 누가 누굴 구해줘?”
“아니 그럼 넌 그것도 모르고 기브미 초콜릿 한 거야? 옛날에 미군들 트럭이 지나가면 아이들이 따라다니면서 ‘기브미 초컬렛또’ 그랬데. 그러면 트럭에서 미군들이 초콜릿을 던져 줬다고”
기사가 백미러로 뒤를 흘끔 보면서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런 걸 아시기엔 어머니 나이가 젊어 보이는데,..”
“호호호,... 저희 어머니가 항상 해주시던 말씀이거든요. 그때 초콜릿, 분유, 밀가루 많이 얻어먹었다고. 안 그랬으면 우린 굶어 죽었다고”
“그렇죠. 그래도 미국이란 나라가 청교도 정신으로 세워진 국가라서 그런지 이민자들에게 관대한 편이에요. 유럽처럼 인종차별이 심하지도 않고 아직도 아메리칸 드림을 꿈꿀 수도 있고...”
아내가 전화기만 붙잡고 있는 나에게 대뜸 물었다.
“여보, 우리 캘리포니아에서 사는 게 좋겠다. 날씨가 너무 좋아. 안 그래요?”
지금 나의 신경은 온통 친구에게 전화하는 것에 쏠려있다. 한국에서부터 계속 전화를 했는데 신호만 가고 받지를 않는다. 이 메일에 답도 없고.
사실 미국에 온 이유는 이 친구에게 맡겨놓은 돈을 찾는 것이다. 인터넷 사업을 해외로 확장하려고 아마존 사업을 도와준다는 친구에게 매달 송금을 해 놨었다.
공동 대표로 법인도 만들었다. 그런데 한국 상황이 안 좋아져서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미국에 왔는데 연락이 계속되지 않는다.
정신이 온통 전화기에 쏠려있는데 다시 아내가 질문을 한다.
“여보, 여기서 사는 건 어떠냐니까?”
“으.. 응, 좋아.”
건성으로 대답하고 다시 폰에 새로운 문자가 온건 없는지 확인을 했다.
아내는 다시 우버 기사와 대화를 이어갔다.
“저기 저런 집은 얼마나 해요?”
흰머리가 머리 주변으로 난 기사는 창밖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답을 했다.
“집값이야 다른데 보다 저렴하지만 이 동네는 사람 살 곳이 못돼요,”
“왜요? “
“동네 전체가 깜깜해요.”
“깜깜하다니요? 전기가 안 들어오는 것도 아닐 텐데...”
답답했는지 아들이 참견을 했다.
“흑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고”
“아드님이 똑똑하네요. 싸우스센츄럴이라는 곳인데 한국 사람들은 이 동네 안 살아요. 외곽에 백인들 사는 동네에 많이 살죠. 지금 가시는 한인타운도 한인 상점이나 식당들이 많아서 한인타운이지 한인들은 많이 안 살아요. 오히여 멕시칸들이 많이 살지.”
이민 생활을 오래 했다는 기사의 말을 듣다 보니 묘한 거부감이 들었다. 미국이 이민자들에게
관대하고 인종차별이 없다고 하더니 그의 말에는 묘하게 흑인들에 대해 인종차별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타보는 미국산 SUV 자동차는 웨스턴 길을 따라 한인타운으로 접어들었다.
그전에 한번 묶은 적이 있던 한인타운의 호텔로 자동차는 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