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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소영 Jun 15. 2024

인정욕구 채울까? 비울까?

나의 길, 나만의 길, 나를 찾는 여정

인정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감정이나 심정, 남을 동경하는 따뜻한 마음입니다. 

욕구는 무엇을 얻거나 무슨 일을 하고자 바라는 일을 말하죠. 


인정 욕구를 채운다는 것은 다른사람이 나에게 따뜻한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이고,

인정 욕구를 비운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심정을 얻고자 하지 않는 것이에요.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갖는 것이 내 의지대로 되는 일인가요?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심정을 얻고 얻지 않는 것을 내가 선택할 수 있나요?

다른 사람의 따뜻한 마음은 제가 조절할 수 없어요.

통제할 수 없는 타인의 감정을 바라는 것은 백전백패라는 것을 사전적 의미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결혼 전에는 프로 이직러였어요.

2009년에 종합병원 첫 입사해서 2016년 현 회사에 입사하기 전까지 총 4군데에 입사/퇴사를 반복했죠.

또 재미있는 사실은 처음 2번의 이직을 할 때는 이직할 때마다 연봉이 천 만원씩 낮아지는 경험도 했습니다. 그 때는 연봉이 중요하지 않았어요. 살기 위한 이직이였기 때문에 연봉보다는 내가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였죠.

당시에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고요, 비교도 하지 않았어요. 내가 누군지 알았고, 내가 어디에 있어야 숨쉴 수 있는지 알았고,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 뿐이었어요. 누군가 내 연봉이나 처우를 알고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내가 일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죠. 오래 버티지 못하는 직장은 큰 돈을 줘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던 시기 입니다.

그리고 2017년에 결혼을 해요. 2016년에 마지막으로 입사한 회사의 환경과 분위기가 저와 무척 잘 맞는 대다가 이제는 남편이라는 사람이 생겨서 더 이상 연봉을 낮춰가면서 까지 저에게 잘 맞는 환경을 찾는 일은 멈췄습니다. 


하루 아침에 사람이 변했어요. 

결혼 전에는 무조건적으로 나를 사랑하는 부모님 아래에서 자신감 있게 살았어요. 제가 어떤 꼴을 하고 나타나도 받아주실 부모님. 부모님 앞에서는 ‘이렇게 낳았잖아?’ 하며 당당할 수 있는 저란 사람이 변했어요.


왜일까요? 남편은 부모님과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도 자연스레 알게 됩니다. 남편은 저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지는 않아요. 우리의 만남이 그렇습니다. 저도 남편을 조건적으로 사랑해요. 남편이 그 직장, 그 얼굴, 그 키, 그 차… 아니었다면 결혼했을까요? 남편의 다른 조건에 만족하며 결혼했을지는 몰라도 조건없이 결혼하지는 않았을 거에요. 


이렇게 조건적 사랑은요, 상대방을 만족시켜야 해요. 조건적 사랑이 계속되려면 상대방의 테스트에 계속해서 합격해야 합니다. 결혼생활이 오래되면 조건적 사랑이 무조건적으로 될까요? 조건이 줄어드는 것 뿐이에요. 또 새로운 조건이 생기기도 하구요. 

새로운 가족이 생겼는데 조건적 사랑을 기반으로 한 가족. 

그런 가족 안에서 ‘나만의 길’, ‘나를 찾는 것’ 을 할 수 있을까요? 가당키나 해요?

아름다운 신혼생활은 서로 서로 상대방의 길을 찾아주려는 노력에서 시작될 거에요. 


하지만 본래 사람은 태어난 대로 사는 법이죠.

‘너라는 사람이 알고 싶어.’ 결혼했는데요, 오랜 시간이 지나니 ‘이제 나도 찾아볼까?’ 하는 마음이 스물스물 기어 올라옵니다. 결혼생활은 지속되고 있지만요. 결혼생활 끝난게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을 알고 싶은 마음’과 ‘나를 알고 싶은 마음’이 충돌하고요, 인간의 본능에 따라 ‘나를 알고 싶은 마음’이 늘 그렇듯 승리합니다.

개중에 ‘아닌데? 나는 상대방이 더 중요하고, 상대방을 더 인정하고 싶은데?’ 그런 분들도 많죠. 마음이 상합니다. 상대방이 더 중요한 마음이 오래가면 마음이 고장나요. 

내 마음 건겅하게 살다보면 ‘내’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동안 내가 아닌 것들로 나를 채워왔어요. 조건적 사랑을 주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려, 내 시간, 내 돈, 내 능력, 내 에너지, 내 근육, 내 뇌. 모두 내가 아닌 것들로 채워져 있죠.

그런데 이 안에 내가 들어설 자리가 있나요? 이럴 때는 우선 비워야 합니다. 비워야 해요.

내가 아닌 모습을 천천히 비워야 해요. 조건적 사랑에 부응하려 노력할 필요가 없어요. 인정 욕구는 채워질 수 없다고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 노력하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 붓기에요. 


다른 사람에게 쓰인 내 시간도 비우고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쓴 내 돈도 비우고요, 다른 사람에게 쓴 내 근육도 비우고요. 천천히 비워보세요.

하루 아침에 다 비울 수 없어요. 비워도 다시 채워지기도 할테고요, 그래도 계속 비우는 거에요. 사회적으로 주어진 역할이 있기 때문에 비우는 것이 쉽지 않아요. 그래도요, 다른 사람으로 채워진 상태로 두면 안됩니다. 자리가 날 때까지 계속 비워요. 설사 나를 채우지 못하고 죽더라도, 비우는 과정에서 내가 아닌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요. 빈 자리가 생겨야 해요. 어느 순간 빈자리가 고정석이 되어요. 늘 비워져 있는 자리. 그 때 내가 들어설 수 있는 거에요.


빈자리가 생기는 것, 그 자리를 나로 채우는 시간은 참으로 아름답고 편안하고 희망적이에요. 그 자리를 나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채워주세요. 오직 나만이 할 수 있어요.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고,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하는 나로 채워주세요. 


저는 저의 빈자리를 글쓰기로 채우려해요. 오랜 시간 비우고 저에게 남은 것은 쓰기라는 것을 알고 참 마음이 편안해졌고요, 쓸 수 있다 생각하니 기뻐요. 쓰는 것은 과정이에요. 결과가 아니에요. 쓰는 것은 쓴다 안쓴다, 썼다, 안썼다. 사실만 있어요. 의견은 없습니다. 쓰기만 하면 됩니다. 내가 나를 사랑한다고 글로 쓰고, 그 글을 나로 받아들이는 것. 계속 할거에요. 


인정욕구의 방향을 나로 설정하세요.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것. 나만이 나를 인정할 수 있어요. 내가 나를 인정하려는 욕구는요 채울 수 있어요. 하루에 하나, 나를 인정해보세요. 나를 무조건적으로 있는 그대로 사랑해보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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