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근원과 만나기

'해도 소용없다'는 내 생각의 근원은 어디서 왔을까?

by 하서연

어릴 때부터 나는 이유 모를 피로가 있었다.
사람들 속에서 웃고 맞추고, 분위기를 살피고,
집에 돌아오면 꼭 오래 잠들어버렸다.

나는 한 번도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이 없다.
“나는 왜 이렇게 쉽게 지칠까?”
왜 어떤 일은 시작조차 하기 어려웠을까.
왜 좋은 기회 앞에서도 머리가 먼저 “그냥 쉬자”고 속삭였을까.

어제, 그 이유를 아주 선명하게 보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 나는 가난했고 부족하다는 생각에 친구들 비위를 맞추며 놀았다.
그렇게 해야 관계가 유지된다고 믿었고,
집에 돌아오면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게
당연하고, 바람직하고, 착한 일이라고 배웠다.

그리고 나는 오랫동안 몰랐다.
그 날들이 내 안에 어떤 문장을 만들어놓았는지.

“나는 내가 원하는 걸 해도 소용없어.”
“움직이면 결국 지쳐버릴 거야.”

나는 최근에 이 문장들이
내가 가진 모든 ‘멈춤’, ‘의심’, ‘하기 싫음’의 정체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릴 적 나를 지키기 위한 생존 방식이
성인이 된 나를 가두는 벽이 되어 있었다.

그걸 알게 된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용해졌다.
아무것도 해결된 것 같지 않은데
어딘가 단단하게 풀린 느낌이었다.

아마도,
처음으로 내 안의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너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야.”
“이제 너가 좋은 걸 해도 돼.”
“너는 앞으로, 다른 사람과 다른 특별한 삶을 살 것 같아.”

이 문장을 스스로에게 해 준 순간
나는 놀랄 만큼 편안해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문제는 의지가 아니라,
내 안에서 오랫동안 작동하던 오래된 시스템이었다는 걸.
움직이지 못한 게 아니라,
움직이면 위험하다고 배워왔던 거라는 걸.

그래서 나는 지금, 새로운 삶을 연습하고 있다.
작게 선택하고, 작게 움직이고,
내가 나를 믿어보는 매일을 만들어가고 있다.

당신은

어디에서 멈추고 있었나요?
당신 안에도

아직 풀리지 않은 문장이 있나요?
당신은 어떤 순간에

‘그냥 쉬고 싶다’고 느끼나요?

혹시 저처럼
어릴 적의 방식으로 지금의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늘 빛나던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