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주부였던 어머니의 바쁨에 대해 생각해본다. 생활 속 어머니의 바쁨은 하는 일의 복잡성이나 난이도에서 오는 것이라기보다 그 사이사이에 숨 쉴 여유가 없는 바쁨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아침에 눈을 떠서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할 일을 찾아 집 안을 노려보셨다. 치워도 치워도 장마철 잡초처럼 기어오르고 퍼지는 네 식구 살림은 예민한 어머니의 신경을 날카롭고 허둥거리게 만들었다. 어머니는 늘 굳게 입을 다물고 당신이 해야 할 일들과 그 순서를 정해놓은 뒤 영민하게 따랐다. 새벽 6시면 일어나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어 머리카락이 방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예방한다. 집안 전체를 무릎으로 기어 다니며 손걸레질을 한 뒤, 요리를 하고 차리고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한다. 여기까지는 매일의 루틴이다. 간혹 해야 할 다른 일, 예를 들면 학교 상담이라던가 병원, 관공서, 은행 방문, 친인척 치다꺼리 같은 이슈들이 생기면 이 기본 루틴을 절대 깨뜨리지 않은 선에서 사이사이에 일을 끼워 넣었다.
어머니는 외할머니가 입원해 계신 병원에 병간호를 다니면서도 새벽에 일어나 걸레질을 하고 아침 식탁을 차리고 설거지까지 마친 뒤 완벽한 상태의 집을 뒤로하고 현관문을 나섰다. 아버지가 입원하셨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바쁘면 바쁠수록, 몸과 마음이 지치면 지칠수록, 어머니는 단호한 표정으로 날카롭게 새벽 걸레질을 했다. 힘들고 지쳐 보여 도우려는 생각에 말을 걸면 정신사나우니 말 걸지 말라고, 가만히 좀 내버려 두라고 화를 냈다. 오후 늦은 시각, 하교 후 들어선 빈 집에는 어머니가 두고 간 긴장과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다. 주부였던 어머니의 삶은 지독하게 힘들고 외로웠나 보다. 십여 년 전, 갱년기를 맞은 어머니는 평생 집안일만 하다가 '병신'이 되었다고 우울해하셨다. 나에게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도 절대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당신처럼 집에 있다간 늙어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 '등신'이 될 것이라 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힘들었던 이유는 주부여서가 아니라, 당신의 삶 속에서 숨을 쉴만한 여유를 찾는 노력을, 그 시도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 새벽밥을 차리고 매일 손걸레질을 하는 어머니만큼 부지런하지는 못하지만 그만큼 예민하고 그만큼 체력이 약하다. 특히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할 때 남편이나 복숭아가 와서 말을 걸면 화가 난다. 레인지 후드가 태풍 같은 소리를 내며 윙윙 돌아가는 부엌 한가운데 내가 서있다. 인덕션 위의 찌개 냄비는 펄펄 끓는데, 그 안에 넣을 파를 급히 씻느라 수도꼭지를 틀었다. 그때 거실 소파에 앉아있는 자들은 "엄마! 된장찌개에 두부 꼭 넣어!" 혹은 "아잉, 나는 계란말이 해주면 안 돼?" 혹은 "찌개야 찌개, 넌 꼭 찌개라면서 국을 끓이더라. 내 말 들었어? 찌개라고!"라고 말했을 뿐인데 나는 단전이 뜨거워지면서 부아가 치민다.
참다 참다 도대체 몇 번을 말하냐고, 난 소머즈가 아니라 레인지 후드를 켜놓으면 안 들린다고, 물 쓰고 있는 소린 안 들리냐고, 집안일은 육체노동이라고, 힘들다고, 일할 때 말할 힘까지 낼 수 없으니 나한테 말 좀 시키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그 표정이나 억양, 내용이 내 어머니의 것과 영락없이 판박이다. 간혹 몸이 아프거나 아르바이트 등 다른 일로 바쁠 때도 있다. 그때도 딱 내 어머니처럼 남편이나 딸에게 주부가 하는 집안일을 하라고 시키지 않는다. 내가 모든 짐을 다 끌어안은 채 힘들어 죽겠다고 울부짖으면서도 동시에 걸리적거리니 옆에 오지 말라고 톡 쏜다. 절대 도움을 말하지 않는다.
내가 주부가 된 이유는 집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내가 다 책임져야겠다는 이타심에 취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내 시간을 써서 돈 대신 여유와 한가함을 벌고 싶었다. 식구들이 모두 나간 빈 집에 혼자 남고 싶어 주부가 되었다. 계절과 날씨와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싶어 주부가 되었다. 어쩌면 나나 어머니는 그렇게 출근하지 않는 대가를 치러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주부이니, 돈을 벌지 않으니, 평일 대낮 이 거실로 들어오는 조용한 햇살을 오롯이 혼자 차지하고 있으니, 비록 몸이 좀 아프거나 바빠 힘들지라도, 내가 해야 할 일을 다른 식구들에게 미뤄서는 안 된다는, 안하무인적인 책임감에 불타올랐을지도 모른다. 그 책임감에 스스로 질려 화가 났던 게 아닐까.
하지만.
청소는 1~2주일에 한 번만 해도 괜찮아요
설거지는 모아놨다 하루에 한 번만 해도 괜찮아요
된장찌개에 두부가 안 들어가도 괜찮아요...
'괜찮아요'의 힘이다.
'괜찮아요'는 그 짧은 단어는 시간이나 사람에 쫓기는 나 사이에 틈을 만든다. 그 다정한 틈에서 우리는 잠깐 한 숨 돌리고, 한 발자국 떨어져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
살기는 누구에게나 퍽퍽하다. 주부는 해도 해도 끝이 안나는 집안일에 숨이 막히고, 자존감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닥을 친다. 맞벌이 부부는 만족할 만한 상태가 아닐 것이 뻔한 집안을 떠올리면 퇴근길 발걸음이 무겁다. 10살 어린이는 학교와 학원에서 친구들과 경쟁하는 것도 모자라 키까지 커야 한다. 모두가 저마다의 할 일이 태산만큼 쌓여있고, 산다는 것은 그 일들에 치이는 것, 그 자체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이를 비집고 '괜찮아요.' 한마디만 되뇐다면, 한 번 숨 쉴 여유를 벌 수 있다. 괜찮아요의 힘, 그 틈이 가진 힘은 실로 막강해서 신경질도, 화도, 짜증도 막아줄 것이다. 지금만 해도 복숭아가 옆에서 리코더를 빽빽 거리고, 엄마를 불러쌌고, 징징거려도 속으로 한번 '괜찮다...' 했다. 5초 후, 친절하게 대답해 줄 수 있었다.
"우리 이제 딱 10분만 조용히 할까?"
내 어머니는 그 틈을 만드는 방법을 모르셨다. '괜찮아요'의 힘을 무시했다. 내가 그동안 크고 작은 집안일과 육아를 하면서 남편과 약속한 중요한 일들을 그토록 많이 잊어버리고 어리둥절했다가 분노했다가 억울함의 눈물을 뚝뚝 흘렸던 이유 역시, 쏟아지는 말들과 나 사이에 5초간의 틈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한 번의 숨을 쉬고, '하나씩 차근차근하면 되겠다.' 중얼거리며 메모를 하고,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시고 샤워는 조금 오래 하고... 그랬으면 이렇게까지 지난 시간이 힘들지 않았을 것 같다. 한동안 나는 아침이면 빨리 설거지를 해놓고 청소기를 돌리고 화장실 청소를 함과 동시에 샤워를 하고 빨래를 돌려놓은 채 후다닥 집 밖의 볼일을 보고 아이의 라이딩 시간에 간신히 맞춰 돌아오고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그 과정의 중간중간 남편과 아이가 말만 걸어도 화를 냈다. 설거지는 저녁에 하고 화장실 청소를 하는 대신 바디로션을 꼼꼼히 바르는 생활을 했더라면, 빨래는 오후에 했더라면, 그토록 예민할 필요 없었을 텐데. 조금이나마 평화로웠을 텐데.
나는 내 어머니를 닮았다. 성격도 체질도 닮았으니 아마 삶도 많이 닮을 것이다. 그래서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는 것은 의미 없다. 그 말은 내가 나에게 '너처럼 살지 않을 것'이라 말하는 격과 다를 바 없다.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 어머니를 관찰했고 마흔의 나는 내가 어머니와 닮았음을 인정했다. 이제 이를 바탕으로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최소한 사랑하는 가족의 주부로 살아서 '병신'이나 '등신'이 됐다고 느끼는 노년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내 어머니도 자신의 어머니를 관찰했고, 인정했고, 그녀보다 좀 더 행복한 삶을 살려고 노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머니가 할머니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사셨길 바란다. 그러니까 나는 내 어머니가 느끼는 불행을 안쓰러워할 필요 없다. 내 딸인 복숭아도 지금 나를 관찰하고 있다. 언젠가 인정할 것이며, 나보다 더 행복하게 살리라 믿는다.
새삼 어머니에게 감사하다. 자식이 부모에게 감사해야 할 이유는 비단 먹여주고 재워줬기 때문이 아니라, 함께 사는 동안 나 자신을 관찰하고 인정하고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