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하게 열중하기
김영갑의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읽었다. 읽는 내내 전업주부로서의 나와 마흔이 넘은 이제야 글을 쓰려하는 나를, 평생 사진을 찍은 김영갑의 삶에 대입하여 반추했다.
많은 부분이 아주 절묘했다.
"사실 십수 년 동안 밥벌이도 안 되는 일에 몰두했지만 딱히 이거다 하고 드러내 보일 것이 없다. 뚜렷한 결과는 없지만 부끄럽지 않으려고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다.
온종일 혼자 지내며 사진만을 생각했다. 일 년 내내 중산간을 떠나지 않고 사진에만 몰입했다. 찾아오는 이가 없으면 흘려보내는 시간도 없으니 사진에만 빠져들 수 있다. 신문도 텔레비전도 없이 사진만 찍고 살았는데도 보여줄 것이 없다. 남들이 굳이 보여달라고 보채면 세상을 보았고 삶을 보았다고 말한다. 그러면 대게는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사람들이 확인하고 싶은 것은 돈이나 명예다.
... 하염없이 세월만 흘렀지 마땅히 보여줄 것이 없다. 성실하게 무엇인가 열심히 채운다고 채웠건만 아무것도 없다. 일 년만 더 참고 기다려보자고 이를 악문다. 그러고 일 년이 지난 후 다시 들여다봐도 채워진 것이 없다." (p. 118)
이 글에 십 년간 주부로 딸 하나 키우며 산 나를 대입해본다.
-> 사실 십 년 동안 밥벌이도 안 되는 일에 몰두했지만 딱히 이거다 하고 드러내 보일 것이 없다. 뚜렷한 결과는 없지만 부끄럽지 않으려고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다.
온종일 혼자 지내며 살림만 했다. 일 년 내내 집을 떠나지 않고 육아에만 몰입했다. 찾아오는 이가 없으면 흘려보내는 시간도 없으니 아이에만 빠져들었다. 직업도 친구도 없이 애만 키우고 살았더니 보여줄 것이 없다. 남들이 굳이 무엇을 했느냐 보채면 애를 키웠고 그 안에서 인생을 한번 더 살아 보았다고 말한다. 그러면 대게는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사람들이 확인하고 싶은 것은 돈이나 사회적 지위 그리고 아이의 학원 레벨이다.
... 하염없이 세월만 흘렀지 마땅히 보여줄 것이 없다. 성실하게 무엇인가 열심히 채운다고 채웠건만 아무것도 없다. 일 년만 더 참고 기다려보자고 이를 악문다. 그러고 일 년이 지난 후 다시 들여다봐도 채워진 것이 없다.
머릿속으로 읽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글씨로 써놓고 보니 나의 10년도 꽤 잔인했던 시간이었다. 시간이 약이라 이제는 가물거리지만 워낙 철없었기에 내가 혼자 감당해야 했던 무게는 결코 적지 않았었다. 주위 사람들의 선한 오지랖과 침묵으로 일관하는 눈빛, 돈벌이 혹은 있지도 않던 나의 꿈과 삶을 좇아야 한다는 강박, 그 모든 것을 아기라는 이유로 모르는 척하는 딸의 천연덕스러움은 김영갑의 필름과 사진을 평생 동안 괴롭힌 곰팡이 같은 존재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영갑과의 차이라면, 김영갑은 목표를 위한 노력과 희생이었고 나는 목표가 뭔지 몰랐다는 것... 아니, 목표를 목표로 인정하지 않고 계속 부정했다는 데 있겠다. 나는 육아를 했던 내 시간을 계속 탓하고 거부하면서 끌려갔나 보다. 그래서 그렇게 행복하지 못하고 울었나 보다. 나의 순간에 만족하지 못했나 보다.
"아무리 익숙한 풍경일지라도 새롭게 바라보려고 노력을 하기 때문입니다. 제 사진이 색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제가 뭍의 것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눈에 익숙해진 풍경들을 대하는 마음이 다르기 때문이죠."(p.128)
"제주도에 정착하게 된 것은 섬에서 나만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뭍의 것들이기에 일상적인 풍경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내 사진에 표현하고 싶은 주제(마음)가 다르기 때문이다. "(p.129)
글을 쓰기 시작한 사십 대의 나로 바꿔 읽어 본다.
-> 아무리 익숙한 풍경일지라도 새롭게 바라보려고 노력을 해봅니다. 제 글이 색다르게 느껴지게 쓰기 위해 눈에 익숙해진 풍경들을 대하는 마음을 달리 가지려 합니다.
-> 글쓰기에 정착하고 싶은 이유는 나만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름 있는 소설가들에게만 일상적인 풍경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내 글에 표현하고 싶은 주제(마음)는 다를 수 있기를 바란다.
막연했던 내 생활과 앞으로의 길에 낀 이내(*해 질 무렵 멀리 보이는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기운. ≒남기.)가 조금은 걷히는 기분이 든다. 나는 김영갑처럼 온 영혼을 다 바치는 노력을 할 수 있는 천재성은 없지만 그래도 그의 글이 와 닿았기에 지금은 현재의 내가 예전만큼 초라하지도 외롭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어느새 탄력이 붙는다. 그러다 예상치 못한 순간 한계에 부딪힐 때가 있다.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확신했던 것들이 불확실로 변하면서 마음이 혼란 속에 빠져든다.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하지만 어차피 혼자 가야 할 길이기에 스스로 마음을 다독인다. 그럴 때는 다시 들판으로 나가 노인들을 지켜본다. 시련을 견뎌낸 그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내가 만난 노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크든 작든 한 덩어리의 한을 간직하고 있지만, 묵묵하게 자기 몫의 삶에 열중한다. 온갖 두려움과 불안, 유혹 따위를 극복하고 삶에 열중하는 섬의 노인들은 나의 이정표였다. "(p.162)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으면 누군가 다가와 길을 가르쳐준다. 그러면 그가 일러준 대로 가지만 한참을 걷다 보면 점점 늪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발견한다.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제자리로 돌아오면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p190)
결국, 사람은 어떤 조건에서 무슨 일을 하고 살던 자기 몫의 불안과 두려움, 유혹을 끌어안고 산다. 그것을 어떻게든 감당하고 내 시간의 행불행을 결정하는 것 역시 내 몫인 셈이다. 조언이라는 명목 하에 들리는 남들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혼자 외롭게, 묵묵히 헤매는 것이 인생이었다.
복도가 울리면서 딸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추운 날씨에 놀이터에서 노느라 볼과 귀가 한여름 복숭아처럼 발갛게 물들어있다. 새삼 그동안 뿌했던 내 삶의 목표가 눈앞에 드러난 것 같았다. 그래, 바로 이거였다. 차갑게 언 두 볼을 내 손으로 감싸주는 것. 머리카락에 붙은 낙엽을 털어내 주는 것. 따뜻한 코코아를 내주는 것. 남들이 뭐라고 하든 간에 묵묵히,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그것이 내 삶의 이유와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