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숙련된 기능공의 가치에 대하여
작년 가을 아파트 인테리어 공사현장에서 부엌 싱크대에 설치할 수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담당 대리는 예쁜 것과 실용적인 것 중 어느 것을 원하느냐 물었다. 예쁘면서 실용적인 것을 원한다는 내 말에 안타깝지만 그런 것은 비싸단다. 아름다운 수전에서 물줄기까지 유려하게 나오길 원한다면, 그만한 대가를 치워야 한다는 뜻이다. 남의 집살이 10 년, 아니 부모님 집에서 얹혀 산 세월까지 합하면 40 평생만에 처음으로 '내 집'에서 살게 된 나는 말했다.
"그럼 예쁜 것이요. 나도 한 번 예쁜 것 좀 써봅시다."
그렇지 않은가. 주부라면 누구나 전셋집에서 사는 동안 세련된 디자인의 수전을 사용하고 싶어 하기보다 계약기간 동안 제발 고장만 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부모님 집도 마찬가지다. 살면서 "어머니, 저는 이 세면대의 수전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바꾸겠습니다."라며 바꾸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월급을 받으면 술값으로 쓰기도 바빴다.
나는 드디어 '예쁜' 수전을 사용할 기회를 만났음을 직감했다. 하루 세 번 설거지통에 매달려 사는 주부라 할지라도 사용하는 수전의 자태가 아름다우면 설거지하기도 즐거울 것 같았다. 금자 씨의 한마디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예뻐야 해. 뭐든지 예쁜 것이 좋아."
새 부엌에 가느다란 ㄱ자 모양의 수전이 설치되었고, 설거지 타임이 시작되었다. 수전은 그 자태처럼 물줄기도 도도하게 내뿜었다. 수도꼭지를 트는 순간 사방팔방십육방으로 물을 튀기며 '감히 나에게 물을 내뿜으라 해? 어디 한번 맛 좀 봐라!' 화를 냈다. 얌전히 좀 하라 하면 '이거 왜 이래? 나 원래 이래!' 외쳤다. 냄비나 프라이팬처럼 덩치가 큰 용품의 설거지는 고사하고, 행주를 빨거나 손 한 번 씻으면 나의 배에는 어김없이 세계지도 모양의 물자국이 생겼다. 어느 순간부터 설거지 마무리 코스에 마룻바닥 걸레질까지 포함되었다. 물기를 열심히 닦았는데도 싱크대 주변에 곰팡이 얼룩이 생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수전이 뿜어내는 물줄기에 조금이라도 덜 얻어맞기 위한 본능적인 몸부림으로 허리가 아파 견딜 수 없었다. 엉덩이는 조금 뒤로 빼고 싱크볼 깊숙이 손을 내려 최대한 밑부분에서 설거지를 하려 하니 허리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6개월을 채 못 버티고 수전에게 항복을 선언했다. 남편은 오직 예쁘다는 이유로 택한 나의 낭만적 안목을 마음껏 비웃으며 새 수전을 주문했다. 이름부터 못생긴 '거위 목' 수전이었다. 뚱한 표정의 나에게 남편은 입에 침을 튀기며 설명했다. 이것은 싱크대에 고정된 설치 구멍으로부터 물줄기가 쏟아져 나오는 입구까지의 거리가 17.5cm에 불과하여 물 튀김 현상이 거의 없단다. 나의 예쁜 수전은 이 거리가 무려 33cm에 육박하는 관계로 낙차 폭이 커서 물이 많이 튈 수밖에 없는 구조란다. 예쁘면서 물이 튀지 않을 법한 수전은 해외 구매 대행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며 그 가격은 50만 원 + 배송료이니, 거위 목이건 오리목이건 나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소비자가 직접 설치가 가능하다는 후기가 있었지만, 우리 싱크대 하부에는 난방장치가 복잡하게 설치되어 있어 겁이 났다. 사고 없는 설치를 위해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했다. 마침 동네 상가 철물점에 물어보니 3만 원에 설치 가능하다 하여 약속을 잡았다. 기대에 부풀어 설치 기사를 맞이했건만, 싱크대를 보자마자 아저씨는 "이것은 내 기술로 못하오." 단호하게 거절한 뒤 떠났다. 남겨진 나는 황당했다. 이미 새 제품은 뜯어 이것이 거위 목이냐 오리 목이냐 난상토론을 벌인 터라 환불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하는 수 없이 수전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만 설명하고 그 무용함에 대해서는 미소로 함구했던 인테리어 업체에 전화했다. 수전 설치 기사를 보내주는데 7만 원이라 한다. 나는 주부답게 사용한 지 1년도 안된 수전을 뜯어내는 것도 속상한데 6만 원짜리 수전 설치비로 7만 원을 내는 것에 난감함을 표했다.
"좀 깎아주세요. 네?"
담당자는 다시 통화해 보겠다 하더니 잠시 후 5만 원에 '쇼부'를 봤다며 한숨 쉬듯 말했다.
설치 기사는 12시 20분쯤에 왔다. 복숭아 점심 준비로 바빴던 나는 미처 싱크대를 비우지 못했다. 하부장을 열고 밑에서 작업을 할 테니 괜찮겠지,라고 내 멋대로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그들의 세계를 전혀 모르는 자였다. 그렇다. 나는 '수도꼭지 하나 바꾸는데 무슨 7만 원은 7만 원이야. 날강도가 따로 없네.'라고 투덜거리는 사모님이었다. 정작 제 손으로 할 줄 아는 거라곤 '예쁜 거' 타령이나 하는, 철없는 스무 살짜리 정신연령의 아줌마이기도 했다.
기사는 걸레와 물받침 대야를 요구하더니, 이내 바닥에 앉아 수도를 잠그고 싱크대 하수구로 연결되는 음식물 거름망 통을 분리해냈다. 점심 준비를 하며 버린 감자 껍질 쓰레기가 가득한 통이었다. 통은 방금 버린 음식물 쓰레기뿐만 아니라 새까만 물때가 가득했다. 락스로 닦는다고 닦아도 보이는 곳만 닦는 것이었다. 분리해보니 그 안은 만지기도 싫을 만큼 더러웠다. 기사는 거름통을 분리하여 싱크볼 안에 구멍이 생기자, 서서 그 안에 손을 집어넣고 팔을 꺾어 기존의 수전을 조이고 있던 나사를 풀었다. 보이지 않으니 오로지 손끝의 감각만을 이용하여 하는 작업이었다. 꽉 조여진 나사를 푸는 일이 힘이 들었는지 기사는 연신 신음소리를 냈다. 철거 후 새 수전을 꽂고 다시 하수구 통에 손을 집어넣어 나사를 조이고, 수도관을 연결했다. 싱크볼의 하수구 통을 다시 연결하고, 손의 물기를 닦아낸 뒤 수도를 틀고 물이 새는지 안 새는지 한참 동안 손으로 여기저기 체크했다.
나는 옆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처음에는 음식물 쓰레기가 가득한 거름망 통이 부끄러웠다가, 기사의 빗물에 젖은 양말에 무안했다가, 2만 원을 깎으려고 떽떽거렸던 나를 생각했다.
이 설치기사는 경력이 꽤 있어 보이는 오래된 철물점 주인이 보자마자 못한다고 내 뺀 기술을 갖고 있었다. 유명 화가가 식당에 앉아 10분 동안 그려 낸 그림이라 할지라도 그 그림에는 그가 평생 동안 기울인 예술혼이 담겨있듯, 이 기사가 이 정도 기술을 갖기까지 나는 짐작도 못할 시간과 노력과 비용이 들었을 것이다. 그 일련의 과정은 분명 철물점 주인이 걸어온 길과는 달랐을 것이고, 그 결과로 차별화된 기술을 갖게 된 것이다. 게다가 12시에 오겠다는 사람이 12시 20분이 넘어온 것을 보면 여기까지 오가는데 기름값이 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점심시간에 온 것, 양말이 지저분한 걸로 봐서는 아마 다른 데서 일을 하다가 짬을 내어 뛰어온 것 같았다. 내가 깎은 2만 원은 보통의 작업자들과 다른 이 기사만의 능력이었고 시간이며 노력이었다. 나는 내가 눈곱만큼도 알지도 못하는 설치기술 분야를 '고작 수도꼭지 하나 바꾸는 일'로 치부했다. 전문가가 그러한 기술을 갖기까지 어떠한 시간과 비용을 들였는지 개뿔 알지도 못하면서 내 멋대로 그 가치를 5만 원이라고 매겼다.
지금에라도 '당신의 능력은 5만 원이 아니군요.. 7만 원이 맞을 것 같습니다.'라고 해야 할까.
나는 가정주부다. 돈을 생산하지 않으니, 있는 돈을 아껴 쓸 수밖에 없다. 단 돈 천 원이라도 덜 쓰는 것이 우리 집 가계를 위해 내가 하는 일이다. 그러니 설치기사의 기술과 능력에 탄복했다고 해서 설치비를 부르는 대로 흔쾌히 내어주기란,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나는 설치기사의 기술에 아무런 감동을 받지 못한 척, '고작' 수도꼭지 하나 바꾼 값인 척하며 5만 원을 냈다. 손이 부끄러웠다. 현관 앞에서 ㄱ자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당신의 능력이 5만 원짜리여서 5만 원을 낸 게 아니라 내가 세상 물정을 모르고 눈치 없이 날뛰는, ㄱ자 수전 같은 '사모님'이어서 그런 것이라고, 앞으로는 인건비 깎는 짓은 절대 안 하겠다고 속으로만 한 굳은 다짐이 들킬까 봐 몇 번이나 궂은날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7만 원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봤다. 시기가 시기여서 그런지, 떠오르는 것은 병원에서 맞는 링거 가격이었다. 몇 년 전 몸살감기를 앓았던 나는 병원에서 링거를 맞았다. 다 죽어가다가 새롭게 생명을 얻어낸 기분이어서 그랬을까, 약을 처방하고 침상을 내주고 주삿바늘을 꽂아준 의사와 간호사에게 몇 번이나 감사하다고 하며 돈 7만 원을 냈다. 나는 왜 주사약 7만 원은 깎자고 말하지 않고, 수전 설치 7만 원은 깎으려고 한 걸까.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수전 설치 기술을 링거를 놓는 기술보다 더 만만하고 쉽게 봤기 때문이었을까.
주부도 기술직의 일종이다. 요리, 청소, 빨래 같은 노동을 함과 동시에 집안의 각종 생활용품들을 관리하며 이를 적은 비용으로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것이 살림이며 주부의 주 업무다. 막무가내로 타인의 노동 가치를 깎는 것으로 알뜰함을 과시하는 것은 같은 기술직 종사자로서 천박한 행위다. 그것은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수전 설치기사든 살림을 하는 주부든 그 기술이 가치를 정당하게 인정받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면 나의 자세부터 똑바로 바꿔야겠다. 일단 저 거위 목 수전을 다시 전셋집 수전인 양 제발 고장만 안 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쓸 것이다. 유튜브를 봐가면서 내가 직접 고칠 수 있는 기술도 익혀볼 요량이다. 나라고 하수구 구멍에 팔을 집어넣어 나사를 풀고 조이지 못한다는 법이 있는 건 아니니까. 실제로 인건비가 비싼 일부 국가의 사람들은 자기 집은 자기가 고치며 산단다. 그들이 나보다 손기술이 더 뛰어난 민족이라 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나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