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에서 빛나는 별이 되어 보기
1주일 만에 이태리어 척척박사가 된 나는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가 라바레도의 트레치메라는 뜻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트레 (Tre)는 무엇인가, 숫자 3이다. 치메 (cime)는 산의 정상 즉 봉우리다.
라바레도의 봉우리 3개.
이 봉우리들은 아주 거대한 데다 깔끔하게 딱 3개가 서 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한눈에 여기가 트레치메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돌로미티 전체의 랜드마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의 노트북 배경화면은 지난 몇 달 동안 바로 이 트레치메의 사진이었다.
트레치메에서 찍은 달과 목성의 사진이다. 나는 사진 속 저 불 들어온 산장 예약을 시도했다. 작년 여름이었다.
산장의 이름은 로카텔리 산장(Rifugio A.Locatelli). 겨울이 되면 이 산장은 문을 닫는다. 사람이 살지 않는다. 산장은 하절기 몇 달만 운영되는데, 투숙을 원할 경우 이 기간에 이메일로 신청을 해야 한다. 그러면 다음 해 연초쯤 예약 수락 답장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순서에서 밀릴 경우 거절당할 수도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우리는 최소 6개월 전에 숙소 예약을 마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다리기 힘들었다. 여기가 안될 경우를 대비해 다른 곳에 숙소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억력도 가물가물해서 나는 내가 예약 신청한 산장 이름이 뭔지, 며칠로 예약했는지, 제대로 하긴 했는지... 몇 번씩 확인하다 짜증 내고 급기야 잊어버린 채 덮어 둔 2월 어느 날, 예약 수락 답장이 날아왔다. 나는 메일을 보냈던 나의 양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신의 손이라며 우러러봤다.
산장은 8인실이나 16인실처럼 도미토리 형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산장 보스는 친절하게도 2~3인용 패밀리 객실도 서너 개쯤 운영한다. 하지만 이제 와 짐작건대, 이는 어린 아기가 있는 가족을 위한 방이었을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정말 몰랐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아기를 데리고 이런 여행을 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들에게 양보했어야 할 방이었다. 패밀리 룸은 나처럼 까탈 부리는 사람들을 위한 방이 아니었다. 운이 좋았을 뿐이라 치부해도 되지만, 머무는 내내 민망했다.
트레치메에 오르려면 아우론조 산장 앞에 주차를 한다. 워낙 인기가 많은 장소라 성수기에는 아침 8시 전에 가거나 아예 늦게 오후 3시를 지나가는 것이 좋단다. 어중간하게 도착했다가는 주차장 만차로 인해 줄 서서 입장을 기다려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미주리나 호수에서 서두른 우리는 오후 2시 반쯤 도착했고, 수월하게 입장했다. 트렁크는 차에 두고 각자 배낭에 1박에 필요한 짐만 넣어 어깨에 멨다.
목적지인 로카텔리 산장은 트레치메 바로 아래 있다. 관광객들은 아우론조 산장을 시작점으로, 로카텔리 산장을 터닝 포인트로 삼아 돌아온다. 여기를 오가는 데 두 가지 코스가 있다. 101번 코스와 105번 코스다. 둘 다 트레치메를 감싸고도는 길인데, 101번이 트레치메의 우측으로 돈다면 105번은 좌측으로 도는 코스이다. 101번으로 갔다가 105번으로 돌아 나온다던가 그 반대로 할 경우 트레치메를 완전히 한 바퀴 돌 수 있다. 하지만 105번 코스의 경사가 심하고 길이 험해 대부분 101번으로만 다닌다고 한다. 그래도 왕복 3시간 코스다.
아우론조 산장에서 출발한 우리는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길로 들어섰다. 찾아보지 않아도 당연히 101번 길이었다. 여기에서 수학여행을 온 이태리 학생단체를 몇 팀이나 만났다. 이 지역 사람들이 이렇게 산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걸음마할 때부터 밧줄을 메고 다니고 수학여행으로 알프스 트래킹을 하며 자라니, 어른이 되어서도 등산은 익숙하고 편안한 활동이 된 것이 아닐까. 학생들은 (관광객 중 흔치 않은 나이대의) 복숭아를 보고 또래가 신기하고 반가웠는지 "치아오!" "치아오!" 인사를 한다. 그러자 우리의 샤이 복숭아는 쪽팔리게 쟤들 왜 저러냐며 내 뒤로 숨는다.
아시아인이 인종차별 당한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지금처럼 낯선 환경에서 부끄러워하는 성향 때문인 것 같아. 어쩌면 인종차별 중 일부는 진짜 인종차별이 아니라, 자신 있게 당당하지 못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것일 수도 있어. 얘들 문화가 그런 사람을 하찮게 여기는 문화일지도 몰라. 그게 옳다 할 수 없지만 뭐 하러 여기까지 와서 그런 취급을 당하니. 낯선 자의 인사가 싫으면 받아줄 필요는 없어. 그렇다고 숨을 필요도 없지.
우리는 101번 길을 걸어갔다. 늦게 출발한 탓인지 곧 길 위의 인적은 드물어졌다. 끝없이 이어지는 회색의 돌길 사이에 핀 야생화가 바람에 흔들리고 구름은 한껏 낮게 내려앉았다. 이쯤 되면 중간지인 라바레도 산장이 보여야 하는데... 남편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니, 아니나 다를까, 작은 산장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출발한 지 이미 30분쯤 지난 터라 복숭아의 볼은 다시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아이는 현실 도피 차원에서 헤드셋을 쓰고 J pop을 시작했다. 이제 30분 정도 추가 약발을 기대해 볼 수 있겠다.
들어가는 사람은 물론이요 나오는 사람도 가물가물해졌다. 처음에는 확신했던 이 길에 스멀스멀 의심이 들기 시작해서 트래킹 고수로 보이는 한 남자를 붙들고 물어봤다.
"이 길이 로카텔리로 가는 길 맞죠?"
"산장을 말씀하시는 거죠? 맞아요. 이 길로 가다 보면 10분 후에 산장을 볼 수 있을 거예요."
남자는 친절하고 정확했다. 10분 후면 산장을 볼 수 있다는 말에 복숭아는 기운을 차리고 J Pop의 리듬에 맞춰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10분 후, 우리는 정말 산장을 볼 수 있었다.
"오, 보인다 보여! 저기야!!"
남자의 말은 정확했다. 10분 후, 우리는 정말 산장을 볼 수 있었다. See.
"10분 후 산장에 도착한다고... 그렇지, 그 사람은 그냥 볼 수 있을 거라고 했지... "
해탈한 듯 중얼거리는 복숭아는 다시 말없이 땅만 보고 걸었다.
트레치메는 이탈리아 알프스 제1의 봉우리다. 하지만 구름에 가려졌다 나왔다 하는 트레치메는 위풍당당하고 위엄 있어 보인다기보다 그저 꾸벅꾸벅 졸고 있는 큰 바위 노인처럼 느껴졌다. 어느새 트레치메 봉우리에 닿았다. 교황님이 다녀가셨다는 흔적이 보인다. 종교인도 아니고 표지판에 무어라 적혀있는지 그 뜻은 알지 못하지만 이 높고 험한 산중이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인 것 같았다. 흐드러지게 핀 샛노란 달맞이꽃이 어두워지기 전에 어서 가라고 재촉하며 부지런히 밝혀주는 길을 걸어 마침내 산장에 도착했다.
친절한 산장의 보스는 산장에는 더운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샤워시설도 없다. 공용 화장실을 사용해야 한다. 대신 2층에 위치한 방에 올라갈 때는 개인 슬리퍼로 갈아 신어야 한다. 도미토리일 경우 16켤레의 등산화에서 동시에 풍기는 악취를 감당할 수 없으니 취한 일종의 에티켓인 셈이다. 석식과 조식 시간을 알려줬다. 그리고 우리는 슬리퍼가 없다. 대신 배낭 가득 각종 샤워용품과 깨끗한 수건, 속옷이 있다.
아마추어도 못 되는, 햇병아리 산장여행객임이 여실히 드러났다. 난감하지만 어쩌겠는가. 우리는 그래도 독실을 쓰니 괜찮지 않을까 자위하며 살짝살짝 까치발을 들고 빛의 속도로 계단을 올라갔다. 그 후에도 계단에서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빙글빙글 웃어야 했다. 우리는 서로의 무지함에 안녕과 위로를 보냈다. 방은 일반 싱글베드보다 더 작은 사이즈의 침대 세 개, 작은 베드 테이블 두 개만으로 꽉 차는 방이었다. 하지만 창밖으로 트레치메가 한눈에 들어오는, 산장 최고의 스위트룸이었다. 각자의 침대 발치에 짐을 내려놓았다. 이날,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에 세수도 못하고 잤으니, 말 그대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짐 덩어리인 가방이었다.
산장 주변을 둘러보다 뒷산에 올라가 봤다. 트레치메와 산장이 마주 보고 있으니, 산장의 뒷산은 좀 더 높은 곳에서 트레치메와 산장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위치다. 이곳에는 작은 동굴이 서너 개 있다. 전쟁 때 참호로 쓰기 위해 만든 것이라 한다. 실제로 로카텔리 산장 바로 옆에 작은 교회가 있는데, 예쁘고 귀여운 이 교회 역시 1차 세계대전 당시 희생된 이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알고 보면 역사로 할퀴어진 아픈 곳이지만, 동굴 안에 들어가 밖을 보면 트레치메의 거대한 산봉우리 세 개가 액자 안 사진처럼 보인다고, 전 세계 사진 애호가들에게 입소문이 났나 보다. 나도 호기심에 동굴까지 올라가 봤는데, 동굴 안은 이미 만석이었다. 중동 석유 부자들의 동호회 모임인가 이 따시만 한 렌즈를 장착한 이따시만한 카메라를 들이밀며 어찌나 비키라고 해 쌌는지 원... 엉덩이를 들이밀다 빈정상해 그 옆의 동굴로 옮겨 앉았다. 물론 그 안에도 이미 사람들이 들어앉아있었지만 눈치껏 돌아가며 동굴을 차지해 볼 수 있었다.
동굴 쟁탈전은 치열했다. 하지만 주변에는 동굴 외에도 볼만한 것들이 많았다.
며칠 사이에 내린 비로 풍성해진 호수에 비친 구름의 반영도,
고놈 참 신기하게 생겼네 소리가 절로 나오는 야생화도,
주인 따라 이 깊은 산속까지 올라온 검둥개도,
기분 좋은 사람들이 부딪치는 시원한 맥주잔도,
한참 저녁 식사 준비로 바쁜 식당 안에서 퍼져 나오는 노래와 냄새도.
무엇보다 날이 저물수록 은빛으로 밝게 빛나는 것 같아 보이는 암석에 둘러싸여 있는 지금의 내가, 꽤 볼만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밤에는 별을 볼 계획이었으나 3,000m 고도의 여름밤은 경량 패딩 위에 비옷까지 껴입고도 정신을 차릴 수 없게 추웠다. 덜덜 떨면서 구름이 낀 탓에 별이 보이지 않는다고 중얼중얼 거리며 침대 속으로 들어가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분명 머리 위에 북두칠성이 반짝이고 있었는데. 오른팔을 45도로 뻗은 지점에. 하지만 불 들어온 로카텔리 산장은 별 그 자체였다.
다음 날 조식을 먹고 7시 반쯤 산장을 나섰다. 105번 길로 나갈 계획이었다. 당연히 복숭아는 반대했다. 그것은 충분히 예상범위 안이었다. 나는 101번으로 가는 척하다 손바닥 위의 중학생을 조종하여 다시 돌아 105번으로 들어섰다. 101번과 105번의 차이는 경사도에 있었다. 산장 출발 초입부터 급 경사의 내리막과 오르막이 반복되어 나는 복숭아와 운동화를 바꿔신었다. 내 신발은 트레일화로 기능성 운동화임에 반해 복숭아는 일반 학생운동화여서 비탈길의 미끄러짐이 훨씬 심하고 발목에 무리도 갔다. 내 신발 신었다가 엄마가 다치면 어떡하냐는 철든 걱정을 한다. 나는 그것보다 네가 힘들다고 짜증 내지 않고 이 길을 걸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이런 길을 몇 번 다녀본 고수라 걷는 요령이 있단다.
운동화도 바꿔 신고 가방도 아빠에게 넘긴 대가로 복숭아는 조용히 길을 걸었다. 이른 아침 2시간에 걸친 돌로미티 트레킹은 아주 평화롭고 아주 아름다웠다. 깊은 바닷속을 헤엄치듯 거대한 산군 속에 푹 파묻혀 수영을 하는 기분이었다. 한없이 고요했고 햇빛은 눈부셨다. 하얀 돌 길에 풀과 들꽃이 많아지자 복숭아는 아빠에게 가방을 받아 다시 멨다. 마치 처음부터 자신이 메고 온 것처럼 시침을 뚝 떼며 105번을 걷길 잘했다고, 재미있었다고 배시시 웃는다.
아우론조 산장에 도착했다. 이제 막 주차장에 도착한 사람들 틈을 비집고 앉아 커피와 음료수를 마시며 돌로미티와 작별했다.
트레치메를 돌아 쭉 걸어가면 친퀘토리까지 갈 수 있어. 그게 한 여섯일곱 시간 정도 걸릴 거야.
뒤 테이블에 앉은 여행객들의 대화에 귀가 쫑긋 섰다.
"여기서 친퀘토리까지 트레킹이 가능하대!!!"
남편과 복숭아는 소리 지르는 나를 질질 끌고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돌로미티 여행이 끝났다.
이제 자동차를 반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