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투어리즘을 정면으로 마주하다
트레치메에서 내려와 베네치아로 건너왔다. 내 기억 속 베네치아는 잔잔한 물결만큼 평화로운 도시다. 또 집집마다 하얀 요트가 정박되어 있던 장면도 남아있다. 수영복을 입은 남녀가 닻을 올리고 바다로 나가던 모습을 보고 세기말 순수한 여대생의 눈은 휘둥그레 해졌었지. 스무 살의 나는 지도 한 장 손에 들고 좁은 골목을 얼마나 잘 찾아다녔는지 모른다. 문득문득 걸음을 멈추고 유리공예품이나 화려한 가면으로 쇼윈도를 가득 채운 기념품 가게를 넋 놓고 구경했다. 미로에 갇혀 관광책자에서 소개된 맛집을 찾을 수 없을 때는 골목 아무 식당에 들어갔었다.
이탈리아 식당은 규모와 메뉴에 따라 여러 단계로 구분된다. 리스토란테(ristorante)는 격식을 갖춘 레스토랑, 트라또리아(Trattoria)는 우리나라로 치면 가정식 백반, 오스테리아(Osteria)는 음료와 간단한 음식을 판단다. 피제리아(Pizzeria)는 화덕을 갖춘 피자집이라 그런지, 보통 피자 가격이 7~8유로인데 반해 피제리아의 피자는 15유로 이상했다.
20년 전 길을 헤매던 내가 갔던 식당은 오스테리아였던 것 같다. 주인이 혼자 주문받고 요리하고 서빙하고 계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곳에서 나는 난생처음 까르보나라를 먹어보고 그 고소하고 꾸덕꾸덕한 목 막힘에 홀딱 반했다. 철근도 씹어 소화시킬 수 있는 나이에 배가 엄청 고팠던 순간이라는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정말 맛있었다. 음식 맛 같은 건 별로 개의치 않아 하는 내 기억에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는 걸 보면 정말 어지간히 맛있었던 모양이다. "베네치아가 음식도 정말 맛있어. 아무 데나 가도 다 맛있을걸. 난 이번에는 꼭 해산물 요리를 먹어볼 거야."
복숭아는 수상교통수단인 바포레토를 타고 유리공예를 한다는 무라노 섬에도 가보고 싶고 곤돌라를 타보고 싶다고도 했다. 내가 갔을 때는 가난한 배낭여행객이라 곤돌라는 비싸서 못 타고 구경만 했는데, 이번에는 아이를 핑계 삼아 한번 타볼까. "무라노 섬은 시간이 없어 못 갈지도 몰라. 대신 곤돌라는 꼭 타보자."
우리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베네치아에 도착했다. 호텔에 짐부터 풀었다. 한낮에도 20도가 넘지 않는 산속에 있다가 갑자기 30도가 넘어가는 도시로 넘어오니 숨 막히게 덥기도 했고, 1박 2일 등산에 산장에, 다들 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폼 잡고 사진도 많이 찍자며 이쁘게 머리도 빗고, 멋 내기를 한 뒤 두근두근 그 유명한 산 마르코 광장으로 출발했다.
하......
솔직히 베네치아는 오고 싶지 않았다. 요즘 베네치아는 오버 투어리즘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출발 직전, 관광객을 줄이려는 목적에서 내년부터 도시 입장료를 받을 예정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하지만 해외여행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돈 1~2만 원의 입장료가 얼마나 크게 영향을 미칠지 의문이다.(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는 입장료 때문에 판테온에 안 갔다.)
젤라또 가게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던 중 벽에 붙은 벽보를 봤다. 1971년 109,000명이었던 주민들이 급감하여 현재 단 49,000명만 살고 있다. 반대로 1972년 2백만이 채 안 됐던 여행객들은 작년에 1800만 명에 육박했다. 아마 올해는 더 늘 것이다.
도시에 관광객이 많이 들어오면 돈도 많이 벌고 좋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실제 거주하는 주민들의 생활은 그렇지 않다. 에어비앤비를 좋아하는 우리는 베네치아만큼은 본섬 밖에 있는 메스트레역 근처 호텔로 예약을 했다. 본섬에 있는 집은 독일, 영국, 오스트리아 같은 인근 국가의 외국인들이 사서 에어비앤비로 돌리는 집이기 때문이었다. 외국인들이 집 관리를 제대로 할 리가 없다. 주인 잃은 집과 골목은 점점 더 낡고 험해진다.
편의시설도 마찬가지다. 일상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학교, 도서관, 병원, 관공서, 시장 같은 것들이 필요한데, 관광객들이 대부분인 도시에서 이러한 기반 시설은 자연히 소멸할 수밖에 없다. 관광객들에게는 기념품 샵과 식당만 필요하다. 점점 살기 어려워지는 주민들은 점점 더 많이 떠나고, 그 빈 공간은 쓰레기와 악취로 채워진다. 관광객인 우리는 젤라또를 먹고, 쓰레기통이 보이지 않는데 어쩔 수 없지 않냐며 골목마다 쌓인 쓰레기 더미에 남은 젤라또 컵을 던졌다. 쓰레기를 버리는 손등에 날아오르는 비둘기의 똥에 맞았다. 욕심이 앙화를 부르는 순간이었다.
수로 위의 다리에서 곤돌라를 봤다. 손님들은 웃으며 사진을 찍느라 연신 바빴다. 하지만 칸초네인가 뭔가 노래를 부르면서 한가하게 노를 저을 것이라 기대했던 곤돌리에는 무표정했다. (이 사람들 연봉이 2억이 넘는다 했는데!) 친구로 짐작되는 동료 곤돌리에를 만나자 비로소 빙그레 웃음 지어 보이며 힘차게 발로 벽을 밀어 보였는데, 한참 서서 그 모습을 보던 복숭아는 곤돌라를 타지 않겠다 한다.
"왜?"
... 물에서 냄새나.
물에서 냄새가 안 나는 게 이상할 상황이기는 했다. 해가 들고 바람이 부는 넓은 수로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곤돌라의 매력인 골목골목 좁은 수로는 어두침침하고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 데다 쓰레기더미 때문인지 악취가 심했다. 그래도 베네치아인데... 극성맞은 엄마 따라다니느라 이탈리아 여행 1주일 동안 고생만 하는 복숭아가 안타까웠다. 특유의 매력이 넘치는 도시라 기대도 많이 했고, 사진도 많이 찍으려고 멋 내기까지 했는데 말이다.
곤돌라도 타기 싫고 무라노 섬에 가기에도 시간이 너무 늦었다. 우리는 유리공예품 가게를 구경했다. 가게마다 Made in Murano라고 써 붙여 놓은 것이 재밌었다. Made in China가 아님을 강조하는 것 같았다. 복숭아는 하늘색 구슬이 달린 목걸이를, 나는 소주잔 두 개를 골랐다. 은근슬쩍 자신의 물컵도 세트라며 밀어 넣길래 흔쾌히 끼워줬다. 커플 팔찌도 사고 장인이 만든 수제 노트도 한 권 샀다.
베네치아 산 마르코 광장에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플로리안(Caffè Florian)이 있다. 1700년 대에 오픈한 뒤로 지금까지 영업하고 있는 카페다. 우리는 베네치아 실망 모드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심정으로 플로리안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와인과 음료를 주문했다. 때마침 <여인의 향기> ost가 연주되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콘트라베이스가 어우러지고 그 위에 클라리넷 음색이 올라타 반짝거리며 춤을 추는 듯한 이 음악은 해 질 녘 베니스를 한층 더 아름답게 해주고 있지 아니한가...라고 생각하려 애썼다. 고개를 까닥거리며 발밑을 기어 다니는 비둘기 떼나 늦은 오후가 다 되도록 정신없이 내리쬐는 저 염치없는 태양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정중한 웨이터들의 우아한 서빙을 즐기고 청아하게 연출된 그들의 하얀 양복만 바라보며 황홀해하려고 노력했다.
"... 이제 그만 집에 가자."
복숭아의 말 한마디에 우리는 벌떡 일어났다. 기차역으로 향하는 골목을 지나면서 베네치아 주민들의 삶을 볼 수 있었다.
네 살짜리 고양이를 잃어버렸나 보다. Flo가 이름인가?
이런 골목길 도시에서 찾을 수 있을까. 잃어버린 게 아니라 심심해서 놀러 나간 거였으면 좋겠다. 그럼 자기가 돌아오고 싶을 때가 되면 돌아올 거 아니야.
그때까지 주인이 이사 가지 말고 이 집에서 계속 살았으면 좋겠다.
사람은 집을 떠나지 않는 이상, 이곳에서 산다. 어떤 해결책이든 찾아서 베네치아가 다시 예전처럼 아름다운 도시가 되길, 우리는 진심으로 베네치아 주민들을 응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