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주부생활

주부를 향한 헬렌 니어링의 조언

by 고갱이

헬렌 니어링 여사가 말씀하셨다. 한 끼 식사를 요리하는 데 30분 이상의 시간은 투자하지 말 것.


스코틀랜드에는 "아침부터 밤까지 굽고 지지고 튀기고 끓이는 고단만이 있을 뿐"이라는 민요가 전해 내려온단다. 특별히 요리를 좋아한다면 모를까, 동서고금 남녀노소 막론하고 먹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은 결국 사람을 그로기 상태로 만들 뿐, 그 이상의 가치는 없다는 뜻이다. 헬렌 니어링은 이런 고역을 단지 주부라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감내할 필요 없다고 말한다.


니어링 여사의 글 중 인상 깊은 에피소드가 있다. 한 농가의 부인이 일꾼 대여섯 명의 식사 준비로 하루를 다 보내다가 어느 날 오후 조용히 미쳤다. 정신 병원으로 가는 마차에 타서도 그 부인은 계속 "인부들이 20분 만에 싹 먹어 치웠어. 20분 만에 다 먹어치웠어."라고 되뇌었다고. 맛있게 먹어주는 데서 보람을 느끼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몇 시간에 걸쳐 만든 결과물이 눈앞에서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고 다시 몇 시간 동안 요리를 하는 매일이 반복된다면, 정말 허탈함의 극치를 느낄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면, 여기서 요리는 돈을 벌 목적으로 하거나 적성에 맞아서 즐겁게 하는 요리가 아니라 희생과 의무감으로 점철된 요리를 말한다.


예를 들어보자. 한 주부가 뜨개질을 한다. 몇 날 며칠에 걸쳐 뜨개실로 남편이나 아들, 딸에게 어울릴만한 모자나 장갑, 목도리를 뜬다. 물론 시장에 나가 돈을 조금만 줘도 살 수 있는 것이지만, 눈이 침침하고 어깨와 등이 아파오지만, 병원비가 더 들 것 같지만 여자는 정성을 다해 뜨고 있다. 이에 대해 남편과 아들과 딸은 별생각 없을 수 있다. 엄마의 정성에 감동하고 고마워하더라도, 1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삼겹살집에 모자를 놓고 오거나, 놀이터에서 장갑을 잃어버리거나, 목도리 색과 어울리는 코트가 없다고 타박을 놓을 수도 있다. 하지만 뜨개질에 재미가 붙은 여자는 자신의 혼이 담긴 작품을 감상하고 고객의 비평을 받아들이고 반성하고 발전한다. 자신감을 얻어 다음에는 가방이나 소파 커버, 커튼 만들기에 도전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뜨개질은 그 주부 개인의 작품이 되었다.

하지만 요리는... 요리는...

누군가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뒷모습만 남기고 사라져 버린다. 증발해버린다.


어느 날 똑똑한 선배가 말했다. 가족을 괜히 식구(食口)라고 부르는 거겠냐며, 밥은 가족이 함께 사는 것에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어준다고 했다. 가족이라면 식구답게, 하루 한 끼라도 식탁에 다 같이 모여 밥을 먹어야 한단다. 주부의 가장 중요한 일이 이 자리를 위한 요리라 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헬렌 여사도, 그녀를 추종하는 나도,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하는 행위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함께하는 밥'을 요리를 하는 데에 주부 개인이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서는 안된다. 그랬다가 정말 자괴감에 빠진 채 말년을 맞이하여 애꿎은 며느리들에게 지나간 젊음을 보상받으려 발악하는 시어머니가 될지도 모른다. 어린 가슴을 할퀴어 내는 것인지도 모른 채 딸 앞에서 넌 엄마처럼 살지 말라고,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고 울부짖을지도 모른다. 기브 앤 테이크는 인간의 본능 아닌가. 나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미래의 며느리 혹은 누군가의 며느리가 될 내 딸의 미래를 위해 세상의 모든 요리를 싫어하는 주부들은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스콧 니어링이라는 자신보다 한술 더 뜨는 사람을 남편으로 둔 헬렌 니어링과 우리의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 전업주부가 요리를 안 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워킹맘이야 부족한 시간과 고갈된 에너지를 방패 삼아 식당에서 본인 명의의 신용카드를 서슴지 않고 내밀 수 있을 것이다. 돈벌이가 전무한 주부는 자기 명의의 카드가 없다. 주부가 쓰는 돈은 고스란히 생활비에서 나간다. 그러니 식당에서 밥을 사 먹으면 게으른 것 같고 사치하는 것 같고, 주부 특유의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뭐 그렇고 그런 마음이 든다. 그리고 "엄만 배가 별로 안고픈데." 혹은 "아유, 넌 왜 이렇게 조금 먹니."라고 중얼거리며 애가 남긴 밥을 싹싹 긁어먹고 집에 돌아온다. 그리고 유난히 쓸쓸한 밤, '비싸기만 하고 맛도 하나 없네, 역시 집밥이 최고.' 같은 자기 암시를 하며 내일부터는 요리에 매진할 것을 굳게 다짐하지... 않습니까? 저만 그러나요? 그나마 이도 딸이 어렸을 때나 가능했던 일이다. 1인분을 거뜬히 해치우고 남의 밥그릇까지 탐하는 요즘 같은 시기에는 더더욱 식당가기 무섭다.


하지만 주부가 밥 하기 싫은 날 외식 좀 했다고 쓸데없는 죄책감에 시달릴 필요 없듯 집밥을 요리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릴 필요도 없다. 아니, 시달려서는 안 된다. 이 모든 부질없는 감정을 이겨내야 한다. 어렵고 힘들고 짜증 나고 하기 싫지만 왠지 해야 할 것 같아서 꾹 참고 하게 되는, 그 찝찝한 밥하기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헬렌 니어링은 십자가보다 더 무거운, 주부의 집밥 콤플렉스를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 알려준다. 우선 SNS에서 떠들어대는 인플루엔서들의 화려한 사진이 아닌, 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다. '어떤 요리를 해야 한다'가 아니라 '요리에 최소한의 에너지를 들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주부는 식구들이 '먹을만한' 음식을 차려놓고 "와서 드세요."라고 말하는 것까지만 한다. 만족한 사람은 맛있게 먹고, 만족하지 못한 사람은 다른 데 가서 배를 채운다. 주부에게 이 '만족하지 못한 사람'까지 배려해야 할 의무는 없다. 사랑하는 남편의 까다로운 입맛과 식성에 대해 걱정하는 주부에게 윌리엄 A. 올컷도 한마디 했다.


'적은 돈으로 사는 남자라면 식사도 소박하게 하도록 하라.... 푸짐한 한 가지 음식은... 건강에도, 경제에도 보탬이 된다.' <적은 돈으로 사는 방법, 1837>


주부의 남편 역시 풍요롭고 맛있는 음식으로 가득한 식탁에 대한 기대를 해서는 안된다.


식사는 화려하게 꾸미는 것을 최소화하고, 기본적인 것에 충실하고,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영양을 내면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한마디로 비타민, 탄수화물, 단백질을 적절히 공급하면 그만이다. 사과파이를 만들기보다는 그냥 사과를 날 것으로 먹고, 감자 역시 튀기거나 으깨려고 소란을 떨지 말고 씻어서 오븐에 통째로 넣어 익혀 먹는다. 다행히 나는 이 요리법이 내 입맛에 잘 맞는다.


물론 지난겨울 당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사과잼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런 일은 내 일생에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시간이기도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외출하기도 녹록하지 않아 집에서 심심하기도 했고, 집안을 가득 채운 달콤한 사과향도 좋았다. 플레인 요거트에 직접 만든 사과잼을 얹어주니 복숭아도 잘 먹었고, 요거트통 쓰레기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맛이 없는 사과라 해도 '아 정말 맛없다...'생각하며 날 것으로 먹는 것이 효율적이다. 먹으면 배부르고 내 몸에 비타민과 무기질, 식이섬유가 공급되는 것은 맛있는 사과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면 또 그렇게까지 못 먹겠지도 않다. 헬렌 니어링은 빵도 필요 없다며, 기장이나 메밀가루에 뜨거운 물을 붓고 10분가량 끓여 죽으로 먹었다. 역시 고수다. 하수인 나는 식빵은 마트에서 사다 먹지만, 언젠가는 헬렌의 경지에 오르고 싶다.


소로 역시 잔치하듯 먹지 말고 금식하듯 먹으라고 말한다. 이렇게만 하면 녹초가 된 주부도, 과식으로 배탈 난 가족도 없어지고 행복하고 화목하며 건강한 가정이 형성될 수 있다. 되새길수록 맞는 말이기에 나는 나의 요리 생활을 곰곰이 따져봤다. 오늘 아침, 당장 냉장고에는 밥과 찌개가 없었다. 어제 냉장고 정리를 한 탓이다. 비상용 햇반에 낫또와 계란 프라이를 비벼 복숭아의 아침으로 줬다. 야채가 빠졌길래 계란에 대파를 썰어 넣었다. 대파의 영양성분이 빠져나가 계란에 스며들기를 기도하며 볶았다. 그러다 보니 약 15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채소가 조금 부족한가 싶어 간간히 김치를 얹어줬다. 아침을 먹던 복숭아가 점심 때는 카레라이스가 먹고 싶다고 한다.

아침 식탁을 치우고 남은 햇반으로 누룽지를 만들며 생각했다.

카레라... 카레.

카레를 만들려면 1시간은 족히 걸리는데, 이렇게 되면 식사 한 끼 준비에 30분 이상을 쓰지 않는다는 나의 목표가 첫날부터 깨지게 된다.

흐음...

아,

카레를, 미리, 만들어두면 되겠군.


카레를 미리 만들어둔다면, 점심 때는 10분 만에 카레라이스를 내줄 수 있겠다... 고 생각했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에 불과하지만. 10시부터 카레 만들기를 시작했다. 쌀을 씻어 불리고, 양파를 오래 볶아 카라멜라이징하고, 당근 호박 파프리카 등 각종 채소를 준비해서 함께 푹 익힌 뒤 미니멀리스트 헬렌 니어링이 부엌에서 절대 필수라고 한 전기 블렌더(도깨비방망이)로 야채를 박박 갈았다. 카레 가루를 넣고 휘휘 저으며 시계를 보니 11시 20분이다. 1시간 20분이 걸렸다.


뒷정리를 하고 밥을 하니 12시 10분, 아까부터 맛있는 냄새가 난다고 폴짝거리는 복숭아는 어김없이 밥 달라고 한다. 밥을 차리는 데 5분도 안 걸렸다. 카레를 먹으며 나는 점심밥을 준비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어떻게 계산해야 하는지, 생각해봤다.

5분인가 아니면 2시간 15분인가.


오늘 만든 카레는 다섯 번 정도는 먹을 수 있을 분량이 남았다. 2번 먹을 만큼 담아 두 통을 냉동시키고, 1번 먹을 분량은 냉장고에 넣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 카레를 먹는 날의 식사 준비 시간은 약 10분이다. 그럼 나의 오늘 소요된 두 시간을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인가? 아닌가? 헬렌 할머니는 여기에 대해 어떻게 계산을 하실까? 그 시대에 냉동실이... 있었나, 없었나...


점심을 먹으며 저녁에는 김치찌개가 먹고 싶단다. 식탁을 치우고 뒷정리를 한 뒤 김치찌개를 끓였다. 약 30분이 소요됐다. 저녁에 두부만 추가하여 데워 낼 경우 15분 정도 소요될 것이다. 그럼 저녁식사 준비하는데 45분이 걸린 셈인가? 그럼 이 김치찌개는 몇 번에 나눠 먹어야 내 시간을 '손해' 보는 것이 아닐까? 2번? 3번?


가만 보니 오늘 부엌에서만 보낸 시간이 8시부터 2시까지 무려 6시간이다. 중간중간에 잠깐 다른 일을 했다 한들, 어쨌든 저녁식사까지 합하면 6시간은 충분히 넘을 것이다. 오늘 하루는 30점짜리 주부생활이었다. 어렵다. 밥을 주식으로 하는 음식문화여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아니다, 쌀문화라 해도 밥을 해서 생 야채와 계란 프라이 정도만 넣고 비벼먹는다면, 한 끼 준비하는 데에 10분 정도밖에 안 걸릴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역시 자식새끼의 입맛에 맞춰 건강하고 따뜻한 음식을 한 숟갈이라도 더 넣고 싶은 에미의 마음이 문제인 걸까. 그렇다면 헬렌의 가르침 역시 복숭아가 내 품을 떠나는 10년 후에나 받들 수 있다는 걸까. 아 그러고 보니 내일 아침은 뭐 먹지. 피곤한데 사과나 한 알 먹고 학교가라고 할까. 사과와 아몬드를 한 주먹 넣은 요거트정도?


나쁘지 않겠다.


메밀가루를 우유에 불려서 먹으라는 등 요리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 말라는 얘기는, 할머니가 살림에 서툰 주부들을 웃기려고 혹은 안타까운 마음에 하는 말이었던 것 같다. 워낙에 많은 여자들이 자기 시간을 집안일에 바치며 사는 것이 답답해서 한 말이 아닐까. 주부들의 가족에 대한 희생과 헌신은 사랑과 애정을 넘어선다. 그러다 보니 감사와 감격을 요구하며 때때로 추억과 눈물을 강요하다 종국에는 복종에 가까운 보은을 요구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녀들이 나쁜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다. 인간이라면 내가 너를 위해 이렇게 평생 부엌에서 뼈를 깎는 노동을 했는데, 너는 나에게 뭘 해줬냐라는 생각이 안들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 주부에게 그런 희생과 헌신을 해달라, 요구한 적이 없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었다.


주부라는 자격지심이 불러오는 달콤한 책임의식에서 벗어나 지금이라도, 내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다행히 요즘은 학교에서 급식을 먹고(등교 제한으로 주 2~3회이긴 하지만) 워낙 영양이 넘쳐나는 먹거리가 많아서 (비타민이 몇 십배, 무기질이 몇 십배인 식재료가 널려있다.) 나의 어머니가 나를 위해 해 주셨던 것만큼 나는 나의 아이를 위해 해주지 않아도 될 것이다. 어머니에게 주어졌던 주부의 스물네 시간이 나에게도 똑같이 주어지긴 했지만, 시대에 맞게 시간의 배분을 수정해야 한다. 어머니 같은 주부가 됐다고 해서, 어머니처럼 희생과 헌신으로 점철된 주부가 되지 않았다고 해서 '주부일조차 제대로 못하는 패배자'가 되지는 않겠지. 가족에게 정성을 다한 주부는 못될지언정 가족과 많은 시간을 함께해서 행복한 주부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인용문은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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