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리적 관점으로 본 서정주 시 『화사집』에 나타난 시간의식 연구
5부. 나의 지나온 삶 - 학자로서의 흔적
병리적 관점으로 본 서정주 시 『화사집』에 나타난 시간의식 연구
1. 들어가며
2. 서정주 시에 나타난 병리의 기저
2.1. 개인적 병리
2.2 사회적 병리
3. 병리적 관점으로 본 『화사집』의 시간의식
3.1. 불화적 세계인식과 모순적 시간의식
3.2. 디오니소스적 육체성과 퇴폐적 카오스
4. 나오며 - 병리적 관점으로 본 서정주 시 『화사집』에 나타난 시간의식의
의미와 한계
1. 들어가며
수필을 제외한 문학은 허구를 토대로 하고 있다. 그러나 장르의 특성상 서정시는 1인칭 화자의 주관적인 내면고백이나 성찰, 또는 자기감정의 표현이 비교적 잘 드러나는 문학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장르적 특성 때문에 서정시가 어떤 장르보다 자전적인 성격과 효과를 내장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시인이 소설가나 희곡 작가보다 도덕과 윤리에 엄정할 것을 요구받거나 시 속의 정서와 사건이 시인의 것으로 쉽사리 인정되는 것도 시는 곧 시인이라는 암묵적 명제가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시는 드러내면서도 숨기는 담화의 형식이다. 특정 사실이든 정서든 미학적 표현과 효과를 높이기 위해 얼마만큼의 변형과 수정이 개입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시의 독해와 연구에서 시인과는 구별되는 가면(persona)적 존재로 시적 자아/화자가 상정되는 것도 텍스트의 자율성 이외에도 그것의 허구적 개연성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한 시인의 시에 나타난 시를 평가하는 일은 아주 위험하고 지난한 일이다. 시인의 개인사(자전적인 텍스트 포함)를 비롯해 시인이 살았던 당대 시대의 현실상황도 고려해야 하며, 무엇보다 시 자체의 문학적 평가를 균형 있게 병행해야 한 시인과 시에 대한 평가가 온전히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서정주는 생존 당시뿐 아니라 사후인 현재에도 한국현대시사에서 누구보다 많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시인이다. 그의 시 자체에 대한 평가도 극과 극을 오가고 있지만, 무엇보다 그의 정치적 행보, 즉 일제 강점기 때의 친일행적과 해방 후 독재정권에 야합한 일 때문에 혹독한 비판을 받는 시인이기도 하다. 그의 이런 정치적 행보 때문에 그의 시가 더욱 폄하되기도 하는데, 본고에서는 이런 문제를 병합해 서정주의 시를 살펴보고자 한다. 즉 병리적 관점으로 서정주 시 『화사집』에 나타난 시간의식을 분석하고자 한다. 병리도 개인적 병리와 사회적 병리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하는데, 이런 병리적 현상들이 서정주 시에 어떤 기저로 작동하고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인간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육체적ㆍ정신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역사 또한 그 흐름 위에서 발전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시간으로부터 결코 독립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인간이 체험하는 시간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어떤 변화들의 방편적인 개념에 불과하다. 시간은 실체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시간은 그것을 인식하는 개인의 의식과 분리할 수 없는 관계적인 양상을 띠는 것이다. 어쨌든 인간의 그 출생으로부터 죽음에 이르는 전 과정은 주관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시간에 관한 도전이며 객관적인 관점에서 시간에의 적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과 인간과의 관계는 불가분의 것으로서 시간을 무시한 인간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을 무시한 시간이 존재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궁극적으로 시간의 개념은 인간 의식의 문제로 귀착하게 된다.
시간에 대한 해석은 인간의 체험과 생의 의의와 결부되어 복잡한 양상을 띠며 심층적 구조를 갖게 되는데, 특히 문학에서 시간이 거론됨은 문학이 개별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언어의 구조물인 동시에 작가의 체험, 의식내용과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에서의 시간은 대개 작가의 시간의식과 미의식이 결합된 형태로서 나타나며 따라서 문학에서의 시간은 자연적 시간을 넘어서는 상상적, 주관적 시간인 것이다. 곧 시간의 문제는 자아와 결합되어 자아와 존재론적인 지향의식을 규명하는 지표가 된다.
서정시에 나타나는 시간의 문제는 서정시의 장르적인 특성과 인간의식에 결합되는 시간의 여러 양상에 의해 그 설명이 가능하다. 또한 시에서의 시간은 그것을 주관적으로 인식할 때 참다운 가치를 지닌다. 그것은 시적 경험의 토대가 될 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시간 경험을 통한 시적 상상력과 자아의식을 가능하게 하는 범주가 된다. 이런 점에서 본고에서는 청년 서정주가 시간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그가 보인 병리적 현상의 관점으로 『화사집』에 나타난 시간의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1933년 동아일보에 「벽」이 당선되면서 시인으로서 첫발걸음을 시작한 서정주는 『시인부락』동인을 거쳐 2000년 사망하기까지 60여 년 동안 열 네 권의 시집과 1천여 편에 이르는 시를 남겼다. 그런데 서정주의 시적 출발은 암담했다. 우선 시대적 현실이 일제 강점기였다는 것, 그래서 주체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서양의 근대문화에 대해 지식인으로서 상당한 콤플렉스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서양의 근대문화를 잘못 이해하여 근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지게 된 결정적 이유다. 또한 서정주는 아버지와 가계에 대해 서도 콤플렉스가 심했다. 이것은 시 「자화상」의 ‘애비는 종이었다’는 충격적 선언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결국 가난과 부끄러운 집안, 그리고 식민지 현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서정주 시 『화사집』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본고에서는 이 점을 중점으로 고찰할 것이다. 서정주 시에 대한 연구는 그 논문 수가 수백편이 넘어 이 지면에서 다 밝히기는 힘들고, 다만 연구 경향에 대해서만 간단히 언급하기로 한다. 첫째, 서정주 시의 시적 생애, 즉 시 세계의 변모과정에 관한 연구가 있다. 둘째, 시의 이미지나 운율, 화자와 어조, 시간과 공간 등 작품 자체의 내재적 특질에 주목한 연구 방법이다. 셋째, 신라정신, 불교사상, 영원주의 등 서정주의 사상적 배경에 대한 논의다. 넷째, 역사의식을 포함한 현실 대응 문제로 서정주의 시사적 위치에 관한 연구가 있다. 다섯째, 국내외의 다른 시인이나 작품과의 영향 관계를 해명하는 것을 위주로 한 비교문학적 연구방법이 있다.
병리적 관점으로 서정주 시를 직접 다룬 연구는 아직 없는 것으로 보이나, 이와 비슷한 논조로 서정주 시를 부분적으로나마 다룬 논문은 다음과 같다.
최현식은 ‘상실과 치유’, ‘성장과 발견’이라는 소테마로 서정주 시의 교육적 문제를 다루고 있고, 양연희는 초기시집을 대상으로 서정주의 불안정하고 불우했던 과거를 짚으며 『화사집』을 분석하고 있다. 오준 역시 서정주의 불우했던 젊은 시절 개인사의 추적을 통해 『화사집』을 고찰하고 있고, 김미옥은 서정주의 정신병적 현상이 그의 시에 어떻게 색체이미지로 나타났는지 분석하고 있다. 임곤택은 해방 후 혼란했던 한국의 사회적 배경과 서정주의 정치적 행보를 토대로 서정주가 그의 중후기시에서 어떻게 ‘신라정신’이라는 신화를 구축하게 되었는지를 천착하고 있다.
2. 서정주 시에 나타난 병리의 기저
서정주의 병리적 현상은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이 함께 혼재하여 나타나는데, 그것은 서정주의 개인적 병리현상이 나타나는 시기인 서정주의 청년기가 바로 일제 강점기였고 근대가 급속하게 진행되던 때였기 때문이다.
2.1. 개인적 병리
서정주는 집안과 가계에 대한 콤플렉스에 심하게 시달렸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태도가 그의 「화사집」 창작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서정주의 자전적 기록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는 원래 고창고을의 고전리라는 곳의 출신이지만 처가를 따라 질마재에 정착한 후, 김성수씨의 아버지인 동북영감집에서 농감(農監)노릇을 하고 있었다. 반면 미당의 어머니는 어떤 과부의 딸로 서정주의 외할아버지는 젊어서 배를 타고 나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때 자신의 아버지에게 농감을 맡겼던 동북 영감 가족과의 첫 만남 시 부모들의 굽실거리는 태도에서 매우 큰 아픔을 느꼈다고 한다. 「자화상」의 “애비는 종이었다”는 병리적 자의식, 즉 콤플렉스가 형성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서정주의 부계와 가족에 대한 콤플렉스는 저항과 극복이 아니라 회피와 절망으로 이어진다는 데 문제적이다.
또한 이즈음 서정주는 동정을 상실한다. 서정주에게 동정상실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열여섯 살 적 그의 동정은 빼앗긴 것에 가깝다. 50이 넘어도 자식이 없던 털보 소장수 부부가 서정주를 꾀어 자식을 생산하고자 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결국 서정주의 삶에서 결정적인 성적 체험은 타자를 ‘빼앗는’ 성이 아니라 타자에게 ‘빼앗긴’ 성이었다. 왜냐하면 결과적으로 빼앗긴 성은 가정의 파탄이 아니라 가정의 연속과 보전을 향한 구원 행위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린 남근의 권력 속에 침전된 그간의 죄의식은 물론 명백한 성적 야합에 대한 지탄을 상쇄하고도 남을 치유와 보상에 해당한다. 서정주 나름의 성인식인 셈인데, 이런 경험을 통해 서정주는 성적 쾌락에 탐닉하게 되고 육체에 지나친 관심을 보이게 된다. 육체에 대한 관심이 건강하게 형성되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서정주 개인의 일련의 경험은 『화사집』을 관능적이고 육체적인 생명성이라는 성격을 띠게 만들었다.
이와 관련해서 서정주는 육체와 감성을 상대적으로 금기시하는 유교관념에서 비롯된 전통적 인습을 ‘벽’으로 인식하고 있다. 유교를 잘못 이해한 서정주는 운명론적 태도에 갇혀 세상을 벽으로 인식하게 된다. 서정주는 유교식 전통적 인습에서 비롯된 운명론적 태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 중용에 보이는 <하늘이 명한신 것이 본성이고 … > 에서 사람의 당연히 가져야 할 자격을 우그려 트리기 시작한 혐의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 하늘이라는 주인 밑에 그의 운명과 그의 제자들의 운명까지 맡겨버리고 운명이란 것이 마땅치 않으면 그 하늘을 원망하기도 한다. … 무엇하러 이렇게 원망해야 할 주인을 따로 만들 필요가 있었는지 흡족치 않은 일이다. … 참 섭섭한 일이다.
서정주는 유교적 전통인습의 ‘벽’에 갇혀 피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현실공간의 문제를 ‘참 섭섭한 일’이라고 피력하고 있다. 이러한 운명론적 사고의 ‘벽’인식이 서정주 초기시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 의도적 오역인지는 정확치 않으나 그는 유교를 전통적 인습으로 받아들여 왜곡된 여성상을 형성하였고, 뿐만 아니라 다분히 부정적이고 퇴폐적인 세계관 또는 운명론을 지니게 된다. 서정주의 이런 청년기 때의 병리적 피해의식은 그의 초기시 『화사집』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2.2. 사회적 병리
서정주의 사회적 병리는 크게 식민지 현실에 대한 부정적 인식, 서구 지성에 대한 콤플렉스, 친일 문제, 한국전쟁으로 빚어진 실어증과 자살기도, 그리고 해방 후 정권에 야합한 것으로 나눌 수 있다.
김우창은 서정주의 행동적이며 육감적인 서구 지성의 전통에서 출발한 『화사집』의 초기 시들이 『귀촉도』 이후 정관적인 동양의 전통으로 변모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줄기찬 전통의 맥락으로 이룩된 서구지성의 과열한 의식적인 몸부림 속에서는 감내할 수 없어 회피해온, 이 시인 및 한국지성의 빈약성을 암시하고 있는 결함의 일단을 노정하고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서정주가 서구 근대의 이론인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서구 근대 문물과 이론에 대해 당시 지식인들처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가 나라가 없는 식민지였다는 사실이다. 거기다가 당시 대부분 지식인들은 일본유학 경험이 있는 자들이었는데 서정주는 이들에 대한 상대적 열등감을 보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시인부락 동인이었던 김동리, 오장환, 서정주의 학력 내용만 참고해도 알 수 있는 대목이고 그의 자서전 여러 곳에서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아무튼 당시 지식인들 대부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서정주는 서구 문물과 지식에 대해 상당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 열등감은 나라 없는 서러움과 조선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이 가미되면서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즉 서양의 이론이 몇 시대에 걸쳐 나름대로의 시대적 정신을 가지고 탄생한 반면, 당시 한국의 30년대는 서양의 문학과 이론이 한꺼번에 몰려왔고 그마저도 거의 대부분 번안이었다. 서양의 문학과 이론에 대해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환경적 토대가 마련되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다가 당시 카프문학의 등장과 해체, 많은 문학 논쟁, 일본제국주의 강화로 인해 한국문학의 설자리를 빼앗긴 점 등으로 서정주가 이해한 서구의 이론은 매우 부실한 것이었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가령, 서구 근대의 미적 모더니티는 정치적, 사상적 태도, 즉 개인주의나 민주주의에 대한 거부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서정주의 근대나 문명에 대한 인지는 서구의 자본주의, 제국주의, 사회주의에 대한 제한적이고 부정적 경험만을 토대로 하고 있는 것이어서 아주 허약하고 기형적이다. 즉 서구의 이론이나 그 토대를 제대로 이해하고 육화하지 못한 채 그 형식만을 쫒은 탓이다. 이런 사회적 열등감, 즉 사회적 병리(사회적 콤플렉스)가 그의 시에 많이 반영되었다.
간단히 서정주의 친일문제를 언급하자면, 서정주의 삶에서 친일은 ‘천형’이다. 일제 말기 친일과 그 주변의 행적에 대한 자기 변론은 변명과 책임 회피로 일관되었다. ‘종천순일(從天順日)’이라 하여 자신의 친일행적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며 하늘의 명령에 따랐다는 것이다. 이는 제국주의의 식민담론적 성격을 띠는 것으로 대중적 비난과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발언으로 인해 서정주는 대표적인 친일시인으로 남게 된다. 이것은 그의 시를 절름발이로 만든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볼 수 있다. 무책임과 현실순응주의로 대변되는 서정주의 친일은 후대 시와 문단 권력의 정점에 올랐지만 국정교과서에서 추방되는 치욕을 겪기도 했고, 시의 문학성과 상관없이 친일의 행적 탓으로 그의 평가는 물론 그의 시에 대한 평가도 혹독함을 치르게 된다. 이점에서 서정주의 친일은 주홍글씨이자 천형으로 자리 잡는다.
3. 병리적 관점으로 본 『화사집』의 시간의식
3.1. 불화(不化)적 세계인식 - 모순적 시간의식
「벽」은 청년 서정주가 얼마나 근대의 시간에 대해 부정적이고 모순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시이다. 또한 유교식 전통을 잘못 이해해 운명론에 갇혀 있음을 알 수 있는 시이다. 그의 시는 대부분 그의 개인적인 병리적 성격과 사회적 병리현상이 맞물려 불화적(비극적)이고 모순적으로 나타난다. 이 모순은 고독하고 고립적인 개인이 운명에 의해 비극적으로 파멸될 때 역설적으로 고결한 면을 띠기 때문이다.
덧없이 바래보든 壁에 지치어
불과 時計를 나란히 죽이고
어제도 내일도 오늘도 아닌
여긔도 저긔도 거긔도 아닌
꺼저드는 어둠속 반딧불처럼 까물거려
靜止한 <나>의
<나>의 서름은 벙어리처럼…….
이제 진달래꽃 벼랑 햇볓에 붉게 타오르는 봄날이 오면
壁차고 나가 목매어 울리라! 벙어리처럼,
오- 壁아.
- 「壁」전문
속도와 변화를 생명으로 하고 시계로 대표되는 근대의 시간은 과거의 부정과 끊임없는 갱신,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선형적 시간관을 채택하였다. 그리하여 전통적 삶과 리듬이 무차별적으로 소멸하는 위기의 시대를 맞이하였다. 이전과는 아주 이질적이고 선분화된, 무의미하게 소멸하는 시간이었다. 근대라는 시간과 일제 강점기라는 콤플렉스에 시달린 시인은 시간에 대해 굉장할 정도로 부정적 인식을 하고 있다. ‘벽’은 닫힌 외부 현실, 또는 조선을 비롯한 전통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의미하고 ‘불과 시계를 나란히 죽이’는 시적 자아의 행위는 그러한 세계에 대한 절망의 몸짓이다. 주체와 세계의 대립은 시간의 지속성에 대한 거부로서 파편화된 시간과 고립화된 자아의식을 드러낸다.
시적 화자는 ‘벽에 지치어’ 있고 ‘시계를 나란히 죽’인다. 당연히 벽은 자아를 억압하는 상징이다. 세상의 질서를 의미하는 벽에 의해 차단된 자아는 자의든 타의든 근대를 상징하는 시계를 벽에 지친 그만큼 죽이고 있다. ‘나란히’가 그것을 의미한다. 근대적 시간으로부터 탈락된 자아에게 시계는 아무 의미 없다. 근대의 시간으로부터 존재의미를 부여받지 못하는 자아는 ‘어제도 내일도 오늘도 아닌/ 여긔도 저긔도 거긔도 아닌’ ‘꺼져가는 어둠속’에서 ‘정지’한 채로 있다. 자신의 존재를 둘러싸고 있는 힘겨운 일제치하라는 외적 상황에 직면한 자아는 시간을 부정하고 공간마저 무화시킨다. 속도를 생명으로 하는 근대에서 자아는 정지해 있다. 그만큼 근대의 질서에서 탈락되어 절망 속에 있다. 그러나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서 좌절하고 있지는 않는다. 어둠이 꺼져가고 있다는 인식이 그것이고 ‘봄날이 오면 벽차고 나가 울’겠다는 의지가 그것이다. 봄은 미래의 어느 시점의 벽의 돌파가 이루어지는 시간이고 시간의 공포와 강박에 대한 극복이 이루어지는 시점이다. 자아가 처해있는 현재의 시간은 겨울(절망)이지만 자아는 다가오는 봄에서 벽차고 나가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이 점에서 모순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다 해결되지 않았다. ‘벙어리처럼’이라는 시어가 문제다. 여전히 자아의 의식은 천형의 모습을 띠고 있다. 벽차고 나가 울겠다는 의지는 또 한 번 굴절되고 좌절되고 만다. 저주받은 자아는 언어를 상실했거나 소통이 안 되는 언어를 지닌 까닭에 ‘벙어리’라는 천형의, 비극적이지만 고결한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이다. 일제치하라는 상황과 근대의 질서로부터 절망한 시적 자아는 용기내어 보지만 결국 다시 한 번 좌절하고 만 것이다. 즉 초기 시집인 『화사집』에서 서정주는 결국 일제치하라는 상황과 억압적이고 선형적인 근대의 시간관에 절망하고 좌절한다. 근대의 시간에 대한 거부와 공포가 서정주의 시간의식의 출발이었다. 이는 일제 식민지의 시민으로 살아야 하는 콤플렉스의 반영인 셈인데, 그의 심한 병리는 여기에서 출발한 것이다.
무자비하게 흐르는 선형적인 시간의 질곡으로 표상되는 근대와 식민지 현실에 대한 대응은 서정주의 대표작 중 하나인 「자화상」에서 양가대응(모순)으로 나타난다. 적극적인 부정, 즉 현실에 대한 시니컬한 인식과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의지로 나타나고 있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기퍼도 오지않았다.
파부리같이 늙은할머니와 대추꽃이 한주 서 있을뿐이엇다.
어매는 달을두고 풋살구가 꼭하나만 먹고 싶다하였으나 ……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도라오지 않는다하는 외할아버지의 숯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눈이 나는 닮었다한다.
스믈세햇동안 나를 키운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하드라
어떤이는 내눈에서 죄인을 읽고가고
어떤이는 내입에서 천치를 읽고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찰란히 티워오는 어느아침에도
이마우에 언친 시의 이슬에는
멫방울의 피가 언제나 서꺼있어
볓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느러트린
병든 숫개만양 헐덕이며 나는 왔다.
- 「자화상」 전문
‘애비는 종이었다.’는 도발적이고 충격적인 자기고백으로 시작하는 시는 끝까지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처지에 대해 시니컬하고 저항적이다. 서정주가 근대와 식민지의 역사에 대해 얼마나 억압받았고 피해망상(병리)적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고, 자신의 가계와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병리)가 얼마나 심했는지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과거의 것, 반근대적인 것들은 가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사라져야 할 것으로 치부되어 이전의 것을 완전히 허물고 새로운 것, 즉 근대의 것들을 새롭게 새우자는 가치관이 팽배하던 30년대 서정주는 처절할 정도로 소외받고 억압받는다. 소외된 인간이 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인정하고 수용하든지 아니면 저항하는 수밖에 없다. 서정주는 후자인 저항을 택한다. 그러나 그 저항의 방법이 문제적이다. 직접적이면서 물리적인 방법으로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원초적 욕망을 탐하고 자학을 하는 쪽으로 저항한다. 초기 서정주 시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관능성 내지 관능적 생명 추구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즈음에 서정주가 보들레르의 시와 니체 철학에 탐닉했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양의 발명품인 근대의 선형적이고 무자비한 시간에 저항하는 방법이 근대의 정서나 사상에 탐닉하는 것이다. 따라서 『화사집』에 나오는 거의 모든 시들은 아이러니의 정서를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억압하는 시간을 벗어나 실존적인 시간을 회복하려는 소외된 자아의 시간의식은 과거와 현재가 단절되고 대립하는 시간의 성질로 형상화된다. 억압받는 자아를 과거에 속한 것으로 설정하고 그 자아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과거와의 단절을 시도한다. 위 시에서 대립하는 시간의 구도를 갖는 것은 이 같은 시의식의 발로이다. 서정주 자신의 가계와 식민지 상황에 대한 콤플렉스가 과거를 부정하고 과거와 단절을 시도하게 만든 것이다. 이 단절은 부조화와 모순적 자아를 생성시키는 결정적 계기였다.
‘애비는 종이었’지만 끝내 ‘오지 않았’다. 이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 뿐이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간절히 먹고 싶은 것도 먹지 못한 어머니와 그의 아들은 건강하지 못하고 어둡다. 손톱이 까맣다는 것은 이를 상징한다. 또한 외할아버지도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다. 부권이 완전 부재하는 것이다. 과거의 시간이 현재의 시간으로 질적 전이가 일어나지만 그 기억은 절망스럽고 현실은 더욱 비참하다. 23년 동안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며, 그래서 시적 자아는 ‘죄인’이며 ‘천치’이다. 근대적 시간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참혹한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자아는 ‘뉘우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부권 부재에 대한 자신의 가계와 근대적 시간에 대한 저항이자 부정이다. 자아는 과거를 거부한다. 과거를 거부하는 것은 시간이 지속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고 과거와 현재가 대립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고 새로운 자아의 시간을 창조하려는 실존적 시간의식의 발로이다. 따라서 그의 비극과 부정은 무자비하고 비극적인 운명에 의해 추구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운명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의 발로이며, 극복되지 않을 때 파멸하고자 하는 모순적 대결로 나타나 역설적으로 고결하기까지 하다.
급기야 시적 자아는 가장 아름답고 청초해야 하는 ‘시의 이슬’에도 ‘피가 섞여 있’고 ‘혓바닥 늘어트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이며 왔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 선언은 의지에 가깝다. 그렇게 투철하게 맞서며 살겠다는 의지의 발로이다. ‘피와 수캐’, ‘헐떡이다’라는 시어는 동물적 이미지이자 육체성, 관능성, 욕망을 나타낸다. 앞으로의 시가 육체적이고 관능성을 띨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서정주는 자신의 가계에 대한 콤플렉스와 무자비한 근대적 시간을 직설적으로 부정하고 저항하는데, 그 방법이 서양의 사상에 탐닉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 서양의 사상과 문화에 대해서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서구지성에 대한 콤플렉스인 셈이다. 이런 심한 병리적 현상은 시에서도 나타나지만 실제 그를 정신병으로 이끌기도 하였다.
「문둥이」는 얼핏 보면 무색, 무미, 여백의 미까지 보이는 동양적 색채를 띠고 있지만 여전히 그 의미는 비극적 세계인식과 부정적 시간의식이 나타나고 있는 시이다.
해와 하늘 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우름을 밤새 우렀다
-「문둥이」전문
「문둥이」는 일단 정갈하다. 응축된 표현과 여백의 미학으로 동양적인 색채가 나기도 하지만 여전히 시적 화자는 암울한 상태에 놓여있다. 상승적이고 천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해와 하늘 빛’이 문둥이인 시적화자에게는 서럽다. 시적화자의 현실인식과 시간인식은 여전히 어둡고 암울하다. 그래서 달이 뜨는 밤에 ‘애기 하나를 먹’고자 한다. 이 대목에서 암울한 현실에 좌절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암담한 현실을 딛고 일어서려는 화자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비록 속신이고 폐륜적인 행동이기는 하지만 애기를 먹어서 문둥병을 낫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것이다.
이 시에서도 여전히 서정주의 의식은 양가적이다. 불안한 자의식의 발로이다. 애기는 신성의 존재이며 미래지향적인 존재이다. 이 애기를 통하여 현실의 질병을 치유하고자 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통하여 현실의 질곡을 극복하려는 시간의식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여전히 미래와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시적 자아는 ‘꽃처럼 붉은 우름을 밤새 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는 자신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식인을 해야 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죄의식이 깔려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어쨌든 현재라는 시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자학적인 자아인식은 서정주 시에 나타난 시적 자아의 비극적인 세계인식을 표상하는 것이다. 이는 디오니소스적인 육체성과 관능성으로 표현되는 자기모멸의 수단이자 근대적 시간질서에 대한 저항의 몸부림이다. 부주화적인 그의 세계인식과 모순적인 시간의식을 엿볼 수 있다.
이 시는 병리적 존재의 의미가 두드러져 있기도 하다. 시에서 나오는 인물들은 파펴화되고 해체된 육체를 가지고 현실적으로 격리된 채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적 비애의 존재들이다. ‘하늘빛’, ‘애기’가 순수성을 동반한 축복받은 운명을 표상한다면, ‘달’, ‘보리밭’, ‘붉은 우름’은 악마성을 동반한 저주받은 운명을 표상하는 것이다. 결국 이 시는 ‘해’와 ‘하늘빛’이 주는 서러움을 ‘애기’를 먹음으로써 극복하고자 하는 문둥이의 실존의식인 것이다. 『화사집』에서 화자는 자신의 존재를 이 문둥이처럼 징그러운 것으로 인지하면서 정신과 육체의 고뇌를 하께 감내하는 병리적 존재이자 모순적 존재로서의 의미를 획득한다.
3.2. 디오니소스적 육체성과 퇴폐적 카오스
서정주는 근대적 시간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니체의 디오니소스적 육체성에 탐닉하는 것을 선택한다. 격렬한 열정과 무질서의 카오스 세계로 빠져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화사」가 그 전형을 보여준다.
麝香 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베암…….
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여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둥아리냐
꽃다님 같다.
너의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든 達辯의 혓바닥이
소리잃은채 낼룽그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눌이다. ……물어뜯어라. 원통히무러뜯어.
다라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 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麝香 芳草ㅅ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안해가 이브라서 그러는게 아니라
石油 먹은듯……石油 먹은듯……가쁜 숨결이야
바눌에 꼬여 두를까부다. 꽃다님보단도 아름다운 빛……
크레오파투라의 피먹은양 붉게 타오르는 고흔 입설이다…… 슴여라! 베암.
우리순네는 스믈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흔 입설……슴여라! 베암.
- 「花蛇」 전문
이 시는 『화사집』의 표제시이기도 하면서 서정주 초기시의 절정을 이루는 시다. 현재의 부정성과 폐쇄성에 자아가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생명파 시인답게 서정주는 초기에 생명에 대해 탐구하는데 그 방법은 다른 생명파 시인과 달랐다. 일탈과 퇴폐와 관능적인 성격의 유미주의 방식으로 서정주는 근대적 시간에 저항한다. 따라서 그의 생명추구는 관능성을 띠고 있는데, 특히 니체의 디오니소스적 육체성에 탐닉한다.
운동과 변화가 있는 곳에는 부조화, 부조리, 불완전 등이 내재해 있을 수밖에 없다. 속도와 변화를 기본 속성으로 하는 근대는 더욱 그렇다. 세계에는 모순, 대립되는 힘들이 격돌하고 있는데, 니체는 이것들을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전자는 합리적이며 조화롭고 정적인 것, 후자는 비합리적이며 부조화롭고 동적인 것이다. 그는 이것을 세계의 실상으로 파악했다. 양자는 상호연관 하에 존재하는 것으로서 개별화의 원리(principium individuationis)에 의거하는 아폴론적인 것과 인과율적인 사고로는 도저히 파악되지 않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공존적 관계에 있다. 세계는 스스로 온갖 저항을 산출하고 극복하면서 영원한 율동을 하고 있는데 이런 이중성은 존재의 본질적 요소이다.
니체에 따르면 인간은 동물과 초인사이의 중간적 존재다. 인간은 완전을 동경하지만 불완전하다. 생이 다하도록 갈망과 결핍에 시달리며 안정을 얻지 못하는 인간적인 삶은 모순과 고뇌로 채워져 있다. 그것은 자신 속에 대립된 충동들, 추악한 것들, 가공할 만한 것들을 품고 있다. 인간은 동물적인 이기심뿐만 아니라 신적인 이타심도 가지고 있다. 비극은 이 두 마음의 괴리에서 기인한다.
인간의 근본적인 속성이 위와 같은 모순을 내포하고는 있지만 변화와 속도를 절대적인 가치로 내세워 전통적인 삶과 리듬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는 근대에 와서는 그 불안과 모순이 더욱 가속화ㆍ내밀화되었다. 이 모순적인 근대성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화사’다. 뱀이 유발하는 징그러움과 추악함 등의 이미지와 꽃이 의미하는 아름다운 이미지의 결합은 여러 가지 상징성을 내포한다. 뱀은 미일 수도 있고 추일 수도 있는 양면 가치를 띤 상징적 등가물이다. 바로 꽃뱀은 모순성과 양면성을 의미하는 인간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인간의 불완전한 존재에 대한 탈(mask)이면서 아폴로적인 조화(정신적인 것)와 디오니소스적인 부조화(육체성)의 대립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런 꽃뱀이 모순된 존재인 것은 구약성서에서 말하는 원죄를 타고난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화사’는 인간의 근본적인 속성인 모순된 존재를 뜻하기도 하고, 그것이 서양의 근대에 이르러 더욱 불안한 존재가 된 자아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자아는 결국 육체성을 띨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불안과 모순을 나타내기에 좋은 시적 표현은 역설이다. 「화사」에는 역설적 표현이 주를 이룬다. ‘아름다운 베암’이 ‘크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고 그래서 ‘저리도 징그라운 몸둥아리냐’ 라고 말한다. ‘달변의 혓바닥이 소리잃은 채 낼룽그리’고 있고 ‘푸른 하눌’을 ‘원통히무러뜯어’라고 소리친다. 이런 역설적 외침은 위에서 말한 인간의 근원적인 모순성과 서양의 선형적인 근대 시간에 대한 저항을 보여주는 것이다. 뱀은 대지(땅)의 동물로서 대지의 고통성을 지닌 존재다. 하늘은 정신과 조화로움을 의미하는 것인데, 뱀에게 푸른 하늘을 물어뜯으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이 이를 뜻한다. 지상은 육체에 하늘은 정신에 대비되는데 서정주는 초기시에서 이와 같이 미/추, 선/악 등과 같은 감정의 경험 속에 대립과 모순되는 요소를 배치해 놓음으로써 화자가 현실에서 겪는 고통과 갈등의 시간을 극복하는 몸부림을 보여주었다.
결국 ‘화사’는 아름다운 슬픔이라는 운명을 지니고 있어서 ‘뱀의 징그러운 몸둥아리’이다. 욕망은 소유에서 온다기보다 결핍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이 모순된 아름다움의 길을 따라야 함은 주체로서 선택한 삶의 모습이 아니라, 시인의 날것으로서의 욕망이고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이렇듯 서정주에게 삶은 운명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인식된다. 현실이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운명이나 세계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러한 서정주의 병적 인식태도는 그의 시세계를 신비롭게 만드는 특징이기도 하지만 한계이기도 한다.
시 후반부는 다시 한 번 돌변한다. ‘돌팔매를 쏘면서’까지 뒤를 따라간 것은 결국 ‘가쁜 숨결’이라는 성적 결합을 하기 위함이었고 ‘크레오파투라의 피먹은양 붉게 타오르는 고흔 입설’은 급기야 한국 여성의 대표인 ‘스믈난 색시 우리순네’로 치환된다. 그러면서 끝까지 뱀에게 숨으라고 외치는 것이다. 이는 뱀이 여자 성기 속으로 삽입되는 것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는데, 성적 결합은 디오니소스적인 육체성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시적 자아의 내면적 갈등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 갈등이 육체성과 성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모순적인 인간은 현실의 관능성에 의존하며 육체지향적인 관심만 있을 뿐이다. 시간적으로 유한한 현재의 육체지향적인 면들이 짙게 드러나는 대목으로 퇴폐적인 카오스의 성격을 띠고 있다. 식민지 현실 때문이든 개인적 가계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이든 서정주의 자의식이 굉장히 부정적임을 알 수 있고 서양의 유미주의나 상징주의를 주관적으로 이해했거나 잘못 이해한 탓도 크다. 다분히 퇴폐적인 것으로 30년대 당시 퇴폐적 낭만주의의 잔재이기도 하지만 서정주 개인의 병리적 문제이기도 하다.
「대낮」은 디오니소스적인 격정의 몸부림이 관능성을 띠고 나타나는 대표적인 시이다. 성적 행위를 묘사하는 표현이 대단히 관능적이다. 동시에 퇴폐적이며 무질서(카오스)적이다.
따서 먹으면 자는 듯이 죽는다는
볽은 꽃밭새이 길이 있어
핫슈 먹은듯 취해 나자빠진
능구렝이같은 등어릿길로,
님은 다라나며 나를 부르고……
强한 향기로 흐르는 코피
두손에 받으며 나는 쫓느니
밤처럼 고요한 끌른 대낮에
우리 둘이는 웬몸이 달어……
-「대낮」 전문
성은 모든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본능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성이야말로 생의 활력소이자 살아가는 에너지이다. 성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에로스다. 그 속성은 가득찬 것 같으면서도 항상 갈구하는 이중성을 지녀 야누스 얼굴에 비유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에로스는 육체적인 욕망의 갈구인 동시에 보다 완전한 것을 지향하는 정신적인 갈구로 발전하며, 동시에 이러한 갈구는 속성상 항상 만족과 불만족, 지향과 좌절, 생의 애착(에로스)과 죽음에의 동경(타나토스)과 같은 이중성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적극적인 드러냄과 소극적인 은혜, 승화된 표현행동과 카오스적 질서 파괴 행위 등과 같은 이중성으로 표현된다. 아폴로적인 조화와 디오니소스적인 부조화의 대립이 이 시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서정주의 초기시를 특징지을 때 흔히 원초적ㆍ원색적 성격의 상상력, 생명력, 육체성, 관능적 욕망 등으로 표현한다. 이것을 다르게 말하면 에로티시즘(에로스)이라 명명할 수 있다. 바로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에서 방황하고 고민하였던 것이다.
온통 불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진한 피와 거친 동물적 호흡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서 먹으면 자는 듯이 죽는’ ‘볽은 꽃밭’과 ‘핫슈 먹은 듯 취해 나자빠진 능구렝이같은 등어릿길’, 그리고 ‘강한 향기로 흐르는 코피’로 연쇄되는 도취적 분위기는 ‘밤처럼 고요한 대낮’에 ‘우리 둘이는 웬몸이 달’았다는 성적 행위로 결속되어 강화되어 있다. 관능의 이미지를 쫒아 유혹의 정점에서 이미지는 성적으로 가쁜 호흡을 내쉬고 있다. 마초적인 분위기에 취한 격정적인 관능의 이미지가 바로 디오니소스적인 이미지다. 가계에 대한 콤플렉스, 식민지 현실에 대한 부정적 인식, 서구지성에 대한 콤플렉스 등으로 시적 자아는 현재의 시간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이 병리적 현상은 부정적 자아인식의 결과로서, 자아인식이 부정적일수록 육체와 관능의 집착으로 변질되어 다분히 퇴폐적이며 카오스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님’과 ‘나’는 의식과 무의식의 갈등 양상을 형상화한 것이다. 시적 화자는 자아를 은폐하는 퍼스나의 옷을 벗고 죽음의 공포가 드리운 세계로 나아가는 위험을 감행하고 있다. 이것은 육체와 관념의 합일을 단절하는 벽을 돌파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위이다. ‘…’는 ‘님’이 ‘나’를 부르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음을 말해 준다. ‘님’의 목소리는 우리의 심연에 자리한 내적욕망이다. ‘님’이 부르는 소리가 지속되는 것은 ‘나’의 소극적 성향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억압된 감정, 즉 기독교의 원죄의식과 유교적 윤리의식에서 촉발된 퍼스나의 ‘벽’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의식과 무의식의 충돌과정에서 마음의 고요와 안정을 잃고 양가감정과 신경증적 징후를 드러내는 심각한 상황을 형상화하고 있는 시이기도 하다. 그의 병리적 심리가 실질적인 신경증적 병으로 옮겨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4. 나오며 - 병리적 관점으로 본 서정주 시 『화사집』에 나타난 시간의식의 의미와 한계
서정주는 콤플렉스가 심했다. 아버지를 비롯한 가계에 대한 콤플렉스, 부정적인 동정상실에 따른 상처, 전통과 한국적인 것에 대한 부정적 인식, 서구지성에 대한 콤플렉스, 식민지 현실에 대한 부정적 의식 등은 청년 서정주를 괴롭혔고 『화사집』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그런데 이 모든 서정주의 병리현상은 근대라는 시간과 맞물려있다. 근대의 시간의식은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직선적인 무한한 전진의식이다. 그러한 까닭에 과거로 회귀한다든가, 시간이 정지되는 퇴행의 관념은 근대의 시간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다가올 미래만이 현재의 시간 속에서 구성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근대의 시간들은 현재를 폭주하는 차량처럼 질주하게 만들었고, 그 변화와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가늠하기 어렵도록 만들었다. 그리하여 이런 변화의 가속도는 근대적 현실을 일시적인 것, 우연적인 것, 덧없는 것으로 특징지우면서 영원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인식하게끔 했다. 무차별적인 속도로 변화하지 않는 것들을 가치 없는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었으면, 따라서 이 속도에 따라가지 못하는 존재에게는 자기의 존재와 정체성마저 부정되는 억압적 현실을 맞이하게 하였다. 이런 서양의 근대 시간에 대해 서정주는 부정적이었다. 거기다가 식민지라는 현실적 시간 앞에서 그는 누구보다 방황하고 괴로워하였다.
『화사집』에서 볼 수 있는 몸에 대한 서정주의 탐구는 바로 근대를 부정하기 위한 것으로서 니체의 몸철학, 즉 디오니소스철학을 차용하는 것이었다. 식민지의 불우한 청년이었던 서정주에게 몸이란 단순한 몸뚱이가 아닌 가장 명백한 실존의 조건이자 대상이었다. 인간을 정신과 육체로 분리하는 서양의 이원론(합리주의)을 배격하고 니체의 일원론적 몸철학을 따랐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 유럽을 휩쓸었던 유미주의와 상징주의의 퇴폐성을 받아들여 시에 적용하였다. 서정주는 상징주의의 대가인 보들레르와 니체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 시를 썼다. 그 결과 『화사집』이 역동적인 성충동, 원초적 본능, 퇴폐적 관능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물론 서정주의 병리적 현상 -가계에 대한 콤플렉스, 부정적인 동정상실에 따른 상처, 전통과 한국적인 것에 대한 부정적 인식, 서구지성에 대한 콤플렉스, 식민지 현실에 대한 부정적 의식 등- 이 상당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서정주의 자의식은 비극적이고 부정적이다. ‘뉘우치지 않겠다’(「자화상」)며 근대의 시간에 부정하고 저항한다. 근대에 대한 저항의 양상으로 관능을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다. 이는 몸에 대한 탐닉을 통해 생명 그 자체를 탐구하고 인간원형을 회복하려는 것이다. 서정주는 근대적 시간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니체의 디오니소스적 육체성에 탐닉하는 것을 선택한다. 격렬한 열정과 무질서의 세계로 빠져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성애에 대한 집착은 닫힌 현실의 질서를 전복시키려는 욕망을 내포한다. 또한 마르쿠제는 진정한 예술은 격렬한 에로스의 감정을 환기시킴으로서 억압적인 사회에 대항하고자 한다고 했다. 에로티시즘은 본질적으로 현실의 금기에 대한 ‘파괴와 위반’의 힘을 갖는다. 이렇게 볼 때 서정주의 시들은 근대의 왜곡된 시간에 눌려 있는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의미를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내면의 어두움과 혼돈, 모순과 갈등이 혼재하고 있는 자아의 상태를 암시하는, 언어화 되기 이전의 울음(「문둥이」)을 넘어 나타나는 혼돈스럽고 공격적인 내면의 일탈적이고 비윤리적인 행동, 충동적이고 파멸적인 본능에의 이끌림은 비극적인 근대 세계에 대한 처절한 도전이며 근대 하에서 절망적 삶을 극복하기 위한 비극적 선택이었다. 다시 말해 현재라는 시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자학적인 자아인식은 서정주 시에 나타난 시적 자아의 비극적인 세계인식을 표상하는 것이다. 이는 디오니소스적인 육체성과 관능성으로 표현되는 자기모멸의 수단이자 근대적 시간질서에 대한 저항의 몸부림이다.
그러나 『화사집』에서는 억압적인 근대적 시간, 또는 식민지 청년이 겪어야 할 정신적 갈등과 몸부림을 집중적으로 표출하고 있을 뿐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의지를 담보하지 못했다. 저항의 수단으로 육체성과 관능성을 선보였지만 그것은 소극적인 방법일 뿐이다. 새로운 의미와 메시지를 담보하거나 그런 의지를 피력하지 않는 소극적인 저항은 본질적으로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핵심에서 벗어난 무의식적 순응과 도피의 양식에 불과하다. 성적 관능의 발산이 상승 내지 구원과 관련되는 서구 시인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서정주의 관능은 성을 통해 억눌린 자아를 해방하여 진정한 자아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좌절하고 원망한다. 그래서 부정적이고, 부정적인 서정주의 관능은 짐승으로 전락하고 만다. 『화사집』에서 보인 많은 시들이 서정주의 의도건 아니건 빛을 향한 상승의지보다는 어둠 속으로의 추락 욕망에 더 많이 경도되어 있음은 이를 증명한다. 이는 식민지 시대 지식인으로서의 울분을 대책 없는 울부짖음으로 일관했던 낭만주의 계열의 잔재이기도 하다. 이는 또한 시적 자아가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식민지 청년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전형성을 갖는 한계도 있다.
『화사집』에서 서정주는 혼돈의 심연에서 스스로 피를 배출하며 콤플렉스로 가득찬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었다. 이는 부끄러운 개인사와 식민지 현실, 억압적인 근대의 시간질서에 대해 저항의 의미이다. 그러나 외면과 도피를 통한 이 소극적 저항은 끝내 현실과 자신마저 극복하지 못한 채 안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아의 동일성을 획득하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저항의 수단으로 육체성과 관능성을 선보였지만 그것은 소극적인 방법일 뿐이다. 새로운 의미와 메시지를 담보하거나 그런 의지를 피력하지 않는 소극적인 저항은 본질적으로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서정주의 『화사집』은 그의 이런 병리적 현상이 불러온 작품으로 볼 수 있으며, 이런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그의 병리적 현상과 맞물린 근대라는 시간을 서정주는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그 인식 방법으로 관능성과 퇴폐성을 추구하였음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국문초록
서정주는 콤플렉스가 심했다. 아버지를 비롯한 가계에 대한 콤플렉스, 부정적인 동정상실에 따른 상처, 전통과 한국적인 것에 대한 부정적 인식, 서구지성에 대한 콤플렉스, 식민지 현실에 대한 부정적 의식 등은 청년 서정주를 괴롭혔고 이런 그의 병리적 성격과 현상은 『화사집』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서정주의 자의식은 비극적이고 부정적이다. 근대의 시간에 부정하고 저항한다. 근대에 대한 저항의 양상으로 관능을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다. 이는 몸에 대한 탐닉을 통해 생명 그 자체를 탐구하고 인간원형을 회복하려는 것이다. 그는 근대적 시간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니체의 디오니소스적 육체성에 탐닉하는 것을 선택한다. 격렬한 열정과 무질서의 세계로 빠져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화사집』에서 서정주는 혼돈의 심연에서 스스로 피를 배출하며 콤플렉스로 가득찬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었다. 이는 부끄러운 개인사와 식민지 현실, 억압적인 근대의 시간질서에 대해 저항의 의미이다. 그러나 외면과 도피를 통한 이 소극적 저항은 끝내 현실과 자신마저 극복하지 못한 채 안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아의 동일성을 획득하지 못하였다. 저항의 수단으로 육체성과 관능성을 선보였지만 그것은 병리적인 결과일 뿐이다. 새로운 의미와 메시지를 담보하거나 그런 의지를 피력하지 않는 소극적인 저항은 본질적으로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서정주의 『화사집』은 그의 이런 병리적 성격과 병리적인 사회적 현상이 불러온 작품으로 볼 수 있으며, 이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주제어: 콤플렉스, 병리, 근대의 시간, 저항, 관능성, 퇴폐성
영문초록
Study of Time Consciousness in Seo Jeong-ju’s Collection of Poems,
Hwasajib
from Pathological Point of View
Seo Jeong-ju’s complex was severe. A complex about his family including his father, an injury from the negative loss of his virginity, a negative understanding of the tradition and Korean things, a complex with the Western intellectuals, and a negative consciousness about the colonial reality, etc. distressed young Seo Jeong-ju, and his pathological character and phenomena were reflected in Hwasajib intact.
Seo Jeong-ju’s self-consciousness is tragic and negative. He denies and resists the time of modern. As an aspect of resistance against modern time, he takes sensuality as the main motif. This is to explore the life itself through the indulgence of the body and recover the archetype of mankind. He chooses indulgence in Nietzsche’s Dionysian physicality as a way of resistance against the time of modern. That is to begin to fall into a world of intense passion and disorder.
In Hwasajib, Seo Jeong-ju wanted to get his being confirmed, full of complex, discharging blood himself in the depth of chaos. This means resistance against his shameful personal history, colonial reality, and the time order of oppressive modern. And yet, in spite of this passive resistance through avoidance and escape, he could not rest, not overcoming himself and could not get his ego-identity. He showed physicality and sensuality as a means of resistance, but that was just a pathological result. Passive resistance, which does not guarantee a new meaning and message or express such a will, cannot but come up against a limit fundamentally. Thus, Seo Jeong-ju’s Hwasajib is judged to be a work brought by his pathological character and pathological social phenomena. In this sense, it is meaningful.
key wards: Complex, Pathology, Time of modern, Resistance, Sensuality, Deca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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