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빛 한 조각 없던 태초의 우주를 떠돌던 먼지들은 무슨 생각으로 서로 뭉치고 흩어지기를 수십억 년 동안 반복했을까. 그 먼지들은 자신들이 먼 훗날 먼지보다 작은 지구라는 행성 속 티끌 같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희망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고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무한반복 후 끝끝내 우주의 먼지들은 별이 되어 인간의 희망이 되었고, 그 희망은 이제 고문이 되었다. 이 놀라운 순환의 우주 법칙 속 영원의 시간 속에서 잉태된 인간의 자유의지가 희망 대신 고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또 다시 영원의 시간이 흐르면 고문이 희망으로 바뀔 수 있을까. 현재 지구는 지옥이다. 인간존재가 지옥이다.
희망 자체가 없어서인지 언제부터 우주를 헤매고 있었는지 기억이 없다. 태초부터인 것 같기도 하고 엄마 뱃속에서부터인 것 같기도 하고 그 사건부터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예정된 운명대로 김목사는 스스로 신이 되어 우주를 헤매고 있었다. 그리고 심판의 날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자신이 만든 햇볕을 쬐지 못한 지 벌써 반년이 넘었다. 컴컴한 원룸의 작은 방에서 어둠만을 먹으며 어둑시니와 친구가 된지 반년이다. 부모가 자식으로부터 소외당하듯, 사람이 돈으로부터 지배당하듯 세상 모든 것은 자신이 만든 것에서 소외당하고 지배당한다. 그것이 설령 신이라 할지라도. 신은 태양을 만들었지만 햇빛으로부터 차단당했고 인간을 창조했지만 인간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당했고 배신당했다. 이 원리를 컴컴한 원룸에서 깨달은 김목사는 그래서 스스로 신이 되었다.
※
어이, 김목사! 왜 이리 굼떠? 시킨 거는 아직 이야?
아, 죄송합니다. 지금 하고 있습니다.
어휴 저 계약직. 이래가지고 정규직 되겠어? 저 비리비리한 놈…
한 번은 회사 회식 때의 일이었다.
어이 김목사, 그런데 너 이름이 왜 목사야? 진짜 목사야? 목사가 왜 회사에 취직했어?
아니, 개신교의 ‘목사’할 때 ‘목(牧)’ 자는 가르치다, 통치하다는 뜻이고요, 제 이름 ‘목(穆)’ 자는 아름답다, 공경하다는 뜻입니다. ‘사(師)’는 스승 ‘사’자이고요. 아름답고 공경 받는 스승처럼 살라는 뜻에서 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놀고 있네. 니 하는 짓 보면 전혀 아름답지도 공경 받지도 못하거든.
죄송합니다.
할 줄 아는 말이 죄송합니다, 밖에 없지. 저리 가. 너는 저 옆 테이블에서 술 마셔.
계약직은 뭐가 달라도 달라. 모자라니까 계약직이지. 이 회사 저 회사 살짝 스쳐 지나가는 회사입장객. 히히, 근데 회식자리에 비정규직을 꼭 참석시켜야 하나. 자, 우리 정규직끼리 건배하자고. 건배~~
사람 면전에서 이렇게 모욕적인 말을 할 수 있다는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 지옥이 따로 없다. 말이 민주공화국이고 21세기이지, 잘 생각해보면 지구에서 언제 이러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우주적 관점에서는 언제나 현재밖에 없다. 현재 지구는 지옥 그 자체다.
김목사가 일 년 간 한 식품회사에서 당한 모욕과 왕따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 놈의 정규직이 뭔지 비정규직인 자신을 무시하는 갑질은 보편화된 일상이다. 중세의 혈통적 신분제가 아닌 자본의 구조적 신분제는 더욱 비열하고 처참하게 인간을 멸시하고 있다. 지옥행의 동아줄인지도 모르고 90%의 인간이 아등바등 매달려 있고 자신은 먹지 않게 될 것이라 맹신하며 사회적 그릇에 차별이라는 독을 타는 인간, 인간은 그런 존재였다. 그들에게 더 이상 희망이 없었다.
김목사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왜 이 회사에서 일을 하는지도 모른 체 모멸감을 참으며 일을 하고 있던 중 터진 일이었다. 회사 본사에서 지시가 내려왔다. 재고물량이 많으니 이것을 처리할 방안을 각 지사별로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공식적인 공문 내용이었고 은근히 지사장에게 내려온 명령은 재고 물량을 직원에게 강매를 하고, 그래도 남는 것은 유통기한을 살짝 조작해 늘리라는 것이었다. 지사장은 부장에게 부장은 과장에게 과장은 대리에게 대리는 말단 직원인 김목사에게 명령을 한 것이었다. 유통기한 날짜를 살짝 바꾸는 기술까지 전수하며 다독였다. 그럴 때마다 정규직 달아야 하지 않겠냐며 더러운 혀를 김목사 앞에서 날름거렸다. 김목사가 주저주저 하자 최 대리가 한 마디 했다.
야, 이거 다른 회사에서도 다 해. 왜 이래 겁쟁이 같이. 그러니까 니가 계약직인 거야.
말끝마다 비정규직, 계약직 하며 김목사를 주눅 들게 했다. 정규직은 그들에겐 무슨 왕관과도 같은 벼슬이었다.
그래도, 이거 불법이잖아요? 차라리 제가 제품을 더 살게요.
순진한 김목사는 겁이 났다. 떨리는 목소리로 눈치 보며 말했다. 그러자 최 대리는 김목사를 한심하게 쳐다보며 몰아붙였다.
야이, 병신 같은 놈아. 이 많은 제품을 니가 어떻게 다 살 거야? 이 김목사야, 잘 들어. 선진국에는 없는데 우리나라에만 유통기한이 있어. 이 짧은 유통기한 때문에 버려지는 음식이 한 해에 얼만지 아니? 수십조야. 먹어도 건강에 아무 영향 없는 멀쩡한 제품이 이 놈의 유통기한 때문에 버려지는 거라고. 그러니 이렇게 유통기한을 늘리는 게 애국하는 길이고 환경을 살리는 거라고. 모르겠어, 무슨 말인지?
좋은 말씀이긴 한데, 그래도…
뭘 꾸물거려? 빨리 안 해?
악마들은 언제나 이렇게 화려한 말솜씨로 선량한 소시민을 어둠의 구렁텅이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이 악마의 속삭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인간의 어리석음, 달콤한 욕망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인간을 옥죄는 불평등한 신분제 때문이다. 이 불평등한 신분제라는 악마는 피의 신분제에서 돈의 신분제로 그 모습을 바꾸었을 뿐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데 어리석은 인간은 그것을 모른다.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이 모순적 제도를 모르는 어리석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들이 이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 또는 중간이라도 차지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그 지위로 자기보다 낮은 신분의 사람에게 갑질을 부리고 싶은 욕망 때문에 이런 사회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악마를 닮아가는 것이고 사회는 악마의 소굴이 되어 가는 것이다. 최 대리도 그런 악마 중 한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김목사처럼 순진했고 법을 준수하고자 했던 선인이었다. 그러나 회사라는 악마에서 살아가려면 악마를 쫒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악마를 원망하다 악마를 닮아간 원민(怨民)…
사람이 정말 악마라는 것을 증명한 사건이 몇 주 뒤 터졌다. 김목사가 계약직으로 일하는 회사의 직영 마트에서 일하는 직원이 우유의 유통기한이 이상하다고 마트 점장에게 알렸고 점장은 무시했다. 그리고 입 밖에 내지 말라고 그 직원을 협박했다. 그러나 지역 기자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뉴스에 보도되었다. 마트에서 일하는 직원은 내부고발자로 마트에서 해고되었고 유통기한을 조작한 본사는 형사고발 돼 입건되어 경찰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윗선은 다 피해가고 결국 김목사만 형사책임지게 되었다. 윗선의 지시로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라고 말해보았으나 소용없었다. 최 대리와 이 과장, 그리고 박 부장은 당연히 형사책임으로는 무죄가 났고 관리 책임만 인정되어 회사에서 견책을 받았다. 김목사는 초범이라는 것과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로 정상참작이라는 혜택을 받아 ‘6개월 징역ㆍ1년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회사에서 가차 없이 잘렸다.
몇 달 동안 이 힘든 과정을 겪은 김목사는 정신이 피폐해지고 사회가 싫어지고 사람과 멀어졌다. 그리고 멍해졌다. 멍 때리고 싶어 멍한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회가 너무 싫어 멍해졌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정신이 나갔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것이구나, 하고 느낄 뿐이었다. 무작정 시간이 지나간다고 치유가 되었을까, 아님 김목사의 운명이었을까. 정신 텅 빈 사람처럼 지내던 김목사를 완전 격분케 한 것은 이 말 한 마디였다. 최 대리한테 전화가 왔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그가 내뱉은 말은 너무나 간단하고 뻔뻔했다.
야, 그래도 다행으로 생각해. 구속되었으면 어쩔 뻔했냐? 이것도 나와 회사에서 다 신경 써준 덕분이라고. 알겠지?
김목사는 최 대리의 이 한 마디로 결심했다, 신이 되기로. 신이 될까 말까 갈피를 못 잡던 그의 고민을 단칼에 지워주었다. 김목사는 무미건조해졌고 감정이 사라졌다.
※
컴컴한 어둠이 내 기억을 갉아먹는다. 그런데 이 어둠이 싫지 않다. 내가 나를 잃어가고 있을 때쯤 나의 계획은 분명해진다. 내가 세상을 창조하고 나를 창조했듯 세상을 파괴하고 나를 파괴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을 파괴할 것이다, 처참히.
우울증인지 아닌지도 모른 채 어두운 원룸에서만 숨 쉬고 먹고, 그러다 정신 이상자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면 햇빛 좋은 날 밖에 나가 햇빛을 쐬며 벤치에 마냥 앉아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경치를 보는 것도 아니었다. 초점이 밖으로 향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안으로 향해 있었다. 어둠도 햇빛도 모두 내가 만들었거늘 내가 어둠에서 우울하다니 이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쓸데없이 인간에게 준 자유의지는 사회를 악의 구렁텅이 속으로 만들었고 지구를 파멸로 이끌고 있다는 자각과 반성이 들었다. 거두어들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준 기억이 없다. 인간 스스로 나를 만들고 자유의지를 내가 줬다고 떠들어대고 있으니… 내가 기억상실증인지 인간이 거짓말쟁이인지 가짜가 판치는 도통 알 수 없는 세상이다. 아무튼 나는 이제 신이 되었으니 인간에게 준 자유의지를 박탈하고 심판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미끼를 살짝 던졌다. 아니, 장난을 살짝 쳤을 뿐인데 의외로 효과는 컸다. 최 대리, 이 과장, 박 부장의 업무 메일로 메일 한 통씩을 보냈다.
곧 회사에서는 올 해 최고의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최근 몇 년 간 회사업무 실적이 좋지 않았지만 올해부터는 더 과감히 회사를 운영할 계획이랍니다. 그 일환으로 회사 주력 제품에 대한 중국 수출을 최소 3배 이상 늘릴 계획이라네요. 따라서 중국 지사를 대폭 늘리고 중국 지사에서 일할 인재를 몰래 찾는답니다. 중국 지사에서 몇 년 일하고 귀국하면 지방의 지사장 자리로 특급 승진시켜 준다고 합니다. 단 여기에서 탈락되는 직원은 정리해고 1순위라고 합니다. 회사에서는 한 달 뒤 공식 발표할 예정이라는데 제가 당신에게만 살짝 알려주는 겁니다. 먼저 선수를 치는 게 좋을 겁니다. 그럼 건투를 빕니다.
최 대리, 이 과장, 박 부장은 발신 불명의 메일을 받고는 고개를 들어 사무실을 쭉 훑어본다. 눈치가 신(神)인 자들이다. 그러곤 속삭인다.
뭐야! 이 메일 누가 보낸 거지? 총무팀 내 친구 T가 보냈나? 그럴 리가. 그럼 전략본부팀 U가 보냈나? 그럴 리도 없어. 이런 고급 정보를 흘릴 리가 있나. 뭐지. 이게 사실일까? 혹시 이것이 여의도 찌라시라는 것인가. 어떡하지.
최이박은 순식간에 대혼란에 빠졌다. 서로 경계하며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최 대리는 이번 기회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놈의 과장과 부장 놈을 넘어서야 해, 하고 다짐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그렇게 친한 척 하던 세 명의 관계는 갑자기 싸늘해졌다. 최 대리와 이 과장은 박 부장에게 더욱 굽실거리며 아부했다. 그러나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표리부동한 아부, 거만한 아부였다. 그리곤 세 명 모두 윗선인 임원에게 찾아가 아첨떨기 시작했고 서로를 헐뜯었다, 은근히.
계속 낌새를 탐색하던 이 과장이 선수를 쳤다. 본부장이 화장실에 가는 시간, 그것도 화장실에 사람이 아무도 없을 시간을 체크했다. 드디어 본부장이 점심 후 낮 세시에 화장실에 들어가자 같이 화장실에 들어갔다. 본부장이 볼 일을 다 볼 때까지 기다렸다. 화장실 내 변기 칸에 사람이 없는 것까지 확인했다. 본부장이 손을 씻자 조심스레 눈치를 보며 말을 꺼낸다.
저 본부장님!
본부장이 이 과장을 쳐다본다.
왜? 무슨 일인가?
저 이거…
이게 뭔가?
우리나라 상위 1%들이 다닌다는 P클럽 1년 골프회원권입니다.
뭐? 아니 이렇게 비싼 걸 왜? 무슨 일이야?
이 과장은 본부장 앞에서 바로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당황한 본부장이 말했다.
무슨 짓이야! 당장 일어나지 못해!
본부장님. 저는 우리 회사 들어온 지 십년이 넘었습니다. 회사를 위해 밤낮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오십견도 십년이나 빨리 왔습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달에 공고 뜬다고 들었습니다. 저를 중국에 보내주십시오. 제 인생을 걸고 회사를 위해 불태우겠습니다.
아니, 중국 M시의 지사 말인가? 거기 지사장이 바뀌는 걸 어떻게 알았나? 아니면 이번에 새로운 지사를 둘 예정인데 거기 말인가? 어쨌든 그걸 어떻게 알았어? 정보가 빠르군.
그게… 제가 그래도 회사 짬밥이 십년이 넘었습니다.
근데 진짜 갈 생각이 있는 거야? 박 부장, 최 대리도 갈 생각이 있는 모양이던데.
뜨끔했다. 자기가 제일 빠르게 선수 쳤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늦었다. 속으로 욕이 나왔다.
이 개자식들!
본부장님. 사실 이런 말은 좀 그렇긴 한데, 최 대리와 박 부장은 회사 내 비리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아, 됐고. 비리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세 명 친하지 않은가. 내가 세 명을 동시에 추천할 수 있는지 한 번 알아보도록 하지. 같은 팀원으로 파견 보낼지, 아님 자네를 다른 지사장으로 보낼지는 생각해보자고.
아,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이 과장은 연신 허리와 고개를 90도로 숙였다.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리는 게 놀라웠다. 비싼 골프회원권이 영향을 미쳤나 생각했다. 찌라시 메일에 고마워했다.
지나친 욕망은 눈을 멀게 하고 어리석음으로 스스로를 도배한다. 파멸의 늪 속으로 자신의 몸이 빠져 들어가고 있다는 것도 모른다, 숨이 멎기 직전까지. 아니, 파멸을 예상하고도 욕망을 제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탐욕에 의해 조종당하는 추악하고 나약한 존재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구원은 파멸, 곧 죽음이 최고의 길이다.
※
따르르릉~~ 따르르릉~~
김목사의 전화벨이 울린다. 얼마만의 전화벨인지 모른다. 회사에서 잘리고 곧바로 인간관계마저 단절하고 살았다. 인간이란 자신보다 못하다 싶으면 구박하고 업신여긴다. 이때다 싶어 마구잡이 뜯어먹는 하이에나 같은 존재다. 물론 좋은 말 하는 친구도 있다. 그러나 그런 친구조차 대화 끝에는 ‘니가 이전부터 약간 사회부적응자였잖아. 뭐 좋게 보면 순진한 거고. 그러나 사회는 순진해서는 살아가기 힘든 곳이야. 약육강식인 정글이란 말이야. 그러니 더 강해져야 해. 힘 내!’이런 식이다. 이렇게 충고해주는 친구들을 타박하고 싶지는 않다. 그게 엄연한 현실이었고 그들 또한 나약하고 어리석은 인간일 뿐이니까.
최근 김목사가 몰두하는 일은 살짝 들어오는 햇빛 한 자락도 허락하지 않게 암막커튼 치기와 글쓰기다. 휴대폰도 차단할까 했는데 그러면 생활 자체가 힘들어져 그럴 수 없었다. 그러던 차 오늘도 열심히 소설 쓰고 있는 김목사의 귀를 때리는 전화벨이 울린 것이다. 전화 올 사람이 없는데, 하며 휴대폰 화면을 보았다. 놀랐다. 최 대리였다. 한 참이나 벨이 울릴 때까지 망설였다 전화를 받았다.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아 감히.
김목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폰 밖으로 세 명의 목소리가 들린다. 스피커 통화중이었다. 셋이 같이 술 한 잔 하는 모양이었다.
야, 이 김목사가 아직도 우리한테 감정이 있나보네. … 그건 그렇고 우리가 널 구제해줄게. 우리 셋이 다음 달에 중국 지사로 발령받아 가는데 널 말단 직원으로 고용할까 해. 집에서 놀면 뭐하니. 여기 와서 경험도 쌓고 일 해. 돈 벌어야지.
무슨 일인데요?
무슨 일이면. 니가 중요한 일을 할 수는 있긴 해. 우리가 시키는 일만 하면 되는 거지. 일종의 잡일. 청소하고 전화 받고 문서 작성하고 심부름하고.
옆에서 다른 놈이 술에 취해 한 마디 덧붙인다.
우리가 화풀이 하면 받아주고. 욕하면 죄송합니다, 하고 받아주는 욕받이. 히히. 안 그래 김목사야.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라는 것을 상실한 악마들이다. 악마가 별것인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자, 욕망에 눈멀어 자신과 타인을 파멸시키는지도 모르는 자가 악마가 아닌가. 김목사를 인간으로 보지도 않는 자들이다. 김목사는 속으로 속삭였다.
그래, 마음껏 지껄여라. 내가 너희들을 처참한 고통 속에서 아우성치게 만들어 주마.
※
최 대리와 이 과장, 그리고 박 부장 세 사람은 부푼 꿈을 품고 중국 지사에 왔다. 그러나 그 꿈과 기대는 오래 가지 않았다. 널찍한 사무실에 집기는 갖추어져 있었으나 그것이 전부였다. 회사의 신상품을 중국에서 최대한 많이 팔라는 것이었다. 그 외 회사의 지원은 전혀 없었다. 세 사람이 본사로 이것 저것이 필요하다고 아무리 연락해도 본사에서는 미루거나 지원 불가능하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 자꾸 본사로, 자신의 휴대폰으로 전화하는 것이 귀찮았는지 어느 날 본사의 본부장이 박 부장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박 부장, 너 저능아야? 지난 번 사건으로 회사에서 이미지 타격을 얼마나 본지 알아? 그 손해가 돈으로 얼만지 아냐고. 그것도 모르고 나불거려. 너희들은 정규직이라 한 번에 내칠 수가 없어 이 방법을 회사에서 쓴 거라고. 요즘 중국과 한국 사이도 안 좋고 중국 경제도 안 좋아 너희들이 신상품을 중국에서 히트치기는 불가능할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 이 참에 너희들을 자르려는 거야, 멍청한 박 부장아! 그래도 한 사람은 복귀시킬 테니 잘 살아 남아 봐.
본부장은 이 말을 최 대리, 이 과장, 박 부장 세 명에게 똑 같이 한 것이었다. 그제야 세 사람은 깨달았다. 회사의 의자놀이에 자신들이 철저히 당한 것이라는 것을. 허탈하고 망연자실했다. 그리고 분노했다. ‘내 청춘을 회사에 다 바쳤는데. 회사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참을 수 없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지만 끝내 자신들의 어리석음과 잘못된 계급의식을 반성하지는 못했다. 며칠 동안 끓어올랐던 분노는 희한한 결론으로 귀착되었다. 이 의자놀이에서 자신만은 살아남겠다는. 정말 이 어리석음은 어디에서 오는지 신인 나조차 알 길이 없다. 내가 준 자유의지가 아니거늘 인간은 그 자유의지로 무한경쟁을 만들었고 그 경쟁을 정의와 공정으로 생각하며 타인을 없애려 하다니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난감했다.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내가 딱히 그들을 벌주지 않아도 될 듯했다.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이 경쟁을 그들은 모두 줄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딱 한 자리 있는 의자에 앉기 위해 세 명은 서로를 의심하고 배척하며 피투성이로 싸운다. 서로 협력하면, 연대하면 싸우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그 방법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같은 노동자끼리 연대해 회사에 맞서는 것을 그들에게 기대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노동자가 반노동자적인 사고와 행동을 하는 세계 거의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박 부장이 이 과장한테 업무지시하면 이 과장은 건성으로 대답한다. 아, 네, 라고. 어떨 땐 대답조차 하지 않는다. 최 대리도 마찬가지이다. 서로 눈치 보며 서로의 비리를 차곡차곡 저장해둔다. 그리고 본사에 가끔 연락해 새로운 라인을 탈 궁리만 한다. 회사제품 파는 일은 최 대리가 먼저 움직였다. 대리하는 동안 배운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회삿돈으로 중국기업 직원에게 일명 꽌시를 주고 회사 제품을 홍보하고 판매하고자 했다. 이 과장은 일반 공무원에게 꽌시를 주며 제품을 팔려고 했고 박 부장은 공안당국에게 뒷돈을 주었다. 회삿돈이 모자라면 자신들 개인 돈까지 털었다. 결국 그들은 한국에서처럼 중국에서도 비리를 저지르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차이점은 그들의 직급에 따라 뒷돈을 주는 중국단체의 계급도 높아진다는 것이었다. 정규직이라고 자랑한 그들의 실력은 결국 한국에서건 중국에서건 비리를 저지르는 것이었다. 그것이 현실이라며.
세 사람은 빠르게 피폐해져갔다. 한 번 주기 시작한 꽌시는 계속 요구되었고 제품은 준 꽌시보다 덜 팔렸다. 갈수록 손해가 커져갔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이었다. 그러자 세 사람은 노골적으로 서로를 적대시했다. 아무리 꽌시가 관행이라 해도 계획을 잘 세워 집행해야지 아무렇게나 그렇게 막 주니 회사에 손해가 막심해졌다. “야 이 이 과장 새끼야. 나 몰래 그렇게 꽌시를 줄 거야. 내가 모를 줄 알아. 최 대리 너도 마찬가지야. 앞으로 내 허락 없이 회삿돈 끌어 쓰면 죽을 줄 알아.”, “에이, 박 부장님이 제일 심하면서 뭘 그래요.”하며 서로를 탓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틈을 노렸다. 세 사람의 이 적대적 감정을 더 부추겼다. 그 방법으로 꿈을 이용해 서로에 대한 불신을 고조시켰다.
세 사람은 매일 밤 같은 꿈을 꾼다. 하나의 의자에 앉기 위해 서로 물어뜯고 할퀴며 피를 흘리고 있다. 지칠 때까지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싸울 생각인 모양이다. 뭉개진 얼굴은 잘 안 보이지만 두 명을 피칠갑으로 쓰러뜨리고 혼자 남은 누군가가 피식 웃으며 의자에 앉아있다. 그런데 피 내음과 광기의 웃음으로 앉아 있던 의자에 금기 가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쫙, 소리 나며 박살난다. 곧바로 의자에 앉아있던 그도 내동댕이쳐진다.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싱크홀처럼 지옥의 구렁텅이 속으로 떨어진다. 까마득하게 계속 떨어진다. 으악, 놀라서 꿈에서 깬다. 꿈에서 깬 세 사람은 당황과 허탈, 분노와 공포를 느낀다. 이 복잡한 감정을 타고 땀이 삐질 흘러내린다. 이런 꿈이 매일 밤 반복되면서 세 사람은 서서히 미쳐간다.
※
어이, 김목사. 사무실 정리 좀 해. 오늘 거래처 큰 손님 오니까 청소도 다시 하고. 내가 지시한 문서 다 해 놨지? 보기 좋게 책상에 올려 놔.
네.
현실은 지독하다. 바뀌는 듯 하지만 실은 하나도 바뀌는 것 없는 세상이다. 노예로 취급받든 바보로 취급받든 살아야 한다. 그 동안 벌어 놓은 돈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월세며 공과금이며 학자금 대출금이며 다 까먹어 돈이 절실했다. 밥 해 먹을 쌀이 없어 굶어 죽고, 가난에 찌든 모녀가 동반자살하는 믿기 힘든 뉴스가 보도되는 21세기에 김목사는 살아야 했다. 누구에게는 고대 전설 같은 가짜뉴스로 느껴지는 진짜뉴스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 위해, 즉 살기 위해 김목사는 중국으로 악마 세 명을 따라갔다.
중국 거래처 손님들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김목사는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안내를 했다. 사물실로 들어오는 그들을 박 부장과 이 과장, 최 대리는 정중하게 맞이했다. 잘 세팅되어 있는 사무실 책상에는 자료와 음료수, 그리고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빨간 포장의 과자들이 놓여있다. 처음에는 이 과장이 설명하더니 끝에는 박 부장이 마무리했다. 최 대리는 고수처럼 흥을 돋웠다. 그리곤 빠질 수 없는 절차가 진행되었다. 박 부장이 지시했다.
어이, 김목사, 아니, 최 대리 니가 가져와.
최 대리는 사무실 제일 안 쪽 모서리에 잘 모셔져 있는 금고에서 중국 돈 위안화 다발을 빼왔다. 중국말로 인사한다.
잘 부탁드립니다(請多多關照).
일단 손님을 잘 치렀다, 일단. 감정이 없어진 김목사는 문을 닫고 세 사람 몰래 문고리에 자물쇠를 채웠다. 열 수 없도록 문을 잠근 것이다. 중국 손님들이 다 가고 나자 박 부장이 거만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이 과장은 최 대리에게 지시한다.
뒤져.
최 대리가 김목사의 몸을 수색한다.
왜 이러십니까.
김목사는 처음에는 당황해 저항하였지만 이내 포기한다. 최 대리가 김목사의 양복 안주머니에서 이 모든 것이 녹음되고 있는 그의 휴대폰을 꺼낸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이 과장이 먼저 말을 꺼낸다.
이 새끼 봐라. 내 이럴 줄 알았어.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법이 아니라니까요. 부장님, 어떡할까요?
김목사 머리를 이리저리 내리치며 이 과장과 최 대리는 뒤질세라 말을 서로 내뱉는다.
야이, 양아치 새끼야. 우리가 니 머리 속을 훤히 다 들여다보고 있어. 우리를 뭘로 보고. 왜, 우리가 모를 줄 알았냐? 녹음해서 인터넷에 올리려고? 아님, 회사에 꼰지르려고? 이 새끼를 확 죽여 버릴까. 너, 이 넓은 중국에서 죽으면 아무도 몰라. 그냥 버려지는 거라고. 태워지는 거야, 쓰레기처럼. 부장님! 중국 조폭 삼합회 부를까요? 돈 주면 깔끔하게 처리해줄 건데.
야, 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냐? 우리가 조폭이냐. 김목사 쟤 쫄잖아.
하하,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자기들끼리 잘도 떠드네. 누가 양아치인데. 아니, 양아치보다 못한 놈들.’
김목사는 속으로 비웃으며 더 이상 참지 않았다. 신은 그들을 처단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그가 직접 결말을 내야 한다고 다짐했다. 이 다짐은 아주 오래 전부터 생각해오던 결심이었다. 기회만 엿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힘없는 신에게 더 이상 위로 받지 않으리라. 이 참에 신도 없애고 악마도 죽여 ‘나’를 세우리라. 인간으로서 똑바로 서는 유일한 방법은 신도 죽이고 악마도 죽이는 길밖에 없으리라.’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닌 이 지옥에서 ‘나’를 구제하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인 자신이 직접 이 모든 것을 결행하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내가 사라지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내가 이 지옥을 끝내야 해!’ 김목사는 살신자와 살마자가 되기로 했다.
머리를 맞으며 온갖 모욕을 당하고 있던 김목사는 세 사람을 노려보았다.
“어이 이 새끼 봐라. 한 대 치겠네.”
최 대리가 말하자, 김목사는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 신발 속에 감춰둔 칼을 꺼내 순식간에 최 대리 배를 찔렀다. 눈 깜짝할 사이 일어난 일에 세 악마는 눈이 휘둥그레져 놀랐다. 최 대리 배를 찌른 칼은 달아나는 이 과장 등을 마구 찔렀고, 혼비백산 되어 문을 열려는 박 부장 목을 그었다. 이리저리 흩뿌려진 피가 낭자했다. 악마들의 피가 김목사의 얼굴을 적셨다. 그렇게 김목사는 살인자가 되었다. 생각보다 쉬웠다. 아니, 어려웠다. 아니, 쉬웠다.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계획했던 것은 마무리되어야 했다. 그래서 몰래 준비해둔 휘발유를 사무실에 뿌렸다. 라이터를 떨어뜨렸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 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악마들과 악마들을 처단한 존재만 있을 뿐이었다. 있다 해도 너무나 나약해 그 존재의미가 없는 신을 죽인 살신자이자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인간 말종인 악마들을 죽인 살마자… 김목사는 그 사이 방황하던 존재였다. 신과 악마와 인간, 모든 것을 태운 불은 세상을 가장 평등하게 만들어주었다.
불길 밖에는 이 모든 것을 예견이라도 한 듯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열하게 웃는 본사 본부장이 있었다.
※
뉴스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지난 해 한 식품회사에서 유통기한을 조작해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킨 일이 있었죠. 이 사건의 회사 담당직원들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는데요, 그 후 그들은 회사의 중국지사에 파견되어 일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세 명의 직원들 모두 칼에 찔려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을 조사한 중국 공안당국에 의하면 외부 침입 흔적이 없다는데요, 직원 세 명이 서로 다투다 칼부림이 난 것으로 결론 났습니다. 이 세 명의 직원은 실적이 좋지 않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 와중에 한 명을 제외하고는 해고된다는 회사의 방침에 격분해 서로 다투다 칼부림이 난 것으로 중국당국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은 회사의 공금을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 사실이 발각되면서 본사의 감사를 받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결국 자신만은 꼭 살아남겠다는 지나친 경쟁심과 자기가 해고될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으로 발생한 것으로 우리사회의 병리현상의 일환이라 할 수 있어 안타까움을 더합니다.
화재 사건은 보도되지 않았다. 살신자와 살마자 사이의 존재 김목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어디론가 사라졌다. 저 별이 현재 존재하는지 과거에 존재했던 것인지 알 수 없듯.
무한반복이든 아니든 시간을 믿기엔 너무 지쳤다. 이제는 공간을 믿어보자. 이 무한대의 넓은 우주 속 지구와는 완전 다른 별을 찾아 희망을 가져보자. 별이 희망이 될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