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죽음

-소설-

by 방정민

- 도시가 죽었다. 그 속에 들어 있던 나도 죽었다. 그리고 또 다른 나도 죽을 것이다. 그렇게 도시는 거대한 무덤이 될 것이다. -

40대

내가 나를 떠났다. 그제야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숨 쉴 수 있었다. 운명, 섭리, 예정조화, 환경결정론 등 수많은 신비의 말들이 뇌를 스쳐지나간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태어났는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정말 쓸데없는 고리타분한 단어와 문장들이 천상을 떠돌 때 나는 눈을 떴다.

‘공부는 왜 하려고 하니? 빌어먹을 거야. 하지 마’

‘공부 안 하면 내가 뭘 잘 할 수 있는데?’

‘그건 니가 알아서 찾고, 아무튼 공부는 하지 마. 너 교수 못 돼. 유명한 학자나 작가도 못 돼.’

‘빌어먹어도 좋으니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며 살래.’

‘후회할 거야, 불쌍한 고집쟁이!’

가로등 불빛도 없는 으슥한 골목을 돌아 터벅터벅 고시원으로 돌아온 그는 써지지도 않는 소설 한 줄을 또 끼적인다. 논문을 쓸 때와는 다르다. 창작의 고통은 마치 죽음 같다. 써지지 않아 죽고 싶은 충동, 그것을 나는 자살이라 말하고 싶다.

나는 그다. 조금씩 모습과 양태는 달라도 경제적 능력 없이 가족들 도움으로 겨우겨우 하루를 버티는 그들이 내 주위엔 너무 많다. 고시원 같은 닭장에서 배고프다며 울어대는 길고양이처럼 나는 그들 중 하나다. 사냥 능력은 퇴화했고 자신의 능력으로 살아 갈 길은 막막해 어슬렁어슬렁 울어대면 착한 인간들이 놓아둔 먹이를 날름 먹고 살아가는 길고양이들! 이 도시엔 번식력 좋은 길고양이 천지이다. 뻔뻔한 생존력을 넘어선 섬뜩한 번식력, 나는 길고양이다.


30대.


‘청년 일자리의 부족이 심각한 가운데 청년의 실업률이 최고치를 달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나눠주는 방법을 고려해야 할 때입니다.’

요즘 뉴스만 틀면 나오는 멘트다. 그는 대학 졸업 후 한 번도 정규직에 취업한 적이 없다. 그런데 뉴스에서는, 사회에서는 맨날 하는 말이 청년 일자리 부족, 청년실업률만 문제라고 떠들어 댄다. 청년이 아닌 그의 실업은 누가 알아주려나.

그는 IMF 원년 세대다.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 졸업을 앞 둔 97년 12월 단군 이래 최대의 국난이라던 IMF가 터진 것이다. 알지도 못했던 비정규직과 일용직, 허울 좋은 공공근로를 전전하며 30대를 보냈고 비참한 50을 이제 바라보고 있다.

영혼마저 썩어 들어가는 듯한 매캐한 냄새가 나는 고시원 생활도 지겹고 지쳤다. 내 영혼을 빼먹을 것 같은 고양이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고양이 눈이 신령스럽다. 무섭고 섬뜩하다. 내가 먹히든가 아님 저 고양이를 먹어버리고 싶다.

지방의 한 대학, 국문과에서 석사논문을 쓰고 박사과정을 다닐 때 지방의 작은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문학대회에서 수상해 소설가가 되었다. 그때만 해도 유명한 소설가가 되고 속된 말로 잘 나갈 줄 알았다. 몇 년 간 썼던 소설을 모아 소설집을 낼 때만 해도 꿈은 빵빵했다. 그러나 그 헛된 희망은 오래가지 않아 처참히 부서졌다. 가족과 지인 몇몇을 제외하고 소설은 팔리지 않았고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열심히 공부하고 소설을 쓰면 언젠가 알아주는 날이 올 거라 기대하며 열심히 오늘도 소설을 쓴다. 아니 글을 끼적인다. 지방대에서 겨우 글쓰기 강의를 하며 남는 시간 소설을 끄적인다. 그렇게 시간에 파묻혀 살기를 10여 년… 40을 바라보는 38살, 만으로 36세다. 청년인지 중년인지 모를 나이다. 국문학적으로 36세부터 중년이라고 하는데 그럼 그는 중년이다, 우리나이로든 서양 나이로든. 대체 이 국문학 나이는 누가 정한 건지. 요즘 36세를 중년이라니 어이가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는 여전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소설가이자 작가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한 달에 돈 백만 원 정도 버는 시간강사다. 중년이건 청년이건 그는 이 시대 최고의 루저다.

“연봉은 얼마 되는지 물어봐도 되요?”

“2천이 안 됩니다. 시간강사 연봉이 원래 짜요.”

“주 전공이 뭐예요? 인터넷 검색해보니 소설책도 냈던데.”

“국문학입니다. 그것도 돈 안 되는 가부장과 페미니즘 어쩌고 하는…들어보셨죠?”

“그럼요. 이 시대 여전히 여자들이 살기 힘든 거 같아요. 유리천장은 여전하고 같이 일 해도 여자들의 월급은 남자보다 적고 승진 안 되고, 거기다 잠재적인 성추행 문화도 여전하고…”

“가부장 시대 여성들만 피해자인건 아닙니다. 천민자본주의인 이 나라에서는 돈 못 버는 남자는 최고의 피해자이죠. 초면에 실례지만 여자들 얼마나 돈 좋아합니까. 여자 연예인들, 여자 아나운서들 재벌들한테 시집가는 거 보면 알 수 있잖아요. 여자 연예인과 아나운서들 돈 못 버는 남자와 결혼했다는 것 들어 본 적 있나요?”

“모든 여자들이, 여자 아나운서들이 그렇지는 않아요.”

“역으로 남자 아나운서들이 여자 재벌들한테 장가갔다는 말 들어 본 적 있으세요?”

“그렇긴 하네요.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을 하니까 저도 솔직히 말하겠는데 그쪽 교수될 가능성이 있어요?”

“세상 일 장담을 할 수야 없지만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연줄이나 백이 없이 교수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거든요. 제가 연줄이나 백이 없어서…”

“그렇게 말하니까 저도 말할게요. 제 나이에 마흔 다 된 비정규직 남자에다 연봉 2천도 안 되는 남자한테 시집가려고 했으면 옛날에 시집갔겠죠.”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일어나죠. 안녕히 가세요.”

선을 보면 항상 이런 식이었다. 처음엔 호감을 가지다 두세 번 만날 때 솔직한 질문과 대답이 오가면 돈과 직업이 제일 큰 걸림돌이다. 돈을 못 벌고 정규직이 아닌 남자는 장가를 못 간다. 아니, 가면 안 된다. 이 시대 최고의 ‘루저’니까. 여자들에겐 ‘취집’이라는 단어라도 있지만 돈 못 버는 남자에겐 거세당한 ‘수길고양이’이다. 아무 짝에 쓸모없는 그러나 죽일 수는 없어서 거세한 수놈 길고양이. 그렇게 길을 떠돌다 다른 고양이보다 빨리 죽으면 딱 좋은.

이제 그는 선이나 소개팅을 보지 않는다, 들어오지도 않지만. 냄새나는 고시원에 살면서 대학 강의로 겨우 목숨만 부지하며 시간 나면 안 되는 소설만 끄적이고 있다. 오래 살고 싶지도 않았기에 인생의 걸작 소설 한 편 쓰고 죽으면 소원이 없었다. 그때 그는 그를 쳐다보는 길고양이를 데려 갈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세상이 자기 뜻대로 될 것이라고 생각 안 했지만 이렇게 일이 안 풀리기도 힘들 것이다. 하루 10시간 이상 공부하며 글을 썼던 지난 세월, 죽으라고 공부하고 글을 썼던 18년, 열심히 하면 될 거라는 믿음도 날아갔고 그의 인생도 나락으로 떨어졌다. 인생은 안 되는 놈에겐 안 되는 것이라는 것을 가르치기라도 하는 듯. 희망은 성공한 놈들의 입에서나 나오는 법, 그에게 희망은 고문일 뿐이다. 아니, 희망이라는 단어 자체가 소멸되었다. 그에게 곧 닥칠 인생처럼. 불행은 곧 그의 운명이었고 이 시대 루저의 소명이었다.

사귀는 연애는 36살이 되어서야 처음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가 사랑하고… 사랑은 참 어려웠다. 머피의 법칙처럼 항상 어긋나기만 했다. 그에게도 그랬다.

대학 강사들끼리 한 학기에 한 번씩 만나는 학과 세미나가 있었는데, 그 세미나에서 그녀를 만난 게 벌써 다섯 번째였다. 그녀는 서울에서 내려온 강사였다. 일명 H파 강사였다. 대한민국 대학에는 어느 학과에나 파가 있기 마련이다. 그가 다니던 대학에서도 두 파로 나뉘었는데, 지방의 D대학과 서울의 H대학 교수들이 과를 나누어 먹고 있었다. 당연히 강사들도 그들의 제자나 후배로 채웠다. 정작 근무하고 있는 대학의 출신이나 그 과 대학원생들 또는 강사들은 무시되고 있었다. 자기들끼리 싸우고 협력하며 잘도 해쳐먹고 있었다. 그녀는 서울에서 내려온 H파 강사였다.

서울에서 내려온 강사들이 그렇듯 그녀도 은근 콧대가 높고 그를 무시하곤 했다. 최소한 그는 그렇게 느꼈다. 지방출신 대학생, 대학원생이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도 그녀를 무시했다. 처음엔 관심 없는 듯 서로를 무시했다. 아니 실제 관심이 없었다. 한가하게 여자에 관심 둘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삼심 대 중반에 이제 겨우 돈 백 정도 버는데 여자라니, 언감생심이다. 돈 못 버는 남자의 거세콤플렉스는 사회의 억압이자 스스로 만든 이 시대의 자화상이다.

이번 세미나 발표는 그가 했다. 돌아가면서 하는 발표인데 이번에는 그의 차례였다, 발표를 마치고 갈 사람은 가고 남은 사람은 간단히 술 한 잔을 했다. 예닐곱 명이 남아 저녁 겸 술을 마셨다. 남자는 그 혼자였다. 국문과는 서울이건 지방이건 대학원생이나 강사는 거의 여자들 천지다. 여자들 중에서도 주부들이 대략 7ㆍ80%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강사 중에서 미혼남자는 그 혼자였고 미혼여자도 세 명뿐이었다. 술자리에 참석한 강사 중에는 그와 그녀가 유일하게 처녀 총각이었다.

“선생님은 영화에 대해서도 잘 아신다면서요. 거의 전문가 수준이라던데…”

그녀가 먼저 그에게 말을 꺼냈다.

“전문가는 무슨… 그냥 남들보다 조금 더 좋아할 뿐이죠.”

“그게 전문가죠. 우리 다 그런 수준이잖아요.”

그녀는 소문과 다르게 의외로 솔직하다. 그가 살짝 그녀에게 눈길을 돌린다.

“그래서 말인데요. 제가 이번에 연구하는 영화가 있는데 영화와 소설을 연계하는 학제연구를 하거든요. 영화에 대해서 조금 도와주실 수 있어요? 사례는 충분히 드릴게요.”

“제가 시간 있으면 도와드릴게요, 사례까지는 필요 없고요.”

“고맙습니다. 사례는 제가 도움을 받는 만큼 드려야죠.”

그녀는 우아하면서도 귀여운 미소를 지어 보인다. 서울깍쟁이다운 아름다움이다.

“아! 아! 오빠, 아, 아, 아~~”

그녀는 아파하면서 황홀해했다. 그녀의 계곡은 화려하였고 깊었으나 그는 내색하지 않았다. 괜히 촌놈이라는 말을 듣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와 관계를 할 때마다 최선을 다했다. 자신의 콤플렉스를 벌거벗은 몸으로 보상받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더 부끄러워서였을까. 분명한 것은 그럴수록 그의 에너지가 심하게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정신의 황폐화라고나 할까. 아니면 그녀는 단지 즐기는 대상이라는 것을 그의 몸이 알았기 때문일까. 그녀도 그랬을 것이다.

그와 그녀는 그가 그녀의 논문 작업에 도움을 주면서 급속히 가까워졌고 섹스를 하는 사이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둘 다 이 관계가 그리 오래 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눈치다. 그런데 이상하다. 섹스라는 것이, 몸이라는 것이.

어느 소설가는 몸을 통해, 섹스를 통해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문구로 유명해졌는데, 전혀 아니다. 몇 번은 그럴 수 있으나 절대 오래 가지 않는다. 몸으로만 하는 사랑만큼 허망한 것은 없다. 영화 같은 절절한 사랑은 어니더라도 최소한의 정신적 신뢰나 유대감 없는 섹스는 정신을 갉아먹는다. 그녀를 창녀로 치부해버리거나 내 것으로 소유하고 싶어지니까. 섹스는 그런 것이다. 사랑 없는 섹스는 그래서 영혼을 갉아먹는 것이다.

페미니즘을 공부한 박사 둘이 반페미니즘적 섹스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면 아방가르드적 페미니즘 섹스를 하고 있는가. 섹스는 이론이 아니고 처절한 현실이었다.

‘영화를 통해 본 21세기 한국사회의 가부장이데올로기 연구’ 라는 그녀의 논문은 한국연구재단의 우수 논문으로 선정되었고 그 즈음 그가 다니던 대학 국문과의 한 파를 차지하던 H대학에 시간강사 자리가 나서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자연스레 그녀와는 헤어지게 되었다. 정식으로 사귀자고 해서 사귄 적이 없으니 헤어진다는 표현은 그만의 생각이었다. 그래도 소설가의 표현대로 정신적 사랑 없는 섹스도 사랑이라면 사랑일까, 그녀가 없자 그는 마음이 아팠고 휑하였다. 강의가 없거나 시간이 남을 때는 괜히 창문 너머 먼 산을 쳐다보게 되었다. 물론 그 허전함도 오래 가지는 않았다. 언제나 그에게는 그런 사랑이었으니까. ‘선생님! 저 서울 올라가요. 논문 도와주셔서 고마웠고 몇 달 동안 즐거웠어요. 좋은 여자 만나고 강의 잘 하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에서 오빠로, 다시 선생님으로 호칭이 잘도 바뀌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이 문자를 지웠다. 그리고 다시는 창문 너머 먼 산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 후로도 그는 몇 여자와 아주 잠깐 만나고 헤어지는 관계를 가졌다. 그뿐이었다.

20대, 그리고 10대

‘대졸실업이 점점 심각해져가는 가운데 올해 취업시장도 상황이 좋지 않은 편입니다. 10대 기업은 작년보다 신입사원 수를 50% 내지 30%로 줄인 상태입니다. 아예 신입사원을 선발하지 않는 기업도 있습니다. 특히 인문사회학과 학생들의 취업문은 더욱 좁아 대량의 실업사태가 발생될 것으로 우려됩니다.’

뉴스의 이 멘트도 가을이면 불변의 멘트가 된 지 오래되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학교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고 3도 아닌데 별보기 운동을 하고 있다. 아침 5시에 일어나 6시에 집에서 나와 학교도서관에 7시면 도착한다. 그때부터 시작된 그의 하루 일과는 학교 수업과 공부, 그리고 또 공부로 끝났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집에 와서 늦은 저녁을 먹는 그는 일본 유학을 꿈꾸며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의 대학생활은 그랬다. 오로지 유학 꿈을 꾸며 공부만 했다. 자신의 성격에 맞는 직업은 인문학, 그 중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고 철학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그의 꿈이 산산조각 나는 데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꿈은 꿈으로만 꾸어져야 하는 법, 신자유주의가 판을 막 치던 90년대 중후반 대학은 이미 대학이 아니었다.

철학과가 있어야만 종합대학 설립이 가능했던 때가 80년대였는데, 그로부터 10년이 지나지 않아 귀하던 철학과는 쓸모없어 버린 자식이 되어 버렸다. 졸업 후 돈이 안 된다고 다들 기피하는 과가 되어버렸고 사회에서도 국가에서도 그 자식을 버려버렸다. 말이 좋아 경쟁이지 돈 안 되면 자식도 버리는 시대가 된 것이다. 사회가, 전 세계가 돈과 경쟁에 점점 미쳐가던 90년대 한국은 그 중심에 서 있었다.

경쟁에서 살아남지 않으면 과를 없애겠다는 학부제를 실시하더니 전국의 철학과가 하나씩 없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철학과가 없어지더니 그 다음엔 국문학과, 그 다음엔 사학과, 언어학과, 동양관련 학과 등등의 학과가 찬란하게 그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사회가 미쳐 가는지를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사실은 그도 이때부터 미쳐갔는지 모를 일이다.

대학 졸업반, IMF가 터지고 환율이 두 배 이상 오르고 실직자는 홍수에 떠내려 오듯 넘쳐나는 가운데 그는 일본 동경대학원 입학 합격증을 받고도 유학을 가지 못했다. 환율이 치솟은 탓도 있지만 유학 갈 돈이 없었고 그의 주위 모두가 철학전공으로는 유학을 가지 말라고 말렸다. 빌듯 말렸다. 아무도 그의 편은 없었다. 그는 아주 빠르게 지쳐갔고 결국 포기했다.

“너는 무슨 과를 갈거니?”

고 3, 대학입시 원서를 쓰기 전 그의 아버지가 물었다.

“철학과요.” 그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철학과 가서 뭐할 건데?” 그의 아버지가 답답한 듯 다시 물었다.

“제 성격과 적성 상 철학과가 제일 맞는 것 같고 잘 할 자신 있습니다. 이과 공부는 잘 하지도 못하고요.”

그는 당당하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걸 묻는 것이 아니라 철학과 나와서 취직이 되겠냐고?”

“아버지! 저는 철학자가 되고 교수가 되어 평생 철학 공부하면서 학생들 가르치고 싶어요. 철학저서도 많이 쓸 겁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고 당찬 포부가 싱싱했다.

“공부만 잘 한다고 교수가 되는 것이 아닌데…”

그의 아버지의 말투에는 믿음과 걱정이 교차했다. 그의 아버지는 걱정하셨지만 그의 적성과 성격을 알기에 크게 반대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과 공부를 해내지는 못할 것이고 그나마 잘 할 수 있는 철학과를 그렇게 원하니 반대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때의 아버지 걱정을 그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철저히, 아니 처절히 깨달았다. 개천에서 용 나기가 힘들었던 90년대, 그는 21세기를 너무 몰랐다. 공부만 열심히 하고 잘 하기만 하면 교수가 되고 좋은 직장에서 돈을 잘 벌 줄 알았다. 그러나 2천 년대는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시대였다. 거기다 사회는 더욱 돈에 미쳐 돈밖에 모르는 시대가 되었고 급기야 사람을 돈으로 평가하여 등급을 매겼다, 한우 등급처럼. 돈 안 되는 인문학자는 결혼시장에서 등급 외였다. 농부나 광부보다 못한. 이런 시대가 될 줄은 그는 20대 때 전혀 예상치 못했다.

불행한 미래를 모른 채 공부에 몰두하며 대학원 준비를 하던 그, 불쌍하게도 공부만 하던 그는 연애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당연히 여자 경험도 전무했다. 그런데 그 흔한 연애 한번 못해보고 끝날 줄 알았던 대학 졸업을 앞두고 한 여자가 나타났다.

“오랜 만이지. 잘 지냈어?”

한 커피숍에서 둘은 마주 앉았다.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어. 3년 만인가. 직장생활은 좋아?”

어색하지만 그가 말을 받았다.

“나쁘진 않은데 그만 두려고.”

“왜?”

“나, 결혼해. 결혼하면 직장 그만 두려고.”

“아. 결혼하는구나. 생각보다 빨리 가네.”

“빠르지도 않지. 27인데. 노처녀잖아.”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숫자, 여자 나이 27이 노처녀였던 때가 바로 90년대였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그가 말을 이었다.

“남편은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봐도 돼?”

“사업. 아버지 사업 물려받아 사업 해.”

“그건 그렇고 결혼하려면 많이 바쁘겠네?”

“그렇지 뭐. 근데 넌 올해 졸업반이지?”

“어.”

“졸업하면 뭐하려고?”

“대학원 가려고. 알잖아. 나는 처음부터 대학원가려고 했잖아.”

“계획대로 하는구나. 하긴 넌 고3때부터 철저히 계획적인 사람이었으니까.”

둘은 고 3때 한 스터디 모임에서 만나 사이가 좋은 이성친구로 지내다 3년 전 그녀가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관계가 끊어졌었다. 실은 그 과정에서 한 남자가 끼어들면서 작은 오해가 있었다. 3년 만이긴 하지만 둘은 관계가 끊어지기 전 워낙 잘 맞는 사이라서 그리 어렵지 않게 말을 주고받았고 커피숍을 나와 술집으로 2차를 갔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그가 꼭 듣고 싶었던 말을 그녀에게 꺼냈다.

“3년 전 그 일에 대해 진실을 말해 줄 수 있어?”

“남녀 사이에 진실이 어디 있어? 우리도 이제 서른이 다 되어 가잖아.”

“그래도 난 너희 둘을 좋은 친구로 받아들였고 그가 강력히 원했기에 너희 둘을 이어 주려고 했는데…”

“그게 너의 문제야. 솔직히 말해 보자. 우리 둘 고 3때 만나 처음에는 공부로 친해졌고 그 후엔 서로 잘 맞아 더 친해졌잖아. 3년 전 관계가 끊어질 때까지 키스와 섹스할 상황도 여럿 있었어. 이런 감정이 나만의 감정이니?”

“……”

“왜 말이 없어?”

“그건 아니지만…”

“됐어. 그러면 쓸데없이 누구를 이어줄 생각 말고 우리 문제부터 풀자.”

“그게 무슨 말이야?”

“나 오늘 너랑 자려고 연락한 거야.”

“뭐? 결혼한다면서?”

그녀가 피식 웃었다.

“그게 너의 매력이긴 하지. 순진하진 않는데 순수하단 말이야. 결혼 전 정말 순수했던 내 감정과 섹스하려고. 괜찮지? 기분 나쁘지 않지?”

그녀와 그는 술집을 나와 곧바로 근처 모텔로 향했다. 그는 당황스러웠지만 그녀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기로 했다. 그녀 말대로 20살 때 친구 여러 명과 여관방에서 연말송년회할 때, 22살 때 친구들과 같이 여행 갔을 때, 23살 때 그녀의 자취방에서 그녀와 야릇하고 가슴 뛰는 상황이 여러 번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때는 그리 순진했는지 바보같이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과거의 바보 같은 일을 반복하고 후회하고 싶지 않았는지 그와 그녀는 모텔에서 극렬하게 사랑을 나누었다. 사정하고 또 하고 잠시 쉬었다 또 했다. 물론 처음엔 그는 삽입을 하지 못했다. 섹스가 처음이라 그런지 그의 페니스는 그녀의 질을 찾지 못했다. 그러자 그녀가 피식 웃으며 그를 눕히고는 그의 위에서 그를, 섹스를 주도했다(지금 생각해보면 그의 페니스가 들어가지 못하게 그녀가 자궁에 힘을 주어 그가 처음인지 아닌지를 테스트해본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처음 하고 난 그는 자지도 않고 그녀와 사랑을 여러 번 나누었다. 그는 그렇게 그녀를 괴롭혔고 그녀는 그의 괴롭힘을 즐겼다. 아니, 이때만큼은 괴롭힘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누어지지 않았다. 둘은 입술이 부르트고 사타구니가 아플 정도로 서로 간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을 뜨겁게 나누었다.


다시 40대


끼적대보지만 소설은 여전히 써지지 않고 대학 강의로 겨우 밥 먹고 사는 40대인 나는 루저다. 완벽한 루저, 이 시대 대한민국의 불가촉천민이다. 30대까지는 가족들의 도움을 받았으나 그것도 낯짝이 있지 40이후로는 도저히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원룸에서 고시원으로 거처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7평이나 되는 고급 원룸인 것이 다행이다. 옆집 남자의 작은 기침 소리와 아랫집 여자의 흥분된 소리는 잘 들리지 않을 정도의 방음은 되는 방이니까.

이 고시원 방도 내 한 몸 누울 안식처인가, 때로는 이곳도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결코 마음의 안식처가 될 수는 없는 곳, 다행이지만 포근하지는 않다. 그래서인지 길고양이마냥 항상 불안하다. 서울쥐마냥 조마조마하다. 가슴이 답답하다. 고시원 올라갈 때마다 내 눈에 보이는 길고양이, 이 고양이의 눈을 보고 있으면 처량하지만 잡아먹고 싶다. 아니 잡아먹히고 싶다. 이 고양이의 눈은 내 영혼을 서서히 갉아 먹고 있었다.

이 삭막한 도시에서도 한 점의 온정이 남아 있는 것일까. 길고양이가 죽지 않을 정도의 사료를 주는 이가 있다. 고양이들은 때 맞춰 와서 사료를 먹고는 이내 어디론가 가버린다. 고시원으로 올라가는 길목 한 모퉁이에 한 마리가 보이더니 어느새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로 늘었다. 자세히 보니 어미가 새끼를 낳아 그들과 같이 동냥을 하는 것이었다. 능력 없는 것은 나랑 닮았는데 번식력 좋은 것은 나보다 나으니 결국 길고양이가 나보다 나은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고양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갔을까. 거처를 옮겼을까, 아니면 죽었을까.

궁금해 하던 어느 날 강의를 마치고 힘없이 고시원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사람 여럿이 모여 있다. 고양이 한 마리가 죽어 있다. 죽어 있는 표정이 마치 사람 얼굴 같다. 한 세상 잘 살았다는 듯, 후회 없는 듯 표정이 묘했다. 자주 보던 어미 고양이인데 새끼들은 보이지 않는다. 삶이 마치 길고양이 같다. 능력은 없는데 번식은 좋고, 사람한테 길들여져 야생의 본능은 사라지고 없어 동냥으로 살아야 하기에 사람이 주는 대로 먹어야 하고, 먹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사람이 먹고 남은 찌꺼기를 찾아 살아야 하기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쌍한 존재, 비참한 최후를 늘 곁에 두고 살아야 하는 존재가 바로 길고양이다. 나도, 내 삶도 길고양이와 같다. 나는 길고양이다.

강의하던 대학에서 문자 한 통 받았다. 이번 학기로 계약을 종료한다는 것이었다. 6년을 강의하였는데 한 순간에 짤렸다. 느낌은 학기 내내 있었다. 강의 자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강사들은 쏟아지고 대학교수 자리는 아예 없고… 한 달에 100만원도 안 되는 강의라도 하려고 동료 강사들 눈치 보며 교수들에게 아부하며 지냈던 순간들이 스쳐지나갔다. 교수들 가는 MT자리에 기쁨조로 가서 술 마셔주고 노래 불러주며 억지로 좋은 척 놀았던 그 수많은 시간들, 교수랍시고 술 마시며 어떤 이론을 말할 때 괜히 옆에서 아는 체 했다가 교수가 기분 나빠하면 무릎 꿇고 죄송하다는 말을 했던 순간들, 동료 강사끼리 서로 이간질하며 그 잘난 강사질을 하려 했던 나날들 등이 허무하게 뇌리를 스쳤다. 헛웃음만 나왔다. 일부긴 하지만 대학생들도 정식 교수한테는 꼼짝을 못하는데 강사한테는 대놓고 큰소리치는 세상이다. 중학교 때부터 기간제 교사와 정식 교사를 구분해 선생을 차별하는 것부터 배우고 자랐는데 대학에 와서야 오죽하겠는가. 교수들에겐 참고사항이지만 강사들에겐 학기 말 학생들 평가가 절대적이어서 학기 말이 되면 학생들 눈치까지 봐야 한다. 심지어 학생들한테 전화를 해 학점 잘 줄 테니 평가 잘 해달라는 강사도 있다. 이런 빌어먹을 강사질! 이 시대 이 사회의 불가촉천민이 틀림없다. 이런 강사질 이전부터 당장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그 놈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계속 하였는데 이제야 그만 하게 되었으니 차라리 잘 되었다. 이런 생각도 들었으나 이건 합리화였다. 막상 문자 받으니 앞이 노랬고 깜깜했다. 다리 힘이 쭉 풀렸다. 제기랄! 이게 뭐라고…. 출석부 제출하러 학과사무실에 갔다가 억울해 조교에게 물었다.

“선생님. 논문도 저서도 학기마다 냈는데 제가 짤린 이유가 뭔가요?”

“그게… 강사들이 워낙 많이 배출되어서 5년만 강의주기로 학과에서 정해서…”

“그런 빤한 답변 말구요, 김 선생은 5년 넘었는데 다음 학기도 한다면서요. 혹시 제가 이 교수님 사진전시회 때 사진 안 사서 그런 건가요?”

“네? 아니 그건 잘 모르겠고요… 아무튼 아쉽게 됐네요. 죄송합니다.”

“뭐, 선생님이 죄송할 일은 아니죠. 수고하세요.”

허탈하게 인문대 건물을 빠져나오는데 끈적끈적하고 강렬한 햇빛이 나를 때렸다. 눈이 부셨다. 부신 햇빛을 쳐다보며 저 빛에 내 온몸이 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순간, 머리가 띵하고 세상이 빙빙 돌았다. 몇 초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등에 한 줄기 땀이 주르르 흘러내리면서 빈혈이 왔다. 다행히 쓰러지지는 않았다. 금방 정신을 차리고 교문을 나왔다. 어디를 가야할지 막막했다. 어쩐 일인지 발은 집으로 나를 인도하지 않았다. 발이 닫는 곳으로 느릿느릿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돌아다니다 눈앞에 야구 연습장이 있어 공을 정신없이 쳤다. 그런데 눈물이 고여 공을 제대로 칠 수가 없었다.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조금 돌아다니다 보니 힘들어서 그런지 아님 딱히 어디 갈 데도 없었든지 김유신의 말처럼 발은 내가 사는 고시원 원룸으로 나를 이끌었다. 원룸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내 눈에 강이 보였다. 나는 오랜 만에 근처 강으로 갔다. 그리고 주위 벤치에 앉았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여름의 지는 해를 한없이 바라보았다. 한참을 바라보면서 영화 ‘파이란’의 최민식처럼 나는 그 실체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냥 서럽게 소리 없이 엉엉 울었다. 그간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슬피 지나갔다.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공부한다고 나간 허리로는 막노동이 불가능했고 그 흔한 편의점 알바도 나이 많다고 쓰지 않는다. 과외 전단지를 붙이고 다니다 구청으로부터 과태료나 당했다. 물론 내지 않았다. 당장 밥 사 먹을 돈도 떨어져 가는데 과태료라니. 그러다 두 달을 겨우 겨우 버티다보니 찬바람이 불었다. 겨울이다. 고시원 원룸 방에서 버티기 석 달째, 쌀도 떨어졌다. 쌀을 사러 가야 한다. 돈이 없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정신이 몽롱해지자 울음소리가 들렸다. 고양이 울음소리! ‘이야옹~ 야아옹~’ 고양이도 배가 고픈지 그 소리가 가냘프다. ‘저 고양이를 잡아먹으면 내가 살 수 있으려나, 아니 죽을 수 있으려나.’ 배고파 죽을 지경에 삶과 죽음을 동시에 생각한다. ‘그래. 저 고양이를 잡아먹어 보자.’ 죽음과 삶이 저 고양이와 나에게 동시에 찾아왔다.

‘참 살기 힘들다, 나는 누구인가?, 왜 이 땅에 태어났을까, 사는 게 무슨 의미인가? 이렇게 살아서 뭐하지… 그럼 죽음은…’ 한심한 나를 탓하며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오랜 만에 대학선배에게 전화가 와서 함께 소주를 마셨다. 어묵탕에 소주를 마시고 있는데 누군가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선배는 받는다. 심각했다. 소주를 마시다 말고 같이 근처 선배의 친구집으로 갔다. 허름한 주택형 원룸이었다. 일주일 동안 출근을 안 했는데도 그 존재조차 모르는 비정규직, 일주일 뒤에야 비상연락망을 통해 친구인 선배에게 회사에서 연락한 것이었다. 그의 가족은 연락이 되지 않는 여동생만 있다고 했다. 선배는 사정을 말하고 집주인에게 열쇠를 받아 문을 열었다. 싸한 느낌이 온몸을 때렸다. 차가운 겨울, 서늘한 방, 선배의 친구는 이불을 덮고 있었다. 겨울이라 그런지 시체는 썩지 않았다. 죽음이 이렇게 가까이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허술하기 그지없고 의미 없는 인생! 시간조차 의미 없다.

‘도시에서 또다시 고독사가 발생하였습니다. 40대 남자로 추정되는 시체가 도시의 한 원룸고시원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옆방의 신고로 경찰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원인불명 고독사의 나이대가 점점 내려가고 있어 이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앵앵, 하는 소리가 들리고 곧 경찰이 왔다. 나도 겨울에 죽어 내 몸은 썩지 않았고 때마침 발견되어 다행이었다. 내가 어찌 죽었는지 경찰들이 그 원인을 찾기 시작한다. 머리맡에 놓아 둔 메모 하나를 발견했다. 이것이 유서라고 경찰들은 생각하는 모양이다. 경찰들은 자살이라고 서둘러 결론을 내려 버렸다. ‘나는 자살한 것인가, 굶어 죽은 것인가, 독을 먹은 고양이를 잡아먹고 죽은 바보 죽음인가!’ 방송에서는 고독사라고 하는데… 내 몸이 이렇게 멀쩡한데 썩었다니 참 어이가 없다. 언론은 언제나 그 모양이다. 사회는 언제나 그 모양이다. 둘 다 차갑다. 나에게 언제나 차가웠다. 그러나 나에게만 차갑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나이기 때문이다. 선배의 친구가 나이기 때문이다.


도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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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일만에 발견된 친구의 시체

가족도, 애인도, 직장동료도, 친구도, 이웃도

그 누구도 그의 죽음을 슬퍼한다

십여 일만에 발견된 그의 시체 앞에서.

머리맡에 놓인 약봉지만

그의 죽음을 바라보았을 뿐

어느 누구도 그의 죽음을 보지 못했다

그의 부재에 관심조차 없었다.

서너 평 남짓한 깜깜한 방

이불을 덮고 친구는 무엇을 고민했을까

무엇을 꿈꾸었을까

절망의 끝? 새로운 삶?

악마 같은 세상을

더 이상 미워하지 않게

추악한 도시를

한번만이라도 고마워하게

그는 이불 속 세상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 세상에 미련 하나 없는 듯

얌전히 저 세상으로 들었다.

그의 얼굴이 편안했는지

일그러져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단다

이렇게 친구의 죽음은

이물스런 도시에서 사망자 ‘1’이라는 숫자만 더해주었다.

너도 나도 이렇게 죽어갈 것이다

도시는 차가운 무덤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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