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광인들>
※
미쳤다. 내가 미쳤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우울증으로 추정되는 약을 먹긴 했지만 미치진 않았었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유전은 아닌 듯하다. 그러면 나는 왜 정신병원에 두 번이나 입원했을까. 그냥 내가 미친 게 틀림없다. 왜 미쳤을까? 미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이유가 뭘까? 그런데 나는 멀쩡하다. 정말 멀쩡하다. 그럼 멀쩡한 내가 왜 정신병원에 또 입원했는가. 아, 정말 미치겠다. 무한반복의 풀리지 않는 이 의문 때문에 나는 이 사회에서 루저가 돼 버렸다. 그래도 중학교 때까지는 반에서 1등도 많이 했는데. 여기서 나가면 정상적으로 살 수 있을까, 이 미친 세상에서.
정신병원에 두 번째 입원한 김수석은 일기를 쓰고 누웠다. 한때 공부를 곧잘 했던 그는 수석이라는 이름답게 반에서 1등도 여러 번 했었다. 그랬던 그가 어느 순간 사회에서 도태돼 지금은 우울증 약을 먹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힘들게 되었고 급기야 며칠 전 정신병원에 두 번째 입원하였다.
별빛이 그의 얼굴을 머금는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밤하늘 별빛의 아름다움은 마치 순결한 여인의 손길로 수놓은 자수 같다. 정말 은은하고 초롱초롱하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별을 보고도 별 감흥이 없다. 거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연민을 느낀다. 소시오패스인가, 아니면 정말 미쳐서 그런 것인가. 그러나 그는 지극히 정상이다. 화려한 외면을 볼 때면 그는 언제나 그 내면을 생각하곤 한다. 화려하고 아름답게 빛나는 외형의 별, 그러나 진짜 그 안의 모습은 참담하기 일쑤다. 우주에서 보면 지구도 얼마나 아름다운 별인가. 이 외형의 빛나는 아름다움은 어쩌면 그 내면에 사는 인간의 처참한 삶을 숨기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80% 이상 지구인의 삶은 혹독하고 처절하다. 외형의 아름다움이 빛나는 동안 그 안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제정신으로 살아가기 힘들 만큼. 이 얼마나 아름다운 역설인가. 지구는 이런 별인데, 저 멀리서 지구를 비추는 아름다운 저 별의 진짜 모습은 어떨까.
김수석 씨, 오늘 컨디션은 어떻습니까?
뭐, 똑같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식사는 잘 하고 계시죠? 약도 잘 드시고요?
네. 이 놈의 약을 안 먹어서 제가 그 짓을 했잖아요. 약을 꼬박꼬박 잘 챙겨먹어야죠. 근데 저 퇴원은 언제 할 수 있나요?
벌써 우리 병원에 두 번 입원하셨는데, 퇴원하고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자신 있으세요? 그게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그때 생각해보죠. 근데 아직도 세상이 원망스러우세요?
아, 아닙니다. 제가 무슨 자격으로 세상을 원망해요? 전 그럴 자격도 없는 걸요.
그럼, 자신을 자책하십니까?
모르겠어요. 아무 생각이 안 들어요. 언제부턴가 제 자신이 이 세상에 없는 존재인 것처럼 느껴져요, 한 톨의 먼지처럼. 없어져야 하는, 있어도 그 존재 자체를 느낄 수 없는 먼지처럼요…
철학적인 말이네요. 근데 조금 더 여기에 있어야 할 것 같네요.
김수석은 아주 무료하게 원장과 짧은 면담을 하고 입원실로 돌아왔다.
어이, 김 씨! 원장이 뭐래?
뭐, 별말 없어요. 항상 하는 말 외엔.
언제 퇴원시켜 준대?
글쎄요. 아직 더 있어야 하나 봐요.
내가 봐도 이 병원과 우리 입원실을 통 틀어 김 씨가 제일 정상이야. 학교 선생이었다며. 학교 선생이 어쩌다가 이런 곳엘. 아무튼 나도 조금 있다 나갈 건데 김 씨도 나가게 되면 나한테 연락해. 내가 밖에서 사업을 크게 하고 있는데 지금은 내 부하가 맡고 있어. 내가 한 자리 줄 테니까 꼭 연락해.
이상한 사람들이 뻔뻔하게도 이상하지 않게 말을 참 잘 해대는 곳이 정신병원이다. 어떤 환자는 자기가 예수, 메시아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편견을 버리고 그 사람 말을 듣고 있으면 꽤나 논리적이다. 하긴 그 사람이나 JMS 정명석이나 뭐가 다를까. 다른 건 권력의 유무(有無)밖에. 김수석이 대학졸업 직전 뇌전증 증상과 임용시험에 대한 심한 불안증세로 처음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했을 때도 같은 입원실의 사람이 연락하라고 해서 연락해보면 순 거짓이었다. 그럴 땐 ‘정신병원에 입원한 사람의 말을 믿다니, 내가 정말 정신이상자구나’, 하고 느끼곤 했다. 하긴 이런 사람들이 차라리 나았다. 정상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비정상적인 말과 행동을 해대면서 너무나 정상적으로 잘만 살아가는 곳이 이 세상이다, 김수석에겐. 순진하고 힘없는 그 같은 사람들만 오는 곳이 정신병원이었다.
내 생의 끝자락이 정신병원인가, 아니면 지금이 내 삶의 끝인가.
김수석은 이런 생각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칼부림을 한 엄마에게 너무 미안해서였다. 달동네 무허가 스물 세평 벽돌집을 남기고 고등학교 때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 공장일과 목욕탕 때밀이 등 온갖 고생을 해가며 김수석을 키운 어머니였다. 교대를 들어갔을 때도 기뻐했지만 어렵게 임용시험에 합격했을 때 얼마나 기뻐했는지, 아무 말 없이 그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던 엄마였다. 그런 엄마에게 김수석이 칼부림을 한 것이었다. 그땐 정말 그는 미친 것이 틀림없었다.
요 며칠 컨디션이 정말 좋았다. 그래서 김수석은 십 년 넘게 먹던 약을 한번 끊어보았다. 사실, 컨디션의 문제만은 아니었고 약이 너무 세서 먹을 때마다 목 넘김이 좋지 않았다. 약을 먹고 나면 속도 메스꺼웠다. 그래서 당장이라도 끊고 싶었던 적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 사건이 벌어진 것도 약을 끊은 지 삼일 째였다. 저녁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뇌전증처럼 몸이 뒤틀리더니 이내 바닥에 철퍼덕 깔렸다. 입에선 희멀건 거품이 나왔다. 자신의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죽나 싶었지만 죽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처음이 아니었다. 이 상태에서 그냥 약을 얼른 먹었으면 되었을 텐데 왜 먹지 않았는지 그도 잘 몰랐다. 아니, 사실 당시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아 다투고 싶었던 내면도 한몫했다. 칼부림 사건 몇 시간 전 엄마는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것이냐고 말했다.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고. 이렇게 스트레스가 차곡차곡 쌓이던 중이었다. 아무튼 발작하던 그는 벌떡 일어나 대뜸 부엌으로 가서 식칼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마당 같지 않은 마당을 뛰어다니며 큰소리로 막 울부짖었다.
날더러 어떡하라는 거야! 그냥 내버려 둬! 내가, 내가 왜 가해자야? 내가 왜 미치광이냐고! 전부 죽여 버릴 거야!
식칼을 허공에 휘두르면서 옆에 있던 쓰레기통이며 세숫대야를 발로 찼다. 놀란 그의 엄마는 재빨리 112로 신고했다. 112와 119가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며 왔다. 마을이 발칵 뒤집혔다. 경찰은 경찰봉을 꺼내들며 김수석에게 칼을 내려놓으라고 했고 그는 바로 내려놓았다. 다행히 다친 건 김수석 자신뿐이었다. 손과 팔에 피가 나서 119직원이 치료해주었다. 이렇게 그날의 사건이 손쉽게 일단락되었고 김수석은 두 번째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엄마한테 식칼을 휘두른 것이 아니었는데 마을 소문은 아들이 엄마를 죽이려 했다고 기정사실화되었다. 그렇게 그는 고생한 엄마를 죽이려 한 폐륜아가 되어버렸다. 아무도 관심 없는 진실 따위는 그의 마을에서조차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
죄송합니다.
김수석은 엄마의 동의로, 그리고 약을 절대 빠지지 않게 챙겨 먹겠다고 서약하고 퇴원했다. 퇴원한 다음 날 그의 엄마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김수석을 쳐다보더니 말을 꺼냈다.
엄마가 어떤 말을 하면 되겠니?
죄송합니다. 내가 엄마한테 이러면 안 되는데.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는데 제 뜻대로 잘 안 되네요.
김수석은 고개를 계속 떨구고 있었고 죄송합니다, 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었다. 엄마가 다시 어렵게 말을 꺼낸다.
학교에 다시 복직은 못 하는 거니? 복직할 생각은 있는 거야?
잘 모르겠어요. 알아볼게요. … 저, 잠시 바람 좀 쐬고 와서 복직할 수 있는지 알아볼게요.
김수석은 챙길 것도 없이 가방 하나 달랑 메고 집을 나왔다. 집을 나오자마자 엄마한테 정말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한 가지 이유가 아니었다. 복직이라는 말도 의도는 아니었지만 거짓이었다.
도와준 사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재판은 힘들었다. 아동학대재판은 김수석과 그의 엄마를 삶의 끝으로 몰았다. 아주 어렵고 기나긴 법정다툼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빚은 눈덩이로 늘어났고 명예와 몸과 가정은 더 이상 망가질 것이 없을 정도로 다 망가졌다. 정신도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다. 무죄판결에 대한 뉴스와 소식은 그 어디에도 한 줄조차 나오지 않았고 누구도 관심 없었다. 그의 마을에서는 여전히 파렴치한 정신병자 교사였다. 한 번 낙인찍히면 그것으로 인생은 끝인 사회에서 그는 살고 있었다.
무죄판결이 나고 석 달 후, 한 달 안에 복직신청하지 않으면 정식 퇴직된다는 교육청 발 문자를 받았다. 그것도 복직신청만 하면 바로 복직이 되는 것도 아니고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했다. 삶에 대한 그 어떤 의지도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지친 김수석은 신청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퇴직 처리되어 복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이라도 교육청에 사정을 해볼까, 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다시 그 끔찍한 현장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학교는 그와 같은 초식동물에겐 밀림이나 다름없었다. 운이 좋으면 잡아먹히지 않는 초식동물의 운명을 다시 실험하고 싶지 않았다. 사자 같은 최강 육식동물인 학부모와 그의 하수인 하이에나 같은 아이들, 그리고 자신의 일이 아니라 생각하며 동료가 잡아먹히는 것을 쳐다만 보고 있는 다수의 방관자 동료선생님들과 선생을 사자의 아가리 속으로 밀어 넣는 교장이 있는 밀림의 죽음 현장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그에게 너무나 끔찍한 일이었다. 무간지옥 그곳으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더 나았다. 학교는 더 이상 학교가 아니었다.
초가을 날씨는 정말 좋았다. 아직 덥기는 하지만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구름이 살짝 놀러온 맑은 하늘은 그에게 그동안의 시름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다. 가을 하늘을 보며 한참을 걷다가 이 마을을 벗어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주위 산책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기도 하고 자기를 향해 웅성거리는 것 같은 환상이 들었다. 이 환상은 곧바로 자책감으로 이어졌다. 순진한 미치광이의 패턴이었다.
무연히 걷다보니 기차역이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 종착역 없는 아무 표를 무인발급기에서 끊어 무궁화기차를 탔다. 정말 오랜만에 타보는 기차였다. 차창 밖 풍경이 폴라로이드 사진필름처럼 그의 마음속에서 스쳐지나갔다. ‘내가 사는 세상이 이렇게 고요하고 아름답다니 정말 삶은 아이러니이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에 인화되었다. 그에게 이런 기차여행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대략 한 시간쯤 달렸을까. 잠깐 졸다 깨니 어느 간이역이었다. 창 밖 풍경이 정말 좋기도 했지만 왠지 갑자기 내리고 싶었다. 순간의 선택으로 무작정 내렸다. 내리고 보니 어둑어둑 날이 저물고 있었다. 낯선 마을의 낯선 역을 나와 낯선 사람들 속에서 걷고 있는 이방인인 그. 그는 언제나 어디서나 이방인이었다. 그런데 기차역 근처 한 모텔을 찾고 있는데 어느 여자가 말을 걸었다. 기차 안에서부터 통로 옆 좌석에 앉아 그를 힐끔힐끔 쳐다보던 여자였다. 요즘 젊은 여대생답지 않게 화장기 하나 없는 창백한 얼굴이었다.
저, 혹시 일행이 없으면 저랑 같이 다니면 안 돼요?
네?
김수석은 당황했다. 무슨 여자가 겁도 없이. 요즘 같은 험악한 세상에서, 라고 생각했다.
혼자세요?
네.
아니, 요즘 같은 위험한 세상에서 여자 혼자 여행을 다녀요? 그것도 낯선 남자와 동행을 하자고요?
그녀는 피식 웃고는 말을 꺼낸다.
저, 혹시 김수석 선생님 아니세요?
어, 맞는데 누구세요?
저는 7년 전 ○○초등학교 선생님 제자 이단비입니다.
네? 어…
김수석도 그렇지만 선생님들은 제자들을 거의 대부분 기억한다. 간혹 기억 못하는 이름도 있으나 대화를 하다보면 기억이 떠오른다. 특히 그에게 교직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으므로 모든 제자를 기억한다. 그런데 이단비라는 제자는 없었다. 뇌를 아무리 스캔해봐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분명 그런 제자는 없었다. 그런데 7이라는 숫자와 ○○초등학교라는 말을 듣고 곧바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그 사건이 바로 7년 전 ○○초등학교에서 발생하였기 때문이었다. 트라우마가 또 고개를 든 것이다.
아, 아!
머리가 아프세요?
그는 가방에서 얼른 약을 꺼내 물과 함께 먹었다.
괜찮아요. 그런데 그런 제자는 없는데요.
아, 제가 실은 선생님 옆 반 학생이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는 같은 반이었고 6학년 때는 옆 반이었던 최다희의 친구. 저는 6학년 2반이었는데 3반에 자주 놀러갔었거든요. 그래서 선생님을 잘 기억해요.
가슴이 또 막 뛰었다. ‘최다희!’ 김수석은 최다희라는 이름을 그의 뇌 속에서 영원히 지울 수가 없다.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뽑아 끝도 없는 어둠의 나락 속으로 떨어뜨린 아이의 이름이었다. 비록 그 아이에겐, 그 이름에겐 죄가 없다하더라도. 깊은 숨을 여러 번 내쉬었다. 휴~ 휴~
약 기운이 돌면서 조금 편안해졌다.
아. 그런데 여길 어떻게 혼자… 남자인 저도 혼자 여행하는 거 쉽지 않은데.
최근에 엄마와 다투기도 했고 … 실은 저도 선생님처럼 정신병원을 막 탈출했거든요.
네?
하하, 농담이에요. 정신병원 일은 소문을 들어서… 뭐 꼭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저도 대학생이 되었으니 혼자 기차여행을 하고 싶었어요. 혼자 떠나는 기차여행이 로망이었어요.
아무리 그래도 요즘 세상에 여자 혼자 기차여행을. 남친이랑 오지 그랬어요?
말 놓으세요. 선생님.
둘은 근처 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모텔로 들어갔다. 방 두 개를 얻으려 했으나 그녀가 혼자 자기 무섭다고 해서, 그리고 선생님인데 무슨 상관이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방 하나에 들어가게 되었다. 샤워를 먼저 끝낸 그는 방바닥에 누웠다. 아직 더워 차가운 바닥이 더 좋았다. 사실 침대 같은 푹신한 잠자리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딱딱한 것은 그에게 문제 되지 않았다. 그가 평생 잔 자기 방도 딱딱했다, 그의 인생처럼.
다희! 뭐하니? 일어나야지!
김수석은 수업이 시작되고 몇 분이 지났는데도 자기 자리에서 두 팔을 괴어 엎드리고 있는 다희에게 말했다. 일어나라는 말에도 계속 엎드리고 있자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등을 살짝 톡, 톡, 두드렸다. 그래도 반응이 없었다.
어디 아프니?
김수석 그의 인생을 지워버린 사건이 이 작은 행동에서 시작되었다. 어찌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선생님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이 행동이 아동학대가 되어 교단에서 쫓겨나고 소송에도 휘말려 그의 인생을 끝장내버렸다.
약간 어두운 표정의 다희는 언제나 혼자였다. 공부는 썩 잘했으나 친구와 도통 어울리지 못했다. 그래서 김수석이 눈여겨보면서 선생님으로서 관심을 둘 수밖에 없었다. 그날 그녀는 몸이 좋지 않았다. 김수석은 그의 손등으로 다희의 이마에 살짝 갖다 대었다. 열도 조금 있어보였다.
아프면 조퇴하지 그래?
아니에요. 엄마가 학교 마치는 시간에 기다리고 있어요. 학원가야 하거든요. 저녁에 집에서 공부한 거, 학교나 학원에서 수업한 거 다 검사해요.
그럼 양호실에 가서 누워있어.
이렇게 시작된 아무 것도 아닌 일이, 순수했던 교사로서의 행위가 어디서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오폐수 위를 구른 눈덩이처럼 커지고 더렵혀져 있었다. 다음날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다희 엄마는 김수석을 아동학대죄로 고소했고 민원도 제기했다. 교장실로 가서 이런 파렴치한 남자를 교사로 둘 수 있냐고 교장에 소리 지르며 따졌다. 그는 당장 반에서 분리되었고 학교의 모든 인물에 위협적이고 더러운 교사로 낙인찍혔다. 그가 다희 등을 톡톡 두드린 것은 세차게 그녀를 때린 것으로 부풀려져 있었고 그녀의 이마에 그의 손등을 살짝 갖다 댄 것은 아동성추행으로 둔갑되어 있었다. 심지어 양호실에 누워 있던 그녀에게 몰래 다가가 그녀를 성폭행하려했다가 미수에 그쳤다는 것이다.
기가 막히고 어이상실이었다. 너무 당황스러워 정신도 나갔다. 학급 반에서 있었던 일도 사실이 아니거늘 양호실의 일은 완전 왜곡되어 있었다. 양호실에 간 것은 사실이나 체육시간에 다친 아이가 있어 그 아이 소독약을 발라 주러 간 것이었다. 그날 마침 양호 선생님이 없었고 그때 다희가 커튼 옆 침대에 누워있긴 했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아이들은 다 알고 있었다, 보았기 때문에. 그리고 같이 경험했기 때문에. 그런데도 아이들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알만한 나이의 아이인데도, 아니 사건의 중요성을 너무 잘 아는 나이여서 방관자가 되고 공범자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다희의 엄마가 너무나 드세었기 때문에. 다희 엄마는 교장뿐만 아니라 교육청에도 전화를 해 심하게 몰아붙였다. 그 몰아붙인 말에는 이번 일뿐만 아니라 이번 학기 때 벌어진 일까지 왜곡되고 과장되어 있었다. 학생들이 싸워 그가 화를 낸 것도 학생들끼리 놀다 다친 것도 모두 아동학대로 둔갑되어 있었다. 그를 파면시키고 심적ㆍ물적 손해배상하지 않으면 가만 안 두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심지어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글을 올려 그를 파렴치한, 아동성폭행범으로 만들어 버렸다. 또한 그의 이전 정신상담 이력까지 파헤쳐 그를 광인, 즉 미치광이로 만들었다. 이런 미친 자가 어떻게 선생이 될 수 있었냐는 것이었다. 그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동료 교사들은 방관하며 그를 멀리했고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끼리끼리 SNS로 그를 헐뜯고 있었다. ‘정신병자였다며,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그러자 자극적 뉴스에 굶주린 언론들도 늑대같이 뛰어들어 그를 잘근잘근 씹고 물어뜯었다.
김수석은 다희에게 물어보자고, 아이들에게 물어보자고 제의했으나 소용없었다. 세상 어디에도 그의 편은 없었다. 바로 분리 조치되었고 교장은 다희 엄마에게 무릎 꿇고 빌라고 그에게 명령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직위 해제되었고 모든 것을 잃었다. 선생님이 되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노력하고 고생했는데, 그 직을 빼앗기고 인생조차 잃는 데는 순식간이었다. 이 황량한 밀림사회에서 갈기갈기 찢기고 짓밟혔다. 나약한 초식동물인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미치는 일 외엔. ‘세상이 나한테 왜 이러지?, 내가 뭘 잘못했지?’라고 생각하고 되뇌었지만 답은 찾을 수 없었다.
어어억! 아아아!
그가 또 꿈을 꾸었다. 땀이 이마에서 삐질 흘러내렸다. 현실에서 겪었던 일을 꿈으로 꾸는 악몽, 그것만큼 무섭고 더러운 꿈은 없었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김수석이 지른 소리에 잠에서 깬 그녀가 말했다.
아, 아냐.
죄송해요,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그녀의 속삭임은 흐느낌과 섞여 불길한 밤의 고요한 선율로 가득 채워졌다.
※
김수석과 그녀는 모텔을 나와 걷고 또 걸었다. 목적지 없이 마냥 걷다보면 하루가 백 년이 되고 백 년이 한 시간이 되어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도돌이표 인생의 의미 위에 서 있는 느낌이 든다. 둘은 그렇게 아무 말 없이 걸었다. 아픔과 상처가 씻겨 내려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인생이 뭐라고. 흘러내리는 땀을 그저 닦을 뿐이었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질문 하나 해도 되요?
그는 그녀를 실쭉 한번 쳐다보고는 심드렁히 대답했다.
어.
정신과에는 언제부터 다니셨어요? 왜 정신과에 다니게 되었어요?
정신과에 다닌다고 다 정신병자는 아니야.
그거야 알죠.
태어나면서부터 정신질환이 있었는지도 모르지.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정해진 운명 같다고 느껴져. 돌아가신 아버지도 무슨 약을 맨날 드셨는데 그게 정신과 약이었을지도. 아님 진통제였는지도. 무슨 약을 드셨는지도 모르는 거 보니 아들도 아니었네.
자식이 다 그렇죠.
아버지가 정신과 약을 먹지 않았다하더라도 대한민국에서 가난과 질병은 정신질환이야. 아니면 돌림병 같은 전염병이든지. 대물림 받지 않으려고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안 돼.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 깊게 빠져 결국 죽고 마는 죽음의 늪이야.
그때 도와드리지 못해 정말 죄송했어요.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관자놀이에 손을 갖다 대었다. 그녀를 다시 한 번 살짝 쳐다보고는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그것도 내 운명 같은 거라고 해두자. 선생이 국민욕받이로 전락할 때 마침 내가 선생이 된 거니까. 학부모든 아이든 이 살벌한 무한경쟁 사회에서 얼마나 긴장하며 살아가니. 그 긴장된 스트레스를 선생 따위한테라도 풀어야지.
사회가 왜 이렇게 된 거예요?
누구의 책임이겠어. 우리 모두의 책임이지. 나도 곧 중년이 되는 어른이지만 어른이라고 막상 할 수 있는 게 없어. 너도 곧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거야.
아뇨. 전 알고 싶지 않아요.
그녀의 마지막 말은 메아리로 되돌아 왔다. 아무도 듣지 못하는 어둠의 운명을 끝내 혼자 짊어진 가여운, 너무나 가여운 인생의 마지막 독백이 되었다.
걷다보니 나타난 풍경은 가히 절경이었다. 자연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웅장한 계곡은 마치 선계를 빚어놓은 그림 같았고 그 밑을 흐르는 물은 고요한 듯 거세고 거친 듯 잔잔한 호수 같았다. 파랗지도 푸렇지도 아니한 하늘과 검지도 감지도 아니한 물은 형형색색 무지개보다 더 아름다웠고 황홀했다. 그래서 처연했다. 만날 수 없는 계곡과 호수는 자연의 역설이었고 그와 그녀의 만남은 인간의 아이러니였다. 결국 만날 수 없는 것들의 만남, 그것은 비극이었고 언제나 슬펐다.
너 다희지? 최다희.
네. 처음부터 알고 계셨죠?
왜 이렇게 빨리 날 따라왔니? 너 책임 아닌데. 너도 나처럼 많이 힘들었구나.
선생님 때문이 아니에요. 다 제 문제에요. 제 책임이고 제 잘못이에요.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내가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선생님 말대로라면 우리 모두의 문제고 책임이겠죠. 그래도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그때 정말 죄송했어요. 실은 어렸지만 선생님을 좋아했어요. 선생님은 답답한 제 인생에서 따스한 햇살 같았거든요. 그런데 양호실에서 다른 아이를 치료해주는 걸 보고는 제가 순간적으로 눈이 돌았나 봐요, 질투심에. 그래서 매일 학교에서의 일을 검사하는 엄마한테 거짓말을 했어요. 선생님이 갑자기 내가 누워 있는 양호실에 들어왔다고. 그렇게만 말했는데… 일이 그렇게 커질 줄은 정말 몰랐어요. 저도 무서웠어요.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슬프고 여린 두 영혼이 시간을 뛰어넘어 만났다.
※
다희야. 빨리 일어나야지. 대학생이 되었다고 게을러서는 안 돼. 학교 강의 마치고 토익 영어학원과 전공 스터디클럽 가야지.
다희는 깨어 있었다. 최근만의 문제가 아니나 요즘 더 심해졌다. 도통 잠을 잘 수 없다. 자고 있으나 자는 게 아니었고 깨어 있으나 깨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러다 정신병원에 들어가겠다 싶었다. 저절로 김수석 선생님이 생각났다. 그러면 더 우울해졌다.
엄마, 대학생인데 스터디클럽이 뭐야. 그런 건 고등학교 때까지 했으면 된 거 아냐? 해도 내가 대학에서 동아리로 할게.
뭐, 대학동아리? 대학 전공 스터디클럽이 얼마나 비싼지 아니? 니 전공이 첨단공학 분야라 이 업계 나름 최고 전문가들 모시느라 얼마나 돈을 많이 섰게. 모시기 정말 힘들었으니 잔말 말고 빨리 일어나. 대학동아리 따위로 뭘 한다고.
다희는 엄마의 간섭은 대학생이 되면 끝날 줄 알았다. 그래서 참고 또 참았다. 철저히 엄마의 주문대로 삶을 살았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길들여진 그녀에게 다른 방법은 없었고 다른 건 존재하면 안 되었다. 자유 대신 엄마의 사랑만이 있었다. 누구도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이 시대 엄마의 절대적 사랑! 자신의 욕망을 죽이고 그 욕망의 주체인 자신마저 죽이고, 선생님을 죽음으로 몰고 간 엄마의 사랑… 신성하거나 미친 것이거나.
엄마에게서 벗어나는 길은 단 하나 뿐이라는 것을 몸으로 체득한 사건이 대학생이 된 지 한 학기가 끝날 무렵 발생했다.
디디리링!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한 대학에서 강의하는 남자 강사 박 씨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저, 다희 엄만데요. ◎◎대학에서 강의하는 박□□ 강사시죠?
네. 그런데요. 무슨 일이시죠?
다희의 교양과목 ‘글쓰기와 문화’가 왜 C입니까? 우리 다희가 얼마나 뛰어난 아이인 줄 아세요? 내가 어떻게 교육하고 키운 아이인데. 당신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최상위 클래스교육을 받는 귀족 아이입니다. C를 준 근거를 내놓으세요?
어머니, 다희도 성인이고 대학생인데 다희가 직접 저한테 물어보게 해야죠. 학교 절차상 학교 사이트에서 정식으로 이의제기할 수도 있고요.
아, 됐고. 대답이나 빨리하세요.
강사는 다희의 성적표를 뒤져본다.
다희가 강의에도 여러 번 빠졌고, 토론수업에도 한 번 빠졌네요. 무엇보다 리포트에서 20점 만점에 5점을 받았습니다. 내가 리포트 쓰는 규범을 철저히 지키라고 했는데, 거의 표절이에요. 요즘 대학에서 표절이면 그 과목 F 돼요. 그래도 제가 많이 봐준 겁니다.
뭐, 표절? 그건 내가 돈 엄청나게 들여 꾸린 스터디클럽의 전문가가 쓴 논문인데, 그걸 표절이라고?
그게 표절입니다.
당신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그녀는 대학교로 찾아와 총장을 만나겠다고 난리를 쳤다. 학장을 만난 그녀는 그녀가 관리하는 단체 카톡방에서 강사 박 씨의 비리를 알아내 학장에게 고발했다. 캡처된 화면을 학장에게 보여주었다.
자, 보세요. 이 강사에 대해 미투(me too) 신고합니다. 명백한 성희롱이라고요. 강의시간에, 그것도 여학생이 있는 수업시간에 섹스(sex)라는 말을 어떻게 씁니까, 완전 저질이라고요. 여학생에게 섹스 몇 번 해봤냐는 예를 들었다는 겁니다, 쌍스럽게. 이건 성희롱이자 성차별이라고요. 우리 아이가 얼마나 고상한 귀족적인 아이인데.
강사 박 씨는 학교로 불려왔다. 사유서를 쓰라는 것이었다. 기가 막혔다. 대학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학생도 학부모도 문제지만 대학본부가 더 문제였다. 시스템이 붕괴되었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이의제기하면 그 이의제기가 정당한지는 따지지 않는다. 일단 죄송하다는 말부터 하고 빌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유서를 쓰라는 것이다. 학부모가, 학생이 절대 권력자 왕인 시대다. 강사는 천민인 시대다. 이런 대학을 만든 것은 우리 모두인데 그 누구도 책임은커녕 문제의식조차 없다. 학교가 더 이상 학교가 아닌 건 대학도 마찬가지였다.
〈섹스라는 표현을 한 것은 강의를 조금 재밌게 해 보려고 강의 시작 때 꺼낸 말입니다. ‘한 여자가 남친 군대면회 갔는데, 서류 작성에 섹스라는 칸이 있었고 거기에 부끄러워하며 5번이라고 썼다고 합니다. 이 여자는 섹스를 섹스하는 행위로 생각했는데 서류 상 섹스는 생물학적 성을 의미하는 거죠. 생물학적으로 남성이냐 여성이냐를 말하는. 오늘 강의 주제는 젠더인데요, 섹스는 섹슈얼리티(Sexuality)에서 나온 말로 우리나라에서 논의되는 섹슈얼리티는 심리 사회적 현상이자 문화에 의해, 특히 남성위주의 가부장이데올로기에서 유래된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젠더(gender)는 사회적 성으로 기존의 가부장이데올로기를 부정하는 측면이 크다는 점에서 최근 중요한 개념이죠.’ 이 젠더라는 개념을 말하기 위해 섹스를 언급한 겁니다. 그런데 이런 것까지 대학에서 관리하나요? 대학 강사도 일종의 교수인데, 대학 강의내용은 교수의 절대적 권리 아닙니까? 이런 식으로 사유서 쓰라고 하는 건 사찰이자 일종의 교권침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할 겁니다.〉
이 사유서를 작성하고 나서 강사 박 씨는 바로 대학에서 잘렸다. 이 정도의 유머는 텔레비전에서도 우스갯소리로 활용하던 개그였는데, 하며 씁쓸해했다. 미친 세상에서 미친 일들이 너무 태연하게 대학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한 바탕 난리가 지나가자 또래 친구들 일부는 다희를 마마걸, 또는 찌질이 대학생으로 취급했다. 다희는 대학생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혼자였고 왕따였다. 엄마에게 제발 대학에서조차 그러지 말라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엄마의 사랑이 광기어린 집착으로 변해갈수록 다희는 더 외로워졌다. 몸은 수척해지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최초로 엄마에게 대들었다.
엄마, 이건 사랑이 아니야. 엄마 같은 사람을 독친이라고 해. 엄마가 자식을 살리는 게 아니라 죽이는 독이라고. 나와 엄마 자신을 봐. 엄마 스스로도 미쳐가고 있지만 무엇보다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고 있어. 딸인 나를 죽이고 있다고. 숨 막혀 죽어가고 있다고.
니가 어떻게 엄마한테 이럴 수 있어? 뭐, 독친? 내가 날 위해 이래? 다 널 위해서야. 내 인생 다 바쳐 널 키웠다고. 대학수업은 왜 빠졌어? 내가 대학교문 앞까지 태워줬는데 수업을 빠져? 넌 엄마를 배신했어. 정상이 아니야. 미쳤어.
다희 엄마는 다희를 정신병원에 보냈다. 다희가 잠시 정신병원에서 치료받으면 자기 말을 잘 듣는 이전의 딸로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잠시라는 시간이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영원의 이별시간 속으로 끌려 가버릴 수 있다는 것을 엄마는 몰랐다. 미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세상인가. 미치거나 죽거나 세상은 이랬다. 다희의 대학생활 한 학기는 이렇게 쓸쓸히 막을 내렸다. 무덥고 찝찝한 여름이 정신병원을 더욱 습하게 만들었다. 습한 그곳에서 생존하는 건 곰팡이와 죽음뿐이었다.
선생님, 선생님을 따라 갈게요.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고 엄마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다희의 선택은 단 하나였다. 한 여름을 정신병원에서 보내고 퇴원을 하루 앞 둔 다희는 몰래 혼자 정신병원을 빠져나왔다. 두 달 입원해 있는 동안 병원 말을 잘 들은 덕택에 그녀에 대한 감시가 느슨해졌을 때를 노려 정신병원을 탈출했다. 살아 있되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던 집과 정신병원에서의 탈출은 이 세상 삶에서의 마지막이었다. 영원의 구원이 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거기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었기 때문에 한 선택이었다.
다희, 그녀는 김수석 선생님이 간 흔적을 고스란히 좇았다. 그의 아픔과 자신의 외로움을 공유하고 그에게 미안해하면서 그와 만났다, 영원 속에서. 서로 죽이고 빼앗지 않는, 악의가 없는 평화로운 그곳에서 두 번 다시 아프고 외롭지 않기를… 그리고 그 누구도 미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