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 걸>
인간의 성적 욕망, 그중에서 중년여성의 성적 욕망은 어떤 것일까? 인간의, 여성의, 중년여성의 성적 욕망… 이렇게 범주를 좁혀 말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중년여성의 성적 욕망을 다룬 영화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에 중년여성의 성적 욕망을 다룬 니콜 키드먼 주연의 영화가 나왔다. <베이비 걸>이다.
로봇 자동화 회사 CEO 로미(니콜 키드먼)는 미국사회에서도 드문 여성으로서 성공한 CEO다. 많은 여성의 롤모델이기도 한 로미는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이상적인 여성이자 어머니이자 부인이다. 그런데 내면에 뭔가가 꿈틀거리고 있다. 남편과의 섹스로는 만족이 안 되고 뭔가 색다른 성적인 욕망을 원하고 있다. 포르노를 보면서 지배당하고 싶은 성적 욕망을 남몰래 표출하고 있던 중, 출근길에 목줄이 풀린 개를 완벽히 통제한 인턴 직원 사무엘(해리스 디킨슨)을 보자마자 그에게 강한 성적 욕망을 느낀다. 그녀의 욕망을 탐지한 사무엘은 과감하게 그녀에게 다가간다. 안 된다고 도덕심이 외치지만 결국 로미는 사무엘이 이끄는 대로 끌려간다. 그의 성적 노예가 되고 만다. 그러나 이 불륜이 결국 회사에 알려지고 가족에게도 발각되는데, 그 순간에도 멈추지 못하는 로미와 사무엘의 성적 욕망! 로미는 가족과 사회적 성공 모든 것을 잃을 처지에 놓였다.
‘성이론’을 잠시 언급해보자. 에로티시즘은 상대방을 대상화하고 오직 자신만을 위한 쾌락을 추구했을 때만 획득 가능하다. 상대방에 대한 성적 폭력이야말로 자신의 쾌락을 극대화시키고 연장시킬 수 있는 가장 유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에로티시즘이 인간 내면의 성적 욕망을 대신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억압적인 사회와 권력에 대한 저항이자 세계와 역사의 폭력에 대한 비판이다.
에로티시즘이 악마적일 수 있는 것은 금기를 파괴시키고자 하는 폭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악마적 모습은 죽음과 광기어린 성적 욕망을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다른 말로 사디즘과 마조히즘(사디즘은 파괴적인 성향을 띠고 있으며 모든 기존성(facticity)으로부터의 도피이자 타자의 기존성을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이기도 하다. 즉 이성에 대한 소유욕이나 지배욕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마조히즘은 성욕과 자기 파괴적인 죽음 본능이 결합된 형태로서 본능에 대한 문화적 억압이 심한 곳에서 정규적으로 발생한다.)이 에로티시즘의 필연적 속성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에로티시즘은 열락과 열광, 착란, 광기 따위로 고조되며, 제사나 향연, 놀이, 전쟁, 범죄 또는 예술이나 종교성을 지향한다. 가장 숭고한 예술이나 종교 세계의 밑바닥에도 에로티시즘이 가로놓여 있으며, 가장 비참한 범죄나 폭력 세계의 밑바닥에도 역시 에로티시즘이 가로놓여 있다. 패러독스는 바로 이런 곳에도 있다.
성적인 욕망을 다루는 예술은 인간의 무의식에 가라앉아 있는 원초적인 본성, 광기, 공포, 잔혹 등을 확대하여 제시한다. 무의식의 세계, 본능의 세계를 파헤치고, 그 (성적인) 욕망의 구조를 통하여 오늘의 현실을 검토, 비판하고자 한다. 현대인들이 안주하고 있는 일상과 습관, 제도권은 결코 자유가 아닌 획일화의 구속과 억압받고 짓눌린 삶을 의미한다. 여기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필요한 것이 폭력이 가지고 있는 충격이다. 이는 나태한 사회를 지탱하는 윤리의 해체, 의식의 파괴를 위해 필요하다. 기존의 틀에 갇혀 죽어있는 현대인의 의식을 다시 깨우기 위한 생산적인 파괴의 형식으로 불안과 공포, 폭력과 에로티시즘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 성적 욕망을 다루는 예술(특히 잔혹극)이다. 그러나 이런 성적 욕망은 반드시 파멸을 동반한다. 사회의 제도와 관습과 도덕은 그만큼 거대한 벽인 것이다. 인간의 성적 욕망은 사회의 제도와 맞서면서 조금씩 그 문을 열어왔다. 아직도 그 대립은 진행중이다.
간단히 정리하면, 기존의 틀과 일상적 관습을 끝없이 요구하는 사회제도는 일종의 구속이자 폭력이다. 이 폭력에 대항하는 것이 바로 에로티시즘이다. 그런데 이 에로티시즘은 더욱 강력한 것을 요구하기에 사디즘과 마조히즘 성격을 띤다. 그러면서 이성에 대한 소유욕이나 지배욕, 또는 그 역인 지배당하고 싶은 욕망을 발휘하게 된다. 획일화의 구속과 억압받고 짓눌린 성적 욕망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이 바로 폭력이 가미된 에로티시즘인 것이다. 이 이론을 영화는 그대로 착용하고 있다. 여성의 마조히즘적 성적 욕망이 가부장 이데올로기의 일환이든 아니든 여성은 일종의 마조히즘적 성적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바로 영화에서 로미가 그렇다. 로미는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성공한 여성이다. 그런데 자신의 마조히즘적 성적 욕망을 어찌할 수가 없다. 더 이상 남편과의 섹스로는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그녀의 이 욕망을 정확히 읽은 젊은 남자 사무엘은 그녀를 성적 노예로 다룬다. 머리는 안 된다고 외치나 몸은 이미 그의 성적 노예가 되어버렸다. 둘은 이제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폭력적 성적 욕망을 만끽한다. 그러면서 두려워한다. 사회에, 가족에게 알려지면 파멸인 것이다. 특히 모든 것을 이룬 여성 로미에게 더욱 치명적이다.
영화는 이 이론을 그대로 적용하였다. 이전의 이런 영화와 차별적으로 느낄만한 것이 없다. 더 파괴적이고 압도적인 뭔가가 전혀 없으며, 아니면 새로운 이론의 전개라도 있어야 하는데 이런 것도 전혀 없다. 생각보다 선정적이고 야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TV에서 본 예고편이 전부다. 중년 여성의 성적 판타지, 욕망이 젊은 남성을 만나 위태롭게 전개되다가 그 파멸(?)과 함께 멈추고 만다는 너무나 식상한 전개다. 로미가 자신의 성적 욕망을 남편과 시도하는 장면이 영화의 끝이어서 로미가 사회적으로 파멸했는지는 애매하게 끝나지만, 영화는 새로운 뭔가가 전혀 없다. 기존 이런 종류의 영화로 전개되다 끝나고 마는 것은 대단히 아쉬운 대목이다.
다만 카메라는 철저히 니콜 키드먼, 즉 중년 여성의 시각에 초점을 두고 있는 점이 조금은 색달랐다. 이 영화가 단순히 선정적인 성적 영화가 아니라 중년 여성의 성적 욕망을 다루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니콜 키드먼의 연기가 중요했는데 무난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니콜 키드먼의 성적 욕망에 따라 음악도 다양하게 삽입된 것도 좋았고, 로미와 사무엘에 따라 차이 나는 화면 색깔과 배분도 좋았다. 무엇보다 연출도 전반적으로 무난했으나 말 그대로 영화는 너무 무난했다. 이런 영화를 다룰 때는 파괴적인 뭔가가 있어야 한다(데미 무어 주연의 <서브스턴스>처럼). 그것이 바로 에로티시즘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성적 욕망은 너무 강해 파괴적인 성격을 띤다. 이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기 때문에 강압적으로 통제해서도 안 되고, 또 너무 무제한적으로 풀어놓아서도 안 된다. 이 둘 사이의 팽팽한 균형! 쉽지 않지만 이것을 잘 지켜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적 욕망이다.
개인별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