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순 시의 근대성과 주제의식
Ⅰ. 들어가는 말
개항 이후 1920년대 이전까지는 개화사상과 애국계몽사사에 근거한 조선의 근대화 과정에서 기존 질서와 신절서가 비등하는 저항시기가 창작될 수밖에 없었고, 또 이 사상에 의해 강력했던 조선의 여성 질곡적 부권주의에서 벗어나 여성 생활에 근대적 자유와 개성이 강조되었다 해도 화석화된 남성 주도의 사회 문화에 일거에 도전 저항하는 여류시가 창작될 수 없음은 당연했다. 여류 시는 여성이 남성 주도의 권위에서 벗어나 여성의 자유와 개성을 더욱 강조하는 여성 교육의 힘찬 뒷받침 등 강력한 여건의 성숙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920년대는 사회전반에 걸쳐 개혁의 기운이 고조되고 근대교육을 받은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자아실현의 기화가 주어진다. 이런 분위기에서 신지식인 여성들의 자아각성은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들은 실제의 삶에서도 그들이 체득하였던 근대의식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당시 근대 의식을 형성한 여성문인들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이며 사회활동을 하면서 신지식인 여성층으로 부상하게 된다. 여성문학은 이런 지적풍토에서 태동하였다.
변화의 기운은 새로움을 갈망하며 과거의 전통과 구습을 부정하고 문학에서도 작품을 통하여 새로운 의식을 형상화하였다. 당시 개혁되어야 할 사회문제였던 조혼이나, 개인의 인격과 의사를 존중받고자 하였던 자유연애 사상 등이 문학의 주제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신지식인들은 문학을 통하여 근대의식을 실현하고 다양한 주제의식을 형상화하였다. 김명순도 근대교육, 동경유학, 서구이론의 수혜 등 이러한 배경에서 근대의식을 형성하고 변화된 의식을 바탕으로 문학을 형성하였다.
김명순의 시 창작 동기나 화자의 대상을 크게 인간, 사회, 자연으로 분류해 볼 때, 1894년 이전 여류 시에 비하여 파격적으로 사회관계의 시가 많다. 이 사실은 여성에게 있어서의 근대성이란 오랜 질곡적 사회 문화의 인습으로부터 해방되어 여성도 사회문화에 괘념하는 것이 선결 문제였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 당연한 귀결이다. 또한 김명순 시 창작 동기나 화자의 대상에는 작가 자신이나 인간관계의 것도 많은데, 이는 시인의 역할이 객관적, 사회문화적인 것 이외도 주관적 인간적 가치세계에 대한 자기완성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주관적 인간관계 시의 세계는 개인적 또는 즉각적 실천적인 것이어서 당대 여건의 벽에 바로 부딪쳐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자유애정의 전대적 패배, 본원적 향수에로의 도주 등이 그의 주관적 또는 인간관계에서 온 시 시계의 항목이다.
Ⅱ. 김명순 시 세계
1. 자주적 각성의 전개
길 길 주욱 벗은 길/音響과 색채의 兩岸을 건너/주욱 벗은 길
길 길 감도는 길/산 넘어 들지나/굽이굽이 감도는 길
길 길 적은 길/벽과 벽새이에/담과 담새이에/적은 길 적은 길
길 길 幽玄境의 길/서로 아는 령혼이 해방되여 맛나는/幽玄境의 길 머리위엣길
길 길 주욱 벗인 길/음향과 색채의 양안을 전하야/주욱 벗은 길/주욱 벗은 길
「길」 전문
이 시는 京都에서 이그조틱한 여러 길을 보며 창작한 것이다. 국주한종체에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의 고려도, 시적 형상화도 없다. 다만, <길> <음향> <색채>등의 상징어가 어렴풋이 작가의 시적 의미를 전하고 있다. 그 형식은 7.5조의 창가도 아니고, 또 음보율도 정제되지 않으면서 2음보격이 혼융되어 연의 구분만 분명한 자유시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상반되는 두 세계-음향과 색채, 길게만 사는 길과 짧게만 사는 길, 현상계를 초월한 정신적 유현경의 길-를 화해로 이끄는 큰 인생 길을 강조한다. 상반되는 두 세계는 당시 현실로 보아 조선과 일제일 수도 있고, 여성과 남성일 수도 있다. 작가는 이 시에서 갈등의 한일 관계나 남녀관계를 화해로 지양해야 하는 사명감을 갖는다. 고전 여류 시에서는 여성의 사회 문화에 대한 이런 심각한 참여는 없었다. 따라서 이 시를 여성이 사회문화적 위치에서 자주적 각성을 보인 첫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늙은 병사가 잇서서/ 오래 싸왔는지라/
왼몸에 상처를 밧고는 싸흠이시려서/군기를 호미와 괭이로 갈앗섯다
그러나 밧고랑은 거세고/지주는 사나우니/씨를 뿌리고 김은 매여도/추수는 업섯다
이에 늙은 병사는/답답한 회포에 졸려서/날마다 날마다 낮잠을 자드니/
하루는 총을 쏘는듯이 가위를 눌넛다
아-이상해라 머리를 빗트럿다/자나깨나 싸흠이잇슬진대/
사나죽으나 똑갓틀것이라고/사람마다 두팔에 힘을 내뽑앗다
「싸흠」 전문
이 시는 규칙적인 4행 1연으로 된, 5연의 자유시다. 서울에서 창작된 이 시는 조선 부재의 서울의 당시 현실을 사실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운율 감각이 크게 결손되어 있다. 상징도 도식적이다. 1~4연은 <싸흠>이후 식민지인의 절망적 피폐 상황과 한민족 몰락의 처참상을 사실적으로 고발하고, 5연에서는 이럴 바에는 민족의 이름으로 침략자 타도에 궐기하자(사람마다 두 팔에 힘을 내뽑앗다)는 작가의 각성이 내연되어 있다. 이런 시각에서 이 시를 ‘민족적 상실감을 바탕으로 현실을 리얼하게 고발 비판하고 일제에 저항하자’는 해석은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방울 듯는 샘터에/왼종일 안젓스니/돌부처 살워와서/
내 귀에 이르기를/네 소원이 무어냐/바다로 가라느냐
모랫길 에이는/잔잔한 시냇물아/내 목소래 놉히어/
네 일흠 부르노라/바다로 가는 길을/나 함께 가잣고나
한 고개 넘어서면/바다가에 가리니/물결을 부셔내는/
엄격한 벼랑처럼/배워가는 내 길에/궈한 님 기다린다
그이의 얼골은/볏의 저수지러라/대리석에 쪼히면/
생명이 부러난다/내 압흐로 오시면/어두운 눈 밝으리
「희망」 전문
희망은 2음보 민요조 리듬의 정형성을 유지하고 있는 서정시로 연모나 그리움의 애정의식을 시화한 작품과는 달리 시적 화자의 자아인식이 주제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1연은 물소리가 똑똑 떨어지는 분위기와 돌부처가 화자에게 묻는 형식으로 종교적이면서 선적인 분위기가 전달된다. 자신의 이상을 고민하고 있던 화자에게 돌부처가 살아나 화자의 갈등을 헤아리며 위로하는 것으로 화자는 번민하는 자아를 표출하고 있다. 또한 바다로 가려냐는 돌부처의 말속에서 화자의 염원이 내포된 것과 화자의 자의식을 살펴볼 수 있다. 속세의 어지러움을 털어버리고 아무런 욕심 없이 깨끗한 물처럼 살아가고 싶은 화자의 염원과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이상 실현을 하고 싶은 화자의 원대한 꿈이 내포된 것으로 이중적 의미로도 파악이 된다.
그러나 뒷부분의 의미상 화자는 자신의 이상실현을 위한 과정의 첫 관문으로 시냇물을 보고 함께 가자고 소리 높이고 있다. 아무리 그 이상이 크고 원대하여도 순서가 있듯이 화자는 자신이 품은 이상을 곧장 실현할 수 없는 이치를 자각하고 있다. 순리를 따르고 싶은 것이다. 따라서 현실속의 이상 또한 작은 역경을 통과하고 전진할 때에 목적지에 도달하듯, 합류한 시냇물이 되어 산을 넘고 바다에 들어가기까지 그 과정은 엄격한 벼랑이 버티는 시련의 연속이다. 그러한 역경에서도 화자는 포기하지 않고 바다에 이르기 위해 배워가는 길이라 위안하고 있다. 고통의 그 길 끝에는 ‘궈한님’이 기다린다는 절대자를 향한 종교적 구원의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결국 화자가 기다리는 절대자는 무명의 돌까지 생명을 불어 넣는 존재이면서 화자의 어두운 눈을 밝혀줄 희망으로 자각한 자아이며 신념이라 볼 수 있다.
2. 여성 해방의 촉구와 새로운 사랑 추구
아직도 강력한 부권주의 사회문화의 여성 폄하 인습에서 여성 해방을 강조한 시를 보자.
조선아 내가 너를 영결할 때/개천가에 고꾸라졌던지 들에 피 뽑았던지/죽은 시체에게라도 더 학대해 다구/그래도 부족하거든/이다음에 나 같은 사람이 나더라도/할 수만 있는 대로 또 학대해보아라/그러면 서로 미워하는 우리는 영영 작별된다/이 사나운 곳아 사나운 곳 아
「유언」 전문
시적화자는 자신이 살아가던 조선 사회를 향해 영결이라는 극단적 표현으로 항변을 시작한다. 화자는 이미 버림받은 상태로 자신이 보호 받을 수 없는 처지란 것을 알고 있다. 능욕당한 자신을 시체로 대체시켜 그보다 더한 학대까지 해달라고 자학한다. 화자의 비탄은 자신으로 끝나지 않고 ‘나 같은 사람’으로 확대된다. 따라서 체념한 자아의 울분은 자신을 매장시킨 조선을 향하여 ‘이 사나운 곳아 이 사나운 곳아’라며 거침없이 항변한다. 또한 자신처럼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것을 염두에 두고 나 같은 사람이 나오거든 또 학대하라 한다. 결국 화자는 그런 사회와 조선을 향해 ‘사나운 곳’이라 분노한다. 작별할 각오가 되어있을 만큼 억울한 심정과 원망의 분출인 것이다.
작품에서 드러나고 있는 화자의 극단적 심경은 사회의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작품을 쓰게 된 작가의 삶 또한 시적 화자의 고통처럼 아파할 수밖에 없었다. 김명순의 앞선 의식과 행동은 실제의 삶에 있어서도 비난과 능욕을 참아야 했다. 그렇지만 자신의 문제를 자각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회의 모순도 인식할 수 있었다. 사회의 모순으로부터 피해자였던 상황을 유언이라는 극단적 표현으로 항변하고 싶었을 것이다. 항변은 영영 작별까지 각오한 것으로 상처 입은 자아를 회복하기 위한 극복의지이다.
뵈는 듯 마는 듯한 서름 속에/잡히운 목숨이 아즉남아서/오늘도 괴로움을 참았다/적은 적 은 것은 생명과 같이/잡히운 몸이거든/이 서름 이 아픔은 무엇이냐/금단의 여인과 사랑하 시든/옛날의 왕자와 같이/유리관 속에서 춤추면 살줄 믿고/일하고 공부하고 사랑하면/재미 나게 살수 있다기에/미덥지 않은 세상에 사러왔섰다/지금 이뵈는 듯 마는듯한 설음 속에/ 生葬되는 이 답답함을 엇지하랴/미련한 나/미련한 나
「유리관 속에」 전문
이 시는 ‘유리관 속’, ‘미덥지 않은 세상’ 등 여성 질곡의 인습적 조선에서 ‘잡히운 목숨’, ‘잡히운 몸’, ‘금단의 여인’ 등으로 보아 여성 지위는 개차반이어서 ‘뵈는 듯 마는 듯한 서름’, ‘괴로움’, ‘生葬되는 이 답답함’의 여성 고뇌는 깊을 수밖에 없다 한다. 즉 여성도 ‘일하고 공부하고 사랑하며 재미나게 살 수 있다’는 여성에 대한 근대적 자각이 팽배하지만, 실제로 아직도 전대적 인습에 기미되어 여성은 ‘잡히운 목숨’, ‘금단의 여인’이 되어 ‘서름’, ‘괴로움’, ‘아픔’, ‘답답함’을 겪어야 한다 했다.
이런 사회 문화를 작가는 ‘미덥지 않은 세상’이라 고발하고 이 사회 문화에 잡혀 사는 자신을 ‘미련한 나’라고 표면에서 자학하지만 이에는 역설로 여성질곡의 이 사회 문화를 풍자하여 여성 해방을 강조하고 있다. 이 여성 해방의 강조는 ‘생장되는 이 답답함을 엇지하랴’에서 절정을 이룬다.
하늘에 별 뿌리듯/땅 속에 금 감추듯/못 니저 정든 정을/
못 속에 살려보면/홍련이 피어날 제/금붕어 형제할가
봄바람 한들한들/강정에 발것으니/피 붉은 꼿 한 송이/
프른 물에 떠러져/강남 길 가던 것을/오던 제비 낙도다
「봉춘」 전문
봉춘(逢春)은 2음보의 규칙적 리듬으로 님을 그리는 화자의 애절한 마음이 주조를 이룬다. 화자의 마음을 자연물에 대체시켜 시상을 전개한 특징이 드러난다. 1연은 화자가 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하늘의 별과 땅 속의 금으로 표현하였다. 님을 생각하는 화자의 마음을 하늘의 별과 땅 속의 금으로 등가시켜 고귀함과 애절한 마음을 강조한다. 화자의 사무치는 그리움은 감출 길이 없다. 따라서 마음속에 품고 있던 정을 생명을 키워내는 못 속에 살려보리라 말한다.
화자는 그리움의 열정을 가누지 못하고 차디찬 푸른 물에 떨어져 남쪽의 님을 찾아간다. 푸른 물이라는 시련이 뒤따를지라도 마냥 기다리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화자의 행위에서 능동성이 돋보인다. 그것은 화자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해 보려는 자아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재래의 여인처럼 마음속에 사무치는 한을 품은 채, 언제 올지 모르는 님을 마냥 기다리지 않는다. 자신의 문제를 깨닫고 실천해 나설 수 있는 용기는 변화된 의식에서 기인된다. 따라서 푸른 물에 떨어지는 시련은 결국 자신의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 자아이다. 작가의 낭만성과 긍정적 지향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3. 모성적 향수로의 도피
김명순의 1920년대 근대적 자유 애정의 추구는 아직도 강인한 주자적 인습에 의하여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서서히 패배했다. 그래서 그는 안주처를 유년기의 고향으로 하고 고향에 대한 향수의 세계에로 도주하게 된다. 김명순이 찾아든 고향의 이미지는 대지의 이미지에 포함되는 것으로 깊은 무의식의 심층에서 안식처로 자리한다. 그러므로 그가 고향을 찾는다는 것은 성인 심리에 내재하는 유아적 무의식으로 근원에 돌아감을 의미하고 모태에의 회귀본능에도 연관된다. 즉 고향은 유아적 어머니의 투영이기도 하다.
고요한 옛날의 노래여/꼼가운데 거려오는 발자취같은/
들렸다 사라지는/어미니의 노래여 사랑의 탄식이여
<타방타방네야 너 어디를 울며가니/내어머니 몸진곳에 젓먹으러 울며간다>/
이는 내 어머니의 가리키신 노래이나/물결이는 말못미테 이것만 아노라
옛날의 날사랑하시든 내어머니를/큰사랑을 세상에서 잃은 서름이/
멜로디만 황혼을 숨지을 때/쟁미빛으로 열린 들길에는 바람도 애타라
오래인노래여 내게 넷말삼을 들니사/어린이의 서름속에 잇그려 그리소셔/
불노초로 수놓은 초록옷을 입히소셔/그러면 나는 만년청의 빨간열매같으리라
無言歌여 다만 음향이여 나를 잇그려/그대의 말씀 사라진 곳에/
내어머니 몸진곳에 산을 넘고 물은 건느라/옛날의 노래여, 사라지는 울님이여
「옛날의 노래」 전문
이 시에서 ‘물결이는 말못밑’과 ‘쟁미빛으로 열린 들길’은 자유 애정의 패배의 현실이다. ‘물결이는 말못 밑’은 천진한 여성에게는 익사의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고, ‘쟁미빛으로 열린 들길’은 여성을 유혹하는 ‘넓은 문’으로 상징된다. 작가는 이 위험하고도 타락할 수 있는 넓은 세계에서 자유 애정에 패배하고 드디어 고향이자 어머니인 향수에 젖는다. 즉, ‘타방타방네야 너 어디를 울며 가니/내어머니 몸진 곳에 젖먹으러 울며간다’의 옛날 어머니가 들려주신 노래를 상기하고 이런 어머니의 말씀이 다시 있다면 그 말씀대로 살려 한다. ‘그러면 나는 만년청의 빨간열매같으리라’의 대목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눈을감으면/밤도안이고 낫도안이고/남빗안개속에 죄약돌길위를/
한처녀거지가 무엇을 찾는듯이/압흘바라보고 뒤를도라보고/
새파랏게 질녀서뵈인다
「분신」 중에서
이 시는 스스로를 처녀거지로 본다. 현실공간은 사납고 잔인해서 피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었는데 시간마저도 낮인지 밤인지 분간할 수 없는 암담한 현실이다. 시간과 공간의 단절 속에서 처녀거지가 공포에 떨고 있는 것이다. 단절된 현실에서 시인의 상상력이 과거 상상력으로 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인의 시간과 공간 상상력은 유년의 시간공간으로 돌아가게 되며 그 안에는 시인이 콤플렉스로 생각해 늘 피하고 싶었던 ‘어머니’가 이제는 자애로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모두들 등을 돌릴 때 마지막 품어주는 곳이 영원한 고향인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종적을 감추기 전 마지막 작품에서 그녀는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다음 작품에서 ‘어머니’의 심상이 두드러진다.
1
심야이다/四圍가 고요하다/버릇이 되어, 산갈이 그득 쌓인/
책장을 치어다본다/하나씩 사들이던 고난을 생각한다
2.
그것이 모두/___무지의 원을 전개시키는 수밖에 없다____
일러온 것을/기를 가다듬고 머리를 흔들다가도/
어머니! 고요히 부르짖고/천장을 우럴어 한숨짓는다
(중략)
5
아름다운 꽃밭에 즐거운 시냇가에/오빠야 누나야 동무야 부르짖던일/
다 옛날이었고 그나마/지금은 안계신 내 어머니/나와 피와 살을 나누신 그이가/
내 생활과 내 사랑을 아시는 듯/幽冥界를 통하여 오는 설움에/
밤마다 때마다/눈물을 지운다
「심야에」 중에서
1938년 ≪동아일보≫에 발표된 작품이다. 말년에 쓴 작품으로 차분하게 쓰진 수작이다. 깊은 밤 생각하면 과거는 다 부질없고 후회스럽다. 현실의 시공계로부터 모두 단절되어 어디고 갈 곳 없게 된 시인이 갈 수 있는 곳은 어머니의 자궁이고 무덤뿐이다. 라깡의 욕망의 끝인 것이다. 이제 시인은 고향과 어머니를 동일시하고 어머니와 무덤을 동일시한다. ‘고향=어머니=요람=무덤’의 등식이 성립되는 제 3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전반기의 시에서 어머니가 그리움의 대상이고 도피처였다면 말기시에 나타나는 어머니는 요람이며 자궁이며 무덤인 것이다.
Ⅲ. 나오는 말
근대는 의식의 변화가 뚜렷한 시기로 자아각성을 통하여 개인의 발견과 개성이 존중되는 새로운 사회질서로 재편되는 시기였다. 이런 근대라는 새로운 질서 속에서 김명순은 근대의식을 가지고 문학을 하였으나 근대적 욕망과 한계의 희생물이기도 하였다.
김명순의 문학, 특히 시적 양상은 첫째, 새로운 자아인식이다. 새로운 자아를 각성한 작가가 세상과의 부조화로 고립되고 번민, 비탄한다. 그러나 자아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갈등을 극복하고 새로운 지표를 찾기 위한 긍정적인 자세로 나아간다. 둘째, 여성해방을 위한 자유연애 사상이다. 새로운 사랑의식은 그가 이루지 못한 사랑을 탄식하며 부재된 님을 향한 그리움에서 출발하였으나 여성해방을 위해 이를 극복하자고 하는 강한 메시지를 던지며 새로운 사랑을 갈망하고 있다. 즉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문제와 의식의 문제점을 시로 형상화하였다. 셋째, 모성으로의 회귀적 향수다. 김명순은 유교문화, 또는 식민지라는 사회의 한계와 남성작가들의 우월성 아래 제대로 빛을 발휘하지 못한 시대적 한계성의 희생자이다. 그래서 그는 말기에 과거회상과 어머니의 자궁으로 회귀하는 모성의 향수를 그의 시에서 많이 발산한다.
김명순의 시는 소설이나 다른 산문에서 보여준 페미니즘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랑타령이나 애상적인 감상주의로 흐르지도 않는다. 신여성의 꿈이 무너진 상태에서 학대, 저주 등의 정조가 두드러지는데 피해의식으로 두려워하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고향이미지와 어머니가 많이 등장하는 점도 시만이 가질 수 있는 고백적 장르의 특색으로 보인다. 페미니즘의 목소리보다는 과거회상의 시가 많은 것은 김명순 시의 한 특징이기도 하다. 초기의 어머니가 그리움의 대상이고 도피처라면 현실의 시공계에서 완전히 단절된 후기의 어머니는 고향이며 요람이며 무덤으로 나타난다. 그는 시에서 절제와 비유, 상징기법으로 정돈된 시상을 펼치고 있으며 그 수준이 높다고 생각된다.
<참고논문>
김미교, 「김명순 문학 연구(주제의식을 중심으로)」, 단국대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8.
김유선, 「김명순 시의 근대적 욕망과 모성성」, 인문사회과학연구 제12집,
장안대학인문사회과학연구소, 2003.
김정자, 「김명순 문학의 여성학적 접근」, 여성학연구 제2권 1호, 부산대학교여성연구소, 1990.
황재군, 「김명순 시의 근대성 연구」, 선청어문 제 28호, 서울대학교사범대학국어교육과,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