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순 시 『생명의 과실』연구
Ⅰ.신여성 시인 등장
김명순은 문단에 진출한 뒤 분명과 망양초(望洋草), 탄실(彈實), 망양생(望洋生) 등의 필명을 사용하면서 작품 활동을 했다. 그 결과 1925년 『생명의 과실』은 김안서의 『해파리의 노래』(1923), 주요한의 『아름다운 새벽』(1924), 박종화의 『흑방비곡』(1924)에 이어서 나온 것으로 지금까지 연구자들에 의해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근대 시문학사에서 선구자적 위치에 있는 것이다.
김명순은 제 1세대 여성작가 중에서 신여성 인식을 뚜렷이 담은 시작품을 가장 많이 남겼다. 여성의 희생과 순종이 요구될 정도로 남녀평등이 실현되지 않고 있던 시대에 그 극복을 적극적으로 지향하고 나선 것이었다.
Ⅱ. 『생명의 과실』에 나타난 김명순 시의 세계
1. 과거지향적 慕情과 고립적 자아인식의 시들
김명순의 소설작품과는 달리 그의 시 작품에서는 ‘어머니의 딸’의 정을 노래한 것들이 많다. 그리고 그것은 애틋하고 그리움에 차 있으며 추억과 회오의 아픔들로 영글어 있다. 그가 어머니를 노래한 시 작품들은 대개가 어머니의 사후에 쓰여진 것들로, 어머니의 서글픈 추억 속에 잠겨서, 어머니에게 따뜻한 가슴을 열어 주지 못한 자신을 한탄하고 괴로워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것은 어둡고 쓸쓸했던 과거로 향한 몸짓이며 구원의 모성을 갈구하는 날갯짓이다.
힘 많은 어머니의 품에/ 머리 많은 처녀는 울었다./
그 인자한 뺨과 눈에/ 작은 입 대면서/ 그 목을 꼭 끌어안아서/
숨 막히시는 소리를 들으면서.//
차디 찬 어머니의 품에/ 머리 많은 처녀는 얼었다/
그 냉락한 어머니를 보고/ 어머니 어머니 우왜 돌아가셨소 하고 부르짖으며/
누가 미워서 그리했소 하고 울면서.//
춘풍에 졸던 탄실이/ 설한풍에 흑흑 느끼다/ 사랑에 게으르든 탄실이/
학대에 동분서주하다/ 여막에 줄 돈 없으니/ 돌배게 베고 꿈에 꿈을 꾸다.// (중략)
청댑싸리 둘러 심은 푸른 길에/ 누군지 그의 손을 이끌다/ 그러나 그는 호올로였다.
-「탄실의 초로」-
「탄실의 초로」는 작가와 조어한 현실에서 첫 시의 스냅을 더욱 서사화함은 물론 어머니와의 추억이 악몽으로 현몽되기도 하는데, 이런 악몽 뒤에는 여전히 작가는 혼자로서 어머니와의 추억을 애틋해 하고 있다. 이처럼 작가에게는 현실이 서어하면 서어할수록 어머니와의 추억에 대한 향수는 깊어진다. 작가의 서어한 현실에서의 갈등은 2, 3연에서 강렬하게 서사화 된다. 특히, 3연의 ‘춘풍에 졸던 탄실이/ 설한풍에 흑흑 느끼다’는 유년기 온포에서 지냈던 작가가 지금 거친 세파에 극도로 고독에 빠져 있음을 보이는데, 이 갈등은 이 시 창작동기도 된 것으로 평화롭던 어머니에 대한 추억의 향수에로 작가를 도주하게 하고 있다.
둥그런 연잎에 얼굴을 묻고/ 꿈 이루지 못하는 밤은 깊어서/
비인 뜰에 혼자서 설운 탄식은/ 연잎의 달빛같이 희뜩여 들어/
지나가던 바람인가 한숨지어라.//
외로운 처녀 외로운 처녀 파랗게 되어/ 연잎에 연잎에 얼굴을 묻어.
-「탄식」-
거울 앞에 밤마다 밤마다/ 좌우편에 촛불 밝혀서/ 한없는 무료를 잊고 지고/
달빛같이 파란 분 바르고서는/ 어머니의 귀한 품을 꿈꾸려.//
귀한 처녀 귀한 처녀 설운 신세 되어/ 밤마다 밤마다 거울의 앞에.
-「기도」-
꿈 이루지 못하는 현실의 고독한 심정을 시적자아는 새파랗게 질리도록 탄식하고 있다. 그러나 새파랗게 질린 것은 이루지 못한 꿈을 탄식하며 생긴 원망이 아니라, 극복의 과정에서 절제로 인하여 생긴 정신적 아픔이며 고독한 자아의 상징이다. 화자는 홀로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탄식한다. 외로움은 밤이라는 어둠을 배경으로 ‘비인 뜰’, ‘설운 탄식’, ‘파랗게’의 시어에서 탄식을 일으키는 외로움의 극적 효과를 배가 시키고 있다. 고독한 자아의 형상을 외로운 처녀로 대체시켜 점층 된 외로움을 드러내고 있다.
작품 속 화자인 꿈 못 이루는 처녀는 작가가 처한 현실적 상황과도 비슷하다. 근대라는 변화된 세상은 젊은 지식인들에게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무대가 되기도 하지만, 근대의식이 전면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당시의 환경에서 여성의 입장은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꿈을 꾸고 있으나 새파랗게 질리도록 힘겨운 고통은 밤마다 둥그런 연잎에 의지하여 슬픔을 토해 내야했다. 외로운 자아는 고독마저도 혼자 해결해야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어머니 품을 꿈꾸려하고 있다. 하지만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신의 문제로 의식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화자의 자조적 독백은 대상을 향한 원망이라기보다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어렵다는 것을 자각하고 탄식하는 절망스런 한숨을 내었던 것이다.
2. 탄식과 자학의 외로운 함성- 여성 해방 촉구로 볼 수 있는 시들
그는 외로움 속에서 서럽게 탄식하고 스스로를 자학했다.
아니라고 머리는 흔들어도/ 저녁이 되면은/ 먼 고향을 생각하고/ 뜨거운 눈물방울 짓는다.//
오- 먼 곳서 표류하는/ 내 하나님 그 속에 계신/ 아픈 가슴아 가슴아.// (중략)
물결에 살아 추워도 바람에 밀리어도/ 가슴속을 보면은 피 아픔을 보면은/
하나님을 생각하고, 고향을 못 잊고,/ 무릎을 굽혀 우리의 기도를 또 한다.//
오-벗아 아는가 모르는가/ 이 몸은 그대를 그리워 마르고/ 이 마음은 그대로 인해 높았음을. -「외로움의 부름」-
멀리서 그리워하는 고향, 그리고 거기 마음의 영원한 고향에 계신 하나님께 귀의하고 싶은 절절한 고독, 그 흐느낌이 작품의 행간을 그득 채운다. 그의 삶은 늘 외로움과의 투쟁이었고, 이루지 못하는 꿈에 대한 탄식으로 차 있었다.
뵈는 듯 마는 듯한 설움 속에/ 잡힌 목숨이 아직 남아서/ 오늘도 괴로움을 참았다/ 작은 작은 것 의 생명과 같이/ 잡힌 몸이거든/ 이 설움 이 아픔은 무엇이냐/ 금단의 여인과 사랑하시든/ 옛날의 왕자와 같이/ 유리관 속에서 춤추면 살 줄 믿고/ 일하고 공부하고 사랑하면/ 재미나게 살수 있다기 에/ 미덥지 않은 세상에 살아왔었다/ 지금 이 뵈는 듯 마는 듯한 설움 속에/ 生葬되는 이 답답함을 어찌하랴/ 미련한 나!/ 미련한 나!
-「유리관 속에」 전문-
살아 있으면서도 살아 있음과 같지 않은 답답하고 설운 심정일 따름이다. 금단의 사랑을 품고, 이를 버리지 못하는 미련한 자신을 힐책하고 자학하는 원한이 시 속에 투영되어 있다. 이 시는 ‘유리관 속’, ‘미덥지 않은 세상’ 등 여성 질곡의 인습적 조선에서 ‘잡힌 목숨’, ‘잡힌 몸’, ‘금단의 여인’ 등으로 보아 여성 지위는 개차반이어서 ‘뵈는 듯 마는 듯한 설움’, ‘괴로움’, ‘生葬되는 이 답답함’의 여성 고뇌는 깊을 수밖에 없다 한다. 즉 여성도 ‘일하고 공부하고 사랑하며 재미나게 살 수 있다’는 여성에 대한 근대적 자각이 팽배하지만, 실제로 아직도 전대적 인습에 기미되어 여성은 ‘잡힌 목숨’, ‘금단의 여인’이 되어 ‘설움’, ‘괴로움’, ‘아픔’, ‘답답함’을 겪어야 한다 했다.
이런 사회 문화를 작가는 ‘미덥지 않은 세상’이라 고발하고 이 사회 문화에 잡혀 사는 자신을 ‘미련한 나’라고 표면에서 자학하지만 이에는 역설로 여성질곡의 이 사회 문화를 풍자하여 여성 해방을 강조하고 있다. 이 여성 해방의 강조는 ‘생장되는 이 답답함을 어찌하랴’에서 절정을 이룬다.
조선아 내가 너를 영결할 때/ 개천가에 고꾸라졌던지 들에 피 뽑았던지/ 죽은 시체에게라도 더 학 대해 다오./ 그래도 부족하거든/ 이다음에 나 같은 사람이 나더라도/ 할 수만 있는 대로 또 학대해 보아라/ 그러면 서로 미워하는 우리는 영영 작별된다/ 이 사나운 곳아 사나운 곳아.
-「유언」 전문-
수 없이 질시와 질타, 아무도 그를 향해 따뜻한 이해와 애정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도 없이 가난과 모멸 속에서 외롭게 투쟁해야 했던 그는, 그렇게 그를 외면하고 매도하였던, 그러나 사랑해 마지않았던 조국을 영결할 때, 스스로를 학대해 달라고 외치는 젊은 생명은 외로운 함성으로 홀로 들녘에 선다.
시적화자는 자신이 살아가던 조선 사회를 향해 영결이라는 극단적 표현으로 항변을 시작한다. 화자는 이미 버림받은 상태로 자신이 보호 받을 수 없는 처지란 것을 알고 있다. 능욕당한 자신을 시체로 대체시켜 그보다 더한 학대까지 해달라고 자학한다. 화자의 비탄은 자신으로 끝나지 않고 ‘나 같은 사람’으로 확대된다. 따라서 체념한 자아의 울분은 자신을 매장시킨 조선을 향하여 ‘이 사나운 곳아 이 사나운 곳아’라며 거침없이 항변한다. 또한 자신처럼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것을 염두에 두고 나 같은 사람이 나오거든 또 학대하라 한다. 결국 화자는 그런 사회와 조선을 향해 ‘사나운 곳’이라 분노한다. 작별할 각오가 되어있을 만큼 억울한 심정과 원망의 분출인 것이다.
작품에서 드러나고 있는 화자의 극단적 심경은 사회의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작품을 쓰게 된 작가의 삶 또한 시적 화자의 고통처럼 아파할 수밖에 없었다. 김명순의 앞선 의식과 행동은 실제의 삶에 있어서도 비난과 능욕을 참아야 했다. 그렇지만 자신의 문제를 자각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회의 모순도 인식할 수 있었다. 사회의 모순으로부터 피해자였던 상황을 유언이라는 극단적 표현으로 항변하고 싶었을 것이다. 항변은 영영 작별까지 각오한 것으로 상처 입은 자아를 회복하기 위한 극복의지이다.
3. 구원의 갈구와 극복의 의지-민족해방의식
그의 시에서는 환한 얼굴로 환한 색조로 다듬어진 사랑의 언어들이 없다. 그의 사랑은 늘 그늘지고 애수 어린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는 영원한 사랑의 결합을 끊임없이 갈망한다. 사랑을 향한 그의 열정은 뜨겁다 못해 청청한 심근을 가지고 있다. 만년청같은 사랑을 누리고 싶은 열정이 강렬하면 할수록 그가 살아가고 있는 이승의 사랑은 어렵고 고통스러운 난관, 투성이의 사랑일 뿐이다.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는 구원의 세계에 대한 눈물겨우리만치 강렬한 기원이다.
고요한 옛날의 노래여/ 꿈 가운데 걸어오는 발자취같이/
들렸다 사라지는....../ 어머니의 노래여 사랑의 탄식이여.
“타방 타방네야 너 어디를 울며 가니/ 내 어머니 몸 진 곳에 젖 먹으러 울며간다”/
이는 내 어머니의 가르치신 노래이나/ 물결 이는 말 못 미쳐 이것만 아노라.
옛날의 날 사랑하시든 내 어머니를/ 큰사랑을 세상에서 잃은 설움이/
멜로디-만 황혼을 숨질 때/ 장밋빛으로 열린 들길에는 바람도 애타라.
오래인 노래여 내게 옛 말씀을 들리사/ 어린이의 설움 속에 이끌어 들이소서/
불노초로 수놓은 초록 옷을 입히소서/ 그러면 나는 만년청의 빨간 열매 같으리다.
(중략)
無言歌여 다만 음향이여 나를 이끌어/ 그대의 말씀 사라진 곳에/
내 어머니 몸 진 곳에 산을 넘고 물은 건너라/ 옛날의 노래여, 사라지는 울림이여.
-「옛날의 노래」 전문-
이 시에서 ‘물결 이는 말 못’과 ‘장밋빛으로 열린 들길’은 자유 애정의 패배의 현실이다. ‘물결 이는 말 못’은 천진한 여성에게는 익사의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고, ‘장밋빛으로 열린 들길’은 여성을 유혹하는 ‘넓은 문’으로 상징된다. 작가는 이 위험하고도 타락할 수 있는 넓은 세계에서 자유 애정에 패배하고 드디어 고향이자 어머니인 향수에 젖는다. 즉, ‘타방타방네야 너 어디를 울며 가니/ 내 어머니 몸 진 곳에 젖 먹으러 울며간다’의 옛날 어머니가 들려주신 노래를 상기하고 이런 어머니의 말씀이 다시 있다면 그 말씀대로 살려 한다. ‘그러면 나는 만년청의 빨간 열매 같으리라’의 대목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눈을 감으면/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니고/ 남빛 안개 속의 조약돌 길 위를/
한 처녀 거지가 무엇을 찾는 듯이/ 앞을 바라보고 뒤를 돌아보고/
새파랗게 질려서 보인다.//
내 머리를 돌리면/ 분명히 생각나는 일이 있다/ 삼 년 전 가을의 흐린 아침이었다
나는 학교에 가는 길가에서/ 나를 향해 오는 그림자를 보았다/
그리고 “어디를 가시오” 하는/ 그 분명한 음성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멈추는 그의 발걸음을/ 멈출 틈도 없이 쏜살과 같이/
저의 앞을 말없이 걸어갔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
겨우 삼 년 기른 환상의 파랑새를/ 그 길 너머로 울면서 놓았다.//
하나 이 명상의 때에/ 무슨 일로 옛 설움아 또 오는가/
사람에게 상냥한 내가 아니었고/ 새를 머물러 둘 내 가슴이 아니었다/
가시 덩굴 같은 이 가슴속에서/ 옛 설움아 다시 내 몸을 상하게 말라
-「분신」-
이 시는 스스로를 처녀거지로 본다. 현실공간은 사납고 잔인해서 피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었는데 시간마저도 낮인지 밤인지 분간할 수 없는 암담한 현실이다. 시간과 공간의 단절 속에서 처녀거지가 공포에 떨고 있는 것이다. 단절된 현실에서 시인의 상상력이 과거 상상력으로 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인의 시간과 공간 상상력은 유년의 시간공간으로 돌아가게 되며 그 안에는 시인이 콤플렉스로 생각해 늘 피하고 싶었던 ‘어머니’가 이제는 자애로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모두들 등을 돌릴 때 마지막 품어주는 곳이 영원한 고향인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분신」에서는 몇 년 동안을 두고 마음속에 그리워하고 연연했던 사람을 길가에서 우연히 만났으나 그는 그의 앞을 쏜살같이 지나쳐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는 나의 분신인지도 모른다. 그리움으로 뒤얽혀진 가시덩굴 같은 가슴 속에서 옛 설움이 다시는 찾아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갈망이 온 몸을 채우고 있다. 순수한 사랑을 실천하고 행복하고 아름답게 살아가고자 한 그의 열렬한 삶의 의욕과 구원을 향한 갈구는 실현되기 어려운 환상과 갈망, 그리고 그리움으로 인하여 늦가을 이파리들처럼 시들어 가고 말았다.
귀여운 내 수리/ 사람들의 머리를 지나/
산을 기고 바다를 헤어/ 골 속에 숨은 내 맘에 오라.//
맑아 가는 내 눈물과/ 식어 가는 네 한숨,/ 또 구르는 나뭇잎과/
설운 춤추는 가을 나비,/ 그대가 세상에 없었던들/ 자연의 노래 무엇이 새로우랴.//
귀여운 내 수리 내 수리/ 힘써서 아프다는 말을 말고/
곱게 참아 겟세마네를 넘으면/ 극락의 문은 자유로 열리리라.//
귀여운 내 수리 내 수리/ 흘린 땀과 피를 다 씻고/ 하늘 웃고 땅 녹는 곳에/
골엔 노래 흘리고 들엔 꽃 피자/ 그대가 세상에 없었던들/ 무엇으로 승리를 바라랴.//
그때까지 조선의 민중/ 너희는 피땀을 흘리면서/
같이 살길을 준비하고/ 너희의 귀한 벗들을 맞아라.
- 「귀여운 내 수리」-
‘수리’는 매과의 수리속에 속하는 맹금으로 힘이 세고 부리와 발톱이 크고 날카롭다. 김명순이 그 ‘수리’를 ‘내’와 같다고 동료의식을 나타낸 것은 민족이 결코 추락하지 않고 언제가는 창공으로 날아오를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곱게 참아 겟세마네를 넘으면/ 극락의 문은 자유로 열리리라.’고, 아프고 힘들어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면 민족해방의 날은 열릴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그러므로 끝 부분에서 ‘그때까지 조선의 민중/ 너희는 피땀을 흘리면서/ 같이 살길을 준비하고/ 너희의 귀한 벗들을 맞아라.’ 라고 민족단결을 역설하고 있는 것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민족의 주체성과 자부심을 살려주고 있는 것이다.·
「귀여운 내 수리」에서 김명순은 힘써서 아프다는 말을 말고, 곱게 참아 아름답고 평화로운 극락의 세계로 가야 한다는 것을 조선의 민중에게 부르짖고 있다.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극락의 세계는 광복의 세계일 수도, 구원의 세계일 수도 있다. 하늘도 웃고 언 땅도 녹는 그러한 세계를 위해서, 고통스러운 현신을 의지로써 극복해야 한다는 것으로, 김명순의 작품에는 흔하게 나타나지는 않으나, 귀한 의지의 목소리와 그 강인한 몸짓이 새삼 옷깃을 여미게 하는 수작이다.
Ⅲ. 김명순 시 세계의 의의
김명순의 시 작품들 속에는 어머니의 정을 노래한 것이 많다. 그것은 애틋하고 그리움에 차 있으며 추억과 회오의 아픔들로 영글어 있다. 그가 어머니를 노래한 시들은 대개 그 어머니의 사후에 쓰여진 것들로 어머니에게 따뜻한 가슴을 열어 주지 못한 자신을 한탄으로 괴로워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둡고 쓸쓸했던 과거로 향한 몸짓이며 구원의 모성을 갈구하는 날갯짓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의 시는 외로움 속에서 서럽게 탄식하고 스스로를 자학한다. 또한 그의 시에서는 애수의 그늘이 짙게 깔려 있다. 그러나 그는 그 아픈 이별들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극복과 의지로 남을 것이라고 절규한다.
그는 따가운 질시와 지탄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사회현실 속에 살면서도 그 질곡의 가열한 현실적 삶을 오히려 예찬하였다. 김명순은 슬픔을 딛고 일어나 의지로 극복하려는 열렬한 갈망과 간절한 기원을 가졌으나 그것들은 실현되기 어려운 환상과 사랑의 갈망, 그리고 그리움들로 늦가을 이파리처럼 시들어 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