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순 시의 신여성상 연구

엘렌 케이 사상의 수용적 측면과 능가한 측면을 중심으로

by 방정민

김명순 시의 신여성상 연구

-엘렌 케이 사상의 수용적 측면과 능가한 측면을 중심으로-

목차

1. 들어가는 말


2. 신여성의 등장배경과 그 역사적 의의


3. 김명순 시의 신여성상


1) 자유연애와 여성해방


2) 모성과 어머니에 대한 향수


3) 항일과 민족 해방


4. 김명순 시에 나타난 신여성상의 의미와 한계


5. 나오는 말




국문초록


김명순은 최초의 신여성으로 엘렌 케이 사상을 반영한 시를 많이 썼다. 김명순은 자유연애를 봉건적인 사회제도의 저항으로, 그리고 억압받았던 여성의 자아를 발견하는 수단으로 생각했다. 김명순에게 자유연애는 불합리한 결혼제도를 타파하는 근대정신의 발로였으며 봉건적 사회제도의 해체를 통한 여성해방을 의미한다.

김명순 시에 나타난 어머니에 대한 향수는 유년시절 모성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 모성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김명순에게 어머니는 자신의 근원적 상처이자 향수로 자리 잡는다. 그는 근원적 고향을 모성에서 찾았고 현실이 힘들수록 어머니에 대한 향수와 모태에의 회귀본능을 노래하였다. 즉 모성과 어머니에 대한 향수는 근원적 안식처요 고향 같은 휴식처다.

김명순의 시가 1920년대 다른 신여성이나 신지식인들의 시에 비해 전혀 그 가치가 뒤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그의 시가 민족해방의식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명순은 신여성으로서 단순히 엘렌케이즘 사상을 수용하여 실천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제국주의의 피해국민으로서, 문학가로서 제국주의 폐해에 저항하고 민족해방을 부르짖는 시를 많이 남김으로써 제국주의를 고발하지 않은 엘렌 케이 사상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따라서 김명순은 진정한 신여성 문학가이자 선각자이며, 그의 시는 새롭게 재조명되어야 한다.

주제어: 김명순, 신여성, 엘렌케이사상, 자유연애, 여성해방, 모성, 어머니에 대한 향수, 항일, 민족해방


1. 들어가는 말

한국 문학사에서 1920년대는 유럽에서 새로운 사조가 유입되면서 근대문학이 본격화되는 등 문학사적 의미가 큰 시기다. 그러나 단지 문학사적 의미만 큰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향한 사회적 요구가 거센 시기였다. 근대를 향한 사회 변화의 기운이 고조되던 때 근대교육이 확산되면서 여성들도 그 이전과는 다른 세계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라는 민족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여성교육이 확대된 1920년대는 신여성이라는 새로운 여성군을 배출하였다. 삼종지도, 칠거지악 등에 복종해야만 했던 여성들이 비로소 자아를 각성하고 남녀평등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했던 것이다.

서양 선교사들이 세운 교육기관과 일본 유학 등에서 서구의 문화를 수용하고 근대정신을 배운 신여성들은 가장 먼저 연애를 받아들였다. 연애야말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가장 잘 반영하는 시대정신이었으며 나아가 사회 진보와 변화를 이끄는 선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신여성들에게 엘렌 케이의 사상이 널리 유포되면서 그의 사상을 본받고 실천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졌는데 김명순은 이런 사회적 배경 속에서 탄생한 한국 문학사에서 최초의 신여성이자 여성작가다.

김명순(1896. 1. 20~1951. 6. 22)은 평양 갑부인 아버지 김희경과 그의 소실 어머니 김인숙의 장녀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기생 출신 소실이라는 사실은 김명순 본인에게 콤플렉스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평생 그녀를 옥죄는 주홍글씨 같은 낙인으로도 작용한다. 그녀는 1917년에 <청춘>지의 현상문예에 단편 「의심의 소녀」가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1907년 진명여학교를 거쳐 1913년, 1920년 두 차례 일본유학길에 오르고 1921년 말부터 <개벽>에 작품 발표를 하며 문단활동을 본격화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소설, 「의심의 소녀」, 「칠면조」(1921), 「탄실이와 주영이」(1924), 「돌아다볼 때」(1925), 「손님」(1926), 「모르는 사람같이」(1929) 등이 있으며 시, 「동경」, 「창궁」, 「거룩한 노래」, 「유언」, 「귀여운 내수리」, 「분신」 등이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김명순의 작품은 시 84편, 소설 19편, 수필, 평론 20편, 희곡 2편 등이 있으며, 창작집 『생명의 과실』, 『애인의 선물』이 있다.

이 처럼 김명순은 남성작가에 비해 뒤지지 않는 문학적 성과를 남겼지만 많은 남성 작가들은 그녀의 불확실한 전기적 사실과 왜곡된 사생활을 부각하며 악의적이고 부정적으로 그녀를 평가하였다. 서출이라는 신분적 사실을 자유연애와 연관시켜 방종하고 타락한 여자로 김명순을 악평한 것이다. 이에 반해 김명순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김명순에 대한 전기적 측면의 부정적 시각에서 벗어나 김명순의 문학세계를 리얼리즘과 페미니즘 시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하였다. 이는 부정확한 전기적 사실로 김명순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려는 태도를 지양하고 시대를 앞서간 김명순의 문학성과 실천을 높이 평가한 것이고, 또한 작품분석으로 냉정하게 김명순을 평가한 것이다. 이는 90년대 이후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김명순을 재평가한 연구가 주류를 이룬다.

2. 신여성의 등장배경과 그 역사적 의의

신여성이라는 말은 서양의 근대 산물이다. 근대의 개념과 시기는 아직까지 논란이 되고 있지만 서양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한 형태로 발전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일자리는 늘어나고 노동력은 턱없이 부족하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의 노동력이 필요하였고, 여성들은 공사 이분법(남성은 공적부분인 사회에서 일하고 여성은 사적부분인 가정에서 가사일 잘 하도록 하는 가부장제)에서 벗어나 남성들과 같이 사회에서 일하게 되었다. 사회에서 일하던 여성들(공장에서 노동력 착취당하며 일하던 여성들이 아니라 고등교육을 받은, 이른바 화이트 컬러 여성)은 자연히 민주주의를 배우게 되고 그 의미, 즉 인권의 소중함, 자아, 권리 같은 개념을 알게 된다.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탄생한 신여성은 다른 여성보다 모든 면에서 앞서가는 매력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이 같은 신여성이라는 개념은 서양에서 일본을 통하여 한국에 수입되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의 현실은 국권 상실의 상태였기 때문에 신여성이라는 개념은 민족해방이나 항일과 땔 수 없는 관련을 맺고 있었다.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여성들의 개화운동은 외세의 침략 위협으로 위기에 놓인 국권을 지키려는 구국운동에서 출발하였다. 여성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사립학교를 세워 직접 운영한 여성단체의 지도자들은 구국운동에 남녀가 평등하게 참여해야 한다는 의식 하에 민족의식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여성교육은 일부 개화 여성들의 개인적인 지위향상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주권상실을 막고, 독립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필요성에서 제창된 것이다.

이런 시대 배경 아래 1920년대 초 한국사회에는 자아실현을 꿈꾸며 사회진출을 모색하는 한편 자신의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내기 시작한 여성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근대교육기관을 거쳤다는 공통된 경험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국사회는 ‘신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을 다른 여성들과 구분 지으려는 시도와 함께 그들과 관련된 다양한 담론들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1920년대 접어들어 신여성이라는 개념은 대중적으로 친숙한 단어가 된다. 사람들마다 신여성이라는 개념을 조금씩 다르게 사용하고 있었지만 신여성이 될 수 있었던 조건은 근대적 교육의 수혜 여부에 의해 일차적으로 결정되었고, 투철한 사회의식의 소유 유무여부를 가지고 있으면서 참된 여성을 가리키기도 하였지만 30년대를 거치면서 교육의 유무와 상관없이 단발과 양장으로 대표되는 서구적인 외양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 또한 ‘신여성’ 혹은 ‘모던 걸’이라고 불렀다. 즉 신여성이란 단지 근대적 교육을 받은 부르주아 여성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문자해독 능력정도를 갖춘 노동계급 여성에서부터 기생이나 창기까지 여러 유형의 여성들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개념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신여성들은 자신들의 문제 즉 한국여성의 현실에 눈을 돌리게 되고, 그러던 중 일본에 수입된 엘레 케이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게 된다. 봉건적 인습에서 벗어나 자신의 행복을 찾고자 하는 여성들에게 자유연애, 결혼관은 새로운 충격이었다. 엘렌 케이는 연애란 종교와 마찬가지로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강한 힘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완전한 사랑이 있는 커플만이 결혼할 수 있으며 그들의 사랑에 의한 결합은 우수한 이세를 낳는다. 그러나 사랑은 영원한 것이 아니므로 사랑이 식으면 결별이 불가피하다. 다시 말해 이혼도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합법적 결혼이라 해도 생명 없는 연애로 유지되는 부부는 부도덕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결혼 상대의 선택은 완전히 당사자의 의지에 달린 것이며, 사회에 봉사할 권리와 책임으로 연애의 자유에 대한 권리도 당연히 요구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엘렌 케이의 자유연애론은 삼종지도, 칠거지악 등 봉건적 질서에 억압당해 온 한국 신여성들에겐 일종의 여성해방이자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의미했다. 개인의 인격 존중, 개성의 자각, 여성 해방으로 인식된 자유연애는 근대적 이상으로 통했으며, 신교육을 받은 신여성들에게는 누구나 따라야 하는 도덕과 새로운 사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런 신여성의 등장은 기존의 봉건적인 가치관과 충돌했을 뿐만 아니라 봉건적 의식을 버리지 못한 신식남성들에게 큰 위협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여성 해방을 주장한 신여성들에게 남성지식인들은 가혹할 정도로 비난과 조롱의 시선을 보냈다. 새로운 사상이나 가치관이 한 사회에 자립잡기까지 성별과 계층간 갈등은 필수불가결한 일이었던 것이다. 이 때 자유연애 및 자유결혼, 자유이혼을 표방하고 실천했던 김명순, 나혜석, 김일엽 등 1세대 신여성이 비판의 주요 대상이 된다. 이들은 자유연애를 통한 여성해방을 추구하였지만 남성지배사회는 그들을 근대적 개인으로서 수용할 만큼 근대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지 못하였다. 그러나 당시 신여성이라는 개념은 단순한 헤게모니 쟁탈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한국사회가 일제의 식민지배에 있었다는 것이다. 자유연애와 신여성은 분명 근대의 산물로서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을 촉구하는 것이기는 했지만, 근대가 제국주의의 탈을 쓰고 있는 것임을 알아차리는 신여성은 많지 않았다.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근대와 그 하위 개념인 신여성과 자유연애는 제국주의가 허락하는 선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었으며 결국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즉 신여성들 일부분은 친일파로 변하거나 민족해방 의식이 없는 한계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본 연구의 대상인 김명순은 단순한 여성 해방을 넘어선 민족 해방을 부르짖으며 항일시를 많이 남겼다. 따라서 자아발견(여성해방)과 제국주의의 모습을 한 근대의 이중성마저 뛰어 넘은 김명순은 진정한 신여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 김명순 시의 신여성상

1) 자유연애와 여성해방

엘렌 케이 사상에 영향을 받은 신여성들, 특히 김명순은 자유연애를 봉건적인 사회제도의 저항으로, 그리고 억압받았던 여성의 자아를 발견하는 수단으로 생각했다. 기존의 구질서에서 벗어난 새로운 이론과 행위였다. 그러나 김명순은 당대 남성작가들의 비난처럼 탕녀는 아니었다. 즉 자유연애의 사랑은 영육이 일치되는 낭만적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지 성적인 쾌락만을 쫒는 육체적 성(sex)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김명순에게 자유연애는 불합리한 결혼제도를 타파하는 근대정신의 발로였으며 봉건적 사회제도의 해체를 통한 여성해방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는 시에서 자유연애를 끊임없이 추구한다. 그러나 봉건적 잔재가 남아있던 당시 사회는 그녀의 생각을 받아줄 수 없었다. 또한 남성 신지식인이 조혼으로 대부분 기혼자였다는 사실은 김명순이 추구하는 자유연애의 사랑을 방해하게 되고 그로 인해 그녀는 탄식을 하게 된다.


북방의 처녀가 남방을 생각하면/ 울렁 줄렁 달린 밀감밭을/ 허울 벗은 몸으로 지나더라도

명주옷을 입고 임을 만나러 가듯이/ 가슴이 두근두근거려서,/ 첫 일월에 우레 소리가/

황금의 열매를 딴다지요//

북방의 처녀가 남방을 생각하면/~(중략~)/ 임이 오신다 마신 듯이/ 심란한 한숨이 쉬어져서

초사월의 비가 푸르른 잎을 궁글고/ 빨간 꽃을 떨어트린다지요

북방의 처녀가 남방을 생각하면/ 초가집 처마 아래 우산 걷어/ 우두커니 서서 눈물짓더라도/

~(중략~)/ 초저녁에 불 비친 미닫이가 열리고/ 책 상 앞의 석상이 움직인다지요

-「남방(南邦)」일부



「남방」은 남쪽을 그리워하는 낭만적인 서정시이다. 세 연이 완벽하게 수미상관의 미를 갖추고 있으며 민요풍의 리듬을 가진다. 이 시가 보여주는 남쪽에 대한 선호는, 김명순의 고향이 평양인 것과 남쪽 지방에 연인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주렁주렁 달린 밀감, 빨간 동백꽃으로 상징되는 남쪽지방의 그리움은 아래 연으로 내려갈수록 ‘가슴이 두근거려서’→ ‘심난한 한숨이 쉬어져서’→ ‘우두커니 서서 눈물짓더라도’처럼 감정이 점차 고조되고 있으며 그 이전에 보이던 사랑에 대한 저주나 증오 같은 격렬한 감정은 보이지 않는다.

시가 자기 독백적인 성격이 강한 문학 장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위 시는 김명순이 생각하는 자유연애, 즉 사랑에 대한 감정을 솔직담백하게 읊은 것이다. 조선의 내방가사처럼 여성의 지고지순한 사랑, 기다림과 외로움을 안고 사는 한의 정서가 이 시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비록 민요풍의 형식을 취하긴 하였지만 봉건적 여인의 한의 정서가 아닌 신여성으로서 사랑을 당당하게 기다리는 정서가 베여있다. 전체적인 분위기도 어둡지 않고 밝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님을 기다려서 사랑을 이루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황금의 열매를 딴다지요’, ‘푸르른 잎을 궁글고’, ‘초저녁에 불 비친 미닫이가 열리고’, ‘책상 앞의 석상이 움직인다지요’ 등에서 밝고 적극적인 사랑을 하고 있거나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두 이파리로 푹 싸서/ 빨간 열매를 기르는 만년청/ 영원한 결합이 있다 뿐입니다//

서로 그리는 생각은 멀리멀리/ 천 필 명주 길이로 나뉘어도/ 겹겹이 접어 그넷줄을 꼬지요//

하물며 한 성안에 사는 마음과 마음/ 오다가다 심사 다른 것은/ 꽃과 잎의 홍(紅)과 청(靑)이지요

-「만년청(萬年靑)」전문


위 시의 화자는 영원한 사랑의 결합을 끊임없이 갈망하고 있으며 사랑에 대한 자아의 열정은 ‘빨간 열매를 기르는 만년청’처럼 순홍색과 순청색의 강렬한 색조로 표현된다. 그런데 만년청 같은 사랑을 누리고 싶은 열정이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그가 살아가고 있는 이승의 사랑은 어렵고 고통스러운 난관투성이의 사랑이다. 그래서 ‘천 필 명주실이 나뉘’고 ‘그넷줄을 꼰’다고 그 아쉬움을 표현했다. 그러나 화자는 비탄이나 원망의 자조적 화법으로 말하지 않는다. ‘꽃과 잎의 홍과 청’이라는 차이를 말하면서 사랑은 사람마다 개성과 다양성이 있기에 일방적이면 안 되고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어떤 대가나 구속을 배제하는 순수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이 시는 엘렌 케이의 영육이 일치된 완전한 사랑, 서로를 존중하는 성숙한 사랑을 말하고 있다.



뵈는 듯 마는 듯한 설움 속에/ 잡힌 목숨이 아직 남아서/ 오늘도 괴로움을 참았다/ 작은 작은 것 의 생명과 같이/ 잡힌 몸이거든/ 이 설움 이 아픔은 무엇이냐/ 금단의 여인과 사랑하시든/ 옛날의 왕자와 같이/ 유리관 속에서 춤추면 살 줄 믿고/ 일하고 공부하고 사랑하면/ 재미나게 살수 있다기 에/ 미덥지 않은 세상에 살아왔었다/ 지금 이 뵈는 듯 마는 듯한 설움 속에/ 생장(生葬)되는 이 답 답함을 어찌하랴/ 미련한 나!/ 미련한 나!

-「유리관 속에」 전문


김명순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랑은 20년대 한국현실에서는 실행되기 힘든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자유연애에 기반한 사랑을 여성해방으로 확대시킨다. 사랑의 깊은 수렁에 빠져 살아 있으면서도 살아 있음과 같지 않은 답답하고 설운 심정이 이 시의 주된 정조다. 금단의 사랑을 품고, 이를 버리지 못하는 미련한 자신을 힐책하고 자학하는 원한이 시 속에 투영되어 있다. 시는 ‘유리관 속’, ‘미덥지 않은 세상’ 등 여성 질곡의 인습적 조선에서 ‘잡힌 목숨’, ‘잡힌 몸’, ‘금단의 여인’ 등에서 알 수 있듯 여성 지위는 개차반이어서 ‘뵈는 듯 마는 듯한 설움’, ‘괴로움’, ‘생장(生葬)되는 이 답답함’의 여성 고뇌는 깊을 수밖에 없다 한다. 즉 여성도 ‘일하고 공부하고 사랑하며 재미나게 살 수 있다’는 여성에 대한 근대적 자각이 팽배하지만, 실제로 아직도 전근대적 인습에 매몰된 여성은 ‘잡힌 목숨’, ‘금단의 여인’이 되어 ‘설움’, ‘괴로움’, ‘아픔’, ‘답답함’을 겪어야 했다.

이런 사회 문화를 작가는 ‘미덥지 않은 세상’이라 고발하고 이 사회 문화에 잡혀 사는 자신을 ‘미련한 나’라고 표현함으로써 자학하지만 이에는 역설로 여성질곡의 이 사회 문화를 풍자하여 여성 해방을 강조하고 있다. 이 여성 해방의 강조는 ‘생장되는 이 답답함을 어찌하랴’에서 절정을 이룬다.



2) 모성과 어머니에 대한 향수


김명순은 소설에서는 어머니에 대해 부정적으로 서술하는 반면, 시에서는 모성과 어머니에 대한 향수를 노래하며 어머니를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소설이 산문인 점, 즉 자아와 세계와의 대결에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비판하는 반면, 시는 자아의 고백적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신여성 김명순은 엘렌 케이에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엘렌 케이 사상의 특징은 모성주의로서, 이는 정신과 육체는 같은 실재의 일면이라는 일원적 신념이다. 엘렌 케이는 여성이 여성된 까닭은 모성에 있다고 보고, 어머니로서의 충분한 기능을 다하지 못하면 여성은 어떤 다른 일을 하든지 결코 훌륭한 일을 했다고 볼 수 없다며 여성의 모성을 강조하였다. 다시 말해 엘렌 케이의 모성주의는 모성이야말로 어머니됨의 근본 이유이자 어머니의 위대한 본능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모성은 인간존재의 근원적 향수이자 안식처다. 이런 위대한 모성을 받지 못한 어린이는 결국 정신적 결핍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바로 김명순 시에 나타난 어머니에 대한 향수는 그녀의 유년시절 모성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 김명순은 어머니가 기생 소실출신이라는 것에 심한 콤플렉스를 느껴 어머니를 멀리하였다고 한다. 거기다가 12세에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고 만다. 따라서 모성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김명순에게 어머니는 자신의 근원적 상처이자 향수로 자리 잡는다. 다시 말해 엘렌 케이의 모성주의를 김명순이 실천한 것은 아니지만 유년시절 어머니의 부재로 모성을 제대로 받지 못한 그에게 어머니는 근원적 향수였던 것이다.

김명순이 추구한 자유연애는 남성작가와 한국사회에 남아있는 강인한 봉건적 인습에 의해 처절히 패배했다. 그래서 그는 유년기의 모성을 안식처로 삼고 모성에 대한 향수의 세계에로 도주하게 된다. 그는 근원적 고향을 모성에서 찾았고 현실이 힘들수록 어머니에 대한 향수와 모태에의 회귀본능을 노래하였다. 즉 모성과 어머니에 대한 향수는 그가 현실에서 어렵고 힘겨울 때 찾을 수 있는 근원적 안식처요 고향 같은 휴식처이다.


고요한 옛날의 노래여/ 꿈 가운데 걸어오는 발자취같이/

들렸다 사라지는....../ 어머니의 노래여 사랑의 탄식이여.//

“타방 타방네야 너 어디를 울며 가니/ 내 어머니 몸 진 곳에 젖 먹으러 울며간다”/

이는 내 어머니의 가르치신 노래이나/ 물결 이는 말 못 미쳐 이것만 아노라.//

옛날의 날 사랑하시든 내 어머니를/ 큰사랑을 세상에서 잃은 설움이/

멜로디-만 황혼을 숨질 때/ 장밋빛으로 열린 들길에는 바람도 애타라.//

오래인 노래여 내게 옛 말씀을 들리사/ 어린이의 설움 속에 이끌어 들이소서/

불노초로 수놓은 초록 옷을 입히소서/ 그러면 나는 만년청의 빨간 열매 같으리다.// (~중략~)

무언가(無言歌)여 다만 음향이여 나를 이끌어/ 그대의 말씀 사라진 곳에/

내 어머니 몸 진 곳에 산을 넘고 물은 건너라/ 옛날의 노래여, 사라지는 울림이여.

-「옛날의 노래」 부분


이 시에서 ‘물결 이는 말 못 밑’과 ‘장밋빛으로 열린 들길’은 자유 애정의 패배의 현실이다. ‘물결 이는 말 못 밑’은 천진한 여성에게는 익사의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고, ‘장밋빛으로 열린 들길’은 여성을 유혹하는 ‘넓은 문’으로 상징된다. 작가는 이 위험하고도 타락할 수 있는 넓은 세계에서 자유 애정에 패배하고 드디어 고향이자 어머니인 향수에 젖는다. 즉, ‘타방 타방네야 너 어디를 울며 가니/ 내 어머니 몸 진 곳에 젖 먹으러 울며간다’의 옛날 어머니가 들려주신 노래를 상기하고 이런 어머니의 말씀이 다시 있다면 그 말씀대로 살려 한다. ‘그러면 나는 만년청의 빨간 열매 같으리라’의 대목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유년시절 어머니의 부재는 김명순에게 내향적으로 자아를 확대시키는 계기가 된다. 아무리 어머니가 보잘 것 없는 존재였고 전근대적 인물이었다고는 하나 어머니는 그 자체로 안식처요 자신의 삶의 근원적 존재다. 모성을 충분히 받지 못한 김명순은 세상에서 힘들고 고단할수록 더욱 모성에 대한 향수로 침잠하는 경향을 드러내었다. 그가 가장 활동을 왕성하게 하던 20년대 중반부터 그의 시가 모성을 꿈꾸고 어머니에 대한 향수를 노래하게 된 이유다. ‘큰 사랑을 잃은 설움’, ‘어린이의 설움’이 더욱 그러한 심정을 나타낸다. 어릴 적 콤플렉스이자 피하고 싶었던 어머니가 이제 자애로운 모습으로 등장하며 그런 어머니를 그리워하게 된다. 모두가 나를 괴롭히고 나에게 등을 돌릴 때 마지막 품어주는 곳이 영원한 고향인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옛날의 노래여, 사라지는 울림이여’하며 애타게 모성을 갈구하고 있다.



힘 많은 어머니의 품에/ 머리 많은 처녀는 웃었다./ 그 인자한 뺨과 눈에/

작은 입 대면서/ 그 목을 꼭 끌어안아서/ 숨 막히시는 소리를 들으면서.//

차디 찬 어머니의 품에/ 머리 많은 처녀는 울었다/ 그 냉락(冷落)한 어머니를 보고/

어머니 어머니/ 우왜 돌아가셨소 하고 부르짖으며/ 누가 미워서 그리했소 하고 울면서.//

춘풍에 졸던 탄실이/ 설한풍에 흑흑 느끼다/ 사랑에 게으르든 탄실이/

학대에 동분서주하다/ 여막에 줄 돈 없으니/ 돌베게 베고 꿈에 꿈을 꾸다.// (~중략~)

청댑싸리 둘러 심은 푸른 길에/ 누군지 그의 손을 이끌다/ 그러나 그는 호올로였다.

-「탄실의 초몽」부분



어긋난 현실에서 어머니와의 추억이 화자에게 악몽으로 현몽되기도 하는데, 이런 악몽 뒤에서 여전히 화자는 혼자로서 어머니와의 추억을 애틋해 하고 있다. 이처럼 화자에게는 현실이 서어하면 서어할수록 어머니와의 추억에 대한 향수는 깊어진다. 「탄실의 초몽」에서 화자의 서어한 현실에서의 갈등은 2, 3연에서 강렬하게 서사화 된다. 특히, 3연의 ‘춘풍에 졸던 탄실이/ 설한풍에 흑흑 느끼다’는 유년기 온포에서 지냈던 화자가 지금 거친 세파에 극도로 고독에 빠져 있음을 보여주는데, 이 갈등은 이 시 창작동기가 된 것으로 평화롭던 어머니에 대한 추억의 향수에로 작가(화자)를 도주하게 하고 있다.

혼자라고 여길 때, 세상의 풍파에 짓이겨지고 고통스러울 때 우리는 어머니를 찾는다. 김명순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어머니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지만 그의 기억 속에 내재하는 모성의 이미지는 현실이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울수록 그녀를 끌어당겨 그에게 어떤 것에 의해서도 훼손되지 않는 원초적 행복감에 젖어들게 한다. 그것은 인간의 보편 심리현상이고 모성의 근원적 힘이기 때문이다. 김명순은 현모양처의 삶을 살지 않았기에 엘렌 케이의 모성주의를 전적으로 따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김명순은 현실에서 힘들수록 모성에 기대어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다. ‘울었다’, ‘부르짖으며’ 등의 표현과 어조는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김명순의 시에 나타난 모성과 어머니에 대한 향수는 유년 모성의 부재에서 비롯하였는데, 모성과 어머니됨을 강조한 엘렌 케이의 모성주의를 미묘한 지점에서 만나고 있는 것이다.



1

심야이다/ 사위(四圍)가 고요하다/ 버릇이 되어, 산같이 그득 쌓인/

책장을 치어다본다/ 하나씩 사들이던 고난을 생각한다//

2.

그것이 모두/ __ 무지(無知)의 원(圓)을 전개시키는 수밖에 없다__

일러온 것을/ 기를 가다듬고 머리를 흔들다가도/

어머니! 고요히 부르짖고/ 천장을 우러러 한숨짓는다

(~중략~)

5

아름다운 꽃밭에 즐거운 시냇가에/ 오빠야 누나야 동무야 부르짖던일/

다 옛날이었고 그나마/ 지금은 안 계신 내 어머니/ 나와 피와 살을 나누신 그이가/

내 생활과 내 사랑을 아시는 듯/ 유명계(幽明界)를 통하여 오는 설움에/

밤마다 때마다/ 눈물을 짓는다

-「심야에」 일부


1938년 ≪동아일보≫에 발표된 작품이다. 말년에 쓴 작품으로 차분하게 쓰여진 수작이다. 깊은 밤 생각하면 과거는 다 부질없고 후회스럽다. 현실의 시공계로부터 모두 단절되어 어디고 갈 곳 없게 된 시인이 갈 수 있는 곳은 어머니의 자궁이고 무덤뿐이다. 욕망의 끝인 것이다. 이제 시인은 고향과 어머니를 동일시하고 어머니와 무덤을 동일시한다. ‘고향=어머니=요람=무덤’의 등식이 성립되는 제 3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전반기의 시에서 어머니가 그리움의 대상이고 도피처였다면 말기시에 나타나는 어머니는 요람이며 자궁이며 무덤인 것이다.

김명순의 말기 시라서 그런지 차분하고 과거회상적이다. 삶을 정리하며 ‘고난을 회상’한다. 살아온 삶이 어쩌면 ‘무지의 원’을 전개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면서 동양의 일원론적 사고를 보여준다. ‘위엄과 사랑과 진실됨’인 어머니에게로 ‘내가 가고’ 당신이 ‘오라’고도 한다. 인생이 ‘일장의 거룩한 장면’이라며 ‘속눈썹 아래 둥그런 눈동자’, ‘코와 입이 더 정화’되어 ‘천장에 나타난다’고 한다. 지난하게 고생스럽고 고통스러웠던 삶을 반추하며 이제 모든 것을 놓고 어머니에게로 가고자 한다. 고통과 외로움이 없는 세상, 억압과 비난이 없는 세상인 어머니의 세계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 어머니는 ‘내 생활과 사랑을 아시는 듯’ ‘눈물을 짓는다’. 바로 어머니는 존재의 근원이고 요람인 것이다. 파란만장한 삶을 정리하며 쓴 이 시에는 어머니에 대한 향수가 더욱 진하게 묻어 나온다.

자유연애와 여성해방, 모성과 어머니에 대한 향수는 김명순 시의 신여성상 중에서 엘렌 케이 사상의 수용적 측면이라 할 수 있다.



3) 항일과 민족 해방


자유로운 문화와 자국의 역사가 비참하게 희생을 당하던 20년대의 지식인들의 정신적 지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차지하는 자기의 위치와 자기가 속해 있는 시대에 대한 극히 날카로운 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1920년대를 포함 일제시대 여성시의 맹점으로 익히 알려진 사실 중에 하나가 역사적 인식의 부족, 또는 역사인식이 작품에 투영되지 못한 점이다. 신여성이라고 자처하던 문학가들은 서구에서 유입된 엘렌케이즘이나 콜론타이즘 등 페미니즘 사상에 심취하나 그것이 제국주의의 탈을 쓴 근대라는 점을 간과하였다. 그 어떤 사상이나 운동도 식민지라는 왜곡된 역사와 현실에서는 진정으로 실현될 수 없으며 그 진실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진실한 문학가라면 시대의식과 역사의식이 있어야 하며 왜곡된 역사나 현실에 저항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20년대를 포함 일제시대 많은 신여성과 신지식인들은 일제 식민치하라는 역사적 현실을 외면하거나 일제가 허용하는 한에서 해방운동을 하자는 소극적 자세를 취하였다. 그 결과 급기야 상당수의 신지식인들은 친일로 돌아서고 만다.

김명순의 시가 다른 신여성이나 신지식인들의 시에 비해 전혀 그 가치가 뒤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그의 시가 민족해방의식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명순은 신여성으로서 비록 엘렌케이즘 등 페미니즘 사상을 받아들여 실천하였으나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엘렌 케이를 넘어서는 면모를 보인다. 제국주의의 피해국민으로서, 문학가로서 제국주의 폐해에 저항하고 민족해방을 부르짖는 시를 많이 남김으로써 제국주의를 고발하지 않은 엘렌 케이 사상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따라서 김명순은 진정한 신여성 문학가이자 선각자이며, 그의 시는 새롭게 재조명되어야 한다.



늙은 병사가 있어서/ 오래 싸웠는지라/

온몸에 상처를 받고는 싸움이 싫어서/ 군기를 호미와 괭이로 갈았었다.//

그러나 밭고랑은 거세고/ 지주는 사나우니/ 씨를 뿌리고 김을 매어도/ 추수는 없었다.//

이에 늙은 병사는/ 답답한 회포에 졸려서/

날마다 날마다 낮잠을 자더니/ 하루는 총을 쏘는 듯이 가위를 눌렸다.//

아- 이상해라 이 병사는/ 군기를 버리고 자다가 /

꿈 가운데서 싸웠던가/ 온몸에 멍이 들어 죽었다.//

사람들이 머리를 비틀었다/ 자나 깨나 싸움이 있을진대/

사나 죽으나 똑같을 것이라고/ 사람마다 두 팔에 힘을 내뽑았다.

-「싸움」 전문



일제는 1912년 토지조사사업, 1920년 산미증산계획을 통해 조선 민중의 땅을 약탈해갔으며 조선의 양곡을 강탈했다. 농지개량, 농기구 개선 등으로 생산량은 늘어났으나 수탈량이 몇 배로 증가하여 조선 민중의 삶은 더욱 피폐해져갔다. 그 결과 조선 민중은 생명을 연명하기도 힘들어 만주, 간도나 연해주 등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삶과 그 터전을 통째로 빼앗겨 버린 것이다.

이 시는 한 늙은 병사의 생을 따라가며 민족이 당하는 수난을 보여주고 있다. 삶이 힘겨워 저항을 포기해보아도(‘군기를 호미와 괭이로 갈았었다’) 결국 ‘추수는 없’고 ‘온몸에 멍이 들어 죽’는 일 밖에 없음을 보여줌으로써 일제에 대한 강한 저항을 표면화하고 있다. 이 시는 규칙적인 4행 1연으로 된, 5연의 자유시다. 1~4연은 <싸움>이후 식민지인의 절망적 피폐 상황과 한민족 몰락의 처참상을 사실적으로 고발하고, 5연에서는 이럴 바에는 민족의 이름으로 침략자 타도에 궐기하자(‘사람마다 두 팔에 힘을 내뽑았다’)는 김명순의 각성이 내연되어 있다. 이런 시각에서 이 시를 ‘민족적 상실감을 바탕으로 현실을 리얼하게 고발 비판하여 일제에 저항하자’는 항일시로 해석하는 것은 타당하다. 따라서 이 시는 민족적 저항, 항일을 리얼하고 힘 있게 그리고 있는 저항시이다.



귀여운 내 수리/ 사람들의 머리를 지나/

산을 기고 바다를 헤어/ 골 속에 숨은 내 맘에 오라.//

맑아 가는 내 눈물과/ 식어 가는 네 한숨,/ 또 구르는 나뭇잎과/

설운 춤추는 가을 나비,/ 그대가 세상에 없었던들/ 자연의 노래 무엇이 새로우랴.//

귀여운 내 수리 내 수리/ 힘써서 아프다는 말을 말고/

곱게 참아 겟세마네를 넘으면/ 극락의 문은 자유로 열리리라.//

귀여운 내 수리 내 수리/ 흘린 땀과 피를 다 씻고/ 하늘 웃고 땅 녹는 곳에/

골엔 노래 흘리고 들엔 꽃 피자/ 그대가 세상에 없었던들/ 무엇으로 승리를 바라랴.//

그때까지 조선의 민중/ 너희는 피땀을 흘리면서/

같이 살길을 준비하고/ 너희의 귀한 벗들을 맞아라.

- 「귀여운 내 수리」전문


‘수리’는 매과의 수리속(屬)에 속하는 맹금으로 힘이 세고 부리와 발톱이 크고 날카롭다. 김명순이 그 ‘수리’를 ‘내’와 같다고 동료의식을 나타낸 것은 민족이 결코 추락하지 않고 언젠가는 창공으로 날아오를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곱게 참아 겟세마네를 넘으면/ 극락의 문은 자유로 열리리라.’고, 아프고 힘들어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면 민족해방의 날은 열릴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그러므로 끝 부분에서 ‘그때까지 조선의 민중/ 너희는 피땀을 흘리면서/ 같이 살길을 준비하고/ 너희의 귀한 벗들을 맞아라.’ 라고 민족단결을 역설하고 있는데, 많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민족의 주체성과 자부심을 살려주고 있는 것이다.·

「귀여운 내 수리」는 아주 직설적으로 조선의 민중을 언급하며 ‘피땀을 흘리면서’ ‘같이 살 길을 준비하고’ ‘귀한 벗을 맞아라’고 말한다. 조선 민중의 의식 전환과 더 높은 기상을 소리 높여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피땀을 흘리며 승리하자고 강하게 저항을 부르짖고 있다. 일제의 탄압과 검열이 삼엄하던 시대 용기 있게 일제에 저항하자고 했던 김명순은 어떤 남성작가나 신여성보다 민족의식과 민족해방에 열정적이었고 선구적이었다.



어떤 자는 고구려성 옛터를 찾아서 거닐며 우네/ 이것은 옛날 우리들의 할아버지가 사시던 곳

살다가 함락당하여 무너진 성의 자취라고/ 쓸쓸한 와편(瓦片) (꺽)기운 성벽 깨진 솥 토기

이것을 한 낱 두 낱 주우며 우네/ 아아 쓸쓸한 참말/

우리들의 할아버지가 계시던 곳 성이 이렇게 불붙고 무너져/

끊기고 패이고 부서져 비에 씻길 줄/ 부서져 이렇게 쓸쓸한 풀만 무성한 줄/

이 풀 성한 고적을 거닐며 우리가 전설을 외우게 될 줄/ 외우며 옛일을 그려 울게 될 줄!//(~중략~)

자, 벗들아 파편을 주우며 울기는 너무나 약한 짓이다/

풀잎을 뜯으며 새소리를 들으며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며/

전설을 되풀이하기는 너무나 힘없는 짓이다/

우리는 여기서 느끼세/ 힘을 믿세/ 힘을 내서 일하세

-「고구려성을 찾아서」 부분



「고구려성을 찾아서」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강성했던 고구려 역사를 반추하며 비참한 현실을 희망으로 바꾸자고 역설하고 있다. 따라서 시 전체 분위기가 갈수록 활기차고 확신에 차 있다. ‘우리가 전설을 외우게 될 줄’, ‘외우며 옛일을 그려 울게 될 줄’ 하는데 이는 ‘너무나 약한 짓이다’라고 한다. 즉 시인은 현실적 삶의 고통에 매몰되는 삶의 태도와 현실을 도피하는 삶, 그리고 과거 회상적 삶을 비판한다. 이 시는 기존에 알려진 여느 시인의 저항시보다도 훨씬 역사와 국가의식이 돋보인다. 현실이 괴롭고 고통스럽다고 망연자실하지 말 것이며, 더욱이 옛일을 회상만하며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말고 서로 이 시점에서 현실을 자각하고 ‘느끼’자고, 우리의 ‘힘을 믿’자고, ‘힘을 내서 일하’자고 강조한다. 바로 민족의 의식을 일깨우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민족해방을 이루자고 용기를 북돋우고 있다. ‘고구려성’이라는 제목은 일제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고 외세에 저항한 우리 민족의 적극적 대항의지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김명순은 직설적인 어법으로 박진감 있게 해방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말하기도 하고 강한 저항의식으로 대항하자고 강조하기도 한다. 이 점에서 김명순을 민족과 조국을 염려한 지성적, 민족적 신여성이자 시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김명순 시에 나타난 항일과 민족해방은 김명순 시의 신여성상 중에서 엘렌 케이 사상을 넘어선 측면이라 할 수 있다.



4. 김명순 시에 나타난 신여성상의 의미와 한계


구한말기에서 일제 초기에 형성된 신여성층은 1920년대에 활발히 사회에 진출하여 여성해방운동을 펼치게 된다. 신여성들은 여성해방이론을 통해 이제껏 도외시되었던 여성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신여성들은 자신들의 문제 즉 한국여성의 현실에 눈을 돌리게 되고, 그러던 중 엘레 케이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게 된다. 봉건적 인습에서 벗어나 자신의 행복을 찾고자 하는 여성들에게 엘렌 케이의 자유연애, 결혼관은 새로운 충격이었다. 엘렌 케이의 자유연애론은 삼종지도, 칠거지악 등 봉건적 질서에 억압당해 온 한국 신여성들에겐 일종의 여성해방이자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의미했다. 개인의 인격 존중, 개성의 자각, 여성 해방으로 인식된 자유연애는 근대적 이상으로 통했으며, 신교육을 받은 신여성들에게는 누구나 따라야 하는 도덕과 새로운 사상으로 받아들여졌다.

김명순은 최초의 신여성으로 여성해방을 몸소 실천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시에서 여성해방을 노래하였다. 페미니스트 엘렌 케이에 영향을 받은 그의 시는 자유연애를 주창하였고 이는 곧 여성해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시는 모성에 대한 그리움, 즉 어머니에 대한 향수를 많이 노래하였다. 유년 시절 어머니의 부재와 어머니에 대한 콤플렉스로 인해 그는 어머니를 그리워하게 되는데, 이는 모성, 즉 어머니가 존재의 근원이자 안식처이자 마음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지식인으로서 역사인식과 왜곡된 현실에 저항한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민족해방을 부르짖음으로써 민족의식을 일깨우려 노력하였다. 이 점은 엘렌 케이를 넘어서는 진정한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것이기도 하였다. 그의 시에 나타난 신여성상의 새로운 면모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명순은 정치적, 경제적 여성해방보다는 성의 해방에 집착했다. 이는 일제 식민주의의 억압적인 정치상황에서 정치적, 경제적 여성해방을 추구한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인데, 그래서 그는 개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사적 영역에서의 성의 해방을 이슈로 삼았다. 하지만 김명순은 개인의 섹슈얼리티에 작용하는 남성 지배의 거대한 권력체계를 제대로 통찰하지 못했다. 공적 영역에서의 성의 해방 없이 사적영역에서의 여성의 성 해방은 공염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가 이해한 페미니즘은 피상적 수준이었다. 그래서 그의 시는 허공에 불러대는 메아리와도 같았다. 또한 김명순의 여성해방론은 당시 시대상에 대한 전망을 확보하지 못한 채 여론의 비난 속에서 비극적인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우선 여성에게만 정절을 강조하는 형식상의 일부일처제가 존재하는 한 자유연애에 내재해 있는 남성본위의 성격이 극복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명순의 시에 나타난 한계는 그의 사상의 한계, 그의 시의 한계일 수도 있지만, 그 당시 시대가 봉건적적인 잔재를 버리지 못한 한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이기적이고 이율배반적인 남성작가들의 감정에 치우친 그에 대한 비난 때문에 그는 그의 사상을 마음껏 펼칠 수 없었으며 온전한 정신상태를 유지할 수 없었다.

5. 나오는 말

김명순은 최초의 신여성으로 엘렌 케이 사상을 반영한 시를 많이 썼다. 김명순은 자유연애를 봉건적인 사회제도의 저항으로, 그리고 억압받았던 여성의 자아를 발견하는 수단으로 생각했다. 기존의 구질서에서 벗어난 새로운 이론과 행위였다. 김명순에게 자유연애는 불합리한 결혼제도를 타파하는 근대정신의 발로였으며 봉건적 사회제도의 해체를 통한 여성해방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는 시에서 자유연애를 끊임없이 추구한다.

김명순 시에 나타난 어머니에 대한 향수는 유년시절 모성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 모성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김명순에게 어머니는 자신의 근원적 상처이자 향수로 자리 잡는다. 그는 근원적 고향을 모성에서 찾았고 현실이 힘들수록 어머니에 대한 향수와 모태에의 회귀본능을 노래하였다. 즉 모성과 어머니에 대한 향수는 그가 현실에서 어렵고 힘겨울 때 찾을 수 있는 근원적 안식처요 고향 같은 휴식처이다.

1920년대 여성시의 맹점으로 익히 알려진 사실 중에 하나가 역사인식의 부족이라는 점이었다. 그 어떤 사상이나 운동도 식민지라는 왜곡된 역사와 현실에서는 진정으로 실현될 수 없으며 그 진실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진정한 문학가라면 역사의식과 민족의식이 있어야 하며 왜곡된 역사나 현실에 저항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김명순의 시가 다른 신여성이나 신지식인들의 시에 비해 전혀 그 가치가 뒤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그의 시가 민족해방의식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명순은 신여성으로서 비록 엘렌케이즘 등 페미니즘 사상을 받아들여 실천하였으나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엘렌 케이를 넘어서는 면모를 보인다. 제국주의의 피해국민으로서, 문학가로서 제국주의 폐해에 저항하고 민족해방을 부르짖는 시를 많이 남김으로써 제국주의를 고발하지 않은 엘렌 케이 사상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김명순은 진정한 신여성 문학가이자 선각자이며, 그의 시는 새롭게 재조명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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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 study on the new woman aspect of Kim Myung Soon's poetry

-reflective side and surpassing side of the Ellen Key thought-


Kim Myung Soon was the first new woman and many of her poems reflected the thought of Ellen Key. Kim Myung Soon regarded free love as a resistance to feudal social system and as a means of finding suppressed women’s self. For Kim Myung Soon, free love was manifestation of modern spirit that overthrows unreasonable marriage system and it meant the liberation of women by dissolving feudal social system.

The nostalgia for mother represented in Kim Myung Soon’s poetry started from the absence of motherhood in her childhood. For Kim Myung Soon who couldn’t fully experience motherhood, the mother settled down as her original scar and nostalgia. She found her original hometown in the motherhood, and as the reality got hard, she wrote poems of nostalgia for mother and homing instinct to motherhood. That is, the motherhood and nostalgia for mother were her original refuge and hometown-like resting place.

The poetry of Kim Myung Soon doesn’t fall behind the poetry of other new women or new intellectuals in 1920s because her poetry pursued national liberation. As a new woman, Kim Myung Soon didn’t only accept and practice the thought of Ellen Key. As a victim and letters of imperialism, she wrote a lot of poems resisting to the harmful effect of imperialism and crying out for national liberation and therefore she could get over the limit of Ellen Key who didn’t charge imperialism. Kim Myung Soon is therefore a true new woman of letters and pioneer; her poetry should be newly reinterpreted.

Key word: Kim Myung Soon, The New woman, Free love, The liberation of women, The nostalgia for mother, Motherhood, National lib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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