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택수 저
현대인의 사랑과 성
Ⅱ. 성의 사회문화적 조건
1. 성 억압 가설
인간의 섹슈얼리티는 욕망과 쾌락의 본질적 속성 때문에 오랫동안 종교적ㆍ학문적ㆍ도덕적 편견 속에 금기시되고 통제되어 왔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섹슈얼리티는 인간의 탄생순간부터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족 내의 부모, 특히 어머니에게 강한 성적 욕망을 갖고 있는데, 이 섹슈얼리티의 표현은 유아 초기부터 억제되어 있다. 이것이 소위 ‘억압가설’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성 본능의 원천은 입ㆍ항문ㆍ성기 등 신체의 성감대에 있다. 그런데 인간은 어린 시절부터 쾌락을 주는 이런 성감대와 관련된 행동으로 부모의 통제를 받아 욕구불만과 불안을 갖게 된다. 어린아이는 구강기에서 항문기ㆍ생식기에 이르기까지 빨고 배설하는 여러 적응 단계를 거치면서 성욕과 성적 쾌락 및 억압에 관련된 성격이 형성된다. 예를 들어 소년은 성적 충동이 강해짐에 따라 어머니를 독점적으로 사랑하기를 갈망하고 아버지를 경쟁 상대로 느끼는데 이를 ‘외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부른다. 소년은 어머니에 대한 근친상간적 욕망이 억압되고 아버지에게 거세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마르쿠제에 의하면 리비도의 승화과정을 억압하는 과정은 에로티시즘을 성기 중심의 섹슈얼리티에 머물도록 한다. 그리고 인간의 원시적 성적 본능이 억압되었기에 권력에 복종하는 성격이 생겨났다고 한다.
억압가설 이론가들은 남성성을 분석의 시금석으로 삼았고, 섹슈얼리티에 있어서 남녀의 차이를 지배와 연관시키지 않았으며, 성적 억압에서 벗어나는 데에 있어서도 남녀의 차별성을 보지 못했다. 1960년대 성에 대한 생물학적ㆍ심리학적 본질주의는 성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사회구성주의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이후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시간적으로 일관적인 유아 초기나 출생시에 부여된 결정적인 본질로서의 섹슈얼리티 개념은 변화되기 시작했다. 사회구성주의 입장에서 본 섹슈얼리티는 유동적이며, 불안정적이고, 선택적이며, 변화하기 쉬운 성적 욕망의 총체이다.
이후 섹슈얼리티는 생물학적인 것으로만 설명되어서는 안 되고, 역사적 구성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대두되기 시작했다.
2. 성과 권력
미셀 푸코의 성에 관한 사변은 프로이트의 억압 가설에 대한 문제제기로부터 출발한다. 『성의 역사』에 나타난 푸코의 연구방식은 현대 사회의 내부에서 거론되는 성적 담론들을 그 사회의 전반적 구조 속에 위치시켜 성적 욕망이 왜, 어떻게 말해졌는지 그리고 이에 대한 어떠한 지식이 형성되고 그것을 통해 유도된 권력의 작용은 무엇이었는지를 밝혀내고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인간의 성적 욕망에 대한 담론의 배후에 기저하는 권력-지식-쾌락의 기능과 존재 이유를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16세기 이래 성의 담론화는 억압받기는커녕 반대로 선동적 기제에 의하여 부추겨졌고, 권력의 기술은 성적 욕망을 분류하여 확산하고 정착시키는 과정에 개입하였으며, 지식은 성적 욕망에 관한 과학적 정립에 몰두해 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성담론화를 통해 섹슈얼리티는 이성애적 일부일처제라는 사회규범으로서 기능하여 개인의 정체성의 일부분이 되었다.
푸코 이론에 의하면 성에 관한 담론들은 권력이 행사되는 바로 그곳에서 권력 행사의 수단으로 증가하였다. 성적 욕망을 담론화시키고, 경제ㆍ교육ㆍ의학ㆍ사법 등의 모든 영역에서 성적 담론을 부추겨 양산하고 이를 분류ㆍ정리하여 제도화하는 다양한 기제는 권력 형성에 기여하고 또 그 영향 아래에 있다.
푸코는 섹슈얼리티를 지식과 권력의 장 속에서 구성되는 사회적 산물로 본다. 그는 현대 생활 속의 섹슈얼리티는 내적 충동을 통제하는 기율, 권력과 연관되어 있고, 성의 통제 방식은 감옥ㆍ수용소ㆍ병원ㆍ학교의 통제방식과 같다고 한다. 푸코에 따르면 섹슈얼리티의 조직과 관리는 주로 성담론이 생산되는 교회와 학교제도가 맡았다. 수도원과 교육제도 안에서 섹슈얼리티는 공공연하게 거론되었다. 그러나 다양한 담론들은 교회법전에 일치되는 방향으로 유도되고 분류되었다. 성적 담론은 이러한 방식에 의해 증가하고 일정한 담론 체계로 수렴되어 가두어졌는데, 이러한 과정이 푸코가 말하는 권력과 지식의 형성 과정이자 성 통제의 기술인 것이다. 여기서 기율과 권력은 섹슈얼리티의 충동을 제한하거나 허락함으로써, 즉 규제받고 통제받는 육체를 생산함으로써 사회 통제의 힘을 강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부르주아 계급은 성적 욕망을 사회적 차이를 만드는 엄격한 금기의 행사 방법인 법에 종속시켜 성적 욕망의 원칙을 정립하고 이것을 권위적, 강제적으로 확대시키고 정당화시켰다. 그리고 부르주아지는 성적 욕망을 혼인제도에 고정시키는 기제로서, 동시에 이러한 법 제도와 욕망의 결부로 인한 금기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기제로서 정신분석학을 이용하였다.
오래전부터 성은 관리와 통치의 대상이었다. 18세기에 나타난 인구 문제 관리도 성과 연관된 권력 기술의 문제였다. 한 사회의 시민들의 수는 결혼 관습, 가족제도 그리고 성적 행위에 관련되어 있는데, 인구에 관한 정치경제학을 넘어 개인의 성적 행위를 분석하여 경제적ㆍ정치적 행동으로 만들려는 조직적 기도들이 나타났다. 국가는 시민들의 성행위와 성적 관례를 알아야 했으며, 국가와 개인 사이에서 성은 하나의 공공연한 쟁점이 되었고, 이에 대해 담론ㆍ지식ㆍ분석 등이 동원되었다.
19세기와 20세기 초의 섹슈얼리티는 하나의 비밀이고 이에 대한 지식과 권력은 비밀수호와 진리 탐구의 기능을 한다. 따라서 자위행위와 성도착에 관한 옹호나 비판은 개인의 육체적ㆍ정신적 발전을 조직화하고 통제하려는 행위로 파악된다. 지식과 권력은 수많은 성적 욕망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분류하고 이를 고착화한다. 광기와 마찬가지로 섹슈얼리티도 분석과 치료를 위해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조사연구들에 의해 분류되고 생성되는 사회적 구성물인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에 남색은 금지된 행위들의 하나의 유형으로서 위반시 법률적 제재의 대상에 불과하였으나, 19세기와 와서는 생리학ㆍ정신분석학ㆍ병리학적 분석에 따라 특이한 기질을 소유한 부류로 분류되어 정신적 결함이 있는 것으로 취급되는 것이다.
푸코는 성에 대한 분석과 담론이 사회제도의 형성 과정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한마디로 섹슈얼리티는 권력 작용으로서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고착화, 재생산된다는 것이다. 이로써 개인은 성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수동적 존재가 되고, 권위적 성담론의 체계에 종속된 정체성을 갖게 된다. 푸코의 성지식 권력의 이론에 있어서 성 정체성 형성의 주체적 개인은 보이지 않는다. 푸코에게는 자아표현으로서의 정체성과 사회구조가 부과한 정체성 간의 변증법적 관계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 이 때문에 그가 사회구조와 섹슈얼리티 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주체적 성 정체성의 형성 과정을 그려내는 데에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섹슈얼리티에 대한 담론 체계가 성적 변태성을 억압하고 제거하기보다 개인의 성 정체성을 분류하여 개인의 의식과 행동 전체를 통제하려는 데에 있었다는 푸코의 발견은 중요하다. 또 섹슈얼리티는 분석과 치료를 위해 이미 존재한 것이 아니라 지배 권력의 작용으로서 담론이 생산해 내고 고착화시키는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주장은 의미 있는 발견이다. 성 정체성은 실제로 성교육, 성지식과 같은 지배적인 성담론으로부터, 차별적 성의 사회문화적 관행을 통해 형성된다. 푸코 이론은 이러한 구체적인 성의 사회화 과정이 결여되어 있고, 궁극적으로 개인은 성 정체성을 구성함에 있어서 수동적인 존재로 남아 있는 것이 문제이다.
3. 친밀성과 성찰적 성
안토니 기든스는 푸코의 성-권력 담론에서 인간이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만들어 낸 성취물로서의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푸코의 담론 수준은 지식과 권력이란 국면과 연결된 특정한 담론의 형태에 머물러 있어 현대적 삶 속에서 뚜렷이 발견되는 자아 성찰적인 면을 간과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든스는 포코의 이론적 결함을 메우는 대안으로 ‘제도적 성찰성’이라는 개념을 창출한다. 이 개념은 성과 권력이 사회제도적으로 구조화되는 것과 동시에 그 속에서도 개인의 의지나 선택이 작용하는 것을 인정한다. 기든스는 성과 재생산적 제도, 권력의 관계에 있어서 개인의 성찰적 의지를 중요시한다. 그에 의하면 감정과 사랑으로 친밀하게 조직되는 섹슈얼리티와 가족은 일반적으로 권력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비롯되지 않고 오히려 권력의 결핍에서 나온다. 재생산의 사회화 과정과 권력의 연결은 섹슈얼리티와 관련되어 있지만, 개인의 감정과 자아성찰적인 의지와도 분명히 관련되어 있다.
기든스에 의하면 현대적 섹슈얼리티는 더 이상 재생산과 친족 질서를 유지하는 도덕적 수단이 아니라 개인적 친밀성에 기반한 관계를 형성하는 수단이며, 이는 자아에 대한 성찰ㆍ자율성ㆍ행복을 향한 가능성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즉 기든스는 섹슈얼리티를 신체와 자기정체성과 사회규범이 일차적으로 연결된 지점으로 보고 현대적 성 정체성의 특징을 설명한다. 기든스에 있어서 성 정체성은 푸코와 달리 성 지식의 권력과 개인의 성찰적 의지가 만난다. 그에 의하면 개인의 감정과 자아성찰적 의지가 개입되어 있는 현대적 섹슈얼리티의 정체성은 성찰과 자율의 영역을 갖고 있어 더 이상 가족재생산과 친족 및 사회질서 유지의 수단이 아니다.
자아정체성에 대한 개인적 성찰은 사랑과 관련된 섹슈얼리티의 의미에 대한 변환적 사고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기든스는 개인적 수준에서 특히 사랑이란 인간 관계에 주목한다. 그는 19세기 이후 부르주아 사회 속에서 낭만적 사랑의 이상이 섹슈얼리티의 개념을 변화시켰다고 본다. 그에 의하면 낭만적 사랑의 확산은 혼인 관계를 친족 관계로부터 분리시키고, 정서적 결합의 결혼과 부부 중심의 가정의 의미와 기능을 강화시켰다. 그리하여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재생산적 의미(임신ㆍ출산)로서의 전통적 개념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재생산 개념에서 탈피한 섹슈얼리티의 개념은 해방적이며 자율적인 것인데, 이는 성의 점진적 분화과정의 결과이다. 그리하여 이제 섹슈얼리티는 개인들의 상호 작용의 특질이 되었다. 기든스는 바로 이러한 섹슈얼리티 개념의 변화를 ‘조형적 섹슈얼리티(plastic sexuality)’라고 부르며 이것이 성해방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보았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개인들이 일정한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이성간의 사랑 관계, 그리고 개인들간의 사회적 관계에 새로운 형식의 변화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즉 ‘순수한 관계’가 출현한 것이다. 조형적 섹슈얼리티는 개인들간의 자유와 선택의 순수한 관계에 기반한다. 여기서 ‘순수한 관계’란 성적인 순결과는 관계없는 단지 조작적 개념인데, 관계 그 자체로서 순수하게 유지되는 감정적 유대를 의미한다. 순수한 관계란 성적ㆍ감정적으로 평등한 관계로 기존의 성차별적 권력 형태와 대응된다. 그리고 이 순수한 관계는 기든스가 말하는 ‘친밀성’을 구성하는 일부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관계는 조형적 섹슈얼리티의 발전과 같은 궤도상에서 발견되는 관계이다.
순수한 관계의 의한 성적 쾌락은 반드시 결혼과 연결되지 않는다. 그리고 낭만적 사랑은 친밀성에 근거한 순수한 관계에서 이루어지고, 정신적 케뮤니케이션으로서 관계의 부족한 면을 메워 준다. 그러나 낭만적 사랑은 여성을 궁극적으로 가부장적 가정에 종속시킨다. 한편 ‘합류적 사랑’은 두 사람이 ‘투사적 동일화’를 통해 유대를 공유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사랑이다. 기든스가 말하는 조형적 섹슈얼리티, 순수한 관계, 융합적 사랑은 타자의 개벌성에 대한 존중과 개방되고 평등한 의사소통을 기반으로 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의사소통과 친밀성의 기반에서 신뢰가 쌓여지는 것이다. 기든스의 이론적 성과는 그가 새로운 인간 관계와 사랑의 개념들, 그리고 섹슈얼리티 관계에서 젠더의 개념을 상기시켜, 팔루스의 지배로부터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해방시켰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4. 섹슈얼라이제이션
섹슈얼리티ㆍ여성성ㆍ남성성 등의 범주들은 주체ㆍ욕망ㆍ육체 등의 개념으로 점차 훨씬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 생산된다. 오늘날 여성 육체와 성적 매력은 여성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여성 육체의 성적 가치는 소녀의 사회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푸코와 비판심리학의 영향을 받은 하우그팀에 의하면 소녀의 사회화란 여성의 육체가 성적 의미를 획득해 가는 과정, 즉 성애화로 나타난다. 성애화는 소년 소녀들이 성인 남성과 여성으로 사회화되어 가는 과정, 육체나 육체의 일부(다리ㆍ가슴ㆍ헤어ㆍ키 등)가 성적 의미를 띠고 있는 성적 대상으로 되어 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런데 문제는 여성들이 주체적이며 자발적으로 이 과정에 들어간다는 데에 있다. 이러한 주체의 종속이 발생하는 이유는 육체를 매개로 사회적 질서에 자신을 이입시켜 가는 과정에서 여성이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즉 종속을 대가로 여성들은 기존 질서로부터 지지와 안정감을 획득한다는 것이다. 섹슈얼리티는 ‘섹슈얼한 것’과 동떨어진 실천(머리를 자르는 일, 탁자 아래 새치름하게 다리를 꼬고 앉는 일 등)을 통해서도 구성된다. 여기서 섹슈얼리티의 문제는 섹슈얼한 행위 그 자체로부터 소녀들이 성숙한 여성이 되기 위해서 배우는 일상의 실천으로 이동한다. 실천이 여성의 육체에 집중되어짐으로써 여성의 육체는 섹슈얼리티가 조직되는 축이 된다.
여성은 여성성을 토대로 해서 -패션감각으로 멋을 내고 로맨스와 섹슈얼리티를 이용함으로써-권력을 장악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성의 종속적 지위 강화에 가담하는 것은 성적 교태로 주인을 유혹하는 아라비안나이트의 슬레이브 걸의 이미지일 수 있다. 이 슬레이브 걸은 성적 매력에 관련된 의식적 행동으로 스스로 쾌락과 즐거움을 느끼면서 여성의 능동적 생존력과 권력을 획득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