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 문화 읽기 서설
-식민 이데올로기와 식민지 지식인-
1. 탈식민 시대의 식민 이데올로기
16세기 이래 비서구 세계를 정치, 경제, 문화, 이데올로기 면에서 지배하고 있던 식민주의 내지 제국주의가 종말을 고하고 있다. 제 2차 세계 대전을 분기점으로 하여 서구의 지배를 받았던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많은 독립 국가가 출현하였다. 그래서 ‘탈식민’시대라는 말이 어울릴 법도 하지만 그러한 ‘독립국가’들이 서구의 지배에서 벗어났다고 믿는다면 잘못이다. 왜냐하면 서구 세력이 과거의 식민지에서 그들의 군대와 경찰 관료체제 등의 식민 통치 기구를 철수시킬 때에는 그들의 대체 세력으로서 식민 체제를 간접적으로 유지시킬 수 있는 집단을 권력의 중심부에 정착시키고 난 다음의 일이기 때문이다. 독립 운동 세력이 권력을 장악했다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서구 중심적 식민지 교육을 받고 서구 식민 세력과 어느 정도 타협하여 권력을 승계하였기 때문에 정치적, 경제적 의미에서 가시적으로 물러난 서구 식민 세력과 계속하여 식민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신식민체제는 서구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듦으로써 서구 제국주의 세계와 비서구 피식민 사회는 계속하여 지배와 피지배관계에 있게 된다는 것이다.
2. 식민 이데올로기와 서구 문학
식민지 본국인인 서구인에게 있어 서구 문학은 비서구 세계를 다룰 때 비서구 세계의 야만인을 문명의 빛으로 교화할 책임이 있음을 주지시킴으로써 제국주의의 팽창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 한편 비서구인들은 서구 제국주의의 팽창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 한편 비서구인들은 서구 제국주의가 자신들을 문명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는 믿음과 함께 서구의 지배를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믿고 있었다.
서구 문학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은 문명화의 사명을 역설하는 문학 작품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노골적으로 비서구 세계를 야만시하는 아동 문학에서부터 동서양의 긍정적인 만남을 모색하는 어느 정도는 비서구 세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성인 문학의 경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검은 피부와 하얀 가면』에서 프란츠 파농은 흑인 어린이들이 서구에서 만들어진 모험 이야기를 읽을 때 이야기의 주인공이 무찔러야 할 검은색의 세계와 자신들을 같은 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백인 주인공들의 세계를 자신들의 세계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독서 경험으로 말미암아 그들 스스로가 백인의 의식세계와 동일한 의식을 갖고 성장한 흑인 어린이들이 나중에 백인들의 세계는 사실상 자신들의 세계가 아님을 현실에서 자각할 때 갈등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흑인들은 백인들과 직접 대면함으로써 그들 스스로가 열등한 흑인임을 자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가 원래 열등하다는 것이 아니라 백인인 것같이 사고하면서 성장한 흑인이 자신의 진정한 정체를 확인할 때 열등 의식이 생긴다는 것이 파농의 지적이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열등의식이야말로 문학 작품이 비서구 세계에 부여하는 이데올로기적 작용이며 그 결과이다.
성인이 읽는, 대개 외국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읽고 소개하는, 문학 작품의 경우에는 좀더 세련된 모습으로 서구 중심의 이데올로기를 우리에게 공급하고 있다. 흔히 인간과 자연의 문제로 대학의 강의실에서 논의하고 있는 셰익스피어의 『폭풍우』의 경우에도 식민 역사적 맥락에서 본다면 서구의 식민지 개척과 피식민인의 교화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굉장한 유산(Great Expectations)』역시 언뜻 보기에 식민 문제와 무관한 듯하지만 사실 신사라는 것이 식민지에서 또는 외국과 열심히 장사해서 돈을 번 사람이라는 19세기 중엽의 새로운 신사 개념을 시사하는 소설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점은 식민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서양 식민 담론 내지 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3. 마르크스 역사주의 넘어서: 마르크스의 식민 사관 비판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가 생산되는 현장이 지배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현장이 된다는 것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인들이 항상 지배 이데올로기에 순응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어떤 사회의 지배 계층이 피지배 계층을 착취하는 계급 투쟁은 우선은 이데올로기의 형태, 즉 말 잘 듣는 종속체를 계속하여 생산해내는 이데올로기의 장치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말 안 듣는 문제아들은 지배 계급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도전하는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으며 지배 이데올로기가 재생산되는 현장에서 그 이데올로기와 경쟁하는 이데올로기를 생산해내며 지배 이데올로기의 재생산 구조에 방해를 가한다. 소수의 학교 선생들이 그러한 예의 하나인데, 이들은 지배 이데올로기의 생산 현장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장비를-교실, 교재, 학생 등-거꾸로 이용하여 지배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다. 지배 이데올로기가 생산되는 현장이야말로 바로 지배 이데올로기와 저항 이데올로기가 경쟁하는 장이 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영국이 지배하는 인도를 논하면서 영국의 식민 지배가 인도 사회에 대해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 부정적인 면은 자본주의 체제의 팽창된 모습으로서 제국주의가 갖는 착취이다. 이 경우 영구 제국주의는 피식민 사회의 공공 복리나 미래에 대한 준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원주민의 노동과 원자재를 착취한다. 영국의 인도 식민지 경영이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피식민지에 대한 어떠한 긍정적 정책고 없이 착취로 일관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은 마르크스가 영국 제국주의의 인도에 대한 긍정적 효과를 말하는 점이다. 마르크스는 영인도 식민 시대 이전의 인도 사회가 고대의 노예제 생산양식이 유지되는 봉건적 생산양식의 중간쯤 되는 아시아적 생산양식이 유지되는 역사 발전 단계에 있다고 본다.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란 중세적 촌락 공동체의 경제 활동을 영위하면서도 서양 중세의 영주가 사유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중앙 국가가 토지를 소유하여 세금의 형태로 생산에 종사하는 층을 착취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주장은 이러한 정체된 아시아적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인도의 전통적 경제 공동체를 영국의 식민 체제가 사유 재산 제도의 정착을 통하여 붕괴시킴으로써 인도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로 발전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영국의 인도 지배를 원활히 하기 위해 구축했던 철도망과 원주민의 서구식 교육, 전신, 인도 군대의 영국식 훈련 등은 적당한 반식민 민족 해방 전쟁의 시기가 도래했을 때 해방 운동의 결정적 견인차 역할을 행할 수 있기 때문에 궁극적인 의미에서 영국의 식민 체제가 인도의 역사발전에 기여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물론 인도의 전통적 신분 제도를 타파하려 했던 기독교 복음의 전파와 식민지 경영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의도에서 행해졌던 피식민인 교육, 미망인을 남편의 장례의식 때 같이 불에 태워 죽이는 사티의식을 금지하는 등의 개혁조치는 일단은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또한 인도의 독립 운동의 관점에서 볼 때 식민 체제가 가설한 철도와 전신망에 의한 인도 대룍의 통합, 인도 용병의 신식훈련과 무기 사용법, 군대 조직, 평민 교육 등은 궁극적으로 영국 식민 체제가 그들을 위하여 마련한 여러 통제 수단을 인도인이 거꾸로 이용할 가능성을 열고 있었다. 이는 새로운 인도 국가를 건설할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주장대로 우리가 현재 상태이든 궁극적이든 식민 체제를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반식민적 입장에서 식민 체제를 논의할 때에는 마르크스 역사관 자체에 의문과 반기를 들어야 한다. 그 반대 논리를 펼쳐야 하는 것이다. 즉 마르크스 역사관에서 문제되는 것은 그것이 서구의 영속적인 비서구 세계의 지배를 합리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마르크스는 역사를 노예제 생산양식에서 봉건적 생산양식으로, 그리고 다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라는 식으로 일종의 직선적인 역사발전 과정을 거치며 진보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따라서 인도의 아시아적 생산양식이 영구 제국주의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 변환 편입되는 것은 인도가 전세계 자본주의 체제로 편입되는 것으로, 따라서 혁명의 과정을 거쳐서 나타나게 될 사회주의적 생산양식의 과정을 거쳐 궁극적으로 공산주의 사회로 발전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이러한 역사관을 받아들일 때에는 역사 발전 과정에서 뒤쳐져 있는 비서구 세계는 끊임없이 서구 세계의 발전 과정을 답습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얘기가 된다. 말하자면 비서구 세계의 서구 세계에 대한 종속적 편입이 정당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일 때에는 식민 체제에 의해 행해지는 당대 현실의 억압 및 착취가 용인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문제가 있다. 더 나아가 마르크스의 식민 역사관의 연장인 레닌의 제국주의론 역시 문제적이다. 여기에서 레닌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마지막 단계로 보고 곧 종식될 단계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제국주의 체제는 현재도 지속되고 있으며 그 붕괴는 요원하다.
마르크스의 식민론에서 또 다른 문제점으로 그가 식민 체제의 운용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을 들 수 있다. 식민체제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의한 봉건적 또는 아시아적 생산양식의 대체의 문제가 아니라 식민 통치의 지속이, 그리고 이로 인한 식민지의 경제적 이용이나 착취가 주요 목적이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1857년 이후의 영인도를 영국 제국주의가 손쉬운 식민 통치를 위해 인도에서의 역사 발전을 방해하였다. 결국 식민 체제는 역사 발전의 문제가 아니라 예속국으로서의 경제적 착취가 문제이다. 그 예속 국가가 역사 발전 양식에 따라 발전하는지 또는 그 발전이 방해받는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4. 사이드의 동양론 비판
식민주의를 비판하는 전통적인 이론적 틀로 마르크시즘을 든다면 1980년 이후의 식민주의 비판의 이론적 틀로 에드워드 사이드를 선두로 한 식민주의 담론 비판을 들 수 있다. 사이드가 『동양론』에서 밝히고 있는 것은 식민주의 내지 제국주의적 사고가 서구 문명의 역사이며 서구의 물질 및 정신문화에는 비서구 세계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이드는 이러한 서구 문명을 구성하고 있는 ‘동양’의 정체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사이드가 『동양론』에서 밝히고 있는 것은 서구 담론에서의 ‘동양’이라는 정체가 지리적,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현실상의 동양에 대한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서구의 담론 체계 내에서 서구 세계에 대한 ‘다른’ 것으로, 즉 서구 세계가 우리 또는 자아라면 동양은 그들 또는 타자로서 재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의 ‘우리’가 우수, 남성, 이성, 질서 등의 긍정적 가치를 갖고 있다면 ‘그들’인 동양은 열등, 여성, 감정, 혼돈 등의 부정적 가치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동양론』에서 사이드는 세 가지로 동양론을 정의한다.
첫째는 학문으로서의 동양론이다.
동양에 대해서는 가르치거나 연구하거나 저술을 하는 모든 사람이-그가 인류학자이든, 사회학자이든, 역사가이든, 또는 문헌학지이든-또 특수 분야에 종사하든 동양의 일반론을 얘기하든, 동양론자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이 행하는 것이 동양론(Orientalism)이다.
둘째는 동양의 다름에 근거한 사고방식을 말한다. 이는 학문으로서의 동양론이 작용하는 방식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동양론은 ‘동양’과 ‘서양’이 존재론적 인식론적으로 구별된다는 사고의 표현법을 말한다. 따라서 상당수의 저술가들이-시인, 소설가, 철학자, 정치학자, 경제학자, 식민지 관료 등- 동양과 동양인, 동양의 풍습과 정신, 운명 등을 다루는 정교한 이론, 서사, 소설, 사회 견문기, 정치론 등의 출발점으로서 동양과 서양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동양론은 심지어 아이스킬로스, 위고, 단테, 마르크스가 동양을 논할 때도 유용하게 수용되었다.
셋째는 제국주의 체제에서의 힘의 우열에 근거한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논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는 첫째와 둘째의 학문으로서의 동양론이 작용하는 방식이 제국주의 시대에 실현된 현실 정치에 작용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로서의 동양론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동양론을 크게 보아 18세기 후기를 시발점으로 하여 동양을 다루기 위한 동업 조합인 제도로 논의하고 분석할 수 있다. 즉 동양에 대한 진술을 하고 동양에 대한 시각에 권위를 부여하고 동양에 대해 묘사하고 가르치고, 동양 세계의 틀을 잡아주고 지배함으로써 동양을 다루기 위한 제도를 말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동양론은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고 그 세계에 권위를 행사하기 위한 서양의 사고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18세기 이후로 구체화시킬 때의 서구의 동양관과 고대로부터 18세기까지의 동양관은 구별할 필요가 있다. 즉 제국주의가 구체적인 정치적, 경제적 힘으로 동양에 대하여 작용하기 시작할 때의 동양론과 그렇지 않을 때의 동양론은 차이가 있다. 현대적 의미의 제국주의는 18세기 말엽부터 식민지 정부가 직접 식민지를 경영하기 시작할 때 본격화되었다. 이를 전환점으로 그 이전의 동양론은 크게 보아 서구의 자기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한 존재론적, 인식론적 필요에서 비서구 세계를 타자로, 첫째 정의의 학문적 의미에서든 둘째 정의의 동양에 대한 광의의 시각 또는 진술이든, 보고 있었던 것이다.
식민 이데올로기의 이중의 작용 중 첫째는 이것이 서구인에게 적용하는 경우이다. 제국주의 체제가 비서구 세계에 직접 개입하기 전에는 서구의 동양론이 서구인 스스로의 정체를 확립하기 위한 인식론적, 존재론적 의미에서의 이분법적 사고이나 군사력, 정치력, 경제력의 우열에 근거해서 서구 세계가 비서구 세계에 개입하기 시작할 때에는 그 이분법적 사고는 제국의 팽창정책을 고무하고 합리화하는 기능을 한다. 비서구 세계가 야만과 혼돈과 악의 세계라면 문명과 질서와 선이라는 서구의 긍정적인 가치가 비서구 세계에도 확산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며 이를 수행하는 것이 서구 세계에 맡겨진, 소위 ‘백인이 갖는 문명화의 사명’이다 여기에서 서구의 비서구 세계에 대한 침략의 정당성이 확보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식민 이데올로기가 식민화의 대상이 되는 비서구인에게 적용되는 경우이다. 식민지 정복은 초기에는 무역이나 선교, 탐험 등의 활동이 앞에 나설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서양의 군사력의 우위에 바탕을 둔 무력을 사용해서 비서구의 전통적인 가치 체계를 붕괴시킴으로써 출발한다. 이 경우 원주민의 전통적인 가치 체계에 의한 이데올로기적 저항이 어느 정도 발생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혼란의 과정이 지나고 나면 서구 가치 체계의 우월성이 원주민에게 받아들여진다. 여기에서도 서구/비서구 또는 식민 지배자/피지배자의 차이다 우수성/열등성의 차이라는 식민 이데올로기가 작용하데 되는데 이때에 식민 이데올로기는 식민 체제의 정당성을 원주민에게 주입시키는 기능을 한다.
사이드는 마지막으로 동양론 작용에서 담론 영역에 대해 논의한다. 동양론이라는 서구 담론이 역사상 상당한 기간에 걸쳐 작용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동양론이 재현되는 동양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때, 특히 서구의 식민 통치가 전통적인 동양론에서 제시하는 동양인을 다루어야 하는 방식으로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할 때, 동양론은 위기를 맞는다. 사이드는 이런 위기에 나타나는 동양론을 설명하면서 서구의 동양론이 내재적 동양론과 명시적 동양론으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19세기의 식민지 정부가 직접 원주민을 통치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동양의 모습은 특수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특수하게 다변화된 모습(명시적 동양론)일 뿐이고 근본적인 동서양의 이분법적 구별은 변화지 않는다는 것이다(내재적 동양론). 그러나 인도 식민 경영인들은 동양론의 전통이 잘못됐으며 동양론적 시각이 인도 통치에 별 효과가 없었음을 인식하였다.
동양론이라는 담론 영역은 식민 체제를 유지하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하기는 하지만 또한 식민 저항이 수행되는 장이 되기도 한다. 식민 담론에서 구성되는 피식민인이 실재의 비서구인과 다르다는 점만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식민 저항담론을 구성할 수 없다. 동양인이 악하고 야만적이라는 동양론을 의식해서 사실은 선하고 고유의 우수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거나 제 3세계 국가에서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것이 지배 집단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면(예를 들어 유신체제 하의 자주민족주의 표방) 이러한 것은 식민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식민 이데올로기 비판의 장을 회피함으로써 이데올로기적 식민 담론의 지배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5. 식민지 지식인의 역할
식민 체제는 서구의 식민지 경영인을 지배자로 비서구인을 피지배자로 상정함으로써 유지되는 체제이다. 이러한 식민 체제에서 식민지 경영인과 피식민인 사이에는 질서/무질서, 남성/여성, 인간/자연 등의 서로 넘을 수 없는 존재론적, 인식론적 장벽이 있으며 더 구체적으로는 의사소통 수단으로서의 언어라는 장벽이 있다. 제국주의는 ‘문명화의 사명’이라는 이름으로 이 두 간격을 좁히려는, 다른 말로 하면 서구의 가치 체계로 통제할 수 없는 이 타자를 자아의 틀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기획이다. 이러한 기획에서 식민 체제는 이 넘을 수 없는 두 간격을 이어줄 교량을 필요로 한다. 식민지 교육이란 바로 이러한 간격을 메우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식민지 경영인인 소수의 영국인들이 직접 수백만의 식민지 백성을 접촉하면서 통치 할 수는 없기 때문에 행정적 편의를 위해서 인도인 하급 관리가, 그리고 영어와 식민 이데올로기 교육을 위해서 인도인 교사들이 식민지 경영인을 보조할 집단으로서 필요했다. 그러나 통역 계급의 기능을 하도록 교육받는 선발된 원주민들은 단지 식민 모국의 언어만 교육받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가 표방하는 서구의 우월한 가치, 즉 서구의 자유, 평등, 세계 보편적 휴머니즘 등의 사상도 동시에 교육받기 때문에 이 계층은 처음에는 선발된 집단으로서의 특권에 만족할지 모르나 시간이 지나면 식민지 지배 집단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이에 불만을 갖게 된다(동등한 대우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는 식민 체제의 지배/피지배 관계를 붕괴시키기 때문이다).
통역계급의 식민 저항은 단지 개인적인 출세욕의 좌절에서 오는 것만이 아니라 식민 체제의 자체 모순에서 시작된다. 제국주의의 식민지 경영의 정당화는 역사 발전에서 서구의 선도적 역할로 전세계의 문명화, 즉 세계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종간의 차이를 상정하는 지배/피지배 관계는 그러한 기획에 어긋난다. 세계 제국이라는 보편주의와 식민 모국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인종주의 내지 국수주의는 서로 화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순을 드러내는 장이 바로 역설적이게도 식민 교육의 장이며 식민지 모순을 드러내는 행위자가 바로 식민지 교육을 받은 통역 계급인 것이다. 통역 계급은 다른 말로 하자면 식민지 지식인을 말한다.
피식민인은 힘의 관계에서 벗어나서 복원될 수 있는 어떤 실체도 아니고 이러한 식민 관계가 청산되었을 때 나타날 해방된 새로운 형태의 어떤 민족이나 사회로 상정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과거 복원적 또는 미래 지향적인 정체 인식은 현재에 작용하는 식민 관계를 한시적으로 파악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식민지 지식인은 피식민인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식민 체제와 피식민인 집단 사이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식민지 지식인은 식민지 교육 때문에, 다른 말로 하면 이데올로기적으로 식민 체제의 한 위치를 이미 점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 스스로를 식민체제의 피식민 집단에 곧바로 편입시킬 수 없다. 말하자면 그는 식민 지배와 피지배 사이의 중간이라는 긴장의 영역에 속해 있다. 이런 중간 지점이야말로 식민주의 이데올로기가 피식민인에게 작용하기 시작하는 지점임과 동시에 또한 이데올로기적 저항이 가능한 지점이기도 하다. 문제는 우리의 정체를 식민/피식민 관계에서 나타나는 지배/피지배 관계로 인식할 때만이, 그리고 식민 체제 하의 피식민 집단 출신의 식민지 지식인은 이러한 모순 관계에서 그 모순을 의식하면서 그 모순을 드러내는 것을 자신의 사명이라고 인식할 때 식민 이데올로기의 피식민 집단에 대한 조작과 주입에 맞설 수 있다. 이러한 긴장의 장이 식민 저항의 장이며 식민 저항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다. 식민 저항은 숨겨진 식민 이데올로기의 작용을 드러낸 밝히는 데서 시작하며 이러한 작업은 식민 지배 체제와 피식민 집단 사이의 중간에 위치한 식민지 지식인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