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든 사랑을 아이에게

by 방정민

내 모든 사랑을 아이에게(『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울리히 벡, 엘리자베트 벡-게른샤임 저, 강수여․권기돈․배은경 역, 새물결, 1999)


고도로 산업화된 나라들에서는 1960년대 이래 출생률이 급격하게 감소해 왔다. 최근에 와서는 전통적인 ‘아기’의 나라 이탈리아가 독일보다 출생률이 낮다. 20세기 후반에 와서 아이에 대한 사랑은 부모노릇을 다룬 잡지와 육아 관련 책들의 주제나, 부모들이 올바른 방법을 취해서 아이를 최상급으로 기르라고 지시하는 가르침과 교육적인 충고에 홍수를 이루고 있다. 애정은 권장할 만하지만, 단 적당해야 한다. 지나친 애정이 아이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이의 관계에서 꿈과 갈망은 무엇이며, 의무와 부담은 무엇인지, 과거와 현재, 미래에는 이 관계가 어떨지 알아보자.


아이 바라기


산업화이전 사회에서 아이는 경제적인 이유에서 긴요했는데, 그들은 집과 들에서 부모를 도왔으며, 나이든 부모를 돌보았고 재산과 성을 대물림했다. 부유한 계층에서는 아이들이 상속자로서, 그리고 지참금 소유자로서 재정적으로 중요한 요소였다. 따라서 아이들은 대체로 환영받았고 이따금 열렬히 아이를 원했다는 점, 첫 아이거나 아들일 경우에 특히 더 그랬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

20세기 후반의 결혼은 더 이상 불가분하고 불가피한 부모노릇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변화는 부분적으로 경제와 관련을 갖는다. 산업화로 인한 부산물로서 경제적 단위인 가족이 해체되자, 아이를 갖는 것의 재정적 이점들은 점차 사라지고, 대신에 그에 따른 비용이 증가했다. 그 이후 ‘축복받는 자식에서 짐스러운 자식으로’라는 말로 요약되는 격심한 변화가 있었다.


의미 있는 경험으로서의 자식과 자아


오늘날의 남녀는 어떤 물질적 이점을 염두에 두고 아이를 갖기로 결심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정서적 욕구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다른 동기들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 아이들은 주로 ‘심리적 효율성’을 갖고 있다. ‘심리적 효율성’은 아이가 부모사이를 가깝게 해 준다거나 상향이동에 대한 그들의 희망이 좌절되었을 때 그 자리를 채워 주는 것으로 나타난다. 인구학 보고서에 따르면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점점 뿌리내림과, 의미로 가득한 삶에 대한 희망과 연결되어 있는 동시에 아이와의 긴밀한 관계에 기반을 둔 ‘행복에의 요구’와도 연관을 갖는다는 것을 뜻한다.

산업화에서 현대로 넘어오면서 결혼관계에서 뚜렷이 나타났던 변화는 마찬가지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도 분명히 나타났다. 모두 개인 간의 관계는 덜 경제적으로 되었으며, 그 대신에 더욱 개인적이고 사적으로 되었는데, 이에 따라 모든 희망과 이해관계들의 변화가 수반되었다. 사회화에 대한 연구에서 지적하듯이, 삶의 객관적 기반이 무너져 갈수록 세대 간의 관계에서 더욱 더 ‘상상적인 것’이 뚜렷해진다. 성인은 어린 시절이나 청년기를 실현되지 못한 ‘유토피아적 꿈의 영사막’으로 사용한다. 이런 경향은 자식 간에 상호작용하는 방식에서 볼 수 있으며, 또한 그보다 오래 전에 부모노릇과 연결되어 있는 소망에서도 나타난다.


고도 산업사회에서 사람들은 항상 합리적이고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규율에 따라 행동하고 또 성공하도록 길들여진다. 아이는 이와는 반대로 삶의 ‘자연적’ 측면을 나타내는데, 이런 점이 바로 큰 호소력을 갖는 것이다. 전적으로 아이에게 바치는 것은 삶의 인지적 측면을 거스르는 것을 그리고 영혼을 파괴시키는 그 모든 삶의 뻔한 일과에 대한 살아 있는 평형추를 발견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여성은 이렇게 말한다. “아이에게서 얻는 그처럼 생기있는 에너지와 즐거움을 또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현대 유럽인들은 자유를 선고받았다. 그는 고향을 상실했다. 아이를 갖고 돌보고 부양하는 일은 삶에 새로운 의미와 중요성을 부여해 줄 수 있고, 사실상 개인의 사적 존재의 핵심이 될 수 있다. 다른 목표들이 임의적이고 상호교환 될 수 있는 듯하고 내세에 대한 믿음은 사라지고 현세의 희망이 덧없어진 바로 그곳에서, 아이는 단단한 발판과 가정을 발견할 기회를 준다. 가족계획에 관한 스위스의 한 연구에 따르면 아이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주된 목적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특히 교육을 거의 받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삶의 본질이 되어가는 것이 사회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있는 집단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부모들은 뭔가 정박할 곳을 찾고 있으며, 세상의 지도가 끊임없이 변해가고 있는 동안 어딘가 속해 있다는 느낌을 갖기 위해서 ‘핏줄을 얻으려고’ 아이를 가지려 하는 것이다.


아이를 사랑하기 위해서 아이를 갖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나만의 인생’은 과거에는 남자들에게만 영향을 주었던 개인화된 사회의 한 양식이었는데, 이제는 여성들에게도 확산되고 있다. 이것이 아이 갖는 것을 어렵게 하는 장애들 중에 하나다. 아이 갖기를 어렵게 하는 다른 이유는 부모에게 요구되는 것들이 급격히 많아졌다는 것인데, 부모노릇은 갈수록 점점 더 많은 책임을 요하는 일이 되었다. 아이에게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기를 기대하면 할수록 부모는 아이갖기를 계획하고 있는 중이라도 더 더욱 오래 기다리게 된다. 아이가 학교에 가거나 직업훈련을 받는 오랜 기간 동안 드는 잡비 역시 만만치 않게 되었다. 이러한 기준들은 대중매체가 유포하고 있으며, 폭넓게 전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새로운 규칙은 “현대인은 그들이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정도만큼만 아이를 가질 수 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책임을 잘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조지침서들이 강조하는 바에 따르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를 기르는 일은 ‘위대하고 책임있는 임무’라는 사실이다.

양육이 요구하는 개인적 조건들에 적합한가? 나는 아이가 제대로 발전하는 데 필요한 내적 자질들을 갖고 있는가? 만일 그 대답이 부정적이라면 결과는 틀림없이 아이를 갖지 않기, 혹은 적어도 아직은 안 된다는 것이다. 아이를 갖고 키우는 기준이 높아짐에 따라 이에 대한 의사결정의 새로운 패턴을 인식할 수 있다. 그것은 ‘책임있는 선택: 아이 갖지 않기’로 알려져 있는데, 말하자면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이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른바 특이한 나선형 효과가 진행중이다. 즉, 아이들이 줄어들수록 더욱 아이들 하나하나가 소중해지고 그 아이에게 더 많은 권리가 주어진다. 아이가 더욱 중요해지고 비용이 들수록, 사람들은 이 거대한 과업에서 갈수록 뒷걸음질치고 아이 없이 지내기로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책임질 수 없어 아이를 갖지 않는 것이다.


아이 갖기 계획


아이 갖기에 미리 계획해야 할 필요성은 갈수록 여성의 생활과 어머니노릇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 개입해 들어온다. 장래의 어머니는 무엇보다도 모든 것을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고 그런 후 정말로 확실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유는 아이를 갖는 일은 과거에는 자연스러운 것이었지만 이제는 의식적으로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계획에 따른 결과물이며, ‘고안된 출산’이요 ‘두뇌출산’인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어떤 여자는 “그녀가 정말로 아이를 원할 때는 그는 ‘아직은’이라고 말한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사물을 정신차려 보는 것을 의미해. 당신은 어떤 미래를 아이에게 주고 싶은 거지? 미래는 없어. 아이들은 이미 충분할 뿐 아니라 지나치게 많아.”라고 한다.

아기를 맞을 준비-임신 전 여자가(때로 남자도)해야만 하는 일


미래에 태어날 아이의 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면 제대로 먹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의학이 새로운 지평을 향해 큰 걸음을 내딛음에 따라 고려해야 할 새로운 요소들이 등장한다. 한 건강 상담가는 이렇게 제안한다. “임신 초기부터 최상의 건강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임신 전에 철저한 건강검진을 계획하는 것이 좋다” 혹은 일찌감치 “임신을 계획하기 전이라도 유전자 상담을 받는다면 훨씬 좋다” 가능한 최상의 조건에서 임신을 계획하려면 전문가의 조언을 받는 것은 권장할 만한 것이다.

사례는 더 있다. 한 여성 잡지에 실린 ‘임신 카운트다운’이란 표제하의 프로그램은 임신 6개월 전에 시작하는 이상적인 임신 전 관리를 제안하는데, 그 제안은 두 파트너 모두의 검진과 다양한 혈액검사와 혈압검사, 균형잡힌 식사에 대한 정보, 알콜과 흡연, 약물을 삼가고 스트레스를 피하는 것 등을 포함한다.


태어나지 않은 아기: 다치기 쉬운 생명체


임신 준비기에 온갖 종류의 예방조치들과 보호처리가 요구된다. 의학적 진보, 특히 산전 연구 분야에서의 진보가 두드러진다. 임신과 출산 사이의 9개월간에 대한 아주 상세한 연구는 전에는 막연했던 태아의 원시적 상태에 대해 이제 총천연색 사진으로 첫 세포분열의 시작부터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모습까지를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우리는 태아가 어떻게 성장하고 영양섭취와 신진대사가 어떻게 기능하며 어떤 외적 요소들이 모체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추적할 수 있다. 이것이 핵심이다. 그런 영향들을 통제할 수 있으려면 태아를 품고 있는 여성들은 일련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 여성의 건강이 아니라 아이의 건강을 위해 엄마에게 금지되는 음식의 블랙리스트가 작성되는 것이다.

임신 중인 엄마는 알콜, 커피, 검은 홍차와 니코틴, 육류와 소시지를 삼가야 한다. 또한 임신한 여성은 연성치즈와 반연성치즈, 살균처리가 되지 않은 치즈, 날고기와 돼지고기를 먹어선 안 된다. 아이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이다. 임신 중이 아니라면 해롭지 않을 이러한 세균들이 태어나지 않은 아기에게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리스테리아는 뇌에도 영향을 미쳐서 발작이나 수막염, 조산 혹은 선천적 결함을 낳을 수도 있다. 톡소플라즈마 역시 일반적으로는 엄마에게선 발견되지 않지만 ...... 아이에게는 해로울 수 있다.

이상적인 예비 엄마는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에게만 관심을 집중하고, 따라서 그에 따라 삶도 바꿀 것이 요구된다. TV 드라마를 보는 것마저도 아이의 앞날에 해로운 것으로 판명될지 모르며 따라서 보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출산계획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는 작가 키칭어는 ‘스스로 출산계획 세우기’를 도와준다. 전자 심장모니터를 사용하는 것에서 경막마취와 전신마취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신톡시논 주사의 사용까지. 묻고 싶은 질문들은 아마도 “분만 과정을 모니터하는 기계장치로는 어떤 것을 비치해 두었는가(초음파, 심음도, 태아두피 전극장치)이거나 또는 정기적으로 이 기계들을 사용하는가”일 것이다.

임신은 자연적인 사건일지 모르지만 20세기가 저물어가는 지금 자연은 더 이상 우리가 부여한 의미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은 대체로 전문가의 손에 놓여 있다. 경험적 지식은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있어서 여성은 경험있는 친구와 이웃에게 귀를 기울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즉시 의사에게 문의를 하고 그가 제시하는 것을 따르고 그 밖의 다른 것들은 하지 않아야”한다. 이 점에서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이 분명하다. 의사는 임산부에게 아버지나 남편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여담: 사랑, 책임감, 불확실성에 휘말려서


요즈음 부모들은 ‘부모노릇 매니아’라는 신종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로 묘사된다. 가장 감염되기 쉬운 부류는 고등교육을 받았고 도시에 살며 첫 아기를 꽤 나이들어 낳고자 하는 중간계급 여성들이다. 새로운 부모되기’는 극소수에만 해당되지 않으며, 교육수준이 높은 여성들이 이에 포함되어 이런 경향은 갈수록 뚜렷해진다. 많은 여성들은 한 아이 가정을 원하고 ‘노산모’가 될 때까지 어머니되기를 미룬다. 이런 현상들에는 몇 가지 요인들이 있다.

◎ 불안전감: 현대인은 안락한 둥지와 자연스럽고 정당하다고 간주되어 온 둥지의 안전한 법칙들로부터 자신이 추방당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 책임의 원칙: 세상이 나빠질수록 더욱 더 부모들은 그들의 아이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것으로 기대된다.

◎ 상호모순된 조언: 전문가, 권위자, 정신과의사들이 서로 충돌하고 경쟁하면서 서로 모순되는 의견들이 일어났다 사라지곤 한다.


의무적인 산전 진단


산전 진단은 안전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유도한다. 그것은 확실히 부모들 자신의 이해관계, 장애아 때문에 겪게 될 스트레스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하는 소망을 고려하는 것이지만 그와 똑같은 정도로 역시 ‘아이의 이익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유전자 비밀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운명의 문제였는데 이제는 가능하면 예비 부모들이 피해가야 할 문제로 바뀌었다. 변화는 산전 진단과 함께 생겨났다. 이제 ‘잠정적 임신’이란 것이 존재한다. 예비어머니는 그녀의 임신을 내심 일정하게 유보한다. 아이에 대한 사랑은 당연히 부모가 아이의 유전적 자질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기꺼이 할 수 있는가로 측정될 것이다.


아이 바라기: 환자로서의 부모지망자들


임신을 하지 못하는 커플이 늘고 있다. 현대의학이 이들에게 가능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호르몬 처치에서 시험관 수정이나 급속냉동 난자와 정자은행을 사용하는 인공 배란까지 그 방법이 다양하다. 여성들에게 이런 처치는 정서적으로 매우 강력하게 영향을 주며 정서적인 애착을 낳게 한다. 각각 새로운 단계가 완성되어 가면서 커플은 그들의 목표, 즉 아이를 갖는 것에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

기술적 진보는 언제나 새로운 기회와 새로운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을 제공해 왔지만, 이것은 동시에 사람들에게 제공된 기회를 이용하라는 정서적, 정신적 압력, 때로는 사회적 압력을 가해 왔다. 시술이 성공적이지 않은 커플들은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시술받았던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런 노력이 그들의 결정을 정당화하고 심지어 그들을 다소 안심시킨다. 그들은 사회가 그들에게 기대하는 것을 수행했으며 바로 그 사실이 그들에게 중요한 것이다. 그들은 아이를 사랑하는 것을 단념하지는 않는다.


부모와 아이: 전혀 새로운 영역


아이는 대단한 기쁨의 원천으로 부모들에게 새로운 전망을 열어 주고 그들의 마음속에 강렬한 감정을 일깨우며, 부모의 삶을 목적과 의미로 강화시키고, 그들에게 하나의 정서적 닻을 제공해 준다. 지난 시절 가족이라는 하나의 경제 공동체를 갖는 것과 비교하면 현대의 부모되기는 정서적 만족이라는 면에서 대단한 소득을 선사하는 것이다.

산업화 이전에 부모들은 아이에게 관심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다. 아이에게 일어나는 일이란 신의 손에 달린 것이었다. 이런 태도는 아이가 18, 19세기에 점차로 그들 나름의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 여겨지기 시작하고 나서야 비로소 변화했다. 그러나 19세기 말까지 종교적인 믿음과 전통적 태도는 흔들림없이 여전했고, 따라서 많은 사람들에게 아이 기르기는 당연지사였고, 세대를 거쳐 정해져 내려온 규칙을 따르는 것일 뿐이었다. 20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종교는 영향력을 상실했고, 전통은 밀려났으며, 계급과 지위에 기반한 공동 생활의 패턴은 무너지고, 사람들은 공동선이라고 불렸던 어떤 것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된다. 현대인들은 그들의 운명을 자신의 손에 쥐게 되었고, 여기에는 그들 자식의 운명도 포함되었던 것이다. 이제 전문가들이 기대하고 충고하는 것은 아이에게 가능한 최상의 출발점을 제공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이가 책임있는 시민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특별한 관심과 보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19세기에 시작되었지만, 그와 같은 생각은 1950, 60년대에 이르러서야 추동력을 얻게 된다. 심리학, 의학, 교육 분야에서의 새로운 진보들은 아이의 미래가 어떤 모양새일지를 보여주었다. 한때는 운명으로 참아내야 했지만 이제는 교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960년대 심리학 연구는 일생의 첫 몇 년간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그때 제대로 돌보지 않는 것은 아이가 발전할 기회를 잃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였다. 경제적 부유, 정치적 지원 등 모든 요소들이 부모들에게 그들의 본분을 다하라는 압력을 가하는데 일조했다. 더 이상 아이를 그저 있는 그대로, 아이의 신체적, 정신적 특성이나 결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아이 그 자체가 부모들의 노력이 집중되는 중심이 되었다. 결점을 교정하고 특기를 기르고, 아이의 능력을 증진시키라고 매혹적으로 제의하는 완전히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고, 심지어 이런 선택지들은 부모들에게 새로운 의무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특히 대부분 엄마들은 그들이 아이를 위해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괴로워하면서 아주 안하기보다는 차라리 너무 많이 하려고 한다. 필요한 것은 정보만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적용하는가이다. 이는 육아노동을 의미하는 것인데, 요즘 가족은 역사상 유례없이 육아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신이 내려준 선물이든 때로 원치 않았던 짐이었던 자식은 이제 무엇보다도 돌보기 힘든 사람인 것이다.


사랑의 교과목


모성적 사랑은 전문가가 제공하는 것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대중잡지뿐 아니라 과학 저술에서도 감정은 아주 중요한 것으로 지적된다. 즉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의무이다. 특히 엄마의 사랑에 대해 ‘소유욕이 있고, 희생적이고, 적대적이고, 지배하려 들고, 순종적이고, 애정을 갈망하거나 마음내키지 않아 하는 사랑’에 대해서 경고한다. 애정 지표는 적정한 수준을 유지해야 하고 폭발적인 잠재력을 통제할 수 있게 맞추어져야 한다.

사랑의 라이벌


‘아이들은 결혼을 결합시킨다. 아이는 서로에 대한 우리 사랑의 징표이며 맹세이다.’ 이 말들은 아이를 갖겠다는 바람과 흔히 연결되는 생각들이다. 하지만 실제로 부모되기는 복잡한 과업이 되었으며, 결혼은 균형잡힌 행위이자 탄력성의 테스트가 되었다. 딜레마는 분명하다. 아이에게 에너지를 쏟아 부을수록 파트너에게 남겨지는 것은 점점 적어진다. 결국 아이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가족생활의 결과는 갈등과 아이가 남긴 찌꺼기뿐이다.


사랑이 지나칠 때


아이에 대한 이기적인 소유욕으로 “내 아이는 나보다 더 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아이를 생각하는 것만이 아니라 대부분 그/그녀 자신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학대받는 아이가 늘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역설적으로 반증한다.

핵가족이 과도하게 정서적으로 되어가고 소규모 가족 내의 분위기는 위험할 정도로 과열되어 있다. ‘부부는 결별할 수 있지만 아이와는 이혼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부모는 아이를 사랑한다’고 진술하지만 이는 사랑이 있는 곳에 적대감이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 사랑과 적대감은 우연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변화의 결과로서 연결되어 왔다. 높은 희망과 결합된 사랑은 사라져 버리기 쉽고 급속히 쓰디쓴 실망과 잔인함으로 빛바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통찰을 억누르고 싶어 한다. 사랑은 우리의 위대한 성 중의 하나이며 남자와 여자,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의 기반이지만, 우리는 사랑의 어두운 측면이 없이는 사랑을 얻을 수 없다. 사랑의 어두운 면은 때로는 잠시 동안 나타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몇 년간 좀체로 사라지지 않는다. 실망과 쓰라림, 거부와 증오심, 천국에서 지옥으로 가는 길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짧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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