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암소를 타고
저녁 어스름을 먹으며 나타나는 암소는
검다
세상이 온통 검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검어진 세상에는 구멍이 없어
암소는 숨을 쉴 수가 없다,
날카롭게 빛났던 한낮의 밝음이
자신의 몸을 베어 암소에게 내어주면
비로소 세상은 고요한 검은 허공을 만들고
암소는 작고 긴 숨으로 세상을 비운다.
허여히 검어진 세상에 검은 암소를 타고
남은 세상 내가 쉴 곳을 찾아보지만
내가 왔던 그 곳은 이미 가득 차 있고
내가 머물 이 곳엔 마음 하나 흘러가지 못하니
가난하고 또 가난해져 갈 곳 조차 잃어버리면
오직 나는 나로 인한 나를 허공에 태워버릴 것이다,
그러면 검은 암소의 울음소리가 길을 형성하고
막혔던 생의 자궁에 맑은 물소리 흘러가니
다하지 못한 내 삶의 시간은
흘러 비워서 갈 곳을 지워버린다.
검은 암소를 타고
길고 오래된 천지 속으로 들어간다
아침이 되어도 세상은
검다, 그윽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