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놀이

by 방정민

가면 놀이


‘미국발 세계 경제 불황으로 한국 경제도 본격 침체기로 접어든 가운데 실질 가장이…’

세계 경제 위기 전부터 일찌감치 실직한 나는 계속 방콕으로 TV만 보다가 그것도 지겨워 참으로 오랜 만에 아침 일찍 공원으로 운동하러 나갔다. 새벽 공기가 몸에 좋지 않다는 터무니없는 의학지식을 비웃으며 새벽공기를 폐 속 깊이까지 들여 마시고는 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으악, 저 멀리서 웬 일군의 괴물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아줌마 괴물들이었다. 큰 선캡을 얼굴 깊숙이 눌러 쓰고 이상한 마스크에 복면까지 착용하며 운동하는 아줌마 괴물들. 어찌 보면 우습기도 하고 어찌 보면 안쓰럽기까지 한 가면놀이.


어릴 적 가면놀이를 한 적이 있다.

가면을 쓰고 남의 집 창문 깨고 도망가기.

가면을 쓰고 남의 집 빨래 더럽히고 도망가기.

가면을 쓰고 여학생 치마 들추고 도망가기.

가면을 쓰고 약한 아이 때리고 도망가기.

가면을 쓰고 지나가는 사람 놀래키고 도망가기.

가면놀이가 너무 재밌어 저녁까지 가면을 쓰고 있다가 퇴근하시며 집에 들어오는 아버지를 놀래키려 하다가 되려 죽도록 맞았다.


그때는 몰랐었다. 아버지가 왜 그토록 나를 때리셨는지. 가면은 쓰기 위해 있기도 하지만 벗기 위해서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면은 써야하는 타이밍도 중요하지만 쓰지 말아야 하는, 즉 벗는 타이밍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 아줌마들은 어떤 가면놀이를 하고 있는 걸까. 누구를 괴롭히기 위해, 자신을 감추기 위해, 세상의 폭력으로부터 안전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 있는 지도 모른다.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놀이인지 알 수 없으나 언젠가는 가면을 벗어야 하는 놀이이거늘. 언제쯤 이 가면을 벗을 수 있을까. 세상의 빛이 두려워 쓰고 있는 저 아줌마들의 가면. 나는 또 얼마나 많은 가면을 쓰고 있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고 있는 걸까.


언제쯤 이 가면을 벗을 수 있을지 그 옛날 아버지의 야단과 회초리가 그립다. 날이 완전 밝았는데도 푸른 하늘은 보이지 않았다. 오염된 공기가 이제야 복통으로 나에게 신호를 보낸다. 그런데 훌쩍 커버린 나는 어디로 (도망)가야 할지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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