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
최근 영화 <국제시장>으로 말이 많다. 한 평론가의 과도한 정치적 해석을 시작으로 실제 정치인인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의 설전까지 이어지고 있다. 과연 그럴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물론 영화는 감독의 시대와 이념에 대한 시각이 들어가기 좋은 예술장르라, 이것이 자칫 정치적 해석으로 회자될 수는 있다. 그래서 영화는 시대의 산물이라는 평가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예술 분야다. 그러나 이 영화를 진정 이념으로,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영화인가, 라고 반문한다면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단호하게 대답할 수 있는 영화다. 일단 영화 자체(주제나 메시지, 감독 의도 등)에 시대와 이념에 대한 정치적 견해가 드러난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고 둘째,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윤제균 감독은 철저한 상업영화 감독이지 영화를 이념과 시대(정치)의 산물로 보는 감독은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를 해석하는 것은 보는 사람 마음이지만 지나치게 한쪽으로만 확대 해석해 쓸데없는 논란을 일으키는 것은 말 그대로 불필요한사회적 비용일 뿐이다. 홍보가 되니 제작사는 좋아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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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재현하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기억나는 것을 되도록 있는 그대로 되살리는 방식이다. 이때에는 씨줄로 할지 날줄로 할지만 선택하면 된다. 또 하나는 위에서도 말했듯 재현하는 사람(영화에서는 감독)의 분명한 사고(이념이나 시대비판, 사회적ㆍ정치적 메시지 등)를 반영하여 기억을 되살리는 방식이 있다. 이때에는 일정부분 허구가 오히려 역사적 사실보다 더 중요하게 다뤄지기도 한다. 그런데 영화 <국제시장>은 전자의 방식으로 기억을 되살리고 있고 그것도 날줄로, 즉 시대를 관통하며 그 시대의 대표적인 사건에 가상의 인물을 대비시켜 이 시대의 아버지를 되살리고 있다. 5,6년 전부터 부성애가 시대적 유행코드였는데, 영화는 이런 시대적 흐름에 맞춰 잘 짜여진 영화다.
이북 출신 덕수(황정민)는 한국전쟁 때 아버지(정진영)와 어머니(장영남), 그리고 동생들을 데리고 피난을 떠나다가 아버지를 잃고 동생을 놓쳤다. 이제 아버지 대신 어머니와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된 것이다. 부산 국제시장에 정착한 덕수는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자신의 꿈과 희망을 모두 포기한 채 오로지 가족만을 위해 산다. 여기에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을 겹쳐 놓는다. 개인적으로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국가적으로는 산업화를 위해 파독 광부로 나가게 되고 여기서 영자(김윤진)를 만나 사랑하게 되고 결혼까지 한다. 그러나 또 가족을 위해 베트남 전쟁에 뛰어들게 되고 결국 총에 맞아 다리를 절게 된다. 80년 초 이산가족 찾기 방송에서 덕수는 옛날 잃어버린 동생을 기적적으로 찾는다. 덕수의 행보에는 항상 그의 친구 달구(오달수)가 동행하게 된다.
영화는 철저히 상업적 측면으로 만들어졌다. 한 평론가가 비평한 문제의 장면인,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모든 사람들이 하던 일, 가던 길도 멈추고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장면(이런 모습은 87년 민주화가 되기 전까지 계속 됐다.) 또한 적절한 유머코드로 이용하고 있는데 이를 두고 박정희 시대 때의 향수로 해석하는 건 지나친 비판이다. 또한 시대를 다 다루려 하다 보니 무리한 시도가 나오는데, 이런 것을 고려하면 바로 이 영화가 철저히 상업영화이지 시대적 이념을 담은 영화로 볼 여지는 거의 없음을 알 수 있다. 가령, 베트남 전쟁 장면에서는 덕수의 나이에 맞지 않자 덕수가 군인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돈 벌러 가는 사람(외화벌이)으로 나온다. 거기다가 친구도 동행하게 되는데 현실성이 거의 없는 장면이다. 오로지 부성애를 다루기 위해 억지로 장치한 장면들이다. 그러나 관객들의 웃음과 울음은 적절히 뽑아내고 있으니 작전에는 성공한 듯하다. 또한 실존 인물들(김우중, 앙드레 김 등)로 분한 사람들이 중간 중간에 배치되어 까메오로 나오는데 웃음을 자아내기 위한 감독의 재치다. 이것 또한 감독의 역량이라면 역량일 것이다.
힘든 시대일수록 아버지를 찾는다고 한다. 모성도 일종의 이데올로기라면 부성애는 더욱 이데올로기이다. 물론 이념과 상관없는 시대와 인간 감성을 관통하는 부모님의 마음은 있겠지만 이것이 다분히 위정자나 자본계급자들의 계산에 의한 이데올로기로 활용된 측면이 크다. 가령, 요즘 드라마를 보라. 엄마가 자신의 아이를 버리고 심지어 나중에 자신의 자식임을 알았음에도 학대하고 질시한다. 이런 자식을 보듬고 알뜰히 온갖 정성으로 키우는 것은 바로 아버지다. <왔다 장보리>, <소원을 말해봐>, <장미빛 연인들>, <가족끼리 왜이래>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런 내용은 80년대만 해도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만약 이런 내용이 80년대에 드라마로 방송되었다면 아마 전국의 어머니들이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를 뭘로 보냐고 비난하면서 방송국을 초토화시켰을 것이다. 그런데 왜 지금의 엄마들은 가만있을까? 이것이 바로 모성과 부성도 이데올로기라는 것의 증명인 셈이다. 현실 속 어머니는 실제 자신의 삶을 위해 자식을 버리기도 하고 죽이기조차 하기 때문이다. 일부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다분히 신화적인 요소가 결합된 모성과 부성이 사회와 국가의 이데올로기에 헌신(?)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특히 가족주의가 강하게 남아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모성과 부성이라면 모든 게 용서되고 눈물을 흘리기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부모님의 희생을 강요한다든지, 자신의 잘못을 과장한다든지 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 위정자들은 이런 가족 이데올로기를 이용해 자신들의 정치적 야욕(정치적 무관심이나 전체주의적 사회 등)을 달성하는 것이다.
아무튼 모성과 부성을 가장 쉽게 다룰 수 있는 장르가 바로 드라마이거나 영화인데, <국제시장>은 이런 현 시대의 흐름(이데올로기)을 잘 읽고 부성애를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힘든 시기 왜 아버지만 이렇게 희생해야 했는지, 그러고도 자식들은 늙은 아버지를 왜 자신들의 아이들을 돌봐줄 보모정도로만 여기는지, 왜 최근에 우리 사회는 부성애를 이렇게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본질적인 질문은 이 영화에 전혀 없다. 그냥 힘들고 지치니까 아버지를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잘 살게 된 것이 모두 아버지의 희생 덕이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너무나 안이한 생각이요 주장이다. 이처럼 이 영화에 이데올로기가 있다면 감독의 시대에 대한 진지한 통찰이 아니라 최근 우리사회에 유행이 된 문화적 코드(이것도 이데올로기이다)인 부성애를 그대로 상업적으로 차용하고 있는 정도라는 것이다.
물론 나도 이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찔끔 흘렸다. 생전의 아버지에게 효도를 못한 나도 반성하게 되었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무척이나 보고 싶었다. 영화 말미 주인공의 말처럼 ‘이만하면 저 잘 살고 있는 거죠?’, ‘그런데 저 진짜 힘듭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힘든 시대, 어려운 시대일수록 아버지를 찾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여기에 또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지 반성해봐야 한다. 왜 어려운지, 왜 부성애를 찾는지 말이다. 진정한 모성이 무엇인지 진정한 부성애가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고 단순히 시대적 유행처럼 그것을 찾았다간 막장 드라마처럼 그 모성이나 부성이 언젠가는 짜증날 때가 올 것이다. 이 영화에는 이런 진지한 성찰이 없다.
개인 별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