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전」 연구

열전으로서의 「온달전」과 설화로서의 「온달전」 비교분석

by 방정민


「온달전」 연구

-열전으로서의 「온달전」과 설화로서의 「온달전」 비교분석-


목차

1. 머리말

2. 傳의 시각에서 본 「온달전」

1) 『삼국사기』 열전의 특징과 「온달전」의 입전 의도

2) 「온달전」의 가치체계

3. 설화적 시각에서 본 「온달전」

1) 평강과 온달의 자아실현 양상

2) 여성 주체성 탐색과 여성성의 의미

4. 나오는 말


1. 머리말


「온달전」은 『삼국사기』 편찬자인 김부식이 열전에 수록해 놓은 작품이다. 『삼국사기』 열전은 정사의 일부로서 인물들의 전기이다. 본기서술과 대립되는 열전서술은 한 인간형을 구체적으로 표출할 수 있다는 묘사적, 표현적 특징으로 말미암아 후대문학의 전범이 되었다. 이에 『삼국사기』는 역사서인 동시에 훌륭한 하나의 서사문학으로 존재할 수 있다. 본 연구의 대상인 「온달전」 역시 『삼국사기』 열전 중의 하나로 역사기록으로서의 열전적 성격과 함께 문학으로서의 설화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논의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온달전」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여 논의를 정리하고 비교분석해 볼 것이다.

먼저 「온달전」을 온달과 평강 공주간의 결합을 현실적인 맥락 아래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역사 사료 또는 전 양식을 부각시킨 관점으로서의 연구이다. 이기백은 「온달전」의 내용을 설화인 부분과 역사적 사실인 부분으로 식별하고, 고구려의 귀족사회를 규제하고 있었던 계층적인 신분질서가 통혼권을 통해서 변화되고 있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석하였다. 결국 「온달전」은 고구려 사회에서의 신분제적 통혼권이 그 범주에 있어서 무너져 가고 있는 현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추론했다.

진재교는 「온달전」을 파악할 때, 설화나 역사사실이라는 두 편향된 범주로 인식하는 것은 올바른 접근 태도가 아니며 열전과 전기라는 두 범주를 염두해 두어야 한다고 본다. 즉 「온달전」도 기본적으로 사료에 의지해 입전한 것이며 설화성이 강한 것은 김부식이 참조한 원사료에 묻어 나온 것으로 본다. 따라서 「온달전」의 문학사적인 위상을 전기적인 색채가 농후한 傳으로 파악한다.

김창룡은 온달이 엄연한 정사의 기록인 『삼국사기』의 열전 안에 수용되어 있는 인물인 만큼, 「온달전」은 온달이라는 실존 인물의 사실 존재 및 행적의 바탕이라는 씨줄 위에 설화적 형상화의 가미라는 날줄의 구조로 되어 있다고 보고, 설화로 형상화되기 이전의 설화 안쪽에 있는 사실적 언어를 해석해 내야 한다고 한다.

다음으로 「온달전」을 설화적 관점에서 파악하는 입장으로 대부분 구전설화인 발복설화의 한 유형으로 보는 것이다. 성기열은 구전설화 ‘숯구이 총각과 생금장’과 문헌설화의 온달설화, 무왕설화 등의 자료를 같은 계열의 이야기로 파악하고 역사지리학과의 관점에서 한국의 온달, 무왕계 설화가 同流해서 일본의 炭繞小五郞설화로 변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임재해는 ‘내복에 산다’ 설화의 변이형을 무왕형 설화로 포괄하고 이 유형의 이야기는 여성의 능력에 대한 긍정적인 신뢰가 적극적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또한 ‘내복에 산다’ 설화를 온달형 설화로 포괄하고 주체적인 삶을 개척하려는 의지를 갖춘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이르러도 이를 극복하고 자기의 의지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김대숙은 구전설화인 발복설화와 온달설화, 서동설화가 모두 집을 나온 여인이 미천한 남편을 성공시킨다는 데 초점이 있다고 보아 같은 유형으로 보고 있다. 즉 주인공이 집을 나와 고생 끝에 성공하고 헤어졌던 가족과 화합을 이루며 분리와 시련 그리고 재회의 단계를 주인공의 이니시에이션 과정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 외 「온달전」을 서사구조로 분석한 연구, 전승양식과 현대적 변용을 분석한 연구, 인물분석을 통하여 가치체계를 논의한 연구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다만 이 논의들은 위에서 밝힌 「온달전」을 傳으로서의 연구와 설화로서의 연구 안에 포섭되는 것이다. 다만 그 범주 안에서만 논의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어서 따로 분리, 열거해보았다.

2. 傳의 시각에서 본 「온달전」

1) 『삼국사기』 열전의 특징과 「온달전」의 입전 의도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 23년(1145)에 왕명으로 김부식 등이 편찬한 책으로 이보다 앞서 고려 초에 편찬된 『구삼국사』 등의 사료와 중국 측 사서 등을 참조하여 유교적 가치관의 보급이라는 효용론적 문학관에 의해 집필된 正史이다. 『삼국사기』의 편찬 의도는 안으로는 사회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과 밖으로는 투철한 국가의식을 강조함으로써 후세에 권계를 주고자 한 것이다.

『삼국사기』에서 문학적 텍스트가 될 수 있는 것은 열전이라는 형식인데, 열전은 기본적으로 실제로 활동했던 인물들의 역사기록이지만, 열전이라는 점에서 문학작품으로서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열전은 기전체의 말미를 장식하는 개인전기이다. 따라서 저자의 주관이 가장 많이 반영될 수 있는 부분으로서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와 비판이 아울러 나타난다. 『삼국사기』 열전에서는 다양한 인물들을 선택하고, 그들의 행적을 서술하면서 사건의 현장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그러므로 사람의 일생에 대해서 구체적인 관심을 가지고 그 서술방식을 갖가지로 모색한 열전은 역사와 문학의 거리를 충분히 좁히고 있다.

『삼국사기』 편찬에서 김부식이 의도한 것은 국가를 위한 충의의 강조이다. 이는 열전 입전 49명 중 26명을 무인으로 구성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삼국사기』 열전은 구석구석에서 강렬한 국가의식과 유교 도덕의 준수를 제창하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不仁者나 學民者의 필연적 멸망을 지적하였음은 특기할 일이다. 이는 49명 중 21명이 멸사봉공이나 위국충절을 위해 열국한 사람의 전기라는 점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즉 『삼국사기』의 열전은 주로 위국충절 중심으로 한 인물을 크게 앞세워 난세를 극복하려는 정신적 교훈을 강조하고 있다.

『삼국사기』 열전의 다른 특징은 주인공들의 삶에서 발견되는 비극적 서술이다. 입전된 인물 중 행복한 삶을 영위한 인물들도 있지만 개인적 자질에도 불구하고 운명적 비극을 감수하고 최후를 맞이하거나 시대적 환경에 의해 좌절하고 소외되는 인간상들이 열전에는 더욱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이런 구성은 열전이 윤리적 가치의 앙양이라는 뚜렷한 찬술의도를 지니고 있음에도 그 미적 범주에서 비극적 숭고미를 바탕으로 함을 의미한다. 이런 비극적 서사는 「열전」의 이야기들이 문학적으로 변용되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더욱 확대시켜주는 결과를 가져온다. 문학이 희극에서보다 패배와 고통을 감내하고 좌절하는 비극적 서사를 통해 더 큰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왔다는 사실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문학의 쾌락적 기능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점에서 『삼국사기』 「열전」의 문학성은 논의의 가치를 지닌다.

고려 인종 시기에는 국가나 귀족 세력들에 의해서 분열되고 혼란을 겪으면서 외부적으로는 금나라와 송나라와의 사이에서 외교적 분쟁에 휘말리며 내부적으로는 왕권이 미약해지고 정국이 불안정하였다. 인종의 경우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왕권의 기반이 미약하였다. 또한 외척세력에 의해 왕이 되었기에 외척에 의존하고 상당한 권력을 허용해 주어야만 했다. 그 중심에 있었던 이자겸은 손자가 되는 인종으로 하여금 자신의 딸들을 왕비로 맞아들이게 하였다. 인종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보인다. 그러나 이로 인해 이자겸은 권세가 더욱 커지고 결국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묘청의 난 역시 인종이 대외적으로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기존의 정치세력이 아닌 새로운 세력을 등용하여 왕권을 강화하려고 하였으나 실패로 돌아감으로써 묘청의 난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었다. 국가가 귀족세력들에 의해 분열되고 혼란을 겪으면서 금나라와 송나라 사이에서 외교적 분쟁에 휘말리고 미약해진 왕권으로 인하여 정국이 불안정했던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비교하여 보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온달전」은 귀감이 되는 사료였던 것이다.

2) 「온달전」의 가치체계


열전은 인물과 사건을 교훈적이고 실제적인 역사서술의 대상으로 인식함으로써 기록문학으로서의 서술자의 입전의도와 서술의도, 즉 개성가치의 표현이 중요시된다. 이때 작가의 가치화와 의지는 규범적 인간상을 창조하는 것이다. 편찬자 김부식은 「온달전」에서 백성의 행동규범 중 忠, 信, 義의 윤리관을 강조하는 방편으로 열전의 기본되는 편찬의도를 삼았다. 이 忠, 信, 義, 孝와 같은 가치관은 결국 중세적 가치관을 대변하는 것으로 「온달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갈등구조는 곧 그들이 지닌 삶의 양식이나 가치관 사이의 갈등이요 대립인 셈이다. 따라서 「온달전」을 傳의 시각으로 볼 때 편찬자 김부식의 가치관이 고스란히 들어있다고 봐야 한다. 그 가치관을 본 연구에서는 중세적 가치관으로 명명하고 살펴보고자 한다.

『삼국사기』 열전에 나타난 가치관을 중세적 가치관으로 볼 때, 중세적 시각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하는 문제를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면서 살아갔던 인물이 「온달전」의 주인공이다. 전자의 물음은 주어진 삶에 대한 가치 판단을 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가치기준에 대한 물음이라면, 후자의 물음은 주어진 삶에 만족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가치 있는 삶을 찾는 경우에 제기되는 가치판단에 대한 물음이다.


따라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은 삶의 지향성을 밝힌다는 점에서 모든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문제인데, 삶의 지향점을 밝힌다는 것은 ‘삶의 양식’에 윤리적인 가치 판단을 개입시킴으로써 바람직한 삶을 영위하게 함을 말한다. 이렇듯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물음은 자신이 현실적으로 취할 수 있는 여러 행동 중에서 어떠한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라는 답변뿐만 아니라 때로는 심적인 태도의 측면에서도 어떤 의지나 마음가짐 등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변을 요구한다. 물론 이 두 물음은 당연히 유교적 가치기준과 가치판단에서 나오는 것일 것이다.

「온달전」에는 온달과 온달모, 평강왕과 평강공주가 등장한다. 먼저 온달과 온달모의 경우를 살펴보자.

온달은 고구려 평강왕 때의 사람이다. 용모가 비루하여 웃을만하나 마음은 밝았다. 집안이 몹시 가난하여 항상 밥을 빌어 어머니를 봉양하였고, 찢어진 옷을 입고 헤어진 신발을 신고 시정간에 돌아다니니 그 당시의 사람들이 보고서 바보 온달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묘사는 바로 온달이라는 인물의 인간상과 그 인물의 심리까지 설명해주고 있다. 집안이 몹시 가난한데다 용모도 못생겼으나 마음은 밝았다는 것은 미천한 인물인 온달의 낙천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의식주의 사정이 이러한 온달입장에선 심리적으로 박탈감을 느끼고 정서적 자극을 야기 할만도 하다. 그러나 온달은 정서적 자극이나 심리적 충격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마음이 밝았다고 했다. 뒤에 나오지만 평강공주를 대하는 온달의 모습은 오히려 보통사람의 이상 그것으로 결코 바보가 아니다. 온달을 바보라고 한 것은 그의 용모에서 기인한 것일 뿐, 온달의 경우는 심리적 충격이 없으니 갈등도 없다. 어쨌든 온달은 아주 가난하고 비루하게 살면서도 자신의 처지에 대해 괴로워하거나 비관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남루한 차림으로 시정을 돌아다니면서 어머니를 봉양하고 있다. 전형적인 효라는 중세적 가치를 내세워서 백성들을 교화하고자 하는 편찬자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다음은「온달전」에서 온달 모자의 삶의 현장을 구체적으로 서사하여 극적인 현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다.


이에 공주는 보물 팔찌 수십 개를 팔꿈치에 매고 궁궐을 나와 혼자 길을 가다가 ~(중략)~ 노모가 대답하기를 “우리 아들은 가난하고 또 추하여 귀인이 가까이할 인물이 못됩니다.” ~(중략)~ 온달이 성을 내며 “이는 어린 여자가 행동할 바가 아니다.


위 대목은 온달전 전체의 1/4을 차지할 정도로 다른 대목보다는 비교적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이에 비해 미천한 인물인 온달이 공주와 결혼한 뒤 뛰어난 능력을 획득하는 과정은 관심이 큼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이 상대적으로 소략하게 서술되어 있다.

공주는 온달에게 이르기를 “절대로 시장 사람의 말을 사지 말고 꼭 국마로서 병들고 파리하여 내다 파는 것을 사오도록 하시오” ~(중략)~ 말이 날로 살찌고 건장해졌다.


온달 모자는 문면에 드러난 외형적 묘사와는 달리 정반대의 성격과 선명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온달은 궁을 뛰쳐나온 어린 공주를 합리적인 언변으로 꾸짖고 설득할 정도이다. 온달모는 시각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공주의 신분을 쉽게 파악하는 예지를 지니고 있으며, 온달과의 결연을 바라는 공주를 논리적으로 설득할 정도이다. 한 마디로 온달과 온달모는 굶주림을 참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굴러온 행운을 탐하지 않고 자기의 분수를 알아 냉정히 거절할 줄 아는 인물인 것이다.

온달 모자는 가난하고 미천한 신분이지만 자신의 주어진 삶에 성실하고 요행이나 과욕을 부리지 않으며 자기 생활 윤리에 충실한 체제 순응적인 인물이다. 그들은 사회 안정을 위해 신분질서를 중시한 유교의 예법을 철저히 따르고 있는 것이다. 주어진 자신의 신분에 충실하면서 순응하는 것이 유교의 예법이라 할 수 있는데, 중세적 가치인 이것을 「온달전」 편찬자 김부식이 백성들의 행동규범으로 삼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의도에서 온달 모자의 삶의 현장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평강공주가 궁을 나와 온달을 찾아 결연하는 대목이 다른 대목보다 비교적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는 것도 이 점과 무관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孝, 弟, 忠의 유교적 윤리는 김부식 당대의 시대정신이었다. 그러므로 『삼국사기』는 이런 유교적 형식윤리를 강조하는 입장에서 기술된 史書라 하겠다. 따라서 평강공주가 상부고씨에게 시집가라는 부왕의 명을 따르기를 거부한 그 자체만을 문제 삼는다면 효의 정신에 위배된다. 그러나 등가적 가치 사이에서 그 어느 하나의 선택을 강요받는 경우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孝와 信이라는 유교적 가치들이 서로 상충할 때는 고민이 깊어지는 것이다. 물론 유가는 효를 기본가치로 상정하고 있는 사상임에는 분명하다. 효에서 시작하여 弟, 忠, 信으로 나아가는 것이 유가사상의 기본이다. 어쨌든 등가의 가치인 효와 신을 「온달전」에서는 어떻게 해결하는지 살펴보자.


대왕께서 항상 말씀이 ~(중략)~ 필부도 식언을 하지 않으려 하거늘 하물며 지존이겠습니까? 그러므로 허언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대왕의 명령은 잘못된 것이오니 소녀는 감히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평강공주는 자신의 결혼을 둘러싼 부왕과의 갈등을 단순히 부녀간 갈등으로 보지 않고 왕의 신의를 문제 삼고 있다. 그녀는 ‘아버지, 아바마마’라는 말을 한번도 쓰지 않고 ‘대왕’, ‘지존’, ‘王者’라는 객관적인 용어를 쓰고 있다. 이 말은 필부라는 말과 대립관계에 있다. 그녀는 부녀간, 가족간의 사적인 정의라는 차원이 아닌 국가사회의 신의라는 공적인 차원에서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효와 신이라는 유가의 두 가치의 충돌이 일어나는데 이 두 가치의 충돌을 말미 부분에서 충이라는 가치로 편찬자는 해결한다.


공주는 효와 신의라는 두 가지 가치체계 중에서 한쪽만을 선택하고 있지 않다. 본문의 속뜻은 공주가 내세우는 신의의 실현에만 있지 않다. 본문(「온달전」)은 신의라는 하나의 가치체계를 선택함으로써 효라는 다른 가치체계를 완전히 배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결말부분에서 충이라는 가치체계로 해소하게 만든다. 즉 전반부에서는 신의가 강조되고 있지만 본문의 종국적 선택은 순국하는 온달의 숭고한 정신을 통해 충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온달전」의 본뜻은 순국을 통한 충에 있는 것이다.

작품의 전반부에서 온달은 현실 순응적으로 주어진 대로 삶을 살아가며 자신의 처지에 따른 도리(또는 예)를 실천하고 있는 인물이다. 물리적 삶을 유지하기 위한 본능적 의지에 따라 살아갔다. 그러나 후반부에서는 윤리적 가치, 즉 충의 실현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의식적, 목적적 지향의지를 보여준다. 외적으로부터 국가를 수호하려는 것이 화급한 시기에 백성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를 온달은 순국을 통해 극명하게 보여 준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중세적 가치인 유교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김부식이 절묘하게 배치한 결과인 것이다.

3. 설화적 시각에서 본 「온달전」

1) 평강과 온달의 자아실현 양상

「온달전」을 온달설화라고도 하는데, 평강과 온달 이야기는 서로가 서로에게 자아실현의 기회를 북돋아 주며 삶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 줌으로써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이 장에서는 「온달전」을 설화적 관점에서 분석해 봄으로써 어떤 의미가 있으며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온달전」을 傳의 시각에서 보면 중세적 가치관에 가까운 교훈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에 비해 「온달전」을 설화적 관점으로 보면 우리는 여기서 사회체제나 환경에 의존적인 삶을 살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살며 자아실현을 하고자 하는 근대적 가치에 가까운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설화적 관점은 재해석 과정에서 무한히 재생산될 수 있으며 현대적으로 변용되어 많은 근대적 가치와 교훈을 우리에게 준다.

평강은 울보에다 고집쟁이라는 결점을, 온달은 바보에다 가난뱅이라는 결점을 각각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평강은 고집스럽고 생활력 강한 성격을, 온달은 약간은 우유부단하고 어리숙한 성격이라는 차이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그런 자신들의 결점을 결점이라 생각지 않고 결점에 맞서 나감으로써 성공적인 삶을 가꿀 수 있었다.

자아실현이란 남과 다른 나만의 소질을 개발해 내는 것이다. 자기다움의 완성이 자아실현이라는 말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인간은 5가지의 기본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욕구 충족은 하위 욕구에서 상위 욕구로 단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욕구단계설을 주장한다.

온달은 평강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생리적 욕구, 사회적 욕구 등이 불충분한 상태였다. 그러나 평강에 의해 존경의 욕구와 자아실현의 욕구에 이른다. 평강 자신은 사회적 욕구 이하를 갖추고 있었지만, 부왕에 의해 존경의 욕구를 거부당하게 되고, 이는 출궁의 계기이면서 동시에 온달을 다듬는 과정에서 자신도 자아실현의 욕구에 도달하고 있다.


온달설화에서 평강과 온달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괴로워하거나 그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환경이나 문화에 순응하는 듯하면서 동시에 그 환경을 극복하고 이겨나가려는 성향이 강하다. 특히 자신들의 콤플렉스를 받아들이고 개척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런 성향이 두드러진다. 온달은 어려서부터 집안이 가난하지만 비뚤어지지 않고 맑은 마음의 소유자였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도 않았지만, 남들의 시선에 연연해하지도 않았다. 이런 성격으로 인해 온달은 평강을 만나고 나서 신분상승과 함께 자아실현을 하게 된다. 평강은 부왕에게 대하는 태도에 비추어, 허위와 진실을 구별하고 자기의 신념이 강한 여자다. 출궁 후에 행하는 과정 속에서는 자기의 신념을 위해 어려움을 자처하고 문제에 봉착했을 때 스스로 해결해나가는 성향이 강하다. 심지가 굳으며 자신이 옳다고 믿으면 실행하는 고집스런 면이 있는 성격의 소유자다. 결국 이런 면으로 인해 평강은 주어진 환경이나 타인의 말에 의존적으로 따르지 않고 스스로 삶을 선택하여 자아실현에 이르게 된다.

전반부에서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평강은 전체의 구동점이 되고 있지만, 사람들에게는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사회적 욕구를 구비한 평강보다는 이런 욕구들이 결핍된 온달이 이를 극복해 내고 자아실현에 이르는 과정을 더욱 흥미진진했을 것이다. 그래서 평강설화가 아닌 온달설화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아실현에 이른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는 평강과 온달 모두가 자신들의 결점을 보완해 가며 서로의 자아완성을 이루어낸 동반자요 협력자라 할 수 있다. 온달은 평강이 할 수 없는 일-사냥대회에 나가 실력을 인정받고 후주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장수로서의 기질-을, 평강은 온달이 갖지 못한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힘, 총명함을 주어 각자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보완함으로써 자아실현의 조력자이면서 완성자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온달전」을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개인의 자아실현이라는 근대적 가치로 본다면 평강공주의 자아실현 양상이 뚜렷하다. 비록 공주로 태어났어나 부모의 말대로 정략결혼을 하지 않고 자기의 의지대로 남자를 만나 사랑을 쟁취하려는 모습 자체가 근대적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부나 권력을 쉽게 세습하려고 하는 경향은 어느 시대 어느 사람에게나 있는 성향이다. 그러나 평강은 이런 보수적 성향의 사람이 아니었다. 편안한 생활과 삶을 포기하고 자신이 개척하는 삶을 살아간다. 이런 점에서 진취적이고 근대적인 가치를 실현하는 여성이라 할 수 있다.

평강이 궁을 나와 온달을 찾아 끈질기게 온달과 온달모를 설득하는 장면 또한 자기의 삶을 자기의 의지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자기주체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 장면에서 평강은 ‘진실로 마음을 같이 한다면 어찌 반드시 부귀한 후에야 함께 지낼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며 부귀가 결혼의 전제 조건이 아님을 설득한다. 현대에도 부와 신분이 결혼의 전제조건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부와 직장과 사회적 지위는 그 사람의 인격이 되었으며 그런 외적인 조건으로 사람을 평가한다. 결혼 또한 예외는 아니다. 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부와 직장과 학력은 최고의 배우자를 만나기 위한 전제조건이 된 지 오래다. 조건을 사랑하고 조건이 맞는 사람끼리 서로 만난다. 이런 점을 비교해 봤을 때 평강의 모습은 진정한 의미의 자아실현이 무엇인지 현대인에게 깨달음을 주기에 충분하다. 외적 조건이 아닌 그 사람의 사람됨과 진실함을 보려고 한 평강의 태도는 오늘날 현대인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생각이 옳다면 포기 않고 끝까지 상대방을 설득하는 모습도 근대적 의미의 자아실현을 위한 적극적인 태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온달에게 시장 사람들의 말을 사지 말고 병든 국마를 사오라고 한 것과 그 말을 살찌워 온달을 훈련시킨 후 사냥 대회에서 돋보이게 한 점은 상황을 잘 파악하는 논리성과 앞일을 대비하는 치밀성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모든 것을 갖춘 평강은 결국 자신의 의지대로 실천해 자아실현을 달성하고 있다.

온달 또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열심히 삶을 살았다는 점에서 쉽게 좌절하는 현대의 젊은이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평강과의 결합 후 평강의 지시를 잘 따랐다는 것도 자신보다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으면 설령 여자이고 아내라 할지라도 그 말을 존중하고 수용하였다는 점에서 보수적인 조선의 남자와는 대조적이다. 이는 자신의 재능을 언제 어디서 부려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사람이 결국 자아실현하게 된다는 점에서 온달 또한 근대적 의미의 자아실현형 인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냥대회와 후주와의 전쟁에서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는 것은 그만큼 때를 기다려 능력을 키워왔다는 점에서 미래의 자아실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인간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거기에 적극적으로 영토를 회복하려는 의지는 자아실현의 극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는 인간형이라면 굳이 죽을 위험이 높은 전장에 나가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온달은 그러지 않았다. 권세와 위엄이 있는 자신의 편안한 위치를 박차고 전장에 나섰다. 결국 죽음으로 그 생을 마감하지만 군인으로서 끝까지 험한 길조차도 마다하지 않는 온달의 모습에서 자아실현의 정점을 확인할 수 있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자신의 현재 모습에 만족하지 않고 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이야말로 현대인들이 배워야 하는 진정한 의미의 자아실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 여성 주체성 탐색과 여성성의 의미


「온달전」은 온달보다 평강공주가 주동적 인물에 놓여있다. 「온달전」의 모든 행위의 동기는 평강에게 있다. 평강의 주도적 행동은 출궁과 특출한 능력에서 엿보인다. 이런 평강의 모습은 「온달전」이 「내 복에 산다」형 설화를 차용한 것임을 짐작케 한다. 그래서 평강의 모습에서는 「내 복에 산다」형 설화의 여성적 특징이 드러난다. 구비 설화의 전승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여성이 부친과 신랑감을 두고 갈등하고 스스로의 의지로 남성을 찾아 결국 행복해진다는 것에 있다. 즉 구비설화의 주제의식은 여성의 주체적 행동에 있다. 여성의 지혜로움으로 인해 남성과 여성 모두 행복해진다는 것은 「내 복에 산다」형 설화의 하위갈래에 이 설화가 함께 거론되는 근거가 된다.

「내 복에 산다」형 설화의 특징은 부친과 딸의 대립과 여인의 쫓겨남, 여인의 남자 선택, 여인에 의한 부의 축적, 행복한 결말 등이다. 그러나 「온달전」이 「내 복에 산다」형 설화와 다른 점은 평강의 출궁이 쫓겨난 것이 아니라 그녀 스스로 궁을 나왔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는 점, 평강이 출궁 때 가져나온 금이 온달家를 부유하게 한다는 의미가 없다는 점, 결국 온달이 죽음으로써 입신양명과 충성이라는 유교적 가치를 강조한다는 점 등이다. 그런 점에도 불구하고 「온달전」은 설화적 모티프를 채용함으로써 평강의 주체적 결단과 삶이 대단히 강조되어 있는 작품이다. 부왕인 아버지와의 결별을 단행하면서까지 남편감을 탐색하는 평강의 모습은 지금도 보기 힘든 여성의 주체적인 삶이요 곧 근대적인 여성(요소)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온달과 온달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주의 신분에도 아랑곳없이 싸리문 밖에서 자면서까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장면은 이 작품이 신화에서 영웅설화의 모티프로 내려왔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즉 평강의 모험과 그 고생담이 짧지만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 영웅탄생의 통과의례인 셈이다. 통과의례를 잘 마친 평강은 비록 내조이긴 하지만 ‘말고르기 담’에서 영웅으로서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안목을 가지고 험난한 고행길을 통과하고 자기의 의지를 실행하여 최고의 말로서 남편인 온달을 최고의 무사로 키우는 것이다. 약탈경제를 기반으로 하고 기마민족인 고구려에게 말은 신성한 동물이다. 병든 말을 준마로 키우고 동시에 남편을 최고의 무사로 성장시킨다는 것은 그만큼 평강의 지혜로움이 대단하고 능력이 신기하다는 뜻이다. 「온달전」이라 제목을 명명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온달전」에서 온달은 평강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여성의 주체적인 삶과 실천이 중요한 모티프로 차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온달전」을 설화로, 그것도 여자영웅의 설화적 모티프로 볼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평강공주와 부왕의 대결을 ‘여성의 주체적 삶의 가능성 제시’라는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가부장에 저항하는 여성의 모습이 너무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온달전」을 남성가부장에 대항하는 여성의 주체성 찾기라는 지나친 해석으로 변질될 수 있다. 남성과 대결하는 여성의 주체성만을 강조하는 초기 페미니즘 시각이 아닌, 주변부에 있는 모든 존재를 감싸 안고 그렇게 하여 인류의 잘못된 남성위주의 이성질서를 뒤집어 새로운 생명의 질서의 탄생을 의미하는 사회적 페미니즘 시각으로 해석하면 「온달전」의 설화적 분석에 새로운 시각을 줄 수도 있다.

니체는 ‘진리는 여성이다’, ‘그것은 곧 존재다’라 하였는데 존재의 세계는 생성 소멸하며 변화해가는 생성의 세계, 우주적 순환의 이치를 담고 있는 생명의 세계를 말한다. 니체에게 진리란 인간이 살기 위한 하나의 거짓된 참의 세계, 즉 인간이 살기 위해 필요한 하나의 픽션의 세계다. 따라서 이성의 언어로 포착하는 진리란 생성에 존재를 각인하여 언어로 표현한 논리화, 합리화, 체계화의 결과물일 뿐, 자연의 생기 과정 그 자체에 대한 기호는 아니다. 따라서 그에게 존재의 세계란 고정 불변하는 이성적 언어로 기호화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생기하고 변화하는 생성의 세계이다. 여기에서 진리의 여성적 성격은 나온다. 생성, 생명, 부활 등 세계 내 모든 존재는 우주의 순환원리에 따라 생성하고 죽음으로써 자연에 회귀하는 인류 신화의 원형을 여성의 성격에서 찾을 수 있다.

「온달전」을 온달 설화의 전승양상으로 보고 평강공주가 지니고 있는 여성성의 의미로 분석하면 한국인의 시조기원, 창세신화들이 여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모계사회의 원형적 우주기원, 인류기원, 문화기원 신화소들의 변이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평강은 여성의 생성과 변화의 화소를 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평강의 배우자 선택과 시련극복이라는 화소는 바로 신화적 인류기원 화소에서부터 출발하여 생성과 부활과 번성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 절정은 온달의 죽음에서 보인다.


드디어 나가 신라 군사들과 아단성 아래에서 싸우다가 흐르는 화살에 맞아 넘어져서 죽었다. 장사를 지내려는데 널이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공주가 와서 관을 어루만지면서 말하였다. “죽고 사는 것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아아 돌아갑시다!” 드디어 들어서 하관하였다.

온달의 죽음 화소는 전설적 비장미를 표출하고 있다. 일반적 해석으로는 온달의 영구가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을 온달의 조국에 대한 충성심을 상징하는 것으로,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한 영웅의 통한을 표현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 화소(장면)를 생명과 생성, 부활을 관장하는 여성신으로서 상징화된 평강으로 재해석하면, 그녀가 온달의 관을 어루만지면서 ‘사생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아아 돌아갑시다.’하며 관을 어루만지는 평강의 의식 안에는 인간의 자연성, 인간의 우주기원, 자연회귀 등 원형적인 삶의 통찰이 들어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한 인간이 미천하게 태어나 이를 극복하고 영화와 영광을 누리는 영웅이 되었으나 결국 비통한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은 카오스와 코스모스에서 다시 카오스로 순환하는 우주의 원리(역사성)를 반영하고 있다. 이 운행 원리를 돕고 연결하는 사람이 바로 평강인 것이다.

꿈쩍도 않던 관이 평강이 어루만지자 움직이는 장면은 설화적 모티프를 더욱 가미시켰는데, 이 ‘돌아갑시다’ 회귀화소는 우주기원 신화나 인류기원 신화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인간이 태어나기 전의 세계, 시간과 공간이 생기기 이전의 무시간, 무공간의 세계는 존재의 영원성을 상징하고 있으며 초인간적인 신들의 세계이다. 그래서 무속의 신을 공간성과 시간성을 초월하여 코스모스 밖인 무공간과 무시간의 혼돈 카오스에 있는 영원존재라고 한다. 평강이 ‘돌아갑시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귀의처는 바로 카오스의 세계일 것이며 이런 점에서 평강을 무속의 여신 내지 무속 그 자체로 볼 수 있기도 하다.

따라서「온달전」을 진정한 의미의 여성성 추구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생성과 부활, 카오스와 코스모스의 순환이라는 우주적 기원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볼 수도 있다. 이는 여성성이 신화, 설화적 공간에서 생명, 자연을 의미하는 것이며 우주 만상을 유지하는 근원적인 힘으로 신성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 내 모든 존재, 또는 우주 내 모든 존재는 자연(우주)의 법칙 하에 움직이면서 삶과 죽음을 반복한다. 따라서 자연의 원칙인 생성과 부활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시간과 공간, 삶과 죽음을 따로 분리할 필요가 없으며 죽음을 너무 슬퍼할 이유도 없다. 태어나서 다시 무의 존재로 돌아가는 것이 죽음이라면 그것은 또다른 생성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성이 아닌 상상과 설화적 공간에서 찾을 수 있는 여성성의 의미인 것이다.


4. 나오는 말


「온달전」은 『삼국사기』 열전에 실려 있다. 열전은 기본적으로 역사기록이지만 허구성을 포함하고 있는 양식이다. 그래서 열전임에도 불구하고 「온달전」을 설화로 보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온달전」을 어느 한 장르의 속성으로만 보고 연구한 것이 아니라 두 가지의 장르 모두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작품으로 간주하고 서로 비교 분석해 보았다.

열전은 인물과 사건을 교훈적이고 실제적인 역사서술의 대상으로 인식함으로써 기록문학으로서의 서술자의 입전의도와 서술의도가 중시되는 장르다. 이때 작가의 가치화와 의지는 규범적 인간상을 창조하게 되는데, 편찬자 김부식은 백성의 행동규범 중 忠, 信, 義라는 유교적 윤리관을 강조하기 위해 「온달전」을 편찬하였다. 즉「온달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갈등구조는 곧 그들이 지닌 삶의 양식이나 가치관 사이의 갈등이요 대립인 셈이다. 따라서 「온달전」을 傳의 시각으로 볼 때 편찬자 김부식과 당대의 가치관이 고스란히 들어있다고 봐야 한다. 忠, 孝와 멸사봉공, 위국충절 같은 유교적 윤리가 절실하던 고려중기 때, 「온달전」은 이런 유교적 형식윤리를 강조하는 입장에서 기술된 史書라 하겠다.

평강공주가 부왕의 허언을 빌미삼아 信을 강조한 부분에서 일어난 부왕과의 갈등은 결국 忠이라는 더 큰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한 포섭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온달은 자신의 신분에 맞게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효를 다하는 인물이다. 결국 이런 인물이 나라를 위해 충성하고 충절의 인물이 되어 백성들로 하여금 존경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바로 열전으로서 「온달전」이 지향하는 규범적인 인간상의 창조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온달전」을 열전으로만 해석한다면 그 의미와 다양성은 맛볼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 2장에서는 「온달전」을 설화적으로 해석해 보았는데, 설화는 기본적으로 자아실현을 강조하는 면이 강하다. 한 영웅이 고난을 겪으면서 재탄생하게 되고 자신의 진정한 면을 찾아간다는 것이 설화가 가지는 다양한 상상력의 소산이다. 그 상상력은 현대적으로 다양하게 변용될 수 있으며 그 가운데 새로운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평강과 온달은 자신의 단점을 단점으로 간주하지 않고 서로에게 보충해 줌으로써 장점으로 승화시킨다. 그리하여 자아실현을 달성하게 되고 새로운 자기에게 눈을 뜨게 된다. 주체적인 삶은 고난을 각오하고서라도 잘못된 현실과 강요에 맞서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럼으로써 자아실현을 하게 되는데, 「온달전」을 설화로 본다면 특히 평강의 역할과 자아실현이 두드러진다. 온달 또한 평강에 의해서 새로운 인물로 재탄생하게 되고, 고구려 또한 평강의 예지력과 노력에 의해서 국난을 넘기게 된다. 이처럼 「온달전」은 설화적 모티프를 차용하여 여성의 주체성과 여성성의 새로운 의미를 천착하게 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온달전」을 진정한 의미의 여성성 추구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생성과 부활, 카오스와 코스모스의 순환이라는 우주적 기원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볼 수도 있다. 이는 여성성이 신화, 설화적 공간에서 생명, 자연을 의미하는 것이며 우주 만상을 유지하는 근원적인 힘으로 신성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온달전」은 설화에서 모티프를 차용하여 유교적 가치관을 강조하기 위해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우의적으로 기록한 傳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본질이 침해되지 않는 한 어느 한쪽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온달전」이 줄 수 있는 다양한 해석의 의미와 그 스펙트럼이 가져다주는 교훈과 상상력을 가꾸어 나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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