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0년대 자유주의문학

by 방정민

1970,80년대 자유주의문학

1. 1970,80년대 자유주의 문학의 위상


1970,80년대 한국문학사에는 민족·민중문학 위에 또하나의 기억할 만한 계보가 있다. 자유주의 문학이다. 1970년 무렵, 문협 정통파식의 문학은 물론 민족문학에도 거리를 두는 일련의 작가들이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자신의 지성에 따라 사유하고 행위하고 반성하고 재정립하는 자율적 주체를 지향하는 바, 이들의 문학을 자유주의문학이라 일컬을 수 있겠다.

이들은 공교롭게도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식민지, 815해방, 한국전쟁과 남북분단, 419혁명과 516쿠데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호, 그리고 남북 분단을 교묘하게 활용한 권력, 그리고 1980년 광주 등을 차례차례 거친다.

이들은 유아기에 치유하기 힘든 정신적 외상을 입었음은 물론 이후에도 이 시대에서 저 시대로 바뀌는 근본적인 단절들을 거듭 경험한다. 한마디로 이들은 바디우적 ‘사건’과의 잦은 조우로 이미 자신만의 고유성을 지닌 존재들인 것이다.

하지만 시대적 정황은 그들의 ‘질적인 독특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1970,80년대는 한국사회가 비약적으로 자본주의화되던 시기이다. 당시 국가장치는 한국사회 전반을 자본주의라는 세계경제체제의 단일한 시스템 아래 폭력적으로 재편하고자 했다. 그러니 ‘남과 다른 자기세계’를 추구하는 존재들이란 국가장치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들의 일사불란한 위계를 전복하고 해체하려는 자들이나 다름없다.

그렇다고 자유주의 작가들이 당시 민주화세력에게 환영받았는가하면 그렇지도 않다. 당연히 민주화세력에게 자유주의 문학을 하는 존재들이란 눈앞의 민족적 위기를 외면하고 한가하게 개인의 고유성이나 인정받으려는 허위의식에 감염된 자들일 뿐이다.

2. ‘끔찍한 모더니티’와 지배언어의 해체 : 1970,80년대

소외의 현실과 새로운 언어의 탐색

1970년대의 시는 억압과 소외의 현실에 대응하는 다양한 방법론을 모색하였다. 모든 가치를 상실한 속악한 현실에 대한 자각과 미학적 저항의식은, 이러한 현실을 견뎌야 하는 자신에 대한 비판과 성찰의 의식을 통과하여 당대의 언어지평을 넘어서고자 한다. 황동규, 정현종, 오규원, 이승훈 등의 시인들은 비판적 시선이라는 원심력과 자기성찰이라는 구심력이 긴장을 이루는 지점에 자신들의 미학적 좌표를 설정하였다.

정현종(鄭玄宗)은 사물화된 세계와 자아의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서 ‘도취’와 ‘교감’의 세계를 구축한다. 소통의 상상력과 발랄한 언어감각을 지녔다. 황동규(黃東奎)의 시는 당대 현실의 억압성을 고립된 자아의 위기감으로 내면화한다. 공포의 언어를 통해 세계와 절연된 고독한 자아의 내면을 펼쳐놓음으로써 1970년대의 현실에 적응해갔다. 오규원(吳圭原)은 당대의 언어에 대한 집요한 사유를 보여준다. 그는 시적 언어와 일상언어의 구별을 지워버림으로써 속화된 세계의 언어에 대한 비판적 해체를 시도한다. 훼손된 언어에 대한 오규원의 비판은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내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승훈은 언어의 순수한 자율성과 기호성에 입각해 현실을 기각해버린다. 순수 내면의 세계에서 드러나는 분열적 자의식과 언어의 해체를 통해서 그는 현실과 무관한 절대언어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이밖에 물질문명의 황폐함과 존재의 위기를 냉정한 시선으로 비판한 이하석은 광물적 상상력으로 산업화와 문명의 비극을 지속적으로 탐색하였다. 또한 도시화 현실과 자연의 대립을 날카롭게 파악한 신대쳘, 장영수 그리고 당대의 역사적 비극을 포착한 ‘동두천’의 김명인 등도 산업화시대에 민감하게 반응한 시인들이다. 한편 이 시기는 여성시인들의 등장이 두드러지는데, 존재의 의무에 대한 깊은 탐색을 보인 강은교, 현실의 억압에 대응하는 새로운 언어를 창조한 최승자 등의 시가 1970년대 시단을 다채롭게 구성하고 있다.


지배언어의 해체와 소음의 전략


현실을 지배하는 언어를 거부하고 자신의 고유한 방법론을 통해 현실에 대응하려는 의식은 1970년대뿐만 아니라 1980년대 시인들에게서도 발견되는 시적 특징이다.

1970년대 시인들이 ‘이상한 빛’으로 상징되는 정치권력의 비가시적 억압과 이에 대응하는 자의식 세계를 문제 삼았던 것에 비해서, 정치권력의 맨얼굴과 비천한 자본주의의 실체를 직접 대면한 1980년대 시인들은 더욱 직설적인 방법으로 현실의 균열을 드러내기에 이른다.

정치적 억압과 자본의 지배가 만연한 당대의 현실에 대한 비판은 황지우의 시에서 발견된다. 그는 신문기사, 만화, 오락실의 소음, 일상의 천박한 농담들을 적극적으로 시에 수용한다. 이성복은 자아의 분열과 해체를 통해 당대 현실의 균열을 가시화한다. 그는 오염된 현실을 언어를 통해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의 해체와 말더듬기, 이미지의 반복과 이직적인 시어의 충돌 등 언어 자체의 분열을 통해서 훼손된 삶을 적극 확대하여 드러내는 방식을 취한다.

유하와 장정일은 1980년대 후반의 소비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시의 테마로 삼는다. 유하는 ‘압구정’이라는 공간을 자본의 향락적 세계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바라보고, <바람 부는 날은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1991)에서 이러한 향락이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상징적 기호로 자리잡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장정일은 ‘햄버거에 대한 명상’에서 소비사회와 대중문화적 가수성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보여준다. 허구적 기호와 이미지에 사로잡힌 현대인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드러내는 그의 시는 산업사회의 과잉된 욕망에 지배되는 인간, 사물화된 세계에 종속되어 자기를 상실한 인간의 모습을 냉소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한편 1980년대에 들어 우리 시단에 여성시인들이 대거 등장한다. 최승자는 ‘이 시대의 사랑,’즐거운 일기‘등의 시집에서 폭발적인 언어를 통해 현실의 억압을 뚫고 나가려는 시적 지향을 보여준다.


3. ‘순종하는 신체와 실재의 윤리: 1970,80년대 자유주의 소설들

자본주의적 합리성과 ‘순종하는 신체’의 출현

1970,80년대 자유주의 소설도 동시대 자유주의 시처럼 무슨 운명처럼 떠안은 ‘남과 다른 자기세계’를 공인받기 위해 기이하고 외설적인 디테일이나 그것만큼이나 파괴적인 서사를 발명해야했다.

등단 초기 이들의 소설에는 생명력을 잃은 순종하는 신체들은 넘쳐나되 인간을 순종하는 신체로 전락시킨 실체가 제시되어 있지 않다. 단지 이들 소설은 현대인의 치명적인 우울만을 강박적으로 그려낸다.

이들의 우울은 루카치적이기도 하고 프로이트적이기도 하다. 박완서의 <가을 나들이>, 이정준의 <퇴원>, <병신과 머저리>, 서정인의 <후송>, <강> 등 이들의 초기 소설에는 하나같이 기원을 알지 못하는, 기원을 안다 하더라도 어떤 행위도 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우울이 그야말로 우울하게 반복된다.

이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오이디푸스 서사를 지우고 그 자리에 초자아의 공적인 오이디푸스 서사를 대신 채워 넣는가 하면, 사회적 초자아가 지정해주는 프로그램대로 공포의 원장면마저 상징적으로 재구성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들은 시민적 냉정함을 어쩔 수 없이 승인하는 정도가 아니라 진화의 표지로 내면화한다. ‘출세한 촌놈’이 되는 것이다.

이청준은 인간을 순종하는 신체로 전락시키는 근대적 규율과 제도들을 하나하나 지목하며 현대인의 고통의 기원을 제시한다. 그것은 도시화이기도 하고, 언어이기도 하며, 주제의 테크놀러지와 정치기술의 교묘한 야합이기도 하다. 서정인의 소설은 <토요일과 금요일 사이>, <귀향>, <분열식>, <벌판>, <나주댁> 등에서 볼 수 있듯, 도시에서 서서히 순종하는 신체로 전락하는 ‘출세한 촌놈’들의 타락상과 모더니티의 물결 속에서 급속히 스러져가는 목가적 풍경들을 날카롭게 포착해낸다.


정치적 이중구속과 알레고리

당시 자유주의 소설도 격렬하다 할 정도로 정치적이어서 민족문학과 여러 면에서 친연성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자유주의 소설과 민족문학의 정치 비판은 큰 차이가 있다.

첫째, 1970,80년 자유주의 소설 전반이 특정 정치행위가 아니라 주체들을 순종하는 신체로 만들기 위해 어떠한 폭력도 마다않는 정치행위 자체를 비판하고 부정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당시의 정치상황을 죄가 있는 자를 죄인으로 호출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나 불러놓고 그를 죄인으로 만드는 것으로 파악한다.

서정인의 <가위>, 박완서의 <조그만 체험기>, 임철우의 <붉은 방> 등은 이들의 정치행위에 대한 인식이 단적으로 드러난 소설들인데, 이들 소설을 보면 당대 자유주의 소설이 국가장치의 정서적 억압에 얼마나 공포를 느꼈으며 정치적인 것 자체를 얼마나 불신했는지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둘째, 1970,80년대 자유주의 소설이 정치적인 관심은 당시의 민중문학과도 다른데, 이 소설들은 당시 민족민중문학과 이념적 동질성을 보이던 민족, 민중, 민주화운동의 논리에서도 정치적 억압을 읽어낸다. 그리고 그것을 해체하고자 한다.

셋째, 1970,80년대 자유주의 소설은 야만의 정치를 주로 알레고리적으로 표현한다. 서정인의 <가위>, 이청준의 <예언자>,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1980년 광주체험을 다룬 소설들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당대 정치에 대한 알레고리적 표현은, 모든 사물들을 유기적 · 총체적으로 연관시키려는 이데올로기적 모험이 얼마나 많은 폐단을 지니는지 비판하는 것이고, 지도자의 고집이 역사를 파괴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한 경고이기도 했다.

실재의 윤리, 혹은 1970,80년대 자유주의 소설의 전망 혹은 절망


1970,80년대 자유주의 소설이 구원의 힘으로 찾아낸 것은 실재의 윤리들이다. 이들은 자기를 보존하면서 타자를 충분히 감싸안는 어떤 경지나 사회를 꿈꾸고 있다.

실재의 윤리를 찾기 위해 고투를 지속한 작가 중 가장 주목되는 사람은 이청준이다. 이청준의 소설은 <당신들의 천국>, <자유의 문> 등을 통해 볼 수 있듯이 모더니티 전반이 치밀한 정치기술을 통해 사회구성원들을 복종시켰다고 비판하고, 각기 다른 운명을 하나로 합할 수 있는 윤리적 내용을 찾아나선다. 그 모색 끝에 한국의 모더니티가 끊임없이 백지화하려 했던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청준의 소설은 바로 그 고향에 공동체의 진정한 정신이 있음을 확인한다.

서정인의 소설은 자본주의에 밀려 스러져가는 하위주체들에 관심을 갖는다. 박완서의 소설은 속물성에 노골적으로 냉소를 보낸다. 박상륭의 소설은 근대적인 규율 전반이 인간 특유의 생명력을 얼마나 순종적인 신체로 전락시켰는가를 드러내는 한편, 인간이 진정 인간이기 위해서는 ‘질서화 되지 않은 혁명적 에네르기’를 발견하거나, 질서에 의해 통제된 ‘혁명적 에네르기’를 되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중요한 깨달음을 전해준다. 이인성의 소설은 모더니티 안의 모욕 같은 삶을 견디면서 진정한 삶의 형식을 찾아내고자 한다. ‘남과 다른 세계’를 용인하지 않고 이 세계에서 진정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방법은, 대타자의 시선을 만족시키기보다 오히려 분열증을 앓는 주체가 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이처럼 1970,80년대 자유주의 소설은 ‘남과 다른 세계’를 용인하지 않는 강력한 대타자들 속에서 ‘남과 다른 자기세계’가 지니는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그래서 당시의 한국문학은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고 풍요로운 세계로 충만했다.

1990년대와 탈이념시대의 문학

-소설을 중심으로-

1.90년대 문학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

‘1990년대’라는 연대기적 구분과 ‘탈이념’이라는 시대정신의 규정은 이념에서 욕망으로 전화된 문학이며 거대담론이 해체되고 미시담론이 번성한 시대의 문학으로 탈이념시대의 문학이다. 사회주의 붕괴와 자본주의의 전 지구적 확산을 배경으로 기속화된 것으로 보는 것이 90년대 문학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관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절론적 시각은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90년대 문학과 괴리된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첫째, 80년대와 90년대의 차이가 세대론의 전략에 의해 과장됐다는 지적이다. 80년대 문학과의 의식적인 단절을 통해 자기정체성을 구상한 90년대 초반의 신세대 비평 역시 80년대 문학을 낡고 억압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여기서 벗어난 것이 90년대 문학이라는 세대론의 논법을 구사한다. 탈이념이라는 표현부터 90년대 초반 신세대 비평가들에 의해 주도된 일종의 자체 평가, 자기 정의에 가까운 것이다.

둘째, 근대와 탈근대 모더니즘의 차이를 80년대 문학과 90년대 문학에 자의적으로 대입했다는 비판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9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비롯한 각종 포스트담론이 유행했다. 그러나 90년대 탈근대론의 해석이 한국의 실정과 일정한 낙차를 보였던 것처럼 90년대 문학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설명 역시 실제문학의 흐름과 상당한 차이를 보여준다.

단절론적 시각이 사회주의 몰락에 따른 패러다임의 변화를 강조한다면, 연속론의 관점은 1987년 6월 항쟁에서 시작된 한국사회의 형질변화를 중시한다.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이 진보적 문학의 전망에 타격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의 사회적 상황과 민중현실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90년대 문학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이 공존하는 현상은 90년대 문학이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유동적인 흐름이며 관점에 따라 다양한 성격과 의미 부여가 가능한 현재적 대상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90년대 문학은 탈이념의 양상을 80년대 이념에 비추어볼 필요도 있다. 차이와 불연속을 특별히 강조한 90년대 문학 역시 파괴와 단절을 통해 연속되는 문학사의 일반적인 전개양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2.‘후일담’적 상상력과 내성의 글쓰기


90년대 문학으로 통칭되지만 90년대 초반의 문학적 경향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80년대 후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90년대 초반의 문학은 80년대적인 것과의 비교와 대조를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성해나간다. 비평분야에서 신세대 론과 포스트 담론이 80년대의 이념을 대신하는 유사이데올로기 역할을 담당했다면 창작방면에서 이 시기의 문학적 모색을 대변하는 향식은 ‘후일담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후일담의 사전적 정의가 어떤 사건 이후의 경과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는 있었던 일이나 있음직한 일을 서술하는 서사문학의 일반적 속성과 일치한다. 모든 소설은 후일담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문학에서의 ‘후일담’이라는 용어는 변혁운동의 좌절 이후에 나타난 특정한 시기의 문학적 현상을 가리킨다. 1930년대의 후일담이 카프해체 이후 생활인으로 복귀한 전향자의 심리를 그린다면 90년대의 후일담은 사회주의 몰락 이후 정신적 공황에 빠진 운동권의 내면을 그린다.

후일담 문학의 주인공들은 김영현, 최영미, 공지영 등이 있으며 후일담 문학의 주인공들은 80년대의 혁명적 열정을 완강하게 고수하지도 않지만 90년대의 탈이념적 일상을 전적으로 승인하지도 못 한다. 개인의 자전적 회상을 통해 이상과 현실을 대조하는 후일담 형식은 90년대 문학의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황석영, 방현석, 배수아 등 2000년대에 씌어진 작품에 영향을 미친다.

급변하는 현실의 변화를 기존 소설양식으로 담는데 곤란함을 느낀 작가들은 이념에 대한 탐색을 소설 쓰기의 의미에 대한 질문으로 연결시킨다. 조성기. 양귀자. 정찬, 구효서 박상우 등 소설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글쓰기의 자의식을 드러내는 소설가 소설이 대거 등장했다.

정치적 긴장의 상실이 소설적 긴장의 이완으로 이어진 주인석의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연작이 보여주는 것처럼 소설가 소설과 후일담 문학은 심층심리에서 유사점이 많다. 부재의식이 후일담으로 작용한다면 길이 보이지 않은 불투명한 상황이 소설가 소설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후일담 문학과 소설은 집단에서 개인으로, 역사에서 일상으로, 행동에서 내면으로 전환하는 과도기적 특성을 보여주는데 신경숙과 윤대녕은 이런 방향전환을 새로운 미학적 차원으로 정착시킨 작가들이다. 한편으로는 주체의 해체나 저자의 죽음을 선언하는 탈자아 담론의 시대였지만 시대적 이념과 집단적 정체성의 압박에서 벗어난 개인의 자아와 내면적 진실에 대한 탐색이 활발하게 진행된 시기이기도 했다.

윤대녕은 『은어낚시통신』과『남쪽 계단을 보라』에서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자아의 분열을 극복하고 개인의 내면적 진실에 도달하는 시원으로의 회귀과정을 매력적으로 그려낸다. 신경숙은『풍금이 있던 자리』와『외딴 방』에서 주변화된 개인의 자아탐색과 소통에 대한 관심을 글쓰기의 자의식과 결합시킨다.

단절의 상상력과 탈주의 언어가 풍미한 90년대에도 최인석, 공선옥, 김소진, 한창훈, 김한수, 전성태 등은 여전히 민중적 현실과 서민의 생활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 작가들이다. 민중의 이상화에 대한 반성적 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90년대의 작가들답게 민중의 도식적 이념형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상태에서 다양하게 분화한다.

극단적 캐릭터와 알레고리적 상황설정을 통해 강렬한 유토피아적 충동을 내장한 환상적 리얼리즘의 세계를 선보인 최인석의『내 영혼의 우물』과『혼돈을 향하여 한 걸음』은 가족사의 상처를 사회사의 맥락과 연관시키고 변두리 인간군상의 맨얼굴과 대면함으로써 민중서사와 지식인 문학, 후일담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 김소진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장석조네 사람들』은 90년대의 개성적 성취에 속한다. 빈민층 여성 가장의 빈궁한 삶을 생생한 실감과 낙천적 어조로 그린 공선옥의『피어라 수선화』와 해학적 어조로 서민적 삶의 건강한 활력과 인간적 유대를 그려낸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의 한창훈을 비롯, 『매향』의 전성태와『저녁밥 짓는 마을』을 김한수는 공동체의 기억과 연대에 기초한 민중적 리얼리즘의 전통을 이어갔다.


3.대중 소비사회의 대두와 문학적 대응

90년대의 ‘신세대문학론’은 개인적 가치에 대한 존중과 다원성의 강조를 통해 80년대 문학과 구별되는 90년대 고유한 특징을 부각시킨다. 후일담 문학과 소설가 소설 내면탐구의 경향은 모두 신세대적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 후일담 문학은 탈정치적 분위기의 반영이자 정치적 상상력의 변형이고 소설가 소설은 메타서사의 형식으로 시대정신의 상실과 소설 쓰기의 곤경을 연관시키며 내면적 탐구의 문학 역시 개인들 사이의 연대나 가능성을 봉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90년대 문학의 진정한 새로움은 80년대의 흔적과 이어진 이러한 중간적 형태들이 아니라 바깥이 없는 자본주의가 전 지구를 장악한 소비문화의 현실을 자양분으로 태어난 문학 현존질서를 거부하는 저항에너지가 혁명과 해방이라는 윤리적 비전이 아닌 전복과 위반이라는 문화적 일탈 충동으로 표현되는 90년대 후반의 문학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장정일은 기성체제와 문화적 질서를 조롱하는 전복과 상상력을 가장 극단적으로 실연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아담이 눈 뜰 때』, 『너에게 나를 보낸다』,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등의 작품을 통해 성적인 터부를 비롯한 기성의 도덕적 관념과 문화적 권위를 조롱하고 모방과 재현, 통일적 서사와 같은 소설의 관습적 규칙을 파괴하며 문화적 유희로서의 문학을 극단적으로 실험한다. 질적 수준보다는 제작의 의도가, 작품효과보다는 작가의 자의식이 앞선다는 비판도 있지만 자유분방한 형식실험과 권위주의에 대한 공격은 90년대 중반 이후 본격화된 신세대문학을 예비한 선구적인 시도다.

90년대 후반의 작가들은 공동체의 서사적 기억이 빈곤하지만 문화적 정보의 체험은 풍부하다. 인접예술이 제공하는 심미적 체험에서부터 정보화시대의 첨단기기들이 제공하는 가상체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포를 보인다. 간접문화체험이 우수한 경험적 특성은 반영과 재현의 관습적 문법에 대한 회의로 이어진다. 이들은 세계의 의미를 단도직입적으로 추궁하기보다 소설문법에 더 자의적이다. 본질과 의미에 대해 훨씬 간접적이고 매개된 질문을 던진다.

김영하, 백민석, 송경아, 김경욱, 김연수 등은 소비사회의 문화적 경험을 미학적으로 가공하고 대중문화의 상상력을 활용하여 전통서사형식을 변형하는 작가들이다. 김영하는 『호출』에서 현대적 취향의 참신한 발상법과 경고한 소설적 구성력을 보였으며 백민석의 『목화밭 엽기전』은 하위 문화적 감수성과 반리얼리즘 정신을 심화 확장시킨다. 송경아의 『책』은 문학적 재현의 관습과 작가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김경욱의『베티를 만나러가다』는 문화적 체험이 일상화된 영상세대의 감각적 상상력을 보여주며 김연수의『칠번국도』에서는 문학적 허구와 삶의 진실에 대한 복합적인 성찰이 드러난다. 배수아의『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에서는 이미지 중심의 서사구성과 소비문화기호의 전용이라는 신세대 문학의 특징을 공유하는 한편 고립된 개인들의 근원적 결핍과 시대적 삶의 한 국면을 반영하는 특성을 보여준다.

신세대작가들은 가상체험뿐 아니라 선배작가들의 텍스트가 무의식적인 참조가 된다.『루빈의 술잔』의 하성란『불란서 안경원』의 조경란,『여수의 사랑』의 한강은 수공업적인 글쓰기와 전통문체미학을 고수하면서 정밀묘사를 통한 일상의 성찰과 존재론적 고독, 소통부재의 삶에 대해 응시와 근원적 슬픔을 수락하는 고전적 낭만주의를 보여준다.

은희경과 성석제는 90년대 후반 주류의 내성적 독백과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나되 전통적인 리얼리즘과도 거리를 둔 개성적인 소설세계를 선보인다.『타인에게 말 걸기』,와『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에서 은희경은 섬세한 세태관찰과 심리묘사를 통해 현대인의 이해타산과 자기기만을 해부하고『새가 되었네』와『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에서 삶의 아이러니를 감싸는 농담과 유머의 화법을 통해 관습을 넘나드는 서사의 활력을 보여준다.

4.여성적 체험의 형상화와 일상의 발견


가부장제가 강한 한국에서 여성 사회진출과 여성경험의 문학적 표현은 활발하지 못 했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성시인 작가들이 대거 등장하여 여성문학의 새로운 국면이 열리게 된다. 8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된 여성운동 확산과 페미니즘담론의 활성화는 여성문학의 사유와 상상력에 경험적 이론적 자원을 제공했고 여성문학의 활성화는 90년대 문학의 주제와 깊이를 심화시켰다. 탈이념적 분위기가 지배적인 90년대 문단에서 생태주의적 상상력과 더불어 가장 권위적이고 이념지향적인 문학행위를 대변하는 범주였다.

첫째 자전적 회고 형식에 입각한 여성 성장소설의 등장이다.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재조정하려는 성장소설의 일반적 요구에 부응하는 한편 여성적 삶의 경험에 대한 자전적 탐색을 통해 남성의 성장담이 배제한 여성적 정체성의 사회적 역사적 구성에 관심을 기울인다. 박완서의『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김형경의 『세월』,공선옥의『시절들』, 이혜경의『길 위의 집』, 은희경의 『새의 선물』, 권여선의 『푸르른 틈새』등은 자전적 회상과 독백의 화법을 통해 여성가장의 고난과 가족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과 여성적 정체성의 재구성, 관습과 욕망의 길항, 성장과 반성장의 관계 등 여성성장소설의 다양한 주제와 개성을 보여준다.

둘째 연애, 결혼, 가족 등 사적 영역에 침투한 성적 억압의 실상을 폭로한다. 낭만적 사랑을 탈신비화하고 억압적인 결혼제도의 허구성을 파헤치며 중산층 주부의 허위의식을 드러냄으로써 자율적이고 의식적인 여성주체의 탄생을 꿈꾼다. 또 여성의 일상적 경험을 성찰하면서 일상의 이면에 내재한 미세한 균열을 드러내거나 도덕적 금기를 위반하는 여성주인공의 과감한 일탈을 그린다.

셋째 일상적 경험의 소설화를 통해 소비사회의 욕망과 허위의식을 성찰하는 흐름이다. 여성문제에 대한 인식과 일상적 감각의 결합은 90년대 여성문학이 개척한 새로운 영토다. 일상의 재영토화에는 ‘반영’과 ‘발견’의 영역이 함께 존재하는데 ‘반영’은 한국사회가 대중사회의 면모를 띠게 된 것과 연관된다. 일그러진 욕망이 여성적 시각과 감수성으로 치밀하게 분석되는 것이다. 소설미학의 측면에서 더 중요한 것은 ‘발견’이다. 본질과 현상이 리얼리즘적 현실개념을 따를 때 일상이란 단어에는 늘 가짜 욕망 허위의식, 비본래성, 등 부정적인 뉘앙스가 동반된다. 거대담론이 쇠퇴하고 리얼리즘적 현실의 현실성이 의심받게 된 90년대 이후 사소하고 진부한 일상의 영역이 비로소 조금씩 재조명되기 시작하며 일상의 새로운 의미화를 통해 복합적인 현실에 접근하는 다양한 통로가 열리게 된 것이다.

90년대 문학의 진정한 대립은 일상과 현실 사이가 아니라 현실과 비현실 또는 일상과 비일상 사이에서 벌어졌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허구와 사이비 허구가 경쟁하는 현실은 여성문학의 딜레마를 넘어 진지한 문학 자체의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을 암시한다.


5맺음말


90년대는 문학위기론의 시대이면서 문학주의의 전성기이기도 하다. 소재와 스타일에서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었고 두꺼운 창작 층을 갖게 되고 문학 자체의 제도적 기반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었다.

첫째 시장적 가치의 전면화에 따라 문학의 주변화가 심화되었다. 둘째 문학의 제도적 성격이 본격화되면서 한국문화 특유의 통합적 상상력이 퇴조하는 현상이다. 그러나 90년대 이후의 문학이 출판제도와 교육제도, 문단제도 등을 중심으로 전문화, 제도화되면서 한국문학 특유의 통합적 성격과 포괄적인 정치력 상상력은 급격한 퇴조양상을 드러낸다.

문제는 90년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이 변화가 예상보다 훨씬 급진적이고 근본적이며 장기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오랫동안 우리는 10년 단위로 분절되는 문학사 서술의 관행 대신 90년대 이전의 문학과 90년대 이후의 문학을 말해야할지도 모른다. 90년대에 진행된 정치적 사회적 변화와 90년대의 문학이 고민했던 문화적 예술적 과제는 2천 년 대를 넘어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 동안 한국문학이 안고가야 할 기본조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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