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학론의 역사적 전개

by 방정민

민족문학론의 역사적 전개

1.머리말


20세기 들어 근대문학에 대한 자각을 분명히 드러내는 데에는 ‘문학평론’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형성이 요구되었다. 문학평론은 근대에 이르러 비로소 중세문학의 단편적인 비평과 달리한 장르로 묶일 만큼 독보적인 영역을 확보했다. 문학에 대한 대단히 다양한 논의들을 담아내는 그릇 역할을 한 것이다.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줄기차게 논의된 주제로는 단연 ‘민족문학론’을 꼽을 수 있다. 우리문학을 올바로 실천하려면 ‘민족’과 관련한 문제의식을 가져야한다는 이론이다.

민족문학론은 식민지시대에 제기된 이후 해방직후를 거쳐 남한에서는 20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실천과의 관련을 중시하는 진보적인 문학운동의 중요한 이념역할을 해왔다. 민족문학론은 20세기 내내 우리문학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담론 중하나로서 진보적 실천운동을 이끌어온 셈이다. 물론 오랜 기간 생명력을 유지해온 만큼 민족문학론이 생성 발전해온 과정은 단순하지 않으며 민족문학론은 우리 민족사의 굴곡만큼이나 복잡함 변천을 겪어왔다.

2.20세기 전반기 민족문학론의 역사


문학과 민족의 관련성에 대한 사유는 멀리는 조선후기부터 싹텄지만 본격화된 것은 20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이다. 그것은 우선 언어문제에서 촉발된다. 우리 문학은 20세기에 접어들기까지 한글보다는 한문을 주요표현수단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외세의 침탈로 국권이 상실될 위기에 처하자 한글 창작은 불현듯 대세를 이루게 된다. 이를 반영하듯 우리문학이 한글로 창작되어야만 우리 민족정신을 살릴 수 있다는 사유가 본격화된다.

체계화된 담론의 형태를 갖춘 이론은 1920년대 최남선, 양주동, 김영진, 염상섭 등이 참가한 민족주의문학론이었다. 김윤식 교수가 ‘한국근대 문예비평론연구’에서 지적한 이래 계급문학론에 맞서 대타적으로 제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계급문학론이 왕성하게 대두되자 그것을 위식하여 대응논리로 ‘민족’을 들고 나온 것이다.

중세문학이 지방적인 특수성을 몰각하고 중세적 보편성을 추구했다면 근대문학의 경우 중세에는 지방어에 지나지 않던 자국어를 문학공용어로 채용하면서 이를 중심으로 국민문학을 발전시키는 시기가 있게 마련이다. 세계 공용어가 더 널리 확산되어 이들 공용어로 문학작품이 광범하게 쓰이는 위기가 온다면 그때 비로소 국민문학의 시대가 막을 내릴 것이다.

특히 1920년대에 들어서면 한문이나 국한문혼용체를 몰아내고 오늘날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우리말글이 문학공용어로 확고히 자리잡는다. 1920년대 민족주의 문학론은 국민문학론의 한 형태로 제기된 셈이고 식민지시대에 더욱 큰 영향력을 행사한 문학이념은 계급문학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문학이었다. 계급문학론은 민족문학론보다 한 수 위이다. 왜냐하면 사실 민족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것은 발전 혹은 진보의 논리가 되기 어려운 반면 계급문학론은 단순한 계급 질서타파 혹은 계급해방을 넘어서서 사회의 발전방향을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급문학론은 이미 이 무렵부터 ‘민족문학’의 역사적 한계에 대해서도 분명히 자각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민족해방과 달리 계급해방은 인류사회전체의 역사발전방향에 대한 사각과 결합해있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의 계급문학론은 일제의 탄압과 이론수입의 중개상이었던 일본 프로문학의 몰락에 따라 더 이상 진전을 보이지 못 하고 퇴조하고 만다. 해방 직후가 되면 다시 민족문학론의 시대가 된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계급문학론을 주장했던 좌파문인들이 이제는 민족문학을 이념으로 내세우는데 이는 단순한 위장이 아니라 여러 요인들이 작용한 전환이자 계급문학론에 대한 반성에서 논리적으로 도출된 것이기도 하다

임화는 우선 프로문학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하여 문학이 민족어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한다. ‘조선의 문학사는 이식문학사의 역사다.’ 라는 명제로 잘 알려진 이식문학론이 민족문학론과 연결되는 데 이에 대해 의아해할 수도 있지만 그간의 문화이식을 극복하자는 논리이다. 이식문학론이 ‘민족’을 단위로 불구적 근대의 한 양상인 이식상태의 극복을 지향하는 논리적 방향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3.민족문학론의 패러다임

해방 직후의 민족문학론은 문학이념으로서의 민족문학론이 보여줄 수 있는 원형적인 패러다임을 거의 다 제시하고 있다. 우선 역사적으로 문학이 민족단위로 발전해나간다는 것을 상정한다. 일종의 발전담론으로서 현재 상태가 불만족스러운 수준이어서 그것을 더 발전시켜 일정한 목표에 도달하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또한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형성해야 한다는 생각에 연결되어 있으므로 문학의 일국적 발전을 꾀한다고도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민족문학론은 민족을 주체화하고자 한다. 심정적 민족주의를 경계하기 위하여 민족문학론은 국수주의를 경계할 뿐만 아니라 민족내부를 새롭게 재구성하려는 논리를 편다. 거기에 이용 혹은 동원된 것이 꼬민테른의 인민전선전술이다. 노동자, 농민, 소시민 등 인민이 바로 민족이 되고, 봉건지주나 매판자본가는 민족에서 배제되며, 매판적이지 않은 민족자본가는 그때 그때 달랐다. 결국 민족문학론이 개별 인민이든 계급 차원의 노동자, 농민이든 이들을 ‘민족’이라는 주체로 호명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계급적 차이를 넘어 민족 단위의 주체화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더 일반화하면, 일단은 ‘민족’단위로 주어진 과제를 해결한 뒤에 다음 단계의 역사발전을 꾀해야 한다는 단계론적 사유가 민족문학론에는 불가피하게 부착되어 있다.

세 번째로 민족문학론은 문학과 사회적 실천과제의 결합을 강조하며 나아가 그 과제가 절박함을 강조하기 때문에 위기론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해방 직후 그 과제는 대개 일제 잔재의 청산, 봉건 잔재의 청산에다 더러 ‘신래(新來)한 외국자본주의의 배격’을 결합해 우리나라에서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을 완수하는 것으로 제세되었으며, 1970ㆍ80년대에는 위기에 빠진 민족의 주체적 생존의 해결과 분단체제의 극복, 혹은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이나 ‘민족민주혁명’ 등이 되었다.

네 번째로 민족 문학론은 어쨌든 특수성을 강조하는 논리이기 때문에 다른 한 편으로는 보편성과의 결합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곧 세계문학과의 연관을 강조하는 것인데, 해방 직후의 민족문학론 역시 ‘전세계 진보적 문학과의 연대’를 강령에 포함했으며, 1970년대 민족문학론도 ‘제 3세계 문학론’을 곁들였다. 하지만 우리의 특수한 민족문학이 어떻게 보편적 세계문학과 연결될 수 있는지 그 매개에 대한 사유는 부족했다. 하지만 해방 직후의 좌파 민족문학론이 세계문학에 대해 다소 의타적이었던 반면 1970년대 민족문학론은 적어도 의타적이지는 않다. 제국주의가 초래하는 모순에 함께 맞서는 제 3세계문학과의 연대를 꾀했으며 더 나아가 민족문학이 오히려 서구문학보다 세계사적으로 더 선진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 스스로 제 3세계에 속한다고 생각했던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그런 대로 제 3세계문학을 소개하고 연구하는 풍토가 미미하게나마 마련되는 듯했지만 한국 자본주의가 제 3세계 수준을 넘어선 뒤로는 제 3세계문학이 우리의 관심권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4 .20세기 후반기 민족문학론의 역사

분단과 한국전쟁으로 황폐해진 우리 문단은 4.19이후 역사적 생명력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데, 이런 노력이 1960년대의 참여문학론, 소박한 차원의 민중문학론, 농민문학론, 시민문학론, 리얼리즘 문학론 등을 거쳐 높은 수준의 문학이념으로서 민족문학론으로 종합된 것이다. 정태용, 백철, 김병걸, 구중서, 임한영, 염무웅 등의 문제제기에 있어서 이들을 체계화하고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논자는 백낙청이다.

민족문학 이념의 역사적 현실적 근거와 그 구체적인 규정을 제시하고 그 구체적인 정세에 의해 규정되는 철저히 역사적인 개념임을 분명히 했다. 민족분단의 극복과 이를 위한 민주주의의 성취를 민족문학의 과제로 제출했다. 이어서 그는 ‘인간해방과 민족문화운동’ ‘제삼세계와 민중문학’ 등의 글에서 제 3세계 민족문화운동의 일환으로서의 우리민족문학운동의 특수성을 규명하는 가운데 세계사적 진실을 밝히고 내실을 다져나갔다.

문학의 이중성과 노동계급성 사회주의적 당파성이 강조되고 기존 민족문학론의 민중적 성격의 불철저성이 비판의 초점이 되면서 새로운 이념을 수립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이들과는 구별되는 1970년대 이래의 민족문학론 역시 강한 변화의 압력에 노출되었다.

물론 1970년대 이래의 민족문학론이 1980년대의 신종 이념론들보다 더 생명력이 있었던 것은 우리민족현실에 대한 더 현실적이고 설득력있는 논리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래의 민족문학론이 1980년대에 발전시켰던 ‘분단체제론’이 각광받을 수 있었다. 분단체제론은 바로 그 분단이 유지되는 메커니즘에 대해서도 가장 설득력있는 설명을 제공하고 있으며 나아가 분단을 극복하는 통일방안에 대해서도 가장 윤리적인 길을 제시한다. 물론 분단은 아직 우리사회의 변화에서 반드시 감안해야할 중요한 변수이며 통일은 분명 우리사회에 굉장한 지각변동을 가져올 것이다.

1970년대 민족문학론이 민족문학의 세계사적 선진성을 주장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매우 윤리적이기는 하되 실현가능성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5.마무리


민족문학론은 20세기를 넘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담론으로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민족문학론에 내장된 문제의식이 오늘날의 현실에서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민족문학론은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를 내세운다. 한편 민족문학론은 이미 제기된 비판들을 넘어 새 시대에 걸맞게 환골탈태할 필요성에 직면해 있다. 특히 민족문학론의 약점이었던 세계문학과의 관련에 대해 더 깊은 고민과 탐색이 필요하다. 자본주의 세계시장의 형성과 그와 동반된 세계문학의 형성에 관한 19세기 맑스의 예언이 그야말로 전체규모에서 실현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제는 민족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민족의 매개없이도 세계시민으로서 사유해야할 필요가 있는 것에서 세계문학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세계시민의 사유를 빠트리면 자본주의 세계체제와 그 하위체제인 열국체제에 대한 정당한 대응도 불가능할 것이며 나아가 민족문제와 관련해서도 우리민족의 특수한 사례를 넘어 세계적으로 다시 민족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경향에 대한 비판적 접근도 불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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