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철학

<한눈에 읽는 현대철학>+<현대철학의 모험> 요약

by 방정민

카를 마르크스(1818~1883): 독일 경제학자, 철학자. 『자본론』 저술.


잉여가치-이윤을 낳는 거위


물건의 가격을 정하는 곳은 그 물건을 생산한 곳, 공장이다. 공장에서 매긴 가격을 공장도가격이라고 부르는데, 이 공장도 가격을 매기는 기준은 뭘까? 일단 이윤이란 상품의 가격에 덧붙여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상식이다. 즉 이윤은 상품을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 즉 상품의 본래 가치 이상의 가격을 매겨 상품을 판매함으로써 발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윤이란 남는 것이며 원가에 덧붙는 액수라고 흔히 생각하는데, 과연 그럴까? 마르크스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이윤은 원가에 덧붙는 액수가 아니다. 이윤은 상품을 원가 이상으로 판매하는 데서 발생하는 게 아니다. 사회에서 사람은 구매자인 동시에 판매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판매자로서 얻는 것은 언제나 구매자로서 잃게 된다. 이것을 사회적으로 일반화하면 판매자로서 얻는 이득의 총액은 구매자로서 잃는 손해의 총액과 같아지게 된다. 그러면 도대체 이윤은 생겨날 구석이 없다. 그렇다면 이윤은 어디서 발생하는 걸까? 이윤은 상품을 원가이상으로 판매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바로 ‘원가대로’ 판매하는 데서 생긴다고 마르크스는 말하고 있다.


두 얼굴의 가치


선물을 할 때 상대방이 필요 없으면 그 선물은 쓸모없게 되고 다른 것으로 바꾸고자 하는데, 여기서 ‘쓸모’와 ‘다른 선물’, 이것이 곧 가치의 두 가지 측면이다. 쓸모가 있느냐 없느냐, 다른 선물과 바꿀 수 있느냐, 없느냐, 이 두 가지가 바로 상품의 가치를 이룬다. 마르크스는 이것을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라고 말한다.

사용가치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질적 속성을 가리킨다. 쉽게 말하면 상품이 지니는 쓸모, 즉 기능이나 용도다. 책이라는 상품은 소비자에게 지식이나 재미를 주며, 음반이라는 상품은 소비자의 문화적, 예술적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책과 음반이라고 해서 단순히 소비하거나 향유하는 상품만이 사용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생산을 하기 위한 도구와 수단도 사용가치에 해당한다. 월간지밖에 읽지 않는 사람에게 칸트의 철학서를 선물하는 것은 사용가치가 없는 것처럼 사용가치는 가치의 질적인 측면에 속한다. 반면 교환가치는 순전히 양적인 것이다. 선물로 받은 책이나 음반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다른 물건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상품의 교환가치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상품의 소비자에게는 교환가치보다 사용가치가 중요하다. 그러나 경제학에서 더 중요한 것은 사용가치가 아니라 교환가치다. 사용가치는 상품을 소비해 버리면 사라지는 것이지만, 교환가치는 언제나 다른 상품들과의 관련, 교환 비율을 뜻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학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교환가치를 그냥 가치라고 부른다. 가치의 질적인 측면은 버리고 양적인 측면만 취한 것이다.


가치는 무엇의 양?


사용가치는 크기를 잴 수 없지만, 교환가치는 크기를 잴 수 있다. 상품의 사용가치 자체는 본질적으로 잴 수 없다. 왜냐하면 사용가치는 질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환가치는 양적인 것이므로 잴 수 있다. 한 상품을 다른 상품으로 바꿀 수 있다 해도 그것은 두 상품의 서로 같은 가치량이라는 사실만을 말해줄 뿐 그 가치자체가 얼마만한 크기인지는 말해 주지 않는다. 교환가치가 가치의 양적인 측면이라면 그것은 단순한 교환 비율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것의 양이어야 한다. 가치의 크기를 알려면 뭔가 다른 기준이 있어야 한다. 마르크스의 말을 빌리면, “다양한 상품들과의 다양한 등식을 하나의 전혀 다른 형식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 기준을 돈으로 보면 안 될까? 화폐 경제를 기본으로 하는 오늘날 마르크스가 말한 하나의 ‘전혀 다른 형식’이란 바로 돈은 아닐까? 아니면 무엇일까? 모든 상품들을 공통된 하나의 표현으로 환원할 수 있도록 하는 기준은 뭘까? 그것은 바로 노동이다.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노동이 투여되어야만 한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노동은 개인적 노동이 아니라 사회적 노동, 즉 숙련도나 노동의 강도에서 사회적으로 평균적인 노동을 뜻하기 때문이다. 즉 도자기 하나 굽는데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들이는 도예가의 노동이 아니라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그릇을 만드는 도자기 제조공의 사회적 노동을 가리키는 것이다. 사회적 노동은 질적 개념이 아니라 양적 개념이므로 실제로 잴 수 있다. 바로 객관적 측도인 시간으로 재면 된다. 그래서 상품의 가치는 그것을 생산하는 데 들어간 노동 시간의 양이 된다. 이렇게 모든 상품의 가치를 노동 시간으로 환원하고 나면, 우리가 앞에서 말한 이윤이 생겨나는 비밀을 알 수 있다.

황금 알을 낳는 잉여가치

임금이라는 대가를 받는 한 노동력도 하나의 상품이다. 따라서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가치도 다른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생산하는 데 들어간 노동 시간으로 결정된다. 노동력의 가치는 노동자와 그 가족이 생활하고,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훈련하고 개발하는 데 들어가는 생활필수품들을 생산하는 비용이 된다. 그런데 노동력이란 자본가의 입장에서도 하나의 상품이다. 자본가는 노동력을 구입한 것이므로 그것을 다른 상품처럼, 예컨대 기계처럼 자기 마음대로 이용할 권리가 있다. 따라서 자본가는 그 노동력이라는 상품이 훼손되지 않는 한에서 최대한 이용하려 할 것이다. 그 결과 노동자는 자기 노동력의 가치 이상을 생산하게 된다. 노동자가 일하는 시간과 그가 가진 노동력의 가치는 서로 차이가 있다. 이 차이는 바로 잉여노동 시간이 된다.

이 잉여노동 시간에 노동자가 생산하는 가치가 곧 잉여가치를 이룬다. 그리고 이 잉여가치가 시장에서 판매되어 현실적인 이득이 생기며 그게 바로 이윤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가는 노동자를 고용해서 생산한 자기 상품에 특정한 비율에 따라 이윤을 덧붙여 시장에서 판매함으로서 이윤을 얻는 게 아니다. 그는 상품의 생산과정에서 이미 이윤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윤은 이미 생산된 상품에 부가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품을 생산할 때부터 상품과 함께 생산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가가 이윤을 쪼개 노동자의 임금을 주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임금이 되는 몫은 노동자가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상품과 동시에 생산된다. 그러므로 이윤은 모두 자본가의 것이 되며, 자본가는 그 이윤으로 상품 생산에 필요한 원료나 도구를 구입하고, 자신이 개인적으로 필요로 하는 몫을 챙기며, 각종 세금도 납부한다. 이렇게 해서 자본주의는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다. 즉 잉여가치의 생산이 자본주의를 성장시킨 결정적인 동력이다.

가치를 양적인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또 그것을 노동 시간이라는 보편적 척도로 환원함으로써 마르크스는 잉여가치라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비밀을 발견했다. 자본주의란, 생산은 사회적으로 이루어지는데 반해 소유는 사적으로 이루어지는 시스템이다(사회적 생산과 사적 소유 간의 모순이 바로 자본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모순이기도 하다). 생산 과정 속에 이미 이윤의 원천이 가려져 있음을 발견한 마르크스는 가치의 질이 아닌 양을 중시하여 탈현대적 관점을 드러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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