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 1883~1946)
영국의 경제학자. 흔히 주류경제학이라고 비판되는 철저하게 자본주의적인 경제학, 그 중에서도 거시경제학을 입론한 인물이지만, 자유로운 사고방식과 상상력이 풍부한 발상의 전환은 오늘날의 ‘주류 경제학자들’을 반성하게 만든다.
-유효수요: 경제 주체의 해체와 대체
최대의 만족을 위해 주어진 돈을 가장 효율적으로 소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것이 고전경제학에서 말하는 소비 개념이다. 고전경제학은 가장 합리적으로 소비하고 생산하는 행위자를 경제 주체로 설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그렇게 합리적으로 소비 행위를 하는 소비자는 이념상에서만 존재할 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소비자가 그렇게 합리적인 소비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완전한 자유경쟁이 전제되어야만 하는데, 현실은 그것에 어울리는 완벽한 환경이 되지 못한다. 즉 소비 주체는 완벽한 자기 의사에 따라 경제 행위를 하지 못하고 항상 조건에 제약되어 있다. 이 점에서는 생산의 주체도 마찬가지다. 최대의 생산을 위해 자본을 가장 효율적으로 투자한다는 생산 주체의 개념은 벽에 부딪친다. 완벽한 자유경쟁은 애초부터 없었으며, 독점이 등장하고 무역 장벽이 높이 세워진 현대에 들어서는 더욱 그렇다.
케인스는 일찍부터 고전경제학의 비현실성과 관념성을 파악하고 1929년의 세계 경제대공황을 계기로 새로운 개념의 경제 주체를 확립한다.
생산의 경제학에서 소비의 경제학으로
19세기 세계 최강국이던 영국은 경상수지가 흑자였지만 무역수지는 적자였다. 무역에서 손해를 봤는데도 경상수지가 흑자인 이유는 바로 해운업 때문이었는데, 막강한 해군력이 그 열쇠였다. 생산업보다는 서비스업, 경제보다는 군사력을 통해 강대국으로 군림했던 당시 영국의 경제 현실은 케인스의 사상을 모두 설명해 주고 있다. 소비 즉, 수요를 중심으로 경제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과 더 이상 자유방임 경제를 방치하지 말고 국가가 적극적으로 경제에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유효수요(effective demand)'의 개념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원래 수요를 전제로 하고 있다. 수요는 생산의 초기 단계부터 고려되어야 하는 중요사항인데, 현실적으로 그렇게 되지 못하는 이유는 생산자가 시장을 제어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생산자를 대신해서 상품의 수요를 고민해야 하는 것은 국가라고 케인스는 보았다. 제국주의 시대인 19세기에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는 방식이 군사력을 매개로 해서 나타난 것이라면,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국가는 재정과 금융정책을 통해 경제에 개입하게 된다. 이 단계에서 생산은 개별 기업에 맡기고 국가는 총 수요를 관리하는 체제가 된다.
한 편, 고용의 문제에 있어서도 국가가 개입할 여지는 있다. 불황기에는 불가피하게 대량 실업이 발생하게 된다. 생산을 중심으로 보는 고전경제학의 처방에 따르면 실업을 줄이기 위해서는 임금을 인하해야 한다고 하지만, 임금을 인하하면 실업을 더욱 악화시키고 생산은 더욱 위축될 뿐이다. 그래서 케인스는 여기서도 수요를 중심으로 생각할 것을 제안했다. 실업을 줄이기 위해서는 노동수요를 늘이면 되는데 국가가 각종 공공 정책을 통해 노동에 대한 유효수요를 늘여야 한다는 것이다.
거시경제학의 문을 열다
콜럼버스의 달걀은 발상의 전환을 뜻하는 대명사처럼 쓰인다. 사실 콜럼버스는 남들이 전혀 하지 못한 새로운 생각을 한 게 아니라 누구나 알고 있던 이론을 현실에 적용했을 뿐이다. 케인스의 경제 사상도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발상의 전환인 동시에 실천에 대한 관심의 소산이었다.
그는 오류가 없는 모델을 수립하려는 탁상공론적인 경제 이론보다는 특정한 현안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경제적 사고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이런 실천적인 관심에서 나온 케인스의 발상의 전환이 바로 유효수요라는 개념이었다. 유효수요라는 발상은 케인스 이전부터 이미 있었던 것인데 제국주의적 군사력이 유효수요를 대신했기 때문에 그것을 현실에 적용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굳이 고전경제학자가 아니더라도 생산의 규모로 경제활동 수준을 측정한다는 생각은 상식이다. 그런데 케인스는 그 상식을 파괴하고, 경제활동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산출량과 생산 능력’이 아니라 ‘수요’라고 보았다. 고전경제학이 생산 주체인 노동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총 생산량이 결정된다고 본 데 반해, 케인스는 기업가가 예상하는 유효수요의 규모가 생산량을 결정한다고 본 것이다.
케인스가 설정한 경제 주체는 국가인데, 국가 경제 전체를 하나의 주체로 보아야만 경제 현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케인스는 거시경제학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러나 거시경제학이 모든 기존의 개념들을 바꾼 것은 아니고 고전경제학이나 미시경제학은 여전히 제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시경제와 거시경제 사이에는 단절이 존재한다. 케인스는 미시경제적 시각을 종합해서 거시경제적 시각을 구성하려는 시도의 문제점을 ‘합성의 오류’라고 불렀다. 케인스는 당대의 경제 현안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을 뿐 총체적인 방법론까지 구성하지는 못했다.
특수 이론이 아닌 일반 이론
고전경제학으로 설명할 수 없었던 신비의 사건, 1929년의 대공황은 유효수요의 개념으로 충분히 설명된다. 대공황이 발생한 원인은 수요의 부족에 있었으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자본주의 경제는 주기적인 공황의 파국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대공황으로 인해 대량으로 생겨난 실업자들을 동원해서 댐을 지은 미국의 대규모 국책사업 뉴딜은 유효수요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정책으로, 실업도 줄이고 사회간접자본도 늘이는 묘책이었다. 케인스는 완전고용 아래의 균형 상태만을 가정하는 고전경제학의 이론을 특수 이론이라 부르고 자신의 이론은 불완전고용까지 포용하는 일반 이론이라고 주장했다.
케인스는 화폐에 대한 견해에서도 발상의 전환을 보여 준다. 고전경제학에서 화폐는 단지 경제 행위의 매개 역할을 할 뿐이다. 예를 들어 고전경제학에서는 통화량이 증가하면 물가가 오른다고 말하지만 통화량이 변동할 경우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것은 물가가 아니라 이자율이다. 이자율은 투자에 영향을 미치며 이것은 총 수요를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이렇듯 화폐가 생산에 대해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역할을 한다고 본 것은, 지금에 와서는 지극히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케인스는 자본주의를 가장 잘 읽은 경제학자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