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 리뷰

by 방정민

<암살>

충무로 최고 흥행 감독인 최동훈 감독이 신작 <암살>을 내놓았다. 당연히 전작과 비교되지 않을 수 없다. 최동훈 감독하면 화려한 볼거리와 액션, 잠시라도 한눈을 팔 수 없게 하는 이야기의 긴밀한 짜임새, 거기다가 살아 있는 캐릭터들의 조합 등의 단어들이 떠오른다. 3년 전 <도둑들>이 대표적이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대표 배우들을 총 출동케 함은 물론이요 홍콩 대표 배우들까지 가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산만하지 않으면서 수많은 캐릭터들(그들의 특징까지)을 비교적 잘 살려 내었다. 이야기와 캐릭터들과 화려한 화면 등이 정말 조화를 잘 이룬 영화였다. 그러나 굳이 약점을 하나 꼬집자면, 영화가 단순한 오락거리 이외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상업영화가 반드시 깊고 의미 있는 메시지를 남길 필요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감독의 영화는 단순한 오락거리 이외 무엇을 던져주지 않는다는 단점 아닌 단점이 있었다. <범죄의 재구성>(2004), <타짜>(2006), <전우치>(2009), <도둑들>(2012)이 그랬다. 이런 지적에 감독은 고민했던 걸까? <암살>은 최 감독의 작품 중 유일하게(?) 메시지를, 깊이를 담으려고 한 영화라고 평할 수 있을 것 같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차라리 전작 <도둑들>처럼 100% 순수 오락영화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그의 필모그래프에서 이 영화가 어쩌면 분수령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신인 감독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인 만큼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오락적 내용과 작품적 깊이까지 더해지는 영화를 만드는 거장 감독으로 재탄생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다시 말해 <암살>은 오락적 기능으로서는 전작 <도둑들>보다는 못하지만 드라마적 내용에 깊이가 더해진 영화다.

시대는 가장 일본의 탄압이 심했던 일제강점기 30년대, 독립군 임시정부 경무국 대장 염석진(이정재)은 김구의 명령으로 민족의 원수 조선주둔군 사령관 가와구치 마모루와 민족반역자 친일파 강인국(이경영)을 암살하기 위해 독립군 최고의 저격수 안옥윤(진지현)과 신흥무관출신 속사포(조진웅), 폭탄 전문가 황덕삼(최덕문)을 끌어들인다. 그러던 중 내부의 배신자에 의해 살인청부업자 하와이 피스톨(하정우)이 매수되어 위 세 명의 독립군을 죽이려 한다. 이들은 각자의 목적으로 경성에 집결한다. 그리고 민족반역자 강인국을 죽이기 위해, 강인국의 암살을 막고 독립군을 죽이기 위해 서로 생명을 건 피 터지는 전투를 벌인다. 그 속에는 가족의 슬픔이 있고 민족의 아픔이 있다. 이 단어들 구석구석에는 배신과 사랑이 숨 쉬고 있다.

단순한 오락 영화를 만들고 싶었으면 왜 하필 시대극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것도 우리민족의 가장 아픈 역사인 일제치하를 배경으로 말이다. 한 마디로 감독이 단순 오락거리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면 우리민족의 가장 예민한 부분인 일제치하를 배경으로, 그것도 민족 반역자를 암살하는 것을 소재로 한 영화를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만약 이런 소재를 자칫 코미디로 만들었다간 엄청 후폭풍에 시달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영화는 진중하고 어두울 수밖에 없다. 무거움이 실릴 수밖에 없는 영화가 되어 버렸다. 물론 감독 특유의 코미디적인 부분이 군데군데 있기는 하지만. 결국 영화는 민족(애국심)이라는 진중한 메시지와 액션 등 오락적인 요소를 동시에 가미하려 하다 보니 그 힘이 살짝 떨어져 버렸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영화는 아니지만 최동훈 감독 특유의 유쾌한 드라마적 요소와 화려한 볼거리가 아주 잘 어우러진 영화는 아니다. 캐릭터들이 영화를 밀고 나가는 힘은 어딘지 모르게 어느 순간 힘이 조금 떨어져 버리고 메시지는 아주 감동적이지 않다. 차라리 이런 소재를 굳이 선택했다면 오락적인 요소를 조금 빼고 메시지에 더 힘을 쏟았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야 감동이 배가 되어 여운이 오래 갈 것인데 말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비록 독립군이지만 애국심이 아주 투철한 것도 아닌 것으로 살짝 비쳐지기도 하고(그래서 실존인물인 김구와 김원봉이 나와 이들을 독려하기도 하는데 이런 장면이 영화의 무게를 싣지는 못하고 있다), 때론 순수하게 자기의 욕망으로만 살다가 느닷없이 연정의 감정을 느껴 독립군의 편이 되는 캐릭터(하정우)의 내러티브는 살짝 시시하거나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차라리 처음부터 끝까지 죽이고 싶을 정도의 친일파로 나온 캐릭터들로 인해 이 영화는 그 힘을 유지하고 있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는 오락적 요소(대부분 순수한 오락영화는 드라마적 요소, 즉 내러티브가 약한데)에 내러티브가 탄탄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충무로의 대표적인 상업영화 감독이었다. 그러나 이런 타이틀이 조금 식상했을까, 아니면 새로운 무언가를 꿈꾸는 것일까. 이번 영화 <암살>도 최동훈 감독 특유의 캐릭터와 내러티브가 살아 있고 볼거리도 충만하다. 그러나 전작에 비하면 조금 그 힘이 약화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다만 전작에서 볼 수 없었던 메시지가 담겨 있어 다음 작품이 더욱 기다려지기도 한다. 어떤 모습으로, 어떤 영화를 선사할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8.15가 다가온다. 이 즈음에 맞춰 개봉날짜를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감독 아내가 영화 제작사 대표다). 영화의 메시지가 아주 진하진 않지만 굳이 그 의미를 언급하자면 이렇다. 아내도 딸도 죽여야만 하는 시대란 무엇일까, 어떤 시대일까? 친일파는 그래야만 가문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런 가문의 유지가 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역사에 영원히 민족반역자(의 가문)로 낙인찍히는데 말이다. 그런데 다 알다시피 더 큰 문제는 그런 민족반역자를 우리는 처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처단은커녕 해방 후 그들은 경찰 고위간부가 되고 군 간부가 되고 청치가가 되어 대한민국을 다스렸다. 그러면서 힘없는 국민들은 또 다시 찢기고 밟히고 죽임을 당했다. 일제치하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참으로 비굴한 현대사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볼 수 없는 부끄러운 정치사다. 그래서 영화는 해방 후 친일파가 독립군으로 둔갑하자 결국 독립군 개인이 처단한다. 법도 사회도 정치도 하지 못하자 개인이 처단한 것이다. 영화 말미 대사가 폐를 뚫는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역사의 미안함을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그러자 하정우를 보필하던 오달수는 “우리 잊으면 안 돼”라고 말하며 일제에 맞서 장렬히 죽는다. 이름 없이 죽어간 독립군의 상징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는 그들을 너무 빨리 잊었고 그들을, 그들의 후손을 보호하려는 의무를 게을리 했다. 참으로 굴절된 역사요 부끄럽기 그지없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매국을 하면 영원히 잘 먹고 잘 사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정우가 전지현에게 한 말이다. 어려운 시대 힘들게 살다간 사람들… 역사는 과거와 미래의 만남(현재)이다. 하정우는 전지현을 결국 만나지 못했지만 역사는 끝없는 만남이다. 이 만남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이 만남에서 결국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실천하지 못한다면 또 다시 역사는 우리를 암흑의 구렁텅이 속으로 밀어 넣고 말 것이다.

지금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우리는 또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살아내야 하는가! 미래의 어떤 만남을 위해…

볼만 했으나 영화는 이런 메시지를 감동 있게 전달하지는 못했다.

개인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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