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고전을 통해 배움의 깊이를 더하고 인생의 여유를 가져본다
【논어】 4서3경 중의 으뜸! 공자의 언행과 사상이 담겨있습니다. 거의 대구 형식으로 되어 있어 읽기도 싶고 해석하기도 비교적 싶습니다. 무엇보다 유명한 말이 가장 많습니다.
- 제 개인적으로 좋다고 생각하는 말을 뽑아 나름대로 약간의 해석을 한 것입니다.
◆ 가난하여도 도를 즐길 줄 아는 것 - 切磋琢磨(절차탁마)
- 제일 학이(第 一 學而) 15장 -
子貢曰(자공왈):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빈이무첨, 부이무교, 하여.)」
子曰(자왈):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가야. 미약빈이락, 부이호례자야.)」
子貢曰(자공왈): 「詩云 如切如磋, 如琢如磨, 其斯之謂與.
(시운 여절여차, 여탁여마, 기사지위여.)」
子曰(자왈): 「賜也, 始可與言詩已矣.
(사야. 시가여언시이의.)」
자공이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고 돈이 많아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하고 묻자
공자가 말하길, “좋은 말이다. 그러나 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기며 돈이 많으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니라.”
자공이 “시경에 있는 절차탁마란 말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겠습니다.” 하자
공자가 말하길, “사야, 비로소 함께 시를 논할 만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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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 ‘절차탁마’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이 말은 바로 위 <논어>에서 나온 말입니다. ‘절차탁마’는 자르고(절) 다듬고(차) 쪼고(탁) 가는 것(마)입니다. 즉 뼈를 자르고 상아를 다듬고 옥을 쪼고 가는 것입니다. 그만큼 힘든 일이지요.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고 돈이 많아도 교만하지 않기가 그만큼 힘든 일이라는 말일 겁니다. 그러나 공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기며 돈이 많으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고 하여 도(道)와 학(學)에 궁극이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현실의 나는 그렇지 못하네요. 돈이 없다고 남 탓하고 사회 탓하니까요. 공자의 말대로 가난하지만 도를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할 듯 합니다. 언젠가 돈을 잘 벌 날이 올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다면 예를 지금보다 더 좋아해야 할 것 같군요. 저는 가난하지만 시를 쓰면서 조금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데 여러분은 어떠한가요?
◆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할지언정
- 제일 학이(第 一 學而) 16장 -
子曰(자왈):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불환인지불기지, 환부지인야.) 」
공자가 말하였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 을 걱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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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에 화를 내고 짜증을 냅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고, 그래야만 살 수 있는 존재죠. 그래서 외국의 이론은 내가 어떻다고 상대방에게 계속 말하라고 하는데요. 이 점에서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공자의 깊은 뜻을 한번 쯤 헤아려 봐야겠습니다.
공자는 수기지학(修己之學)의 기본을 말한 겁니다. 이름을 얻기에 급급한 사람이 많은데 이것은 수기학이 아니라는 것이죠. 모든 것을 자기한테서 구하는 것이 수기학이고, 이것은 마음을 다스리라는 의미입니다. 마음을 다스리지 않고, 즉 자기를 갈고 닦지 않고 남 탓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습니다.
현대는 자기 PR시대라고 하는데 이 말을 상기하면 공자의 말은 고리타분한 옛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한데요, 분명한 한 가지는 자기 이름 알리려고 온갖 짓을 다하는 사람을 보면 얼마나 보기 딱합니까? 자기를 알리려고 나대고 까불대는 사람, 밉지 않습니까? 너무 나대지 말고 실력을 키우는 것이 먼저인 것은 사실이니까 위 공자의 말을 한 번 더 되새겨 봐야 할 것입니다. 남이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먼저 실력을 꾸준히 키우면서 기다리면 언젠간 그 빛(설령 작은 빛이라도)을 볼 날이 올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시는 생각에 사악함이 없는 것이다
- 제 이 위정(第 二 爲政) 2장 -
子曰(자왈): 「詩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
(시삼백, 일언이폐지, 왈, 사무사.)」
공자가 말하길, 시경의 시 삼백 편을 한 마디로 말해서, ‘생각에 간사함이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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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참 이처럼 좋은 말도 없군요. 그렇다고 시인이 모두 간사하지 않다는 말은 아닐 겁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를 쓸 당시의 마음은 최소한 간사하지 않다는 겁니다. 누구나 시를 써본 경험은 있을 테니까요. 시를 쓸 때의 그 마음!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팍팍하고 힘든 세상이지만 생각에 간사함이 없는 그 순간, 즉 시를 쓰는 날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 온고지신
- 제 이 위정(第 二 爲政) 11장 -
子曰(자왈):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
공자가 말하길 옛 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알아나가면 스승이 될 수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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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다운 스승 없고 제자다운 제자 없다는 말은 제가 어렸을 때고 들었는데요… 참 세상이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교육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고 환경의 문제이기도 하고 우리들의 의식의 문제이기도 하겠지요. 지금의 어렵고 문제 많은 교육현실, 한두 가지 처방으로 완전 해결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럴 때 고전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스승! 간단히 생각하자고요. 옛것을 익히고 새 것을 알아 가면 바로 스승이라고 공자가 말했으니까, 우리 선생님들! 옛 것을 잘 익히고 있는지 반성해봐야겠고 또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자신을 돌아봐야겠습니다.
학생들에게 자신이 배운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옛 것을 잘 배워 전수하고, 변화하는 세상의 이치들도 잘 받아들여 우리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도록 디딤돌을 놓아주면 되는 것 아닐까요… 이것이 말이 쉽지 더 어렵다고요? 저도 선생님입니다만 어렵지만 그래도 해야겠지요.
◆ 왕따 하는 우리 현실!
- 제 이 위정(第 二 爲政) 14장 -
子曰(자왈): 「君子 周而不比, 小人 比而不周.
(군자 주이불비, 소인 비이불비.)」
공자가 말하길 군자는 두루 사랑하고 편파 되지 않고, 소인은 편당하고 두루 사랑하지 못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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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회나 정치 현실과 딱 들어맞는 말 같군요. 周(주) 자는 ‘두루 두루하다’는 뜻인데, 꼭 사랑을 의미한다고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보편적 사랑이 쉬운 게 아니니까요.
그냥 편당지어서 왕따만 안 하면 우리 사회와 정치 정말 좋아지지 않을까요? 학교에서도, 학회에서도, 회사에서도, 정치에서도 내편, 네편 무리지어서 편당하고 나와 맞지 않으면 왕따하는 우리 현실! 진정 없어져야 하는 악습 아니겠습니까!!! 군자는 못 되어도 소인은 되지 말자고요, 우리!
이와 비슷한 말로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군자는 도리에 맞는 일에는 화합하지만 불합리한 일에 부화뇌동하지 않지만, 소인은 이익을 보면 뇌동하기 쉽고 도리에 맞는 일에 화합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군자는 못 되어도 지나치게 네편 내편으로 편당하여 왕따시키고 부화뇌동하지는 맙시다.
◆ 진정 아는 것이란
- 제 이 위정(第 二 爲政) 17장 -
子曰(자왈): 「由!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유! 회여지지호?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
공자가 말하길, 유야! 너에게 안다는 것을 가르쳐 주마.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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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위에 무조건 아는 척하는 사람 참 많습니다. 자기 전공분야도 아닌데도 마치 모든 분야의 전공자인양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는데요. 세상에 완벽한 사람 없다고 사람이 어찌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겠습니까. 너무 안다고 자랑하지 말자고요. 이런 사람, 장담할 순 없지만 자신이 모르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허세부리며 과장되게 말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모른다고 하면 창피하니까요. 특히 전문가들에게 이런 사람 많아요.
그러나 공자가 말했듯이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진정 앎이고 용기 있는 사람이니까, 너무 아는 체 하지 말고 모르는 것은 깨끗이 모른다고 하며 다른 사람의 말도 경청할 줄 알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