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를 통해 인생과 사회를 반추하기

<나는 루저다> 3부 중 일부

by 방정민

【맹자】 맹자의 언행이 실려 있는 책입니다. 논란은 있지만 이 책도 <논어>와 마찬가지로 맹자 당시에 맹자가 쓴 것은 아니고요 맹자 사후 맹자 제자들이 기억을 떠올려 쓴 것입니다. 공자는 조금 보수적이라면 맹자는 진보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맹자는 역성혁명을 주장하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조선에서는 중기까지 금서로 지정되었다고 하니 4서3경 중 <논어>다음인데 의외죠.

◆ 위정자들의 즐거움은 백성과 함께 해야(與民同樂)

- 양혜왕(梁惠王) 장구(章句) 상(上) 2장 -

孟子見梁惠王(맹자견양혜왕), 「 ∼ 樂其有麋鹿魚鼈. 古之人與民偕樂, 故能樂也.

(낙기유우록어벌. 고지인여민해락, 고능락야.)」

맹자가 양혜왕을 보고 말하였다. “∼ (문왕은 백성과 함께) 사슴과 물고기와 자라가 있는 것을 즐겼으니, 옛 사람은 백성과 함께 즐겼기 때문에 능히 즐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여민해락’이라고 되어 있는데 ‘여민동락’과 같은 말입니다. 세계 다른 나라의 정치인도 그 나라 국민들로부터 존경은 잘 못 받던데요, 하지만 우리나라 정치인보다 심하진 않겠죠. 우리나라 정치인들 왜 이렇게 국민들로부터 욕 많이 먹을까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핵심은 맹자의 말대로 국민과 함께 즐기지 않아서겠죠. 여당과 야당들 엄청 싸우다가도 자기들의 혜택과 관련된 것들은 사이좋게 합심하여 국민과 언론들 모르게 일사불란하게 통과시키더라고요.

아무리 정치인들이 잘 먹고 잘 살아도 그 즐거움을 국민들과 함께 하면 국민들은 그 정치인을 찬양합니다. 최고의 왕으로 추앙받는 문왕도, 사냥하는 그 터만도 엄청 넓고 호화로웠지만 경계를 두지 않고 백성과 함께 했기 때문에 오히려 백성이 문왕을 찬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어떻습니까? 선거 때만 국민들에게 고개 숙이지 당선만 되고 나면 국민은 죽으라고 내치고 자기들은 어마한 월급에, 연금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혜택을 받죠. 그런데도 우리는 또 선거 때만 되면 그런 정치인들의 말을 믿고 맹목적으로 ‘니편 내편’ 갈라서 투표해야하니… 참 한심하기 그지없는 현실입니다!

저는 이런 제안 한 번 해봅니다. 선진 북유럽처럼 우리나라도 무보수 정치시스템을 만들면 어떨까요. 보좌관도 최소로 하고 공식적으로 처리되는 것만 국민혈세로 지원하고 자기들 월급은 없는 것으로 말입니다. 아니면 아주 최소로 지급하든지. 언젠가 TV보니까 스위스인지 노르웨이인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북유럽 몇 나라들은 정치인들에게 보수를 거의 지급 안 하더라고요. 그들에게 정치란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재능기부나 자원봉사처럼요.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어마한 뒷거래나 부정이 일어날 거라고요? (ㅋㅋ)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위정자들이 특권을 내려놓지 않고 온갖 비리와 폭력을 일삼아 얼룩진 우리나라 근현대사입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국민들 의식에는 평등이라는 단어가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이전보다 분명 잘 살게 되었는데 상대적으로 나만 더 못 살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니까 이 세상 확 뒤집어 졌으면 하는 사람이 많은 겁니다. 제발 위정자들이 특권 내려놓고 백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사회를, 시스템을 정치인들에게 맡기지 말고 이 나라의 주인인 우리가 하자고요!!!

◆ 유교식 자본주의 - 無恒産 無恒心(무항산 무항심)

- 양혜왕(梁惠王) 장구 상 17장 -


齊宣王問曰(제선왕문왈) ∼ 「若民, 則無恆産, 因無恆心. 苟無恆心, 放辟, 邪侈,

(약민, 즉무항산, 인무항심. 구무항심, 방벽, 사치,

無不爲已. 及陷於罪, 然後從而刑之, 是罔民也. 焉有仁人在位, 罔民而可爲也?

무불위이, 급함어죄, 연후종이형지, 시망민야. 언유인인재위, 망민이가위야?) ∼

今也制民之産, 仰不足以事父母, 俯不足以畜妻子, 樂歲終身苦, 凶年不免於死亡.

(금야제민지산, 앙부족이사부모, 부부족이축처자, 낙세종신고, 흉년불면어사망.

此惟救死而恐不贍, 奚暇治禮義哉?

차유구사이공불섬, 해가치례의재?)」


제선왕이 맹자에게 물어서 맹자가 대답했다. ∼ “일반 백성들로 말하면 일정한 산업이 없으면 꾸준한 마음을 못 갖게 됩니다. 진실로 꾸준한 마음이 없으면 방탕하고 편벽되고 사특하고 사치하는 일을 못하는 짓이 없을 것이니, 죄에 빠진 뒤에 따라가서 처벌한다면 이는 백성을 속이는(그물로 잡는 것) 것입니다. 어찌 인자한 사람이 왕위에 있으면서 백성을 속이는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

지금은 백성이 산업을 마련한다는 것이 위로는 부모를 섬기기에 부족하고, 아래로는 처자를 먹여 살리기에 부족하여, 풍년에도 일생을 고생하고 흉년에는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되니, 이래서는 죽는 것을 구제해 주기에도 힘이 모자랄 터인데 어느 겨를에 예의를 행하겠습니까?”



앞에서도 말했지만 딱 저한테 해당되는 말이기도 한데요, 제가 마흔이 넘고도 미혼인 이유는 제가 독신주의자라서가 아닙니다. 제 능력으로 부모를 섬기기도 힘들고 결혼하여 처자를 먹여 살리기도 부족한데 어찌 결혼을 하겠습니까? (조금 심하게 말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지 못하는 것은 어머니와 형제들, 즉 가족들 때문인데요, 참 제가 생각해도 저는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2천 500백 년 전 맹자가 말한 현실이랑 지금 제 처지랑 어찌 이리 똑 같은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언제나 어느 때나 백성들의 처지는 다를 바가 없는 거군요.

맹자는 일정한 산업, 즉 돈벌이가 없으면 꾸준한 마음을 가지지 못하니 그러면 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죄 지은 백성을 형벌로 다스리는 것은 백성을 그물로 잡는 행위라고 했는데요, 그렇다고 제가, 돈 못 버는 국민들이 죄를 지을 수는 없는 일이죠. 아무튼 맹자가 한 말 중에 저는 이 말이 가장 좋습니다. ‘무항산 무항심!’ 나라는, 위정자는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먹을 거리를, 일거리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인데요, 저도 그렇지만 지금은 최소한의 먹을 거리도 국가가 안 만들어 줍니다. 저 같은 사람의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무조건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사회의 구조가, 시스템이 분명 잘못된 것이죠. 노동자와 자본가, 노동자조차도 정규직이니 비정규직이니 하청업체니 하면서 어마한 차이를 두고 있으니 오로지 노동의 유연화라는 자본가의 논리만으로 이 사회는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사회를 이렇게 양분해놓고 ‘너희들은 너희들이 못나서 정규직이 못된 게 아니냐.’고요? 이렇다면 위정자들은 맹자의 이 말을 알고 있을까요?

지금의 정부는 연봉 3천 5백이 중산층이라고 해서 세금 올리려다 국민들로부터 된통 당했는데, 그럼 연봉 1천 2백밖에 안 되는 저는 뭐죠? 천민입니까? 대학생을 가르치는 대학강사가 천민인 이 나라는 그럼 어떤 나라인가요? 유교를 고리타분한 옛날 것이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다시 한번 고전을, <맹자>를 읽어야 합니다. 고전에 현재 우리 나라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있습니다. 유교가 얼마나 합리적입니까? 일반백성의 마음을 어루만져 줍니까? ‘무항산 무항심’ 이것을 유교식 자본주의라 부릅니다. 천민자본주의인 대한민국을 최소한 유교식 자본주의로 바꾸면 일반 국민들이 잘 사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맹자는 다른 장에서 공전 하나를 두고 10분의 1조세를 내게 하는 정전법을 조세법으로 주장합니다. 이 지면에서 정전법에 대해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지만 이것을 잘 발전시키면 지금의 자본주의 문제점에 대한 해결의 단서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겁니다.


◆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러야

- 公孫丑(공손추) 장구 상 2장 -


公孫丑問曰(공손추문왈): ∼ 「敢問何謂浩然之氣?(감문하위호연지기?) 」

曰: 「難言也.(난언야) ∼

其爲氣也, 至大至剛, 以直養而無害, 則塞于天地之閒. 其爲氣也, 配義與道, 無是, 餒也(기위기야, 지대지강, 이직양이무해, 즉색우천지간. 기위기야, 배의여도, 무시, 뇌야也.(야.)」


공손추가 맹자에게 물었다. 감히 묻겠는데, 무엇을 호연지기라 합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대답하기 어렵다. 그 기란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하여서 바르게 길러 해치지 않는다면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게 될 것이다. 그 기란 정의와 정도에 부합되는 것으로서, 그것이 없으면 시들어 버린다.”


저도 크게 다를 바는 없겠지만 요즘 사람들, 특히 어린 학생들은 너무 나약합니다. 하나 아니면 둘만 키우다보니 자기 자식만 끼고 끼워서 그런지, 사회나 교육 환경 탓인지 정확히 판단하기 쉽지 않지만 요즘 사람들 너무 쉽게 생각하고 쉽게 뭔가를 이룩하려고 하죠. 그러다보니 역시 쉽게 지칩니다. 위 ‘공손추 장’에는 우리가 어디서 들어 본 말이 또 나옵니다. 송나라 사람이 있어 자기 모가 자라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싹을 뽑아 올리고 와서 “오늘 내가 피곤하구나. 내가 모 자라는 것을 도와주었다”고 하였는데, 집안사람들이 가보니 ‘모가 시들어 버렸다’는 고사는 ‘성급히 모가 자라는 것을 조장하지 말라(不助長)’는 말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에 딱 맞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자기 자식들 남들보다 빨리 앞서게 하려고 너무 조장하지 말자고요. 오히려 역효과 납니다.

저도 40이 넘었지만 별로 되는 일 없어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그렇다고 송나라 사람처럼 인위적으로 서둘러 모를 뽑아버리지는 않습니다. 그래봐야 모만 죽으니까요. 그럴수록 지극히 강하고 굳센 의지로 이 어려운 현실을 정면으로 돌파할 수밖에 없겠지요. 억지로 뭔가를 서둘러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나쁜 마음먹지 않고 실력을 키워 기다리면 언젠간 세상은, 사회는 나를 알아주리라 믿습니다. 그것이 꼭 사회적으로 큰 부나 명예는 아닐지라도 말입니다. 공자도 ‘나를 돌아보라’고 했는데 현실적으로 힘들고 고단할 때, 그럴수록 멀리 내다봅시다. 나를 돌아보며 지극히 크고 굳센 기를 키워보자고요. 그리고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요. 언젠간 나에게도 쨍하고 해 뜰 날이 오겠죠. 이런 개인적인 호연지기를 키우면 사회적으로도 정의와 정도에 부합되는 사회적 호연지기가 만연할 겁니다. 그러면 우리나라 정말 살기 좋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그런 사회 한 번 꿈꾸어 봅니다.

◆ 사람은 선한가 악한가 - 성선설의 근거

- 公孫丑(공손추) 장구 상 6장 -


孟子曰 人皆有不忍人之心(맹자왈 인개유불인인지심) ~

所以謂人皆有不忍人之心者 今人 乍見孺子 將入於井 皆有怵惕惻隱之心

(소이위인개유불인인지심자 금인 사견유자 장입어정 개유출척측은지심) ∼

無惻隱之心 非人也. 無羞惡之心 非人也. 無辭讓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人也.

(무측은지심 비인야. 무수오지심 비인야. 무사양지심 비인야. 무시비지심 비인야.

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知之端也.

측은지심 인지단야. 수오지심 의지단야. 사양지심 예지단야. 시비지심 지지단야.

人之有四端也.

인지유사단야.)


맹자가 말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다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는데, 그 까닭은 지금 사람들이 어린애가 우물에 빠지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고 하면 다들 놀랍고 측은한 마음이 생길 것이니라.” ∼

“측은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요. 수오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요. 사양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요. 시비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요. 측은지심은 인의 단서요. 수오지심은 의의 단서요. 사양지심은 예의 단서요. 시비지심은 지의 단서이다. 사람은 이 네 가지 단서를 가지고 있느니라.”



성선설의 근거를 맹자는 사단설에서 가지고 옵니다. 우물에 빠지려는 어린 아이 예를 들며, 그 아이를 구하려는 것은 그 아이의 부모와 친분을 쌓으려는 것도 아니요, 동네 사람과 벗에게 칭찬을 받으려는 것도 아니고, 구해 주지 않았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도 아니고 그냥 인간의 본성이 착하기 때문인데, 그것이 바로 측은지심이라는 것이죠. 나아가 옳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는 마음도, 겸손하여 남에게 사양할 줄 아는 마음도, 시비를 분간하는 마음도 모두 본성이라는 겁니다. 이 본성이 바로 ‘仁義禮智(인의예지)’라는 ‘4단’입니다.

맹자에 따르면 사람의 본성은 의지적인 확충작용에 의해 덕성으로 높일 수 있는 단서를 천부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측은ㆍ수오ㆍ사양ㆍ시비의 마음 4단이 그것이며, 이것은 각각 인ㆍ의ㆍ예ㆍ지의 근원을 이룹니다. 맹자의 정치사상은 왕도정치인데 이 왕도정치가 가능한 것은 사람의 본성ㅴ지의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의 본성을 착하다고 보고, 그 마음을 확대해 나가면 ‘인의예지’ 네 가지 덕을 완윱하게 되는데, 다시 이 덕행으로 천하의 백성들을 교화시킴으로써 왕도정치가 실현된다고 보았던 것이죠. 역으로 말해서 덕으로 충만하여 사람 사이의 관계가 시기와 질투, 투쟁에서 사랑과 믿음, 화합의 관계로 회복되려면 사람의 마음이 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맹자는 <진심장> 편에서 양지(良知: 배우지 않고도 아는 것), 양능(良能: 생각지 않고도 능한 것)을 주장하며 사람은 하늘에서 부여받은 근본적인 것(선)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맹자가 성선설을 주장한 것은 고자와 性(성)에 관해서 논쟁(白羽之白也 猶白雪之白)한 끝에 주장하였는데, 한 마디로 사람이 선해야 한다는 당위적 측면에서 주장한 겁니다. 깊은 산에 가서 도 닦다가 인간의 성이 선하다는 것을 갑자기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흔히 인간이 선하냐 악하냐를 놓고 심하게 다툼하는 것을 종종 보는데요, 참 어리석은 논쟁입니다.

사람이 근본적으로 선한지 악한지 누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이죠. 앞서도 말했지만 이런 것은 사람의 인식 능력 밖이므로 논쟁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과학으로도, 철학으로도 밝힐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니 불가지론자가 되어야 합니다. 맹자가 살았던 당시 중국에는 전쟁이 난무하여 사람이 너무 쉽게 죽으니 이 전쟁을 끝내고 화합하며 살려면 사람의 본성이 선하다고 주장해야 가능하겠죠. 그래서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한 겁니다. 그렇다고 맹자가 이상적이기만 한 건 아닙니다. 옳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해야 하고, 시비를 가릴 줄 알아야 한다고 한 것을 보면 유학이 다른 종교에 비해 굉장히 현실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사람은 악하기도 선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내 안에 나도 모르는 면이 많이 있는 게 사람 아닐까요? 문제는 어떤 사람과, 어떤 상황에서 나의 어떤 모습이 나타나느냐, 하는 것이죠. 세상 모든 사람과 다 친할 수는 없으니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는 의례적이고 좋은 말만 하면서 가급적 피하고, 나랑 잘 맞는 사람과는 그 사람의 좋은 모습을 가급적 보려고 노력하면서 친분을 쌓아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선한 마음을 나타내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겠죠. 끊임없는 노력… 우리의 본성도 갈고 닦아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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