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족>
판타지나 SF영화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사용되는 영화의 소재가 바로 ‘가족’이다. 영화에 나타난 가족의 변천사만 봐도 현대 문화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가족은 떼래야 뗄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존재요 삶 그 자체가 아닐까.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가족은 모순 덩어리요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가족은 내가 살아가는 힘이요 근원이거늘 그런 가족이 왜 나를 가장 힘들게 하고 내 존재 의미를 송두리째 앗아가는가! 가족이 그 자체로 완벽하다면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에서 그렇게 많이 소재로 다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단순히 살아가기 힘든 세상에서 고향 처럼 용기와 힘을 주는 소중한 존재라는 의미만 있을까.
연금과 죽은 남편 위로금으로 살아가는 할머니(키키 기린) 주위에 많은 이들이 모여 살고 있다. 중년의 일용직 노무자 오사무(릴리 프랭키), 일하던 세탁소에 쫓겨난 노부요(안도 사쿠라), 유흥업에서 고독한 남자들을 위로해주는 아키 시바타(마쓰오카 마유), 주차장에서 버려진 소년 쇼타(죠 카이리), 부모에게 학대당하던 소녀 유리(사사키 미유) 등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고택에서 모여 산다. 각자 일이 있긴 하지만 그것으로 살기 힘들고, 가르칠 게 도둑질 밖에 없어 도둑질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며 겨우 연명하는 이 가족들, 여름 어느 날 바닷가로 여행을 갔다 온 후 할머니가 죽는다. 그러나 나머지 가족들은 당국에 신고하지도 않고 마당에 묻어버린다. 그러고는 할머니의 연금을 은행에서 찾아 쓴다. 그러던 중 쇼타의 도둑질이 발각되고 쇼타는 도망치다 다쳐 병원에 입원한다. 경찰이 오고 관계 당국자들이 병원에 온다. 이 일을 계기로 겉으로는 참 행복하고 다정해 보이는 이 가족들에게 각자의 사연이 밝혀지고 각각의 숨은 속셈이 드러난다.
우리나라에도 가족을 다룬 영화는 한 둘이 아니다. 그런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이 특별한 이유는 뭘까? 특히 이창동 감독의 <버닝>을 제치고 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을 만큼의 특별함이 과연 무엇일까.
조금 거창하게 말해보자. 인류는 구석기 이래 100만 년 이상 동안 가족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 신석기 말, 지금으로부터 대략 5, 6천 년 전 드디어 가족을 이루었다. 그 이후 국가가 생기고 본격적으로 인류가 발전하게 된다. 한 마디로 100만 년 이상 그 오랫동안 가족 없이 살다가 고작(100만 년에 비하면) 5천 년 전 가족을 이루면서 인류가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가족이 생기면서 온갖 욕심이 생기게 되고 과도한 욕망이 이기적으로 변해 나와 타인을 구별하게 되고 나의 가족을 위해 타 가족과 타인을 배척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 이러면서 인류는 본격적으로 발전(진정한 발전인지는 의문)하게 된 것이다. 물론 최근 일부의 인류학자들은 이때부터 인류가 타락하게 되었다고 주장하며 신석기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 결국 나와 타인을 구별하며 나의 욕망을 채우는 존재가 가족은 아닐까? 심지어 나의 욕망을 죽어서라도 물려주기 위해 인류는 혈연의 가족을 만들고 그 가족의 배를 채우며 각종 재산과 욕망을 대대손손 물려준다. 나와 나의 가족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살라고. 그런데 이토록 이기적인 욕망 덩어리인 이 가족에게 언제부턴가 금이 가기 시작했고 급기야 해체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굳건하게 믿었던 완벽한 존재로만 알고 있었던 가족이 실은 위태롭고 나약하기 그지없는 실체라는 것을… 그래서 금은 애초부터 갈 수밖에 없는 것이었고 해체는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는지도…
어쩌면 하층민 집단소 같기도 하고 사회 군상집단소 같기도 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허름한 집에서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가족)이 모여 사는 설정이 참 이채롭다. 물론 이 가족은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이 아니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한 의미의 가족이 아닌 것이다. 그러면 왜 이 가족 구성원들은 혈연 가족에게 가지 않고 모두 빈곤한 할머니 주위에 다 모여 있는가! 한결같이 모두 혈연 가족에게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을 품은 사람은 자신 또한 가족에게 버림받은 할머니이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인가! 모두 친가족에게 버림받은 이들이 모여 사는 이 가족에겐 가족이 무슨 의미일까? 누군들 상처 하나 없겠냐마는 영화 속 인물 들 역시 상처 하나씩 다 가지고 있다. 보여지는 외상의 상처만이 아니라 마음 속 깊은 상처 하나씩 다 가지고 있다. 그래서 상처 연대 군상들 같기도 하다.
영화 속 가족들은 외상의 상처뿐만 아니라 마음 속 상처를 서로 보듬으며 따뜻함을 주고받고 있다. 때로는 말로 위로하며 때로는 말없는 묵묵함으로 서로 따뜻함을 공유한다. 오죽하면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아키 시바타조차 남자 손님에게 따뜻함을 느끼고 아늑해할까. 마음 둘 곳 없는 현대인들의 고독함이 물씬 느껴진다. 그렇다고 이 가족들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비록 친가족에게 버림받아 상처를 서로 위로하는 비혈연 가족이라고는 하지만 이 또한 불안전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미래 없이 불안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도록 이 시대는 용납하지 않는다. 아니, 이 가족들 자체도 서로 속셈이 다를 뿐 자신들의 이기심이 서로 뭉쳐져 있을 뿐이다. 따뜻한 척, 위로하는 척 했을 뿐 모두가 자신들의 이기심으로 살아갈 뿐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허약한 것 자체가 가족인가… 가족은 깨질 수밖에 없는 존재란 말인가… 혈연이라도 혈연이 아니라도 깨질 수밖에 없다면, 그럼 왜 인류는 가족을 만들었을까…
소년 쇼타의 병원 입원으로 결국 이 가족들은 해체된다. 외형상 도둑질과 소년의 병원 입원으로 이 가족의 실체가 들통 나지만 실상은 불안불안한 이 가족의 해체는 이미 각자의 안에서 시작된 것이다. 거의 마지막 장면에서 소년 쇼타는 가짜 아빠 오사무(아무리 오사무가 자신에게 아빠라고 부르라고 해도 쇼타는 아빠라고 부르지 않는 데, 이 장면도 결국 따뜻한 척 해도 어느 가족도 불안전하고 해체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해석될 수 있다)에게 눈사람을 만들자고 한다. 다음날 되면 녹아 사라져 버릴 눈사람! 그러자 오사무는 속으로 쇼타에게 미안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미안함은 쇼타도 마찬가지이다. 일부러 다쳐 이 사태를 맞이하였으므로.
참으로 역부족인 영화다. 혈연 가족도 비혈연 가족도 모두에게 역부족이다. 피건 피가 아니건 우리 모두에게 가족은 역부족이다. 혈연가족에게 버려진 이 가족들은 결국 스스로 흩어진다. 아이(자식)는 어른(부모)에게, 어른(부모)은 아이(자식)에게 모두 서로에게 역부족이라고 하면서. 흩어진 가족들은 모두 행복할까. 친가족에게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서로 행복을 빌어주며 흩어지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하고 있는 영화 같기도 하다. 과하게 해석하면, 나와 타인을 구별하고 이기적 욕망으로 만들어진 가족이라는 것 자체가 허구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 이렇게 살기 힘든 시대 가족이라도 만들지 않으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나 혼자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
어떻게 해야 이 역부족을 만회할 수 있을까. 어찌 해야 가족을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을까. 도대체 가족은 무엇인가! 해체를 넘어 가족이란 무엇인지 그 근원을 물어보고 있는 영화다. 일본 영화 원제는 ‘좀도둑 가족’이라고 하는데 이 영화의 주제를 생각하면 ‘좀도둑 가족’이 더 맞는지, ‘어느 가족’이 더 맞는지 헷갈린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제목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소재인 도둑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것의 근원을 묻고 있는 듯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다만 영화는 너무 느린 속도로 진행하다보니 조금은 지루하다. 반전을 위한 반전은 아니라도 좀 섬광 같은 사건이 없어 아쉽기는 하다. 영화가 삶의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허구의 세계를 관통하는 것이라면 그 허구의 세계에 조금은 머리를 꽝 때리는 사건이 필요하다. 어쩌면 우리 일상은 별 일 없는 지루한 것의 연속이니까 그대로 보여주기보다 반전 같은 허구의 큰 사건이 있으면 주제에 더 다가가기 싶다. 허구를 통해 가족의, 인생의 의미를 더 되새길 수 있는 것이 문학이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허구가 문학의 본질인지 모른다. 히로카즈 감독은 ‘공기인형’에서도 허구의 기발한 사건(공기인형의 눈으로)을 통해 삶의(현대인들의 쓸쓸한 삶) 진리를 천착했다.
가족을 통해 삶의 진리를 탐구하고자 한 영화다. ‘우리 삶이 가족으로 연결되고 점철되어 있다면 과연 가족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삶이란…’을 묻고 있는 영화다. 상처를 주든 주지 않든 서로 보듬는 것이 가족이라고 말하기엔 가족의 의미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가족과 인생의 의미는 서로 연결되어 헤어 나올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모호한 채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 이 가족 속에서!’ ‘가족, 이 허구 같은 실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가족 속에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며 우리 삶을 반추해 보아야 할 영화다. 그 묵직한 주제의 울림은 좋으나 조금 지루해 과연 <버닝>을 능가할 정도였는지는 모르겠다.
개인별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