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바하> 리뷰

by 방정민

<사바하> : 그대는 무엇을 믿는가!!!

믿음은 무엇인가? 믿음을 근간으로 하는 종교는 무엇인가? 이 질문이야말로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만큼이나 근본적이고 본원적이다. 종교는 왜 생겨났을까? 다른 말로 인간은 종교를 왜 만들었을까? 나 같은 무신론자, 아니 정확히는 불가지론자(신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은 논의하지 말자는 것)로서는 종교의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더 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종교는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권력적이며 부유하며 배타적인 현재의 종교는 당장 없어져야 한 다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부처가 살아 돌아온다면 세상의 모든 절을 파괴할 것이고, 예수가 살아 돌아온다면 세상의 교회를 다 부술 것이라고 하겠는가! 이렇듯 믿음, 종교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가 나왔다. 바로 <사바하>다.

장재현 감독은 기독교인이면서 종교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한다는 것이 아주 이채롭다. 전작 <검은 사제들>에 이어 오컬트 영화를 만들었다고 흔히 말하는데, 이 영화를 단순히 오컬트 영화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검은 사제들>은 확실히 오컬트 영화였지만 이번 영화 <사바하>는 오컬트와 미스터리 스릴러 방식을 채용하고 있지만 그것은 겉모습일 뿐이고 종교에 대한, 믿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강원도 시골마을에서 쌍둥이 자매가 태어났다. ‘금화’와 ‘그것’(이재인)이다. 태아 때 ‘그것’은 ‘금화’ 다리를 물어뜯어 ‘금화’는 다리에 심한 상처를 입었고 ‘그것’은 불길한 것으로 취급되어 창고 어두운 곳에서 짐승처럼 길러진다. 16년이 지난 현재, 사슴동산이라는 신흥종교가 이상한 믿음을 강요하고 있고, 신흥종교의 비리를 찾아내는 일을 하는 박목사(이정재)는 이 사슴동산을 조사 중이다. 그러던 중 영월 터널에서 여중생 시체가 발생하고 이 사건을 처리하던 경찰(장진영)과 사슴동산에서 마주한 박목사는 사슴동산과 이 살인사건이 심상치 않은 연결이 있음을 직감한다. 그러던 중 여중생 살인 사건의 중요한 용의자가 자살하고 그 배후에 신비한 정비공 나한(박정민)이 있다. 박목사는 요셉(이다윗)과 해안스님(진선규)의 도움을 받아 이 모든 사건의 이면에 동방교가 있음을 알아낸다. 동방교 교주 김제석(정동환)의 실체가 드러날수록 믿음은 혼란으로 바뀌고 종교는 배신과 파괴로 점철된다.

‘상식–과학–철학-종교’ 이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카테고리다. 과학이 상식보다, 철학이 과학보다, 종교가 철학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아니다. 사실 상식이 제일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상식이 통하지 않으니 문제가 많은 것 아닌가. 그러나 아무리 상식이 중요하다해도 그것으로 해결 안 되는 것이 있으니 그럴 때 과학, 과학으로 해결 안 되는 것은 철학, 철학으로 해결 안 되는 것은 종교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상식, 과학, 철학은 이성의 영역이다. 그것도 합리적 이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문제는 합리적 이성을 전제로 하지 않는 일이 21세기에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태극기 부대와 자한당을 합리적 이성이 있는 단체로 볼 수 있겠는가! 그들은 합리적 이성이 없는 단체이므로 최근 말도 안 되는 5.18망언을 퍼붓고 가짜뉴스를 남발하는 것이다. 반면, 종교는 믿음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이성을 뛰어 넘는 영역이긴 하다. 그렇다고 이성을 전제로 해서 이성을 뛰어넘어야지 이성을 무시한 믿음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최근의 종교는 이것을 무시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루밍 성폭력이 기독교에서 많이 일어나는 것이 이 이유 때문이다. 이성을 무시한 채 믿음만을 강요하니 목사를 예수라고 착각하고 그의 말을 무조건 믿는 것이다. 전 재산을 갖다 바치는 일이 일어나고 급기야 성폭력까지 일어나는 것이다. 이성을 망각한 종교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이처럼 영화 <사바하>는 이성이 마비된 채 믿는 종교가 얼마나 끔찍한 짓(죄)를 범하게 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성을 망각한 맹목적 신념이 얼마나 큰 공포인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영화는 나한(박정민)을 통해 보여준다. 신이 인간의 운명을 정하는가? 그럼 인간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한낱 무조건 믿고 따르는 일밖에 없는가? 믿으라고 강요만 하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다. 무조건 믿고 맹목적으로 따르면 원하는 바를 이루는가? ‘사바하’는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리라’는 뜻이라고 한다.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이루는가가 더 중요하다. 현재의 종교는 지나치게 결과에 치중되어 있다. 무조건 행복하면 되고 잘 살면 되고 어떡하든 천국에만 가면 되니 무조건 자신의 종교를 믿고 따르라고만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에 현혹되어 재산과 몸과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세상이 살기 힘들어서 그런가, 이런 종교(마치 신흥종교나 사이비 종교만 그런 것이 아니다. 큰 절이나 교회에서 이런 일은 더 빈번히 일어난다)가 활개를 치니 참 한심하기 그지없다.

그러다보니 영화는 박목사 이정재의 입을 빌어 “우리는 저 밑바닥에서 개미처럼 지지고 볶고 있는데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서 뭘 하고 계십니까?”라고 외친다. 인간의 운명을 인간 스스로 정하지 못하고 왜 신에게 맡기는가? 이 불안한 마음을 이용해 종교는 더욱 간사해지는데… 영화는 불교와 기독교를 기묘하게 비교하면서 둘의 공통점을 지적한다. 가령, 예수가 태어나기 위해서 수천 명의 아이들이 희생되었듯, 동방교 교주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수백 명의 아이들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말을 한다. 이 얼마나 종교의 악랄한 모습인가! 또한 네충텐파는 동박 박사, 김제석은 헤롯왕, 사천왕은 영유아 살해한 병사 등으로 등치된다. 그러고 보면 어쩌면 종교는 태생부터 끔찍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을 구원한다는 미명 아래 인간의 가장 약한 마음을 훔치고 해악 짓을 하는…

뒤늦게 깨달은 나한 박정민이 자신이 평생 절대적으로 믿었던 교주를 불태우는 장면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감독은 결국 이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모든 종교가 불태워져야 한다고까지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영화적 결말은 나름 의미가 있다! 신이 악이 되고 악이 신이 되는 순간(‘그것’과 김제석의 실체 또는 의미 바꿈)에서 우리는 제발 깨달아야 한다. 믿더라고 합리적 이성을 가지고 믿어야 한다는 것을.

영화는 선과 악이라는 장면에 신경을 많이 썼다. 음악과 배경, 상징에 있어 전작 <검은 사제들>보다 진일보했다. 특히 불교적 의미를 파헤쳐가며 기독교와 비교하는 서사의 힘은 대단해 보였다. 다만 여기서 약간 서사가 어그러지거나 등장인물들의 공백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훌륭하다. 주인공인 이정재가 사건의 관찰자에 가깝게 배치한 것은 감독이 영화를 오컬트로 만들기 보다는 종교가 무엇인지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 영화로 만들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싶다. 기독교인이면서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신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인간이 종교를 만든 것은 확실하다. 이제 합리적 이성으로 이 종교에 대해 진지한 반성과 회의를 품을 때가 되었다.

그런데 유지태는 분량은 적지만 영화적으로 아주 중요한 역할인데 왜 출연 배우에 이름이 없는 건지??? 이것도 영화적 의미랑 관련이 있나…

개인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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