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리뷰

by 방정민

<기생충>

드디어 봉준호 감독이 일 냈다. 세계 3대 영화제 중 으뜸이라 할 수 있는 깐느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이다. 100년의 한국영화사에서 기념비적인 일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냉정하게 비판하면 우리는, 세계는 너무 자본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1등주의에 매몰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노벨상을 받아야만 좋은 학자, 훌륭한 나라는 아닐 텐데 노벨상을 못 받아 아쉬움을 넘어 콤플렉스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렇듯 반드시 깐느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아야 좋은 영화인 것은 아니지만 모든 영화인들의 꿈 아니겠는가! 그게 현실이다. 상을 받고 그렇게 좋아하는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의 모습은 그래서 너무나 인간적이었다. 어쩌면 황금종려상을 안겨준 그의 이번 영화 <기생충>처럼 세상은 너무나 대립적이고 이분화되어 있다. 이것 아니면 저것, 최고 아니면 최저, 화려 아니면 비루, 전부 아니면 전무… 그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너무나 안락하게, 그리고 서로 조화 아닌 조화롭게 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란, 세상이란 이렇게 서로에게 기생하면서.

기택(송강호) 가족은 반지하에서 살고 있다. 어쩌다 지금은 모두 실업자다. 아들 기우(최우식)는 4수 끝에 대학에 떨어져 실업자 신세고, 딸 기정(박소담) 또한 뛰어난(?) 미술 실력에도 대학에 못 들어가고 집에서 놀고 있다. 아내 충숙(장혜진)은 전업주부다. 기우의 친구가 교환학생으로 가게 되면서 자신이 하던 고액 과외를 기우에게 맡긴다. 졸지에 궁궐 같은 대저택에서 과외를 하게 된 기우는 여동생 기정을 미술 과외 선생으로 소개하고, 기정은 기존 운전기사를 몰아내고 아버지 기택을 그 집 주인 새 운전기자로 들인다. 급기야 그 집 가정부도 몰아내고 자기 엄마를 대저택에 입성시킨다. 가족 사기집단이라 할만하다. 가난한 기택 가족을 믿고 당하는 박사장(이선균)과 그의 아내(조여정)는 어리어리한 집에서 사는 부유층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어리숙한 바보들이다. 아니면 허술하게 순진한 부르주아들이든지. 어느날 박사장이 직접 차를 몰고 1박으로 가족 나들이를 가는데, 이때를 틈타 기택 가족이 박사장 집에 모여 마치 자기 집인양 술 마시고 먹고 논다. 이때 이들 가족으로부터 쫓겨난 가정부(이정은)가 미처 챙기지 못한 자기 물건 찾으러 왔다며 이 집에 다시 오면서 일이 터진다. 이 대저택에 이 여자 외 아무도 모르는 지하방이 있는데, 여기서 이 여자의 남편이 4년 넘게 살고 있다. 급기야 1박 여정으로 떠났던 박사장 가족이 폭우 때문에 캠프가 취소되어 바로 집으로 돌아오면서 세 가족의 대 전쟁이 벌어진다.


영화 제목 ‘기생충’은 의미심장하다. 쉬우면서 상징이 있는 제목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할 일 없이 노는 사람이나 게으른 사람에게 ‘이 기생충 같은 놈!’하는 말을 참 많이 하곤 했다. 자존심 센 사람은 이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고, 비위 좋고 정신 못 차리는 사람은 이 말을 참 많이 듣곤 했다. 어떤 사람에게 빌붙어 사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이 말은 얼핏 보면 빌붙어 사는 사람을 굉장히 비하하는 말 같지만 결코 이 영화에서는 그렇지 않다. 열심히 하는데도 취직이 안 되고 실력이 좋은데도 대학에 가지 못하는 것은 결코 그 개인의 문제가, 즉 개인의 게으름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분명 제도의 문제요 시스템의 결함 때문인데 천민자본주의인 한국에서 특히 심한 것은 누구의 탓인가! 이런 생각을 하면 문제는 복잡하다. 이런 복잡한 문제를 봉준호 감독이 블랙코미디로 멋지게 풀어해쳤다.

송강호와 그의 아들, 딸, 아내 모두 직업이 없는 실업자들인데 누구 하나 기죽지 않고 우울하지 않다. 블랙코미디라는 장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위에서 말했듯 그들이 실업자인 것이 전적으로 그들의 잘못이나 게으름 때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송강호도 나름 주차 요원 등 계속 일 해왔고 아들과 딸은 대학생보다 실력이 좋은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도 그들은 대학에 떨어져 실업자 신세인 것이다. 이 지면에서 자세히 말하진 않겠지만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서도 나왔듯 지금의 한국 자본주의에서는 돈으로 대학 들어가는 구조다. 부모의 돈으로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구조인 것이다. 돈 없는 부모 밑에서는 대학에,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힘들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송강호와 그의 가족들이 우울하지 않은 이유가 이해된다. 정확히 말하면 당신들의 잘못 때문이 아니니 우울할 이유가 없다는 감독의 의지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단지 우울하지 않는 것을 넘어 밝다. 더 정확히는 밝은 것을 넘어 능청맞고 음흉하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또 단순히 음흉하지만은 않다. 뭔가 순수하고 진실한 면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다면의 복잡한 캐릭터를 송강호를 비롯해 최우식, 박소담, 장혜진이 연기를 아주 잘했다. 신들린 듯한 그들의 이 능청맞은 연기는 봉준호 감독의 생각을 그대로 반영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듯, 그러나 그 현실을 비트는 봉준호만의 새로운 리얼리티의 면모다.

얼핏 보면 온가족 사기단이라 할 수 있는 극 진행인데, 그 속에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 지나친 측면도 있고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면도 있다. 그래서 타인(상대 계층)에 대한 예의를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가령, 휴대폰을 쓰려고 윗집의 와이파이를 잡기 위해 웅크리고 애쓰는 모습과 폭우 쏟아질 때 반지하의 송강호 집이 엉망이 되는 장면은 철저한 리얼리티의 모습이다. 그리고 대저택의 부자 이선균의 가족도 그렇게 악랄하게 나오지 않는다. 이선균과 그의 아들, 딸도 그렇지만 특히 조여정의 연교 역은 밉지 않은(아니, 맹한 구석이 있어 귀엽기까지 한) 부자댁이다. 단순히 자본주의나 상류계층을 비판하고자 했다면 그들을 악하게 그렸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 또한 우리 사회의 일부라고 말하는 듯하다. 심지어 착한 면도 있는 듯하다. 그래서 ‘부자니까 착한 거야!’라는 대사를 넣었을 것이다. 심지어 사기로 온 송강호 가족이 부자 집에 취직한 후 그들 때문에 쫓겨난 사람들 걱정을 잠시 한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예의는 이 사회에서 가능한가!!!

영화는 블랙코미디에서 스릴러 장르로 바꿔 탄다. 그러면서 봉준호 감독이 진정으로 말하고 싶은 것을 쏟아낸다. 대저택에 지하방이 있다는 사실! 그 속에서 사람이 무려 4년 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선균 가족이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정작 그들에게 빌붙어 사는 기생충 가족(그들의 집이 지하라는 공통점이 있다)들이 그들만의 전쟁을 한다. 을들의 전쟁이다. 이 전쟁은 어쩔 수 없이 상대를 죽여야 하는 전쟁이다. 죽이고 싶어서 죽이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이 살기 위해 죽이는 것이다. 이 얼마나 참혹한가!!! 누가 이 을들의 전쟁을 부추겼는가!

그런데 을들만 전쟁하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을까? 그래서 감독은 영화 말미에 송강호가 이선균을 찔러 죽이는 장면을 삽입했을까? 부자인 상류층 너희들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상류층에 대한 반감일까… 감독은 황금종려상을 받은 직후 인터뷰에서 ‘상대, 사람에 대한 예의를 그린 영화’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영화는 어쩌면 감독의 말과는 정반대로 그려졌다. 이 사회에선 사람에 대한 예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감독은 은연중에 피력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선균은 송강호에 대해 선을 넘을 듯하면서 넘지 않아서 좋다고 말한다. 빈자가 부자의 선을 절대 넘지 말라는, 넘어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경고다. 이 경고는 결국 냄새라는 그들만의 계급으로 나뉜다. 원래 냄새는 그 사람에게만 있는 독특하고 유니크한 것이다. 즉 그만의 특징을 나타내는 일종의 상징이다. 그런데 여기선 상류계급과 하류계급을 나누는 그들만의 특징으로 나온다. 절대 섞여서는 안 되는 그들만의 특징이자 그들의 권리다. 그리고 선, 절대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다. 그런데 이것이 섞이는 순간 난리가 난다. 선을 넘어서는 순간 피 칠갑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상대(계급)에 대한 예의는 이 천민자본주의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어렵지 않는 역설과 상징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 하나가 바로 수석이다. 그 흔한 물 속에 섞여 있는 돌일 뿐인데, 전문가가 훌륭하다고 하면 수천만 원, 심지어 수억 원까지 하는 것이다.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이 사회와 참 닮아 있다. 친구가 준 수석으로 자신들과 비슷한 하류계층을 본의 아니게 치고 또 자신이 맞는다. 수천만 원 되는 돌이 사람을 죽이는 무기로 사용되는 이 현실이 어쩌면 우리사회와 참 많이 닮아 있다.

박찬욱 감독이 미장센을 위해 이야기구조를 심하게 비트는 반면(그래서 상징과 비유가 과하다 보니 영화가 어렵다), 봉준호 감독은 그 정도가 심하지 않다. 즉, 미장센도 훌륭한 반면 네러티브(비유와 상징 등을 포함한 이야기구조)도 일반 관객이 충분히 따라갈 정도로 어렵지 않다. 거기다 이번에는 음악도 적절히 잘 섞어서 영화 메시지와 조화가 잘 어우러진다. 그 안에서 선을 넘을 듯 넘지 않으면서 허위와 가식, 그리고 비판과 비극을 보여주는 송강호의 연기는 마치 찰리 채플린의 업그레이드된 버전을 보는 듯하다. 한 마디로 이 영화는 미장센과 음악, 찰진 대사, 슬로우 모션, 빠름과 여유를 오가는 편집, 조명 등 뭐 하나 빠진 것 없이 주제를 훌륭히 받쳐주고 있다. 그래서 깐느는 봉준호 자체가 하나의 장르라고 말하는 것인가!

아무리 지하에서 나오려고 발버둥 쳐도 결코 나올 수 없는 이 사회! 그 선을 넘을 수 없고 그 냄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회! 그래서 계획은 필요 없다. 계획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무계획이 최선인 사회! 그래서 한번 지하로 들어가면 절대 빠져 나올 수 없는데 반지하에서 살던 송강호의 아들 최우식은 과연 계획대로 대저택을 살 수 있을까…

이 사회는 섞일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상대에 대한 예의를 지킬 수 없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파괴뿐이다. 서로 죽일 수밖에 없는 비극뿐이다. 여기까지 오면 결국 파국이다. 모두가 죽는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까… 그래서 기생충은 나쁘지 않는 것이다. 우리 몸에 기생충이 전혀 없으면 오히려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을 아는가? 기생충이 적절히 있어야 오히려 건강에 도움 된다는 사실(그래서 양심 있는 의사는 회충약을 먹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을 봉준호 감독은 알고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 모르겠으나 기생충이 기생충인 것만은 아닌 것이다. 열심히 사는 이 사회의 약자들이여! 오늘 설령 누구에게 기생하며 살고 있더라도 기죽지 말자! 그대들은 결코 기생충이 아님을, 기생은 나쁘지 않음을 인식하며 열심히 살자!!!

개인 별점: ★★★★☆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영화 <조커>리뷰